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오자 엄마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전 날 집을 깔끔하게 치운 터라 엄마도 나름 만족하는것 같았다. 이내 냉장고 문을 연 엄마는 왜 먹을게 없냐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너 맨날 컵라면만 먹니?"
"ㅇ,아니야! 그냥 내가 가끔 해 먹을 때도 있고...나가서 먹고 올 때도 있고..."
"내가 이럴줄 알았다. 엄마 미국 가기 전에 반찬 몇개 해 놓을 테니까 너도 먹고, 종대도 좀 갖다주고 해."
"김종대?"
"그래, 종대도 혼자 살거 아니야."
"...별로 주기 싫은데."
"얘가 진짜!"
엄마는 손을 들어 내 등을 짝소리가 나게 때렸고 나는 아! 하지마! 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 손을 피했다.
"너 여기 와서 앉아봐, 엄마랑 얘기 좀 하자."
문득 진지한 엄마의 목소리에 살짝 겁이 났다.
유치한 김팀장 11
"그래서 종대랑은, 결혼하기로 한거야?"
"...뭐래, 아니야."
"종대가 10년이나 기다려줬는데."
뭐라 대꾸를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떻게 엄마에게 이 모든 일을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절대 안되는 일이었다.
"종대가 얼마나 어른스럽니."
"김종대가 어른스럽다고?"
픽 웃음이 나왔다. 김종대가 어른스럽다니, 그래. 사실 고등학생 때 김종대는 나름 어른스러웠던것 같다. 내가 아무리 먼저 짜증을 내거나 투정을 부려도 항상 부드럽게 웃으며 그랬어-하며 내 모든걸 받아줬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10년동안 정신연령이 더 낮아진것 같기도 하고...김종대가 나한테 투정부릴때 항상 짓는 표정인 입술을 쭉 내미는 표정이 생각나 작게 웃었다. 고등학생 때도 나한테 서운한거 있음 그런 표정 지었는데, 어떻게 보면 변한게 하나 없는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잘 생각해봐."
"..."
"엄마는 솔직히 너 걱정돼, 이렇게 가족들하고 떨어져서 혼자 사는거."
"..."
"종대 좋은 애잖아."
"..."
"사실 이번에 와서 너 선자리나 한번 알아보려고 했는데, 종대랑 아직도 만난다니까 그건 됐고, 며칠만 이따 가야겠네."
"...언제 갈건데?"
"글쎄, 내일모래쯤?"
"왜 이렇게 일찍 가?"
"너 동생 혼자 있잖아. 걔는 아직도 어려. 뭔 사고를 그렇게 많이 치는지 원."
엄마는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적인 내 동생이 많이 걱정스러운 듯 했다.
"뭐 어때, 또 저러다 말겠지."
"그렇긴 해도, 내가 자리 오래 비우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찌푸린 엄마의 미간이 동생에 대한 염려를 보여줬다. 사실 나도 동생하고는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한창 폭풍같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라 내가 아무리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됐어, 다음에 연락해, 와 같은 차가운 말만 남기기 일쑤였다.
"엄마가 침대에서 자, 나 바닥에서 잘게."
"됐어, 너가 침대에서 자. 내일도 일 나가야 되잖아."
"괜찮다니깐."
엄마를 억지로 침대에 올려보내놓고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가족을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건데, 사실 이 느낌이 정말 그리웠다.
솔직히 한국에 혼자 살면서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것도 힘들었는데 김종대 때문에 감정소모가 두배가 돼서 더 힘들었지. 김종대는 아까 헤어진 후로 연락 한 통 없었다. 남자들은 관심있는 여자한테 맨날 연락한다는데, 이 와중에도 김종대에게 전전긍긍하는 내가 싫었다.
***
"여주야, 일어나야지."
어...
한참 눈을 뜨고도 멍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아, 엄마 왔었지, 하고 정신을 차렸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눈을 똑바로 떴더니 부엌에서 한창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의 뒷 모습이 보였다.
문득 찡한 느낌이 들었다. 아닌 줄 알았는데, 막상 엄마가 정말로 내 눈 앞에 있으니 내가 많이 외로웠었구나, 하고 느꼈다.
"잘먹겠습니다-"
"많이 먹어야지 오늘도 힘내서 일하지."
"엄마는 오늘 뭐 할거야?"
"엄마도 그냥 친구들 만나고, 오랜만에 친척들 좀 만나고 하게."
밥을 우물우물 먹으며 엄마와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 그 때 울리는 핸드폰에 액정을 보았더니 김종대가 전화를 건것이 보였다.
"왜?"
-어디야?
"집이지."
-십분 이따가 나와. 데리러 갈게.
"ㅇ,야!"
김종대는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전화를 끊겨버렸고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화면만 바라보았다.
"종대야?"
"응."
"데리러온대?"
"...응."
"우리 종대 착하네."
흐뭇한듯 웃는 엄마에 나도 그냥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엄마한테는 죽어도 못 말하겠다. 김종대하고 무슨일이 있었는지. 엄마가 저 정도로 김종대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양치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대문을 열자마자 김종대가 왁!! 소리를 내며 어디선가 숨어있다 튀어나왔다.
"뭐하냐?"
"...뭐야, 안 놀랐어?"
"유치하긴."
"재미없어."
"재미없으면 따로 가든가."
"ㅇ,아니 그게 아니잖아!"
내 밍밍한 반응에 김종대는 마음에 안드는듯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에 내가 무심하게 따로가든가, 하고 말하자 바로 찡찡대며 그게 아니지!! 너무해! 하고 시끄럽게 굴어대는 김종대였다.
그런 김종대를 무시하고는 조수석에 오르려 문을 열고 한쪽 발을 차에 올리자마자 김종대가 내 허리를 감싸안더니 뒤에서 그대로 당겨안았다. 그 바람에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져 김종대의 품에 안길 수 밖에 없었고, 나는 당황해 딱딱히 굳어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야, 야 너 뭐하는거야-, 지금."
"너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뭐래, 진짜."
"...나만 보고 싶은데."
"뭐야, 변태야?"
김종대의 자기만 보고 싶다는 말에 헛웃음을 치며 변태야? 하고 되물어봤다. 그에 김종대가 내 귀에 대고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솔직히, 김종대가 내 귀 옆에 바로 대고 계속 웃고 말하고 하니깐, 어...느낌이 간질간질하니 썩 좋지 않다.
"나 변태 맞는데."
"야, 김종대. 근데 있잖아..."
"응, 왜?"
"...너 귀에다 대고 말 안하면 안돼? 간지럽고 기분 안좋아."
"아아-"
내 말에 김종대가 짓궂게 웃더니 그대로 내 어깨에 고개를 올리더니 귀에다 대고 뭐라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여주 귀 예민하구나?"
"으, 미쳤, 냐, 진짜-"
김종대 좋아 죽는다, 김종대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더니 한참을 큭큭대며 웃었다. 여전히 뒤에서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김종대의 팔을 억지로 풀어내려 했지만 꼴에 남자라고 힘은 더럽게 세가지고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너는 내가 당황하는게 좋지?"
"당연하지, 너 당황하면 귀엽고 섹시해."
"미친놈, 진짜."
그대로 팔꿈치로 김종대의 배를 가격했다. 바로 윽, 소리를 내며 나에게 툭 떨어지는 김종대였다.
"아...나 아파, 여주야."
"아프라고 한거야."
"히잉..."
나이가 몇인데 히잉은 히잉이야, 진짜. 김종대를 째려보고는 차에 오르려 하자 김종대가 다시 한번 내 팔목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아씨, 이번에는 또 왜?"
"...그래서 옷 안 갈아입을거야?"
"뭐가?"
"치마..."
그 말에 김종대를 다시 한번 노려보고는 무시하고 그냥 차에 올랐다. 김종대는 심통난 표정으로 조수석 문을 쾅 닫아주었고 운전석에 앉아서도 불만 투성이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종대가 투덜대는 소리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었더니 김종대가 한숨을 푹 내쉬며 조용해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김종대에 힐끗 돌아보자 김종대가 안그래도 쳐진 눈썹을 더욱 추욱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보여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김종대, 귀엽긴 더럽게 귀여...아, 내가 미쳤지.
"난 정말로 걱정돼..."
"...뭐가?"
"너 그렇게 입고 다니는거."
그에 내 치마를 내려다보았다. 절대로 내가 미국을 오래 살다왔다고 파격적인 의상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저 다른 평범한 여직원들과 비슷한 오피스룩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진짜...진짜...회사에서 다른 남자들이 너 볼때마다 애타서 죽을 것 같아..."
"..."
"불안하고, 막,"
김종대는 항상 감정표현에 솔직했다. 학생때도 그랬고, 나 처음 입사했을 때도 난 너가 싫어! 하며 팍팍 티냈고, 지금도 말이다. 아니, 김종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 내일부터 길게 입고 다닐게."
"진짜?"
내 말에 표정이 확 바껴서는 나를 휙 돌아보는 김종대였다. 김종대는 웃는 표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표정에 나도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 웃었다."
"응?"
"너, 웃었다고."
"그게 왜?"
"그냥, 여주 너 오늘 나랑 만나고 한번도 안 웃었잖아."
"...아...그런가?"
나는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었는데, 김종대는 나의 그런 사소한것 까지 보고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뭔가 뭉클했다.
"웃으니까 예쁘다."
"..."
"원래도 예쁘긴 한데, 더 예뻐. 정말로."
김종대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듯 했다. 김종대는 왜 이렇게 솔직해가지고는...! 항상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 일수였다. 아니, 그러고보니까 아까 김종대가 나 당황하는거 귀엽고 섹시하다고...얼굴이 점점 더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빨개진 나를 보고는 부끄러워어-? 하며 장난스레 묻던 김종대가 아! 하며 다시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언제 다시 가신대?"
"내일."
"응? 왜 그렇게 일찍 가셔?"
"집에 동생 혼자 있잖아."
"아버지는 왜 같이 안오셨-"
아무 생각없이 질문하던 김종대가 혼자 말하다 흠칫해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김종대도 뭔가 이상하다는걸 알아챘을 것이다. 엄마는 미국에서 혼자 왔는데, 집에 동생이 혼자 있다니. 김종대에게 어떻게 둘러댈까 한창 고민했다. 나도 아빠 얼굴을 안본지 거의 십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잘 기억조차 안 날 지경이었다.
"어, 그게, 있잖아, 어..."
"여주야."
"...응?'
"괜찮아."
"..."
"너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
"기다릴게."
김종대가 고개를 돌리고는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 김종대의 웃음에,
"...그래."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빠르게 뛰던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아가는것이 느껴졌다.
***
"여주씨, 커피 한잔만요."
"아, 저도!"
"네~"
오랜만에 커피 심부름을 하게 됐다. 여기저기서 커피 타달라는 말이 들려왔고 얼른 일어나서 탕비실로 가려는데 김종대가 아, 저도!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창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더니 김종인 대리였다.
"...어! 대리님?"
"오랜만이에요."
"아...네..."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제는 왠일인지 사무실에서 도통 보이지 않던 대리님이었다. 대리님이 우리 지사로 오시자마자 나는 출장가고, 게다가 어제는 대리님께서 사무실에 안 계셨으니 밥 한번 먹은거 말고는...딱히 접점도 없는 우리였다.
"여주씨,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네. 덕분에요!"
"팀장님께 제가 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굳이 계속 직접 가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음...아! 어제는 왜 안오셨어요?"
"어제 저도 잠깐 하루 출장. 보고싶었어요?"
"...에, 네?"
보고싶었냐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김종인 대리가 풉-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나 같이 타요, 힘들텐데"
"괜찮은데..."
"제가 커피 탈테니까, 여주씨는 갖다드리기만 하세요."
"진짜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요, 여주씨 그치않아도 피곤한데."
그리고 김종인 대리는 내 어깨를 살짝 밀어내어 입구로 밀어내 커피 몇개를 쟁반에 담아 내 손에 쥐어줬다. 얼른, 갖다드리고 와요. 하는 말에 그저 바보처럼 내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던 사람들에게 커피를 배달해줬다. 그러다 아직 남은 몇 명의 커피를 위해 다시 탕비실로 가자 다 준비가 됐는지 쟁반에 커피를 담아주는 종인씨였다.
"이제 끝이에요."
"아, 감사해요."
"뭘요, 제가 여주씨 도와드리고 싶어서 한건데."
그 말에 어색하게 웃고는 탕비실을 나왔다. 한명한명에게 커피를 전달해주고는 마지막으로 김종대에게 향했다. 김종대의 책상에 커피를 올려놓자 김종대가 나를 보고 웃어보이더니 다른 사람들이 안보는 틈을 타 내 손을 가볍게 잡아왔다.
"...뭐야, 놔. 다른 사람들 봐."
작게 김종대에게 속삭이자 내 손을 힘을 줘서 한번 꽉 잡더니 손에 힘을 풀었다. 다시 한번 나를 보며 예쁘게 웃던 김종대는 열심히 해, 하며 작게 말했다.
***
"여주씨, 점심 같이 먹어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김종인 대리가 책상 위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고민하다 딱히 거절할 거리도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그러자고 말했다. 그러자 김종인 대리는 기분좋게 웃으며 뭐 좋아해요? 하고 물었다.
"딱히, 다 좋아해요."
"정말 먹고싶은거 말해요, 내가 사줄게."
"괜찮은데..."
주위를 둘러보며 탈출할 거리를 찾아댔지만 내가 남자랑만 붙어있으면 고나리를 시전하던 김종대도 어디갔는지 없고, 백현씨...뭐 딱히 있어봤자 도움은 안된다. 대충 얼버무리는 것으로 김종인 대리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 때 김종대에게 카톡이 온것이 보였다.
[여주야.]오전11시38분
[왜?]오전11시39분
[밥 같이 먹자]
[뭐 먹고싶은거 있어?]오후11시39분
[아...나 먹기로 한 사람 있는데...]오후11시40분
망설이다 보낸 먹기로 한 사람이 있다는 나의 대답에 김종대는 한참동안 답이 없었다.
[...누구?]오후11시44분
[김종인대리님]오후11시44분
[그래]
[맛있게 먹고]
[나 걱정시키지 마]오후11시46분
생각보다 김종대는 징징거리지도 않았고, 딱히 미련을 갖지도 않는듯 했다. 김종대가 마지막에 한 나 걱정시키지 마, 라는 말은 아마, 어...사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김종대에게 알겠다고 답을 남기고는 액정에서 눈을 뗐다. 김종인 대리 불편한데, 대책이 없어 한숨만을 푹푹 내쉴 뿐이었다.
***
"여주씨."
"네?"
"저희 내일도 만날래요?"
그 말에 김이 오르던 밥에서 눈을 떼고는 김종인 대리를 바라보았다. 온 눈에 당황스러움이 서렸다. 김종인 대리 나한테 관심있나... 아니고서야 이렇게 따로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할 리가.
"...왜요?"
"그냥, 여주씨랑 주말에도 만나고 싶어서."
장난스레 웃는 김종인 대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 돌직구를 날릴 줄은 몰랐는데. 심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내일 엄마 다시 출국하는 날인데,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 저 내일 바쁜데-"
"그럼 언제 안 바빠요?"
"네?"
"토요일 안되면 일요일에 만나요."
"..."
더듬더듬거리며 다시 한번 거절하려고 입을 뗀 나를 바라보던 김종인 대리가 웃으며 내 손에 숟가락을 단단히 쥐어주었다.
"여주씨, 아무리 당황스러워도 숟가락은 제대로 잡아야지."
"..."
"그래도 뭐, 귀여워요."
"네에...?"
말꼬리를 늘리며 바보같은 말투로 말을 해버렸다. 내가 왠만해서는 다른 사람한테 잘 안 말리는 성격인데, 이 세상에 내가 말려드는 사람이 딱 두 사람 있다. 한 명은 김종대고, 한 명은 김종인 대리인 듯 하다. 둘다 능글능글 대는 말투에 정신차려보면 이미 그들의 꼬임에 넘어간지 오래일 때가 많았다. 멍청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방황하는 눈빛을 보이자 김종인 대리는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여주씨."
"네...?"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요."
"..."
"물론 당연히 눈치는 채셨겠지만,"
"..."
"저 여주씨한테 관심있어요."
"ㅇ,왜요?"
"관심있는데 이유가 있나,"
그 말에 할 말을 잃어 그릇에 코를 박고는 열심히 밥만 먹어댔다. 그에 내 앞에서 잔잔한 김종인 대리의 웃음이 퍼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토요일 저녁 일곱시, 만나는거에요."
이 남자들이 나 피말려 죽이려고 그러나...
***
하루종일 김종대 눈치보느라, 김종인대리 눈치보느라 바빴다. 김종대가 나한테 치근덕댈 때면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혹시 다른사람이 눈치챌까 전전긍긍이었고, 김종인대리가 내게 치근덕댈 때면 김종대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생각보다 김종대는 담담했다. 김종인 대리와 내가 얘기를 나눌 때면 나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바로 고개를 돌리곤 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감 있다더니, 하루만에 휙휙 바뀌는 그의 태도에 내가 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오늘은 정말 일에 대한 생각도 할 틈이 없이 김종대와 김종인 대리에게 휘둘리다 하루가 지나가고 말았다.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김종인 대리를 간신히 거절하고는 내 자리에 힘없이 풀썩 앉았다. 마침 사무실에는 모든 직원들이 퇴근을 해 김종대와 나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김종대는 김종인 대리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장면을 뚫어지게 계속 쳐다봤다. 물론 그래서 김종인 대리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힐끔거리다 김종대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에 김종대가 내게 와보라며 손짓을 했다. 쭈뻣쭈뻣 그의 앞으로 향하자 그가 돌아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다시 한번 손짓을 했다. 김종대의 앞에 다가서자 김종대가 나를 확 끌어안아 내 배에 얼굴을 묻었다. 얇은 셔츠를 통해서도 그의 입김이 느껴져 이상한 느낌에 몸을 살짝 비틀었다.
"...뭐야, 하지마-"
"여주야아-"
말꼬리를 늘리며 김종대가 내 이름을 불러왔다.
"...김종인 대리랑은, 밥 맛있게 먹었어?"
"응, 맛있었어."
고개를 숙이면 바로 보이는 그의 정수리에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러자 그가 기분이 좋은듯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강아지같다. 새끼 강아지. 내 배에서 얼굴을 뗀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눈웃음을 짓다 의자에서 일어서 나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김종대가 다정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을 마주치고 있다 부끄러워져 시선을 피하자 그가 내 볼을 감싸잡고는 다시 시선을 마주해왔다. 점점 진득해지는 그의 시선에 멍하니 그의 눈 만을 바라보았다. 가까워지던 그와의 거리가 마침내 맞닿았고,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나의 입술을 가볍게 훑었다. 한참을 내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기던 그는 집에 가자며 내 손을 이끌었다.
"어머니는, 집에 계셔?"
"글쎄, 오늘 친구들 만난다고 했는데..."
"내일 공항 같이 갈까?"
"어..."
"같이 가자."
운전대를 잡고도 운전은 안하고 내 쪽을 힐끔힐끔거리며 미소짓던 그가 큼,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일, 어머니 공항에서 배웅해드리고..."
"응."
"...데이트할래?"
김종대는 답지 않게 떨리는듯 눈을 깜빡였다. 그는 항상 떨릴때면 눈을 깜빡깜빡 거리고는 했다. 지금도 눈을 어찌나 많이 깜빡거리는지, 보는 내가 덩달아 눈을 깜빡이게 되었다.
김종대의 말에 그러자고 대답하려는 순간 김종인 대리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토요일 저녁 일곱시, 만나요-하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김종대가 바로 옆에서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도 떨려하는게 눈에 빤히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내 가슴이 더 미워졌다.
"...미안해."
"...응? 안돼...?"
"나 그 날,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이런 너에게, 어떻게 진실을 말할 수 있겠어.
쌓여만 가는 거짓말에 내 마음 한구석이 무언가에 억눌린 듯 답답해져왔다.
"엄마, 도착하면 전화 해야돼."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그래, 종대야. 여주 좀 잘 챙겨줘. 애가 아닌 척 하는데 허점 투성이야."
"당연히 제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겠어요, 우리 여주를."
"우리 종대 믿고 갈게, 둘 다 빨리 들어가-"
"안녕히 가세요!"
"엄마 잘가."
그렇게 엄마는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살짝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미국에 혼자 남겨져 있을 동생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였다. 한참을 엄마가 사라진 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김종대가 작게 토닥여주었다.
"여주야, 이만 가보자. 너 추워서 감기걸려. 약속도 있다며."
"...가자."
이번에는 김종대를 내가 먼저 이끌었다. 김종대가 내 손을 단단하게 잡아왔다.
유치한 김팀장 12
김종대는 내가 김종인 대리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물론 김종대는 내가 지금 김종인 대리와 만난다는건 상상도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양심에 찔려 몇 번이고 내가 알아서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김종대도 끝까지 싫다고,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김종대는 나를 차에서 내려주며 말했다.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고."
"..."
"좋다고 또 술 마시지 말고."
"..."
"집 도착하면 꼭 전화하고, 나 걱정돼서 잠 못자."
"..."
"대답 해."
"...응."
김종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더니 차를 타고 떠났다. 양심에 찔려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진짜 쓰레기다 쓰레기...
***
약속장소에서 잠시 기다리자 김종인 대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주씨!"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김종인 대리를 바라보자 김종인 대리가 미안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죄송해요, 늦었죠."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조용히 밥을 먹었다. 어색하다. 김종대하고 있으면 하나도 안 어색한데... 이 와중에도 김종대와 비교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김종대에게 많이 길들여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흠칫 했다.
한참을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그 정적을 깬건 김종인 대리였다.
"여주씨, 혹시 좋아하는 영화 있어요?"
"네?"
"밥 먹고 영화나 한편 봐요."
"아..."
"어떤 영화 좋아해요?"
"딱히 싫어하는건 없어요."
"그럼 요즘에 제일 유명한 영화로 봐요."
영화까지 봐야 한다니, 앞길이 깜깜해졌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도 불편한 거고, 김종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양심에 찔려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밥만 먹고 헤어지면 그래도 덜 양심에 찔릴 것 같은데, 나한테 관심있는 남자로서의 김종인 대리가 아니라 우선은 직장 상사이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곤란한 처지였다.
밥을 다 먹고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김종인 대리는 꽤나 친절했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 온 사이에 팝콘에, 콜라에, 영화까지 예매한 상태였다. 김종인 대리가 예매한 영화 티켓을 보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김종대가 그렇-게 보고싶다고 하던 영화의 제목이 찍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김종대, 김종대. 나도 참 가관이다 생각을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
"재밌었어요?"
"네! 재밌었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오자 김종인 대리가 내게 물어왔다. 역시 유명한 영화는 이유가 있긴 한가보다. 나름 만족스러웠던 영화에 미소를 띄고는 대답했다. 시간을 보자 어느덧 늦은 시간인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김종인 대리의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애써 거절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아직도 나를 잊지 못했다는 김종대와, 내게 관심이 있다는 김종인 대리. 내 마음은 확실하게 김종대였다. 오늘 김종인 대리와 만나면서도 계속해서 김종대 생각만 나던걸 떠올리면 말이다. 다른것에 있어서는 항상 솔직하고 답답한걸 싫어하는 나의 성격이었지만 김종대에 있어서는 달랐다. 항상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김종대는 내게 있어서 그 정도로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아직 김종대의 마음을 받아주기에는, 우리 사이에 풀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납득이 가질 않았다. 자기를 그렇게 매정하게 버리고 간 여자를, 어떻게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집에 걸어가는 내내 김종대 생각만 하다 집에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외투를 벗어 대충 식탁 의자에 걸어놓고는 김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김종대는 나와 헤어졌을 때부터 전전긍긍해 하며 언제 전화가 올까,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두 번 정도 신호가 가면 항상 그랬듯 다급한 목소리로 왜 이제 와! 하고 받을거라 생각했는데, 김종대는 한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해서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종대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을 생각인 듯 했다. 포기하고 끊으려는데 그제서야 김종대가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종대."
-응.
"어...나 지금 집 도착했어."
-...친구들이랑은, 재밌었어?
"응."
-뭐하고 놀았어?
"ㅇ, 영화! 영화 봤어!"
-아...영화?
"어!"
-....
내 영화를 봤다는 말에 김종대는 한참 말이 없었다. 김종대가 기분이 가라앉은 듯 하자 내가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불안해 다리를 덜덜 떨다 내가 먼저 뭐라고 주섬주섬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게, 종대야. 오늘 있잖아-"
-여주야.
"...응?"
-내가 좀 피곤해서 그런데, 내일 전화하면 안될까.
"어? ...응, 그래."
-잘자.
그 말을 남겨놓고 김종대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뭔가 낯선 김종대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
일요일에도 김종대에게서는 연락 한 통 없었다. 나 혼자 불안해서 손톱을 깨물며 하루종일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왜 이러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김종대가 연락 없는거야 흔한 일이지만, 김종대의 어제 태도가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요일은 의미없이 김종대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하루가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월요일 아침, 사실 어느 순간부터 출근 할 때면 화장도 공들여 하고, 옷도 공들여 입는 나였다. 아마 김종대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그냥 쉽게 인정해버렸다. 내 모든게, 내 일상이 김종대에게 잠식당한지 오래였다. 작게 진동하는 핸드폰을 켜보니 김종대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미안해, 오늘은 데리러 못 갈것 같아.]오전7시38분
온 몸에 힘이 턱 풀리는 듯 했다. 요즘 김종대는 뭐가 이상해도 정말 이상했다. 이제는 김종대의 태도에 내가 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서둘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김종대는 출근 빨리하니까, 지금 서둘러 준비해서 제일 처음으로 사무실 가면 김종대랑 단 둘이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준비를 마치고는 집을 나섰다.
***
"여주씨!"
당연히 항상 그랬듯 사무실에 김종대 혼자 있을 줄 알았는데,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목소리는 김종인 대리의 목소리였다. 정신없이 김종인 대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둘러보자 항상 그랬듯 제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김종대가 보였다. 김종대와 눈이 마주쳤다. 김종대가 작게 미소를 짓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역시, 뭔가 이상했다.
그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건 점심시간이 되어서야였다. 일부러 점심을 같이 먹자는 백현씨도, 김종인 대리도 거절하고는 사무실에서 밍기적거렸다. 김종대가 혼자 남아있는 나를 보고는 흠칫 하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ㄱ,김종대."
"...응."
"종대야."
용기를 내어 김종대를 먼저 불렀다. 내가 먼저 종대야...하고 소심하게 이름을 불렀더니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의기소침하게 김종대의 옷 소매를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 김종대가 내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올리며 왜? 하고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요즘-"
"아무 일도 없어."
김종대가 부드럽게 내 손을 본인의 소매에서 떼어놓았다. 다정하게 미소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 김종인 대리하고 밥 같이 안 먹었어, 밥 안 먹으면 힘들잖아."
"어, 저, 그게..."
"빨리 가서 밥 먹어, 아마 구내식당에서 먹고 있을 거야."
"종대야."
"어서-"
김종대가 먼저 나를 밀어내었다. 요즘 너 이상해, 라는 말은 그렇게 내 입가에서 맴돌기만 했다.
***
그렇게 김종대와의 미적지근한 관계는 일주일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김종대는 여전히 다정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에게 선을 긋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김종인 대리와 나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종인 대리는 여전히 내게 이것저것 제안을 하며 만나자 했지만 내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나의 고민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사실 김종인 대리가 내게 작업을 걸든 말든, 그것은 내 알바가 아니었다. 내 뇌리 속에는 온통 김종대만 가득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틈 조차 없었다. 김종대는 왜 저러지, 이제 내가 질린건가,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하기야 내가 싫어졌대도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김종대만 보면 계속 욕심을 내고 싶어졌다. 포기하기 싫었다. 어떻게든 김종대와 접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정말로 내 24시간은 김종대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힘 없이 냉장고 문을 열다 엄마가 해주고 간 반찬이 보였다. 그러자 번뜩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
엄마가 해 준 반찬을 들고는 김종대의 집 문 앞에 섰다. 김종대 집에 가본 거는 취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술에 떡이 돼 김종대 집에서 깬 경험이 다였다. 그 때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상도 못할 상황이었지.
김종대의 집 주소를 알 리가 만무해 김민석에게 연락을 해 물어봤다. 김민석은 내게 그의 집 주소를 알려주며 화이팅 하라고 했다. 무슨 상황인지 알고는 그러는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응원에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가락이 긴장되어 덜덜 떨렸다. 초인종을 누르고는 반찬이 담긴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식은땀이 나는 손을 바지에 슥슥 닦았다. 인터폰을 통해 누구세요- 하는 김종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누구세요?"
"나야, 김여주."
내 대답에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는 김종대였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김종대가 대답을 했다.
"조금만 기다려."
잠시 후 김종대는 문을 열고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김종대는 왜? 하고 물었다.
"어...엄마가 너한테 반찬 갖다주라고 해서."
"아, 고마워."
김종대는 바닥에 놓인 쇼핑백을 집어들었다. 조금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눈을 딱 감고는 뻔뻔한 척 연기를 했다. 김종대에게서 쇼핑백을 뺏어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김종대는 당황했는지 한참을 뻣뻣이 굳어 있다 급하게 나를 따라 들어왔다.
거실에 방금 막 딴 듯한 소주 병이 보였다. 그제서야 김종대의 몸에서 미약하게 나는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술 마셨어?"
"응."
"왜...?"
"그냥..."
김종대는 내 눈을 피했다. 반찬이 든 쇼핑백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락앤락 통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김종대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김종대는 나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려 거실로 향했다.
반찬 정리를 다 하고는 거실로 가자 김종대가 멍하니 쇼파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옆에 다가가 나란히 앉았다. 그에 김종대가 슬금슬금 나와 떨어져 앉았다. 그럼 내가 또 다가가고, 김종대는 피하고. 이걸 반복하다 마침내 김종대가 쇼파 끝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건 내 쪽이었다.
"김종대."
"...왜?"
"너 요즘 왜 그래...?"
"..."
"...너 나 이제 싫-"
"말도 안돼."
내 말을 김종대가 가로챘다. 내 눈을 피하던 김종대가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말도 안돼, 내가 어떻게 널 싫어해."
"그, 그러면 왜 요즘에 나한테..."
"..."
"나 막 피하구, 내가 말 걸려고 해도 다른 일 얘기만 하고..."
내 말에 나를 바라보던 김종대가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한참 아무 말이 없던 김종대는 한숨만 쉬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음이 많이 복잡한 듯 했다.
"너무 좋아해서 그래, 너무 좋아해서..."
"...응?"
"어떻게 내가 널 싫어해, 지금 너가 너무 좋아서 너까지 힘들게 하고 있는데."
"ㄴ,너가 무슨 나를 힘들게 해...!"
김종대의 말에 놀라 급하게 말했다. 김종대가 나를 힘들게 했다니, 혼자 감정에 휘둘린건 나다. 아니, 그리고 오히려 내 김종인 대리와 김종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마음고생 했을건 김종대였다.
"...그럼, 거짓말은 왜 한거야...?"
"응...?"
"너 저번에 친구들 만난거 아니잖아."
"..."
"김종인 대리랑, 만났잖아."
"그건-"
김종대가 알고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김종대는 나한테 다시 한번 실망했을 거다. 끝까지 거짓말 치다 들키다니. 내 꼴이 너무나 우스웠다. 변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종대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 만같은 눈과 목소리를 해서는 내게 감정을 쏟아냈다.
"나는, 나는 진짜 모르겠어."
"..."
"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
"너는 김종인 대리하고 잘 돼가고 있는것 같고..."
"..."
"나는 너가 정말로 좋아서, 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고 포기하려고도 해봤는데,"
"..."
"안돼, 정말로 안돼."
"..."
"너 볼 때마다 미칠것 같아. 너가 다른 사람이랑 있는것만 보면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아."
바닥을 보며 얘기하던 김종대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김종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 눈물을 보자 심장이 떨어지는 듯 했다. 눈물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나 너한테 목메는거 맞아, 여주야."
"..."
"너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는거 이해하는데..."
"..."
"나도 내 감정이 주체가 안돼. 나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
"..."
"정말 하루 종일 너 생각 뿐이고, 너가 김종인 대리가 좋다면 보내주는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기적이게,"
김종대는 감정이 격해지는 듯 잠시 숨을 들이켰다.
"솔직히, 너 아니면 죽을 것 같아."
"..."
"진심이야."
"..."
"갖고 놀아도 좋으니깐...그냥 네 옆에 있으면 안돼...?"
그의 애원에 가까운 말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말로...나는 너가 나 갖고 놀아도 돼. 막, 나 싫으면 다른 남자 만나고, 그래도 되니깐..."
"..."
"내가 다 노력할게. 너가 싫어하는 내 모습 고치고, 다른 남자 만나도 맨날 기다려줄게."
"..."
"나 싫어하지만 마, 제발...응...?"
말도 안됐다. 내가 김종대 말고 누굴 만나. 하루 종일 김종대 생각 뿐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애매한 태도에 김종대가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가지고 놀아도 된다니, 가지고 놀기는 커녕 나도 김종대에게 엄청나게 휘둘렸다.
"무슨 말이야."
"..."
내 말에 김종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너를 왜 싫어해."
"..."
"도대체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거야?"
"..."
김종대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선, 김종인 대리 만날 때 친구들이라고 거짓말 한건..."
"..."
"너가 걱정할 까봐 그랬어."
"..."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야."
"..."
"나도 만만치 않게 너한테 휘둘렸고, 하루 종일 네 생각밖에 못했어."
"..."
"내가 너를 어떻게 가지고 놀아, 좋아하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게 말이 돼-"
순식간이었다. 김종대가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 입 맞추기 시작했다. 평소의 가벼운 입맞춤과 달리, 이번에는 그가 급하게 내 속을 파고들었다. 그가 내 어깨를 단단하게 잡아왔다. 한참을 급하게 나와 입술을 겹치던 그가 나를 들어올려 그의 무릎 위에 앉혔다.
평소보다 훨씬 짙은 입맞춤이 계속되었다. 서로의 가쁜 숨소리가 얽혀들어갔고, 그와의 키스에 나는 정신을 차라지 못하고 그가 이끄는 대로만 이끌릴 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약한 알코올 맛이 느껴졌다. 취하는 듯 했다. 그의 뜨거운 손이 내 귀와 목을 가볍게 훑었다. 그에 온 몸에 힘이 턱 풀려 그에게 더 기대게 되었다. 힘이 풀려 그의 품 안에 안겨있는 나를 꼭 끌어앉고 계속해서 진하게 입을 맞추던 그가 입술을 떼지 않은 상태로 내게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해 진짜."
입술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하자 그의 뜨거운 숨이 내 입을 통해 그대로 넘어왔다. 다시 그가 나와 급하게 입술을 부딪혔다.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온 몸에 몽롱하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내 귓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온 몸이 움추러드는 느낌이었다.
민망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이었다. 그는 다시 입을 맞춰 내 입술을 몇 번 잘근대다 입술을 뗐다. 빠른 숨을 몰아쉬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온 몸에 힘이 빠져 그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목에 대고 뜨거운 숨을 몰아셨다. 그도 밭은 숨을 몰아쉬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한참을 그렇게 그의 무릎에 앉아 얌전히 안겨있었다. 급하게 몰아쉬던 숨이 진정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자 그가 작게 웃었다.
"민망해?"
"...당연하지..."
내 어깨를 힘을 줘 들어올린 그가 나를 보며 예쁘게 웃다 내 볼을 잡고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야, 야아-, 그만해, 읍-, 진짜아!"
"예쁜걸 어떡해."
그가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나도 그 웃음에 그저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얼굴 여기저기를 훑던 김종대가 다시 한번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사랑해, 진심으로."
그의 다정한 말, 행동이
"김종대."
"응."
내 마음을 녹게 한지 오래였다.
"너가 이겼어."
"응?"
"그 내기, 너가 이겼다고."
나와 입술을 맞대고도 큭큭대며 웃는 김종대였다. 그와 나의 입술 사이에 온통 행복한 웃음만이 가득했다.
"내가 말했잖아, 자신 있다고."
그의 말에 내가 먼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입을 맞췄다.
오늘도, 나는 너의 다정함과 끝없는 사랑에 다시 한번 반한다.
"내가 더 사랑해."
매일 매일 봐도 설레는 너에게 말이다.
+)사담
그래서 둘은 행쇼를 한거일까요 아닐까요-? 아직 행쇼까지는 아니라는 사실... 종대가 사귀자는 말은 안했잖아요?ㅋㅋㅋㅋ
오늘은 늦은만큼 두편이나 업뎃...!
1. 완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5화 정도...?)
2. 그래서 번외를 어떤 내용으로 할 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3. 독자님들이 주는 리퀘 받아서 그걸로 번외 쓸거라는 사실 (그니까 많이 요청해줘요!)
4. 텍파 만들어서 공금 걸어봐야 어차피 누군가는 텍파 공유 할것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공금은 아닐것 같다는 사실
5. 다음 차기작은 일단 중편부터 쓸 것 같다는 사실...!
6. 조만간 차기작 1편이 올라올 것 같다는 사실
암호닉
-암호닉은 항상 받습니다!!
-암호닉은 신청 순입니다
-존칭생략
첸팀장/별다방커피/달로와요/건망고/네이처죤대/유성매직/호이호잇/말랑/깐초/공주/유아/오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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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기/열매/꿀잼/박뜨거운열/용존산소량/초코파이/뚜뚜/휘휘/희앤/고레기/새우깡/치트키순딩이/물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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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 루팡/행방불명/돔돔돔/똥잠/이련/너와나의연결고리/리자몽/치킨샐러드/됴티즌/라이또/멜랑/우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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