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 빙의글]
trap (부제:울게하소서)
written by.빛
* * *
"이제 그만, 다 그만 두자."
"……."
"나는, 더이상 당신 감당 못 하겠어."
"……."
"미안해."
내 말에 싸늘하게 굳어진 그의 표정을 바라보자니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에 말없이 뒤돌아섰다. 더는 변해가는 네 모습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루한, 미안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그를 두고 돌아서야만 하는 이 길이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환멸을 느끼고도 남았을 그의 집착까지도 사랑했던 걸까.
"OOO."
"…놔."
어느새 빠른 걸음으로 나를 쫓아온 그가 내 팔을 붙들었다.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더 질질 끌면 안 돼, 루한. 내가 널 다시 붙잡을지도 몰라. 매정하게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를 아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나를 품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이 익숙해 또 한 번 눈물을 쏟아낸다. 쉽게 나를 놓아주려하지 않는 그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당신 집착 지겨워."
"O…OO."
"이젠 지겹다 못해 무서워."
"…다시 말해."
"루한, 나 이제 당신 안 사랑해."
알아 듣겠어? 그러니까 제발 이거 놔. 억지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충격에 휩싸여 비틀거리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걸음을 재촉했다. 미안해, 절대 용서하지 마.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하는 나, 그런 나를 바라보고 서있는 싸늘한 그의 얼굴. 가슴이 시렸다. 내노라하는 집안의 귀하디 귀한 외동 아들로 자란 당신에게 나같은 여자는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었다. 제대로 웃지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가련하기 짝이 없는 나같은 여자에게, 당신은 너무도 과분한 상대였다.
* * *
아버지의 화려한 여성 편력, 불쌍한 나의 어머니 또한 수많은 여자들 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아버지의 곁에는 돈을 보고 달려드는 수많은 여자들이 존재했다. 배다른 오빠들, 무서우리만치 악랄한 새어머니. 그 안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심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여린 나는 늘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했고, 애원했으며, 매달렸다. 루한,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원치않는 선 자리에 초대 받아 갔던 호텔 로비에서의 첫 만남. 자석이 이끌리듯 서로에게 끌렸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깨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우리 사이는, 결국 이렇게 끝이 났지만.
"이미 결혼까지 한 남자하고 뭘 더 어쩌겠단 말이에요."
"……."
"우리 그이, 이젠 놔줘요."
"……."
그랬다. 그는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해야만 했고 나는 결국 그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결혼을 하고나서도 서로를 끊어내지 못했던 우리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만남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나는 그를 기다리고, 그런 나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곤 했다. 그런 만남이 계속 될수록 나는 점점 지쳐만갔다. 그래서 그를 뒤로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 애를 써봤지만 그것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달콤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 *
"전화도 안 받고."
"루한."
"집에도 안 들어오고."
"……."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하네."
미쳤어? 잔뜩 날이 서있는 그의 말투에 숨이 막혔다. 자정이 갓 넘은 시간 집으로 들어섰을 때 거실에는 그가 앉아 있었다. 어디 갔었어? 대답하기 싫어? 자신에게 차마 다가서지 못하고 먼발치에 서있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 화가 난 그의 얼굴에선 조금의 평온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앞에 선 그가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으려 한다. 제발, 이제 그만해.
* * *
"오늘 고마웠어요. 레이."
"억지로라도 나와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이대로 못 만나나 싶었는데."
"데려다준 덕분에 편하게 왔는데,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 시간 있으시면…."
"OOO."
레이와 웃으며 말을 주고 받는 도중 차에서 내리는 루한을 보고 눈이 커졌다.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그의 눈빛이 레이를 향해 있었다. 누구냐고 묻는 듯한 표정에 말없이 입술만 깨물었다. 그때, 내 손을 꽉 잡아주며 루한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는 레이. 좋아하는 사입니다. 루한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동시에 내 손을 잡은 레이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레이…."
"갈게요. 자기 전에 전화 할테니까 꼭 받고."
그의 차가 멀리 모습을 보이지 않고, 루한과 나 단 둘이 남았다. 급격히 숨이 가빠져옴을 느꼈다. 나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 나를 옥죄여오는 이 답답함. 벗어나고 싶어. 이제 더는, 더이상은 싫어. 제발 나를 놔줘. 그를 등지고 돌아선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응시하는 루한의 눈빛이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커진 배신감으로 뒤덮여 있었음을.
* * *
"헤어지자고 말한 이유가."
"……."
"저 새끼 때문이었어?"
왜, 말을 못해. 묻잖아. 기어코 집까지 따라들어온 그가 나를 벽에 가둔다. 툭, 눈물이 쏟아졌다. 왜 나는 이렇게 서럽게 울어야만 하는지. 왜 뒤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지. 이 순간에도 나를 사랑한다 말하려는 당신의 얼굴이, 눈빛이, 입술이, 그 목소리가, 싫어.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당신이 나는 싫어. 빌어먹게도 지금 이 순간까지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고 싶은 내 자신이 싫어. 미쳐버릴 것 같아.
"…집에서, 결혼하라고 하셔."
"OOO."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
"어차피 뻔하잖아. 당신은 머무를 곳도, 도망칠 곳도, 또다시 돌아갈 곳도 존재하겠지만."
"……."
"나는…. 없어."
그러니까 돌아가요. 입을 맞추려 얼굴을 가까이하려는 그를 피해 고개를 돌린다. 어차피 끝이 보이는 만남이었다. 그가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그를 먼저 버린 것 뿐이었으니.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그렇게도 쓰고 싶던 집착남 루한이에요. 헨리의 trap, 에픽하이의 습관을 듣고 썼어요. 브금을 트랩으로 넣을까 하다가 그래도 그나마 좀 더 슬프다 싶은 습관으로 낙찰...ㅋ_ㅋ 공부하다가 말고 이게 뭐하는 짓...ㅎ_ㅎ.. 번외는 아직 생각 중에 있어요. 끝을 정해놓고 쓴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다만 그 뒷 이야기가 생각이 나질 않아서 그럽니다(...) 비도 오고 꿀꿀해서 그런가봅니다. 나중엔 달달한 거 들고 올게요.허니찬s2
암호닉♡.♡ |
♡아이스크림, 린현, 미카엘, 코딱지, 자녈워더, 헤헹, 안경, 통통, 쿵니, 눈물샘, 배고파요♡ 암호닉은 언제나 받고 있으니 따로 물어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