그 해 여름
written by.허니찬
* * *
"언제 왔어?"
아, 추워. 코트 위로 하얗게 쌓인 눈을 털어내며 현관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버린 손을 뻗어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섰을 때,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던 찬열이와 눈이 마주쳤다. 보일러 안 켜놔서 집 추웠을 텐데. 연락도 없이. 갑작스런 찬열이의 방문에 얼떨떨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디 갔다 왔어?"
집에. 짧게 대꾸하곤 그의 옆에 벗은 코트를 내려두었다. 오롯이 내게 닿아있는 너의 시선을 묵묵히 다 받아내고만 있었다. 너와 제대로 눈을 마주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끝까지 집요하게 눈을 맞추려 애쓰는 너. 결국 큰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쥔 채 눈을 마주하고야마는 찬열이었다. 찬열아, 이제 그만.
"OO아."
"…."
"OOO."
나는 유독 이름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나 내게만 한없이 다정한 네가 불러주는 이름이라면 더더욱. 네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화를 내다가도 결국은 너의 품에 안겨들었으니까. 너에게 약한 나를 너는 알고 있었다. 목소리 듣고 싶은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고, 옆 자리의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는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담담한 듯 싶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는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 *
열일곱 사춘기의 막바지를 보낼 무렵, 그 해 여름. 너를 처음 만났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던 너. 반장을 맡고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너의 짝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후로 삼 년을 같은 반, 같은 자리에서 함께 했다. 열일곱에서 열여덟, 열여덟에서 열아홉. 재벌가의 서자로 늘 식구들에게 외면 당한 채로 살아야 했던 너는 늘 작고 여렸던 나의 우위에 있고 싶어 했다. 항상 무언가에 결핍 되어있던 너의 고독한 눈빛을 떨쳐내지 못했던 이유 또한 그것이었다.
"결혼 날짜, 잡혔어."
나를 품에 가둔 너의 목소리가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내가 얼마만큼 더 무너져야 만족하겠니. 무슨 말을 해야 될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
너를 미워할 수도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되니.
"나는."
"…."
"나는, 너한테 뭐였니."
제발,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너를 원망할 수조차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돼, 찬열아.
* * *
한참을 울다 지쳐 잠에서 깼을 때 너는 미동도 없이 그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단 말도 못하는 건지, 그저 묵묵부답인 채로 10분이 흘렀다. 맞잡은 손을 빼내고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제서야 서러운 울음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떠나라고 심하게 말해 줘. 잊어버릴 수 있게 제발 모질게 날 좀 끊어내 줘.
찬열아, 날 좀 잡아 줘.
"…찬열아."
덜덜 떨리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여덟 살,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피붙이라곤 미국에 사는 이모가 전부였던 나는 8년의 시간을 보육원에서 보냈다. 그에게 처음 생긴 친구였던 나를 무던히도 아껴주셨던 그의 부모님은 정작 그와 나의 결혼만은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근본도 모르는 아이를 며느리로 맡을 수는 없다고, 모진 말로 나를 밀어냈고 그렇게 5년을 버텼던 우리였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키스…할까."
고개를 가로젓는 나를 슬픈 눈으로 응시하는 그가 원망스럽다. 잊어도 지워도 차오르는 너와의 기억은 나를 끊임없이 아프게 만든다. 나는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너는 왜.
* * *
"하지 말라고 말해도 할 거잖아."
"…."
정작 울고 싶은 건 나니까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내가 울고 불고 매달려도, 너는 갈 거잖아."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해도 너는 갈 거잖아."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해. 왜 이렇게 잔인하니. 너는. 죄인마냥 나를 쳐다보지 못하는 너를 뒤로 한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화장대 앞이었다. 거울 앞에 앉아 멍하니 내 모습을 응시한다. 두 눈을 감아내리자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흐른다.
"OOO!"
서랍을 연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커터칼이었다. 화가 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네가 낯설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는 너는,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순간에도 너는, 찬열아. 이렇게나 내 가슴을 아프게 해. 찬열아.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너무 아파.
"…다른 여자랑 손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걸 내가 어떻게 봐."
너는 내 눈물에 한없이 약하다.
쉽게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내 얼굴을 다시 손으로 감싸쥐고 눈물을 닦아주는 너를 끌어 안았다.
"
"사랑해…."
"사랑해, 찬열아…."
제발 날 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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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랑 장례식 갔는데 이게 맞나 좀 봐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