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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1등은 해외 여행권 입니다~"
"......"
푹푹 찌는 여름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서 있는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시원한 마트에서 그냥 나가려던 나의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 들어서 장 본 것을 손에 인 채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추첨 응모권은 다름 아닌 영수증이었는데,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써서 1등에 당첨되면 해외 여행권을 주는 모양이었다.
저런 운은 별로 없으니 그냥 가자...
"장 보고 나오신 거죠?"
"아.... 예..."
"그럼 이쪽으로 와서 쓰세요~ 손해볼 것도 없는데~"
"아...."
목소리 큰 아저씨한테 붙잡혀서 얼결에 장 본 것을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
'아저씨 말대로 손해볼 것은 없으니 괜찮겠지' 싶어서 별 생각않고 글씨를 휘갈겼다. 추첨상자에 종이를 집어 넣고 그냥 나올 뻔하다
다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서 장 본 것을 챙겨 자리를 떴다.
"제가 당첨이라고요?"
"예~ 오셔서 여행권 찾아가세요~"
뚝-
용건만 말하고 끊긴 전화기를 잠깐 바라보다가 당첨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밖에 모르는 내게 경품 당첨이라니...! 그것도 해외여행이라니..!
어째 얼마 사지도 않은 내가 당첨이 된 것에 조금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눈누
마트에 도착해서 아주머니가 내미신 티켓을 받았다.
그런데 응...?
"저... 저기...."
"?"
"..이, 이거...."
"왜요?"
"..비, 비행기 표가 아니네요..?"
"네, 선박 탑승권이에요."
...그럼 그렇지. 나 따우가 무슨.
마트에서 왠 행사를 하나 했어.
축 쳐진 어깨로 한숨을 푹 쉬다가 어찌되었던 해외 여행은 여행이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한이 얼마 남지가 않았다.
"...표 정리 하는 건가."
또 한숨을 쉬며 오늘따라 더 얄궂은 태양이 꼴보기 싫어 집으로 뛰어갔다.
여행날.
여행은 처음인지라 다 챙기긴 한 건지 불안했다.
...일본이라....
영화에서 보던 영상이 떠올라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티켓에 표시된 국제선 항으로 도착하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시작부터 땀을 흘리고 앉아 있으니 어쩐지 불안해졌다.
호, 혹시 인신매매....?
에이, 설마... 그럼 동네 사람들한테 다 소문날텐데...
그런데 어쩐지 이 쪽으로는 여객선이 올 것 같진 않은데...
"아가씨가 타는 거야?"
"....에?"
햇볕 때문에 찡그린 얼굴로 고갤 드니, 왠지 인신매매단 쪽 같다는 생각에 더 확신이 들었다.
배는 큰 여객선이 아니라 초라한 배 한 척이었고, 승객도 나 한 명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어서 타, 아가씨. 빨리 출발하게."
"......"
내가 머뭇거리고 있으니 아저씨의 까맣게 탄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저씨 기에 눌려서 쪼그라들어 내 캐리어를 들어 조심조심 올라탔다.
"아가씨 멀미약은 먹었어?"
"네?"
"배가 울렁거리니까 아가씨들은 힘들어 해~"
어쩐지 까맣게 그을린 아저씨의 얼굴이 그리 험상궂어 보이진 않았다.
나는 곧 아저씨의 사람 좋은 웃음에 안심하고 짐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나는 아저씨의 예언대로 속이 조금 불편했다.
중간에 다다르자 하늘은 차차 어둑해지고 있었다.
꿀렁꿀렁한 속이 불편해서 생수를 들고 속을 진정시키려 하는데, 순간 배가 출렁였다.
"컿..."
"아가씨 괜찮아..?!"
"..으.. 네! 괜찮아요..."
얼굴에 쏟아부은 물을 손으로 대충 쓱쓱 닦아서 밖을 살펴보니, 물살이 강해져 있었다.
아저씨의 더 까매보이는 얼굴이 낮보다 더 일그러졌다.
"이거 큰일이네..."
"..무슨 일 있나요?"
"..이대로 가다간 비오겠는데... 물살도 더 세질 것 같고..."
"....."
"아가씨는 빨리 들어가 있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네."
아저씨의 말을 순순히 들으며 문을 닫고 밖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냥 조금 걸려도 괜찮고, 멀미 조금 더 해도 괜찮으니 무슨 일만 안 일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하늘에 대고 빌었다.
그러나, 하늘은 나의 성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깜깜해지며 곧 비를 퍼부었다.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밖에서 위험하게 배를 모는 아저씨가 걱정이 되어, 결국 문을 열고 비를 맞았다.
"아저씨..!.."
"아가씨 나오지 말라니까!.. 얼른 들어가!..."
그 순간, 배는 파도에 덥썩 삼켜졌다.
나는 바닷물과 파도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덮쳐져서 바다 한가운데에 빠져버렸다.
내 몸뚱이는 살려고 아둥바둥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 나는 한낱 개미 한 마리처럼 맥을 못 추었다.
아... 나 이대로 죽는 구나... 공짜에 너무 사족을 못 쓰면 안되는 구나...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아빠, 엄마...
물 밖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나는 파도에 철썩임에 사정없이 뺨을 맞다가 곧 꼬로록 가라앉아 버렸다.
뜨거워....
"......"
여기는 천국인가? 아님 지옥...?
나는 힘겹게 눈을 떠서 내 상황을 살폈다. 밝은 것을 보니 지옥은 아닌 것 같다.
쫄딱 젖어있는 내 몸은 반은 해변에 걸쳐져 있고, 반은 바닷물에 여전히 담그고 있었다.
아무래도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컿
몇 번 물을 토 해내고 나니, 여기가 무인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힘겹게 뜨거운 태양 밑에서 기어나와 나무 아래 그늘에서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멀리서 실루엣이 보였다.
사람인 것 같다.
"...!..."
"......"
나는 반가움이랄지, 놀라움이랄지 모를 감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의 움직임에 상대방은 약간 놀라서 걸음을 한 두 발자국 물렀다. 아무래도 여기 원주민 같은 사람인 것 같았다.
키가 큰 남자였다.
피부는 까맣게 익어있고 팔다리가 길고 어깨가 넓어 서양인인가 싶어서 조금 긴장을 하다,
머리카락이 까만 것을 보고 약간 안도했다.
... 그래봤자, 한국인일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저.... 저기....... 사람이에요.....?"
"......"
그는 내 주변을 빙 돌아서 나를 예의주시했다.
그리고는 내 목에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를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