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김준면 빙의글]
독(毒)
written by.허니찬
* * *
인터폰으로 비추는 인영을 확인하고, 내 눈이 눈물을 쏟아냄과 동시에 크리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가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는 그녀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였고 현관문 밖의 인영은 다시금 초인종을 눌렀다. 그 순간 코트를 들고있던 크리스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막무가내로 크리스를 저지하고 거실로 들어서려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한 채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오늘로써 정확히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 순간 현관문 밖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OOO,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
"문 열어. OOO."
"…."
"OO아."
현관에 서있는 크리스와 은수를 지나쳐 현관문 앞에 섰다.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의 크리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 이은수. 그리고 또다시 무기력하게 눈물을 쏟아내는 나.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준면이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더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 * *
크리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거실에 발을 들여놓은 여자가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나가서 얘기해. 낮게 깔린 크리스의 음성에도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나를 지나쳐 소파에 앉는다. 이 곳은 엄연히 크리스와 나의 공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아서도 안 되고, 방해 받고 싶지도 않은, 오롯이 우리 둘만의 공간. 불쾌함을 표시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같이 미간을 좁히는 준면이가 크리스에게 눈길을 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정면만을 응시하던 여자는 내가 자신의 맞은 편에 앉기 바라는 것 같았다.
"이은수."
"…."
"고집 부리지 말고 나와."
단호하고 칼같은 크리스의 목소리 못지않게 대단한 고집의 은수였다. 싫어. 나 할 말 있어서 온 거야. 울어서인지 약간은 잠긴듯한 은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은수의 행동을 보고 서있는 준면의 표정 또한 잔뜩 굳어지다 못해 싸늘했다. OO와 처음 만났던 날 크리스가 집 앞에서 보였던 행동들, 백현과 유리에게서 들은 얘기들로 지금 그녀에게 닥친 모든 상황들을 대충은 눈치 채고있던 준면이었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은수의 말투, 행동에 당황스럽기는 크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오라고 말했어."
"크리스."
"더 말하게 하지 마."
"싫다고 말했…!"
"나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소파에 앉아있던 은수의 말을 막고 은수를 끌어낸 것은 준면이었다. 화를 눌러담는 준면이의 모습에 당황한 듯한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러다 크리스와 싸우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앞서는 마음에 재빨리 준면이에게 다가서 팔을 붙잡았다. 준면아, 그러지 마. 고개를 가로젓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여자의 팔을 놓는다. 크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 * *
"OO씨는 좋겠어요."
"…."
"남편 따로, 남자친구 따로."
"…."
"안 그래요?"
비꼬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이제 막 진정 되는가 싶던 심장이 다시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뒤통수라도 얻어 맞은듯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나. 그녀의 말에 놀라긴 크리스와 준면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원래 그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하잖아요. OO씨, 그것도 안 그래요? 증오심 가득한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떴다. 이은수, 그건 네가 할 말이 아니야. 입술을 앙 다물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크리스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쪽이 할 말은 아니잖아요."
"뭐라구요?"
"잊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미 결혼한 사람 꼬드겨서 만난 건 너였잖아."
"…."
"여기가 네 자리라고 했지. 무슨 근거로 그따위 말을 해?"
잔뜩 날이 선 내 목소리에 놀란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당최 자신의 말을 듣질 않고 고집을 부리는 은수 때문에 긴장하고 있던 크리스도, 은수를 노려보고 있던 준면이도 놀란 표정을 금치 못하고 모진 독설을 내뱉는 내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침착한 표정으로 조목조목 반박을 하려드는 내 태도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눈물도 마른지 오래였다.
"자기 자리라는 건, 어떻게든 자기 자신이 지키고 있어야 자기 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
"헤어지자는 사람 집까지 찾아와서 이러는 거, 구질구질해."
"…."
"알겠니?"
"…."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말을 끝내고 뒤돌아선 내 손을 잡아준 것은 준면이었다. 흔들리는 눈빛의 크리스를 바라볼 수 없었다.
* * *
"…갔다 올게."
어색한 침묵을 깨고 그녀와 집을 나서는 크리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던 내 옆에 앉는 준면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앞치마를 꼭 부여잡는 내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기어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나를 끌어안고 토닥이는 그의 목소리에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없는 10년이 너무 힘들었어, 준면아. 나는, 나는….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어. 그래서 더 너한테 갈 수가 없었어.
"OO아."
"준면아…."
"그만 울어."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말걸."
이럴 줄 알았으면 좋아하지 말걸.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랑하지 말걸.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걸 그랬어. 준면아.
"우리…."
"도망 칠까."
간절한 너의 말에 또다시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부터 크리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준면이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크리스와 나는, 조금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달리 되었더라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눈물샘, 코딱지, 린현, 미카엘, 자녈워더, 쿵니, 치킨맛마요♡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