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관람불가 上
지용은 종이를 소리 나게 꾸겨버렸다. 심기가 제대로 뒤틀렸다는 증거였다. 머리에 잔뜩 쥐가 난 것 처럼 괴로웠고, 무엇을 하건 무엇을 보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둔 책의 내용은, 이미 승현이 온 그때부터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있던 것이였다. 하지만 콧노래를 불러 대며 제 이름을 불러 제끼는 눈 앞의 청소년을 위해서라도, 그는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만 했다. 고3때 이후로 처음 접하는 종류였다. 이렇게 쥐나고 어려운 문제는.
“아저씨…. 할 거 많이 남았죠.”
“어.”
“진짜 일만 하네요…. 고3인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시끄럽다. 방해 할 거면 오지도 말랬지.”
“그냥 집에 가면 안돼요? 네? 얌전히 있을 게요. 네?”
“할 일 많아.”
“그럼 아저씨 집 갈때까지 기다릴게요!”
“제발 좀 가라. 우리집에 너 들일 생각 없으니깐.”
“씨…. 아저씨 정말 나 좋아하긴 해요?”
“아마도.”
“근데 왜 그래요?”
“집에 들일 정도는 아닌가 보지.”
승현은 대답이 없었다. 삐진 건가 싶어서 슬쩍 머리를 들어 승현을 살피자,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처박고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한숨 쉬는 버릇을 고치라고 꽤나 혼을 낸 것 같은데, 고칠 생각이 영 없는 듯 오늘만 해도 다섯번이나 듣는 소리였다. 지용은 필요치 이상의 혼을 내서라도 승현의 한숨 쉬는 버릇을 고쳐 주고 싶어했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노인네들 처럼 한숨 쉬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괜스레 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승현.”
“아, 한숨. 미안해요. 안 쉴게.”
“가자.”
“설마 아저씨 집에요?”
“그래. 우리 집.”
“어? 진짜요? 진짜죠?”
지용은 제 말 하나에 또 금세 얼굴을 피고, 아저씨 만세! 라며 제 팔을 꼭 잡는 승현을 내려다 보았다. 반한 사람은 원래 불리하다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지용은 속으로 백번이고 더 쉬었을 한숨을 다시 한번 삭히며 생각했다. 지독히도 어려운 문제라고.
청소년 관람 불가 上
승현의 마음은 차에 탄 순간 부터, 미친듯이 들떠 있었다. 까탈스런 애인을 둔 탓에, 교제를 시작한 지는 꽤나 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에 한번 가지 못했던 승현이였다. 그덕에 승현은 설렘을 감출 수 없었고, 절로 새어 나오는 콧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아저씨 집 넓죠? 왠지 그럴 것 같아.”
“혼자 살기에는 좀 넓지.”
“그쵸?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집도 아저씨 처럼 생겼을 것 같아.”
“나처럼 생긴 건 또 뭐야.”
“음. 그냥 느낌 같은 거 있잖아요. 하얀 소파에 하얀 벽지에 하얀 침대…. 그냥 온통 하얀 집일 것 같아. 맞죠?”
“뭐야. 왜 이렇게 신났어.”
“그냥 아저씨 집 처음 이잖아요. 으하- 떨린다.”
“…별게 다 떨린다.”
말은 그렇게 내뱉은 주제에, 지용의 심장 역시 평소보다 두배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벌써 사귄지 1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에 승현을 집에 들이지 않는 이유는, 지독히도 단순한 종류였지만 그에게는 제법 중요한 부분이였다. 진도는 오직 키스까지만. 미성년자인 승현이 청소년 딱지를 뗄 그날까지 참겠다는 심사였다. 승현과 교제 하는 것도 양심에 큰 가책을 느끼고 있던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승현은 그런 지용도 몰라 주고는 때때로 서슴치 않는 말을 내뱉기도 했으며, 키스를 하거나 포옹을 할 때는 갑작스런 돌발 행동으로 지용의 이성에 난도질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용은 그런 고난 속에도 굳건히 참고 또 인내해야만 했다.
“누나가 걱정 할텐데.”
“어? 내가 말 안 했어요? 누나 남자친구네 집 간다고 오늘 안 들어온데요.”
“…너도?”
“네? 뭐가요?”
“너도 집에 안 들어가도 되냐고.”
승현은 지용의 말 뜻을 이해했다. 친구들이 종종 여자친구와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말할 때 마다, 지용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종류였다. 상상을 하기도 전에 얼굴이 붉어지며 몸이 베베 꼬였지만, 싫거나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승현은 제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보이는 지용의 옆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들어가도 되요.”
“그래? 어차피 안 보낼려고 했어.”
“…….”
“장난 좀 쳤다고 겁먹기는. 내려라.”
청소년 딱지를 떼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제발 참자. 제발 기다리자. 지용은 제 손을 꼭 잡아오는 승현을 바라보며 한참을 되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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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떡을 칠까요 안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