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김준면 빙의글]
독(毒)
written by.허니찬
* * *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너의 표정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자신을 외면했던 나에게 벌이라도 주고있는 것일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너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은수 때문에 크게 너는 또 상처를 받았을 게 뻔했고 그래서 나는 더더욱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늘 너를 아프게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은수를 억지로 끌고나가려다 마주한 남자의 얼굴이 잔뜩 굳어져있었다.
김준면. 그저 오래된 친구라고 말은 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맨 처음 집 앞에서도, 마트 앞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불안함에 떨게하는 남자였다. 엘리베이터 안, 결국은 눈물을 보이는 은수의 손목을 꽉 쥐었다. 나는 어디까지 잔인해져야 할까. 거울에 비친 안쓰러운 은수의 모습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네가 다정해서 좋아, 크리스.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을 떠올렸다. 대학 시절 만났던 은수는 텅 비워져 공허했던 내 마음 속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여자였다.
아버지의 복잡했던 여자 관계, 그로 인해 너무도 힘들어하셨던 어머니.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로움을 느꼈던 나는 자석이 이끌리듯 운명처럼 은수를 만났다. 5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외로웠던 서로를 달래주던 우리. 결혼과 단란한 가정을 꿈꾸던 우리에게 집안의 반대는 너무도 힘겨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OO와의 결혼을 진행 시켰고,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은수를 정리할 시간도, 심적 여유도 부족했었다.
"…이제 마음 정리 다 했니?"
자신의 오피스텔로 들어서자마자 낮게 잠긴 은수의 목소리는 울음이 가득했다. 서러움이 담긴 눈물을 기어코 다 쏟지 못하고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두운 거실을 채우는 너의 목소리.
"…그래."
"크리스."
"진작 정리 했어야 맞는 거였어. 여전히 널 사랑하고 있는 줄 알았어."
"…."
"근데, 아니었나 봐."
끝난 사랑에 대한 미안함일 뿐이었나 봐.
* * *
"준면아."
"응."
"얼른 가."
크리스가 돌아오기 전 준면이를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괜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일 수도 있었으나 그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이었다.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깊게 느껴졌다. 나 괜찮아. 도대체 나는 매일 뭐가 그렇게 괜찮은건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른세수를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함.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내 자신의 무능력함이 너무도 싫었다.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
"…."
"OO아."
"…준면아."
"다 내려놓고, 너랑 나만 생각하자."
성화에 못 이긴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끌어안았다. 내 등을 토닥거리는 손길에 안도감이 들었고 무거운 침묵이 우리 둘을 짓누르고 있었다. 크리스가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준면이와 도피를 약속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를 품에서 떼어내고 조심스럽게 얼굴을 마주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던 그가 그제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앞까지 배웅 해줄게. 현관을 나서는 준면이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갈게."
"응. 전화해."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 준면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은수를 데리고 나간 크리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준면이의 차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서있었다. 준면이를 보내고나서 선뜻 아무도 없는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만이 가득한, 사람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크리스와 나의 집이었다. 꽤나 두터운 스웨터를 걸치고 나왔기에 주변 공원을 둘러보려 걸음을 옮겼다. 언제 집으로 올지 모르는 크리스를 집에서 마냥 기다리기 싫었다.
* * *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말없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생각해보니 결혼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크리스의 손을 잡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잘해주려 애를 쓰는 그의 모습이 더욱 어색하게 다가오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크리스의 행동을 받아들였으나 속으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이혼을 막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오래도록 혼자 두었던 나에 대한 미안함인지. 손끝을 스치는 바람이 봄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준면이를 따라 도망 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었다. 크리스는 물론이거니와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백현이와 유리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컸다. 적어도 내 쪽에선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었다고 해도 크리스의 입장은 달랐다. 집안의 반대에 부딫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지 못했던 크리스는 은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점점 변해가는 마음을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을 그의 시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나는 크리스의 곁에 머무는 은수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을 것 같아 겁이 났다.
"…금방 왔네요."
"어. 데려다주고 온다고 했으니까.."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침실 장롱 문을 열고 입었던 외투를 정리했다.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크리스의 얼굴에는 할 말이 잔뜩 남아있는 것 같이 보였다. 미쳐 다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겠지만 애써 눌러담는 듯한 얼굴이었다.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들이 내 귀에 고스란히 변명으로 들릴 거란 걸 알아서였을까.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코트를 벗는 크리스를 뒤로하고 화장대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방을 나왔다.
한 공간 안에서 조용히 서로를 지나치는 일은 이미 우리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 * *
방문을 닫고 주방으로 들어와 물을 따라 마신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한숨을 짧게 내쉬고 식탁에 그대로 남겨져있던 그릇들이며 수저를 치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머리 속은 준면이의 도망 가자는 말 때문에 어지러웠고 준면이의 등장에도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크리스의 태도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고무장갑을 벗고 거실로 나가 방문을 열었다.
"크리ㅅ…."
화장대에 두고 나왔던 휴대폰을 귀에 대고 서있는 크리스. 그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는 턱 막혀 숨어버린지 오래였고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발은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발신자가 준면이라는 것도, 크리스가 어떠한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이미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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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