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김준면 빙의글]
독(毒)
written by.빛
* * *
"…왔다."
"…."
"정말, 왔구나."
식탁에 마주앉은 크리스의 얼굴을 바라보자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부부라는 이름 아래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함께 지내왔지만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도, 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만큼 무심했고 소원했다. 서로의 생일을 챙겨준 적도 없었고 그 흔한 기념일을 챙긴 적도 없을 정도로. 크리스의 일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었다. 자신에게 쏠리는 내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던 그이였기에.
먹자. 짧은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저를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수저질을 하는 크리스와 달리 그의 앞에 앉은 나는 계속 밥알을 세고 있었다. 목이 메여 제대로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지난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불현듯 준면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불어 기다리겠다고 말하던 울음 섞인 목소리까지. 나는 참 미련스러운 여자였다.
처음인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내 앞에 앉은 크리스도 단 둘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지금 이 순간의 어색함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들고있던 물컵을 내려놓고 굳은 표정을 보인다. 그의 입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이은수. 그녈 잊고 싶어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었다. 그만큼 크리스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녀였으리라. 그것이 그를 사랑하는 내가 크리스에게서 그녀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는 이유였기에 조금 전 크리스가 그녀에게 했던 말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를 바래다주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굳게 닫겨있던 말문을 여는 크리스의 얼굴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 * *
"헤어졌어."
짧은 한마디에 말문이 막힌다.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한 방편이였던 젓가락이 그대로 방향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이제서야. 지금 이 순간 준면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 나를 향해 저 말을 내뱉는 의도는 무엇일까. 도무지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의 얼굴은 방금 전보다 더더욱 굳어진 채였다. 손에 쥐었던 젓가락을 떨어뜨리자마자 낮은 곳으로 향해있던 내 시선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 밖에는.
"아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거라 미안ㅎ…."
"괜찮아요."
"OO아."
"사과할 필요 없어요. 괜찮으니까."
밥 마저 먹어요. 다정히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의 목소리를 애써 모른 척 했다. 더는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더 그에게 마음을 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으니까. 애초부터 크리스와 마음을 주고 받는 일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내게 차갑기만 하던 크리스의 갑작스런 변화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놀란 마음을 애써 추스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대했다.
괜찮다는 내 말에 적잖이 당황한 크리스의 얼굴은 여전히 은수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한 듯 보였다. 내 앞에 앉아있는 크리스에게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느냐고. 내가 10년 전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크리스도 언젠가 오늘 일을 후회할 것 같았으니까.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집으로 달려갈 것 같았으니까.
"애쓰지 않아도 돼요."
"…."
"지금까지 잘 견뎠어."
"…."
"나도 크리스도 이대로가 좋잖아. 아까 했던 말, 못 들은 걸로 할게."
"…."
"제발 애써 그러지 말아요."
"…."
"이제 더 떨어질 곳도 없어. 그만 비참하게 해요."
돌아서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지긋지긋한 미련을 내가 먼저 떨쳐내야 한다고. 이제는 정말 그를, 크리스를 향한 덧없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는 마음 뿐이었다. 죄책감 서린 그의 얼굴이 유난히도 슬퍼 보였다.
* * *
그 일이 있은지 2주가 지났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그간 변한 것이 있다면 크리스의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 크리스와 하루에 주고 받는 연락의 횟수가 잦아졌다는 것. 그리고 준면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크리스를 놓아주기로 마음 먹은 뒤부터 점점 크리스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계속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크리스를 출근 시키고 깜빡 잠이 들었다 깼다. 한동안 여기 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장을 보지 않아서인지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고 당장 저녁 찬거리도 변변치 않았다.
핸드폰 진동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크리스의 카톡이었고 마트에 간다고 답장을 보냈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문자나 카톡을 주고 받는 일 또한 전에 없던 일이었다. 스웨터를 걸치고 간단하게 지갑, 핸드폰만을 들고 집을 나섰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응, 나 지금 마트 가려고 나왔어."
-지금 얼굴 보려고 가는 길인데.
"아, 정말? 어떡하지."
-차 가지고 왔어?
"아니. 아, 준면아. 나 마트 도착했는데. 엄청 시끄럽다. 끊자, 이따 전화 할게."
전화를 끊고나서 핸드폰을 스웨터 주머니에 넣었다. 카트를 끌고 마트에 들어섰다. 메모지에 적어온 목록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한다. 이것 저것 카트에 담는 도중 스웨터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사람 많은데. 괜히 전화를 받았다간 더 복잡할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하고 야채 과일 코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사과를 하나 집어 들었을 때였다.
"OO아."
"아, 깜짝이야."
"물건은 이렇게 많이 샀으면서 차도 없이 어떻게 가려고."
"그래서 기사 노릇 해주시려고 오셨어요? 온다는 말 없었잖아."
깜짝 놀래키려고. 다정하게 웃는 모습에 눈을 마주치고 나도 따라 웃었다. 준면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왔다가 다시 차를 돌려 마트까지 왔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이 여간 능글 맞은 게 아니였다. 괜찮다는데도 굳이 카트를 밀겠다는 그의 고집에 결국은 카트를 넘겨준다. 다정함이 여전하듯 고집 또한 여전했다.
* * *
한 가득 짐을 담은 카트를 끌고 마트 입구로 나왔다. 여기 있어, 차 가지고 올게.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간 준면이를 기다리는 동안 카트 안의 짐들을 다시 정리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들이 유독 많아보였다. 그래서 준면이가 꽤 늦는 것 같았다. 스웨터 주머니로 손을 뻗었을 때 진동이 느껴져 핸드폰을 꺼냈다. 여러 통의 카톡이 와있었다. 발신자는 모조리 크리스였다.
[어딨어?]
[지금 출발해.]
[카톡 보는대로 연락해.]
[데리러 가니까.]
[마트 앞이야.]
카톡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차에서 내리는 크리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말끔하게 수트를 차려입은 크리스가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을 때 차를 가지고 온 준면이가 내 쪽으로 먼저 걸어왔다. 아직 크리스를 보지 못한 준면이 카트를 정리하려 할 때, 크리스가 다가선다.
"OO아. 데려다줄게. 가ㅈ…."
"또 뵙네요."
크리스와 준면, 눈이 마주친 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H O N E Y C H A N N N! |
오랜만에 찾아 뵙네요. 매번 드리는 인사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매번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 감사해요. 암호닉은 언제나 신청 받고 있어요. 최근 들어서 자주 안 보이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조금 울적하네요T-T... 당부의 말씀이 하나 있는데, 빙의글의 주인공 '나'는 저를 포함한 여러분이에요. 여주라는 호칭은 걸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삼가 부탁드려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빙의'하시라는 건데, 여주라고 치부해버리시면 그건 정말 곤란해요. ♡아이스크림, 린현, 눈물샘, 코딱지, 자녈워더, 미카엘, 쿵니♡ 암호닉은 제 임의대로 다 정리하고 남은 분들입니다. 서운하다 생각하지 마시고 저랑 소통할 자신 있으신 분만 신청해주세요.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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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