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Taylor Swift - 22
(꼭 틀어주세요!)
핸드볼 선수 김종대 中
그렇게 종대와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남자친구로서의 종대는 나의 예상보다 몇 배는 더 설레고, 몇 배는 더 부드러웠다. 단 한가지 문제는,
"요즘 둘 좀 이상해."
우리 가족들이었지만 말이다.
아직 엄마와 아빠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과 다르게 부모님들의 모임도 없었을 뿐더러, 맞벌이인 관계로 동네 주민들과의 대화는 많이 없는 편이었다. 다만, 식탁 앞에 앉아 나란히 앉은 우리를 노려보는 김종인이 유일한 문제였다.
"둘이 요즘 진짜 이상해."
"...왜?"
"누나 어제 밤에 뭐 했어."
김종인의 말에 종대는 우유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는지 쿨럭댔다. 나는 얼른 종대의 등을 토닥여주며 김종인을 흘겨봤다.
"내가 어제 누나 방 노크한건 알아?"
"..."
"하여튼 누나 방 노크하고 나서 누나가 아무 대답도 없길래 종대 형 방 가서 노크했더니 형이 나오더라고. 근데 형 방 보니까 베란다 문이 열려있더라? 혹시나 해서 종대 형 방 나오자마자 누나 방 다시 문 두드렸는데 그 때는 방에 누나가 있었어."
"..."
"이거 뭐야?"
"야, 니가 코난이라도 되냐? 그냥 밥이나 먹어."
대충 말을 돌리고는 김종인의 시선을 피했다. 김종인은 나를 추궁하는건 포기했는지 종대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종대는 침착함을 되찾은 듯 했다.
"종인아. 요즘 우리 학년이 많이 힘들어."
"...왜요?"
종대는 사람을 홀리는 미소를 지으며 김종인에게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과제도 많고 해서."
"근데 그게 왜-"
"너희 누나가 수학을 좀 잘하냐."
"..."
"어제 테라스에서 잠깐 물어본거야."
"..."
"알겠지?"
김종인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할 샘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식탁 밑으로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김종인이 식탁 위의 시리얼에 집중하는 사이,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실실 웃었다.
***
어울리지 않게 댄스부인 김종인은 오늘 아침 연습이 있다며 시리얼을 해치우자마자 다급하게 집을 나섰다. 덕분에 종대와 나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미 출근을 하고, 집을 마지막으로 나서는 타자는 우리 둘이었다.
막 신발장 앞에서 운동화를 신던 종대는 끈 풀어졌네, 하고 앉아 신발끈을 묶기 시작했다. 그가 서툴게 신발끈을 묶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나도 종대의 앞에 쪼그려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종대야, 운동하는 애가 왜 이렇게 신발끈을 못 묶어."
"그러게."
"내가 묶어줄까?"
내 말에 종대는 신발끈을 묶던 손을 멈췄다.
"여주야."
"응?"
"너 그럼 안돼."
"왜...?"
"특히 다른 남자한테는 이러지 마."
"당연히 너한테만-"
"나는 너가 내 앞에서라도 고개 숙이고 있는거 싫어."
"..."
"너가 내 신발끈 묶어주면, 너가 마치 내 소유물인것 마냥 보일까봐..."
"..."
"나는 너가 정말 소중해. 그런거 싫어."
그의 말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던 종대가 웃으며 나의 뒷목을 끌어당겼다. 덕분에 그와 입술이 부딪혔다. 부드럽게 몇 번 입을 맞추던 종대가 입술을 뗐다.
"마음만 같아서는 키스하고 싶은데..."
"..."
"학교가야되니까 참을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그런 나를 안고는 토닥대던 그가 말했다.
"다리 아파?"
"아니, 괜찮은데..."
그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여주야."
핸드볼 선수 김종대 中
사실 이미 학교에는 종대와 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다. 그다지 핫한 소식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종대가 워낙 승승장구하는 선수다보니, 나와 종대에 대한 소문은 뜨거운 냄비마냥 한번에 훅 타올랐다 사라졌다. 심지어 가끔은 복도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커플마저 있는데, 나와 종대 둘 다 학교에서는 도통 티를 내지 않으니 소문이 멎어들만도 했다.
나와 종대가 학교에서 티를 내지 않는 것은 당연히 웬수같은 김종인 때문이었다. 김종인은 우리가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어도 인상을 팍 쓰며 기분 나쁜 티를 냈다.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김종인의 방에 붙어있는 팀의 슬로건을 보면 그 또한 김종대를 좋아하는 것은 명확했다. 그럼 역시, 지 우상을 나 따위한테 빼앗기기 싫다는건가...
하여튼 결론을 말하자면 요즘들어 더욱 우리에게 집착하는 김종인 덕분에 나는 피가 바짝 마를 지경이었다. 종대는 신경을 안쓴다고 했지만, 집에서도 스킨쉽에 거리낌이 없었던 그가 최근에는 내 손만 만지작거리는걸 봐서는 신경쓰이는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김종인을 피해 강아지를 산책 시킨다는 변명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김종인은 현관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못미덥다는 눈길로 우리를 흘겨봤다.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집 밖으로 나오자 마자 그는 나를 껴안았다. 못 참겠다는 듯 나를 으스러져라 안는 그는 꽤 귀여웠다. 그의 품 속에서 큭큭대며 웃으니, 그가 왜애-하며 말꼬리를 늘렸다.
"신경 안쓴다며."
"...당연히 거짓말이지."
종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이 그답지 않게 깊어 걱정스러웠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당연히 한 집에 같이 사는데..."
"..."
"종인이까지는 그렇다 쳐도, 너희 부모님이 아시면 어떡해."
"..."
"좋아하실리가 없잖아."
"우리 부모님도 너 좋아하셔."
"그거하고는 별개지."
그의 진갈색 눈이 나를 향했다. 그의 눈은 진지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집에 데리고 사는 애가 알고보니까 딸 도둑놈이면 어떻겠어?"
그의 말에 딱히 할 대답이 없어 신이 나 뛰어다니던 강아지를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쫑쫑아, 산책나오니까 좋아?"
머리를 쓰다듬자 그저 좋은지 헥헥대며 내 얼굴을 핥는다. 종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이름은 왜 쫑쫑이야?"
"김종인이 사자고 해서."
"...그렇게 간단해?"
"응, 처음에 딱히 부를 이름 없어서 그냥 이렇게 불렀는데, 조금 지나니까 이 이름 아니면 오지도 않더라고."
내 말이 끝나자 종대는 내게 강아지를 받아들어 본인이 안았다. 한 손으로 강아지를 쓰다듬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여주야."
"응?"
"나는 내가 되게 판단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어?"
이건 무슨 뜬끔없는 말일까. 그를 올려다 봤지만 그는 여전히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계속 내 자신이 한심하다."
"...왜?"
"그냥, 웃기잖아."
"..."
"강아지한테까지 질투하고 있는 꼴이."
그의 말에 나의 굳어있던 표정이 풀리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는 참 알면 알수록 매력있는 사람이다.
"종대야."
"응?"
"너 되게 귀엽다."
"..."
"내가 너 진짜 많이 좋아해, 종대야."
그 말에 이번에는 종대가 얼굴을 붉혔다.
***
종대는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아보였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늦게 들어온다고 전화가 왔고, 김종인은 친구들과 놀다 늦게 들어오겠다 했다. 보나마나 파티나 그런거 갔겠지. 김종인과 다르게 파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닥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주야, 우리 오늘 뭐 할래?"
"글쎄, 영화나 볼까?"
그 말에 종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대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어깨를 잡고 온 얼굴에 입을 맞췄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한참을 웃다 그를 억지로 밀어냈다.
"뭐야, 갑자기."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
"..."
"평소에는 절대 못하잖아."
종대의 온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그를 보는 나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오는 길, DVD가게에 들려 빌린 몇개의 DVD를 종대가 가방에서 꺼내놓았다.
"애들이 재미있다는건 우선 다 빌렸는데."
"너 그렇게 돈이 많아?"
"그렇게 비싸지도 않아. 그리고 얼마전에 상금도 받았잖아."
"...우리 종대 능력있네?"
"그럼 나랑 평생 살래?"
내 허리를 감싸며 얼굴을 가까이 한 종대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를 부드럽게 밀어내고는 바닥에 널린 DVD만 살폈다. 그는 내 옆에 턱을 괴고 앉아 마냥 좋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주야. 공포영화 좋아해?"
"보는건 좋아하는데 잘 보지는 못해."
"그럼 볼까?"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플레이어에 DVD를 넣었다. 그런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이미 플레이어는 깜빡이는 불빛으로 DVD를 읽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를 보며 인상을 썼다.
"너 왠지 고의적인것 같아."
"뭐가?"
그는 모른 척을 했다.
"모르는 척 하지 말고."
"..."
"너 내가 잘 못본다니까 그런거잖아."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알면 한번만 넘어가주지."
"..."
"너가 너무 예뻐서 그렇잖아."
그리고 짓는 그의 예쁜 미소에, 나는 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
"종대야..."
간절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영화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 듯 했다. 언제는 내가 너무 예뻐서 그렇다느니 뭐니, 온갖 사탕발림을 해놓고 이제와 저러는게 나는 그저 웃길 뿐이엇다.
"너 진짜 너무하다."
"ㅇ,응? 뭐라고?"
내 서운한 말투에 그제서야 종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입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무슨 영화 보기 전에는 나한테만 신경을 쏟을 것처럼 얘기하더니.
"...나 영화 안볼래."
"아, 왜애-"
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쇼파에서 일어나자 그도 따라 쇼파에서 일어나 나를 붙잡았다.
"내가 미안해, 응?"
"..."
"너 말고 영화에나 신경쓰고...내가 미쳤지."
그의 다정한 말투에 바로 삐졌던게 풀리는게 느껴져 더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호구다 호구...
"여주야."
"응?"
"손 잡고 보자."
그와 손을 꼭 맞잡고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리자 마자 타이밍 좋게도 온 화면에 귀신이 들어찼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말 놀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여주야."
"..."
"손 잡아도 무서우면,"
"..."
"안아줄까?"
그가 내게 질문을 한것이 무색하게,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그의 품 안에 안겨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그 이후로도 나는 무서운 장면이 튀어나올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 떨었고, 종대는 그런 내가 재밌는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끅끅대고 웃었다. 으,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결국 그를 내가 더 꽉 안고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은 저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내 등을 토닥대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내가 진짜 미쳤었네."
"...응?"
"저딴 영화가 뭐가 중요하다고, 그치."
"어?"
그의 말에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순식간에 입술이 겹쳤다. 그의 입술이 진득하게 나의 입술을 빨았다. 사실, 그와 가벼운 뽀뽀는 잦았지만 키스는 그렇지 않았다. 고작 그가 고백하면서 했던 키스 다음의 두번째 키스였지만, 훨씬 농밀하고 짙은 입맞춤에 온 정신이 몽롱했다. 그는 정말로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서로의 타액이 입술에 번들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는 한 손으로 무엇을 찾는지 쇼파를 더듬거렸다. 잠시 입술을 뗀 그가 말했다.
"거슬려서."
리모컨을 눌러 영화의 소리를 줄인 그가 내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영화의 소리가 줄자 이번에는 내 귀에 그와 나의 민망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시 입술이 떼어질 때마다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는 내가 숨을 다듬을 새도 없이 다시 입을 맞췄다. 어느새 나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고, 그의 몸은 당장이라도 뒤로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기울어있었다. 그 때,
"...둘이 지금 뭐해?"
그와 급히 떨어져 자세를 바로하자, 우리의 앞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 김종인이 서있었다.
핸드볼 선수 김종대 中
우리는 죄인마냥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김종인 앞에 고개를 숙이고 나란히 앉았다. 그 와중에 새빨갛게 부어있는 종대의 입술이 눈에 들어와 얼굴이 달아올랐다. 보지 않아도 나도 그런 상태일 것이 뻔했다.
"둘다 미쳤어?"
나는 불안함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 장면을 봤는지 종대는 내 손을 잡고 내렸다. 김종인이 어이없다는듯 허-하며 헛웃음을 쳤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김종인의 말에 나는 점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걱정이지만, 김종인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들켰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 김종인은 인상을 쓰며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내가 지금 짜증이 나서 죽겠는데,"
"..."
"솔직히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
"우선 부모님한테 말씀은 안 드릴거야."
"..."
"한번 더 둘이 그딴 짓 하는거 내 눈에 보이면 그 때는 나도 몰라."
종인아...하며 감동받은 말투로 말하는 나를 김종인은 무시했다. 그리고 김종인은 말했다.
"형."
"...응?"
"저랑 얘기 좀 해요."
김종인은 종대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따라 올라가려다 나를 쏘아보는 김종인의 눈길에 다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누나는 잔머리 굴리지 말고 거실에 있어."
"..."
저 나쁜놈.
BGM. Carly Rae Jpsen - I Really Like You
(BGM 꼭 틀어주세요)
그 이후로는 뭐, 딱히 별 일은 없었다. 오히려 종대와 나는 더 편해졌다. 어차피 김종인한테 들킨거, 학교에서도 편하게 그를 대할 수 있었다. 그 날 김종인과 무슨 대화를 했냐고 그에게 꼬치꼬치 캐물어봐도 그는 절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은 그냥 별거 아니겠거니, 하고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할로윈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종대의 발목 부상은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 종대가 굳이 나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했다는걸 아는 나로서는 기쁜 소식이었다.
"야, 너 할로윈파티 갈거지?"
"별로 안 가고 싶은데."
"너 또 그런다, 맨날 싫대."
"아니, 정말로 파티는 별로 내 취향 아니란 말이야."
친구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그런 쪼잔한 애가 아니라 정말 파티는 별로란 말이야...
"이번엔 각자 파트너 데리고 가야된대."
"어?"
"그런데 이번에 핸드볼 부 무조건 참석이라고 그랬다는데."
"..."
"그거 걔가 너 데리고가고싶어서 그런거 아니야?"
"...그런가?"
"야, 원래 남자들은 막, 자기 여자 자랑하고싶고 그런거야."
"흠..."
친구의 말에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래도 얘도 남자니까, 얘 말이 맞으려나...
"니 남자친구를 위해서라도 가자, 좀."
"알겠어."
"역시, 지 남자친구라면 끔뻑 죽네."
"헤...우리 종대..."
종대가 나를 데려가고싶어서 그랬다니, 그의 귀여움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
할로윈은 어느새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기로 다가와있었다. 그런데 종대는 아직까지도 할로윈 파티에 대해 내게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답답함을 참다 못한 나는 결국 먼저 종대의 방을 찾았다.
문을 두드리자 웃는 얼굴을 한 종대가 문을 열어주었다.
"웬 일이야?"
"나 너희 방 자주 오는데?"
"그래도, 요즘 종인이 때문에 자주 못 왔잖아."
그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도 내게 다가와 나의 옆에 앉았다. 눈으로 그의 방을 훑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남자 아이 방 답지 않게 깔끔하다. 좋은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종대야."
"응."
"할로윈파티 있잖아,"
나의 말에 그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 할로윈파티, 나랑 같이 갈거지?"
내 말에 종대는 난감한 표정을 했다.
"...너 파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게 무슨 뜻인데?"
무의식 중으로 나간 날카로운 말투에 나도 놀랐다. 종대는 내 눈을 피했다.
"그래서, 내가 파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다른 여자애랑 가겠다, 그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사실, 우리 팀 하고 치어리더 부하고 같이 가기로 했어."
"..."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는 너가 언제쯤 말해줄까, 전전긍긍해하며 애가 타서 죽는 줄 알았는데.
"근데 그걸 나한테 말 안하려 했던거야?"
"나는 어차피 너가 파티가는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래서 나한테 거짓말하려 했다는거잖아."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너는 입장 바꿔서 내가 다른 남자애랑 파티간거 보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거하고 같아?"
"그럼 뭐가 다른데."
"주장이 이미 약속했다는걸 어떡해."
"그래도 결국 짝 맞춰 노는건 맞잖아, 적어도 나한테 말은 해줬어야지."
"..."
"내가 먼저 말 안 꺼냈으면 너는 걔네랑 커플인 양 파티를 갔을거고, 나만 바보됐을거 아니야."
"..."
"그러고 나면 너는 학교에 아무 소문도 안 돌것 같아?"
"..."
"나는 그냥 헛소문이라도 우리 사이에 대해 그런 이상한 소문 도는거 싫어."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이불을 꽉 잡으며 애써 나오려던 눈물을 참았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던 그는 깊은 한숨을 셨다. 그리고 그는 피곤한지 마른 세수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주야, 그만 하자."
"...뭘."
그 와중에도 그의 말의 주어가 혹시나 우리 사이일까, 심장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 주제로 그만 말하자고. 계속 싸우기만 하잖아."
"..."
"솔직히 나는, 이게 그럴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에 다시 울컥, 하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게 그럴만한 일이 아니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당연히 그에게 질투가 났다. 남자친구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장한 치어리더 부 애들이랑 하하호호 웃으며 파티를 간다는데, 어느 여자가 질투가 안나겠는가. 하지만 더 그에게 실망한건 나에게 말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말은 해줄 수 있잖아...
이 자리에 계속 있어봐야 감정 섞인 말 밖에 내뱉을 수 없을 것 같아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방 문을 열고 나서려던 나를 그가 불렀다.
"여주야."
"나 부르지 마."
"..."
"지금 나도 내 자신이 찌질해서 미치겠으니까, 부르지 말라고."
그에게 등을 돌린 상태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우리 그냥, 그 날까지는 서로 말 걸지도 말고, 모른 척 하자."
"..."
"너 보면 내가 괜히 감정 섞인 말 뱉을 것 같아서 그래."
"..."
"파티 명단에 이름도 적어놓고, 친구들이랑 약속도 했으니까 가긴 갈건데,"
"..."
"그날, 그냥 모르는 사람인걸로 하자."
"..."
"미안해. 내가 유치하고 치졸해서, 너가 다른 애하고 그러고 있는거 나는 못 봐."
"..."
"그리고, 너 나랑 만나면서 한 번이라도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어?"
"..."
"내가 불안할거라는 생각은 못해?"
"..."
"그치않아도 불안한데 너가 나한테 숨기는 것까지 생기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말하면 말 할수록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들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아무 말이 없는 그에 나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갈게, 당분간 아는 척 하지 말자."
그의 방 문턱을 나서자, 그가 다시 한번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그런 그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는, 나의 방 문을 굳게 걸어잠궜다.
***
"야, 솔직히 이게 말이 되냐고."
"...그건 그렇네."
학교 앞 정원의 벤치에 내 친구들을 끌고 나와 어제 종대와 있었던 일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여자인 친구들은 내 말에 공감을 표하며 안쓰럽다는 듯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너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나와 종대의 사이에 대해 모든걸 다 아는, 어쩌면 내가 핸드볼을 보게 함으로써 나와 종대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쿡쿡 찔렀다. 내 말에 친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너가 남자니까 좀 알거 아니야."
"...글쎄."
"너는 어떤데?"
"글쎄, 내가 생각하기엔..."
"..."
"너가 서운해 할만한건 맞았던 것 같아."
"그치? 거봐."
"다른 여자애랑 파티 가면 바로 소문나는거 알면서, 피하지 못할거면 적어도 너한테 말은 해줬어야지."
"야, 김종대보다 니가 훨씬 낫다."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의 말에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짜증이 났다. 얘도 아는걸 지는 몰라?
"...존나 짜증나, 진짜."
"그래도 화 좀 풀어."
"너희도 아는걸 왜 걔는 모르냐고."
"그러게."
"심지어 걔 나한테 좋아한다고도 한 적 없다?"
"...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물론 표현이야 하지, 표현이야 하는데..."
"..."
"확인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잖아. 고백할때도 그냥 사귀자고만 하고..."
"..."
"몰라, 그냥 든 생각인데, 걔가 나한테 말 안한거 보면 본인도 같은 일 있어도 질투 안 할까 싶어서."
"..."
"본인이 안하니까, 처음부터 숨길 생각이었던거겠지?"
한숨만 나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결론은 안 좋은 쪽으로만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커졌다. 나만 너한테 애타하는 것 같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
"너가 걔보고 파티 끝나는 날 까지 말 걸지 말라했다며, 걔도 그 동안 생각하는게 있겠지."
"...그치?"
친구들은 힘을 내라며 온갖 말로 나를 위로를 해줬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게 위로가 되는 사람은 오직 너다.
핸드볼 선수 김종대 中
"둘은 또 왜 그래?"
김종인이 얼굴 가득 인상을 썼다.
"뭐가."
나도 김종인에게 똑같이 인상을 썼다. 우유 팩으로 손을 뻗으려는데, 김종대도 우유를 마시려 했는지 손을 뻗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
"..."
눈이 마주친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를 무시하고는 내가 먼저 우유팩을 집었다. 그는 민망해진 손을 내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나는 속이 문드러지는데, 학교에서 보이는 그는 여전히 친구들과 떠들고, 학교 끝나면 핸드볼 연습하고... 그의 실력은 여전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이다. 물론 당연히 그의 실력이 하락하길 바란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생각에 일상생활도 힘든데, 그는 멀쩡하다는 것이 조금은 억울하고 속상했다.
"형."
김종인이 조용히 김종대를 불렀다. 조용히 시리얼을 먹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응?"
"형, 제가 뭐라 했어요."
"..."
부지런히 움직이던 김종대의 손이 멈췄다.
"먼저 일어날게."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나의 뒤로는 여전히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
어느덧 파티 하루 전이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김종대는 내게 말을 걸지 말라는 나의 말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물론 집에서 눈이 마주치거나, 복도에서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먼저 피하는 것은 나였지만 말이다.
"저기."
"..."
"저기..."
사물함에 신경질적으로 교과서를 집어넣던 나를 누군가 불렀다. 뒤를 돌았다.
"김여주, 맞지?"
"...맞는데요."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 소심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왜 나를 부르지?
"너 내일 나랑 파티 갈래?"
"...네?"
"너 걔랑도 헤어졌다며."
"..."
"소문 다 났어."
소문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 놈의 소문, 소문, 시발. 하기야 김종대랑 나랑 그렇게 붙어다니다가 근 5일을 단 한마디도 안하는데, 소문이 날 법도 했다.
"나랑 가자."
"..."
"걔랑 너랑 만나기 전부터 너 마음에 들어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마음에 든다는 그 남자의 말과는 별개로 고민이 되었다. 하기야 김종대도 다른 여자애랑 가는데, 나라고 피할 거 있나.
"알겠어요, 같이 가요."
이렇게 하면 김종대가 질투를 하는지 안하는지,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핸드볼 선수 김종대 中
"야, 너 예쁘게 하고 가."
"왜."
"그래야지 걔가 너 질투하지."
"걔 질투같은거 안해."
"뭐래."
내 말에 친구는 웃기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글쎄, 걔는 그런거 안 한다니까.
"너 입을 만한 옷도 없지?"
"...뭘 또 차려입어, 그냥-"
"야, 이번 파티가 너한테는 그냥 파티가 아니야."
"...?"
"김종대를 꽉 잡느냐, 아니냐가 달린거라니까?"
내 친구들은 본인들이 더 난리법석이었다. 시끄러운 그들의 말에 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일 파티 가기 전에 우리 집에 와."
"왜?"
"옷도 빌려주고 화장도 시켜줄게."
"..."
"김종대 완전 뻑 가게, 응?"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모두 김종대 때문에 하는 나의 찌질한 발악이다, 발악. 어휴.
***
"야, 걔 눈 돌아가겠다."
"옷이 날개네, 대박."
친구들의 말에 조심스럽게 앞의 전신거울을 보았다. 나조차도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야, 나 그냥 화장도 지우고 다른 옷-"
"미쳤냐?"
"..."
"우리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입고 가."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건 나한테 안 어울려."
"안 어울리는게 아니라, 안 하니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거야."
"..."
"자신감 좀 가지고 가봐. 응?"
결국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낯선 나의 모습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저절로 자신감이 뚝뚝 떨어져 고개가 숙여졌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좀 들라고 닦달이었다.
"여주야, 저기 김종대다."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쟤가 저러는데, 너가 이러고 있어서 되겠어?"
"...유치해."
"뭐가?"
"내가."
"..."
"내가 이러면, 결국에 나도 똑같이 되는거잖아."
"가끔은 유치한게 제일 좋은거야."
"..."
"제발, 이제 그만하고 좀 가자, 응?"
친구에게 끌려가다시피 입구를 향했다. 마지막으로 김종대를 돌아본 내 시선에 들어온건 김종대에게 앵기며 팔짱을 끼는 여자, 아니, 썅년? 시발, 뭐? 팔,짱?
더 열 받는건 김종대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나도 내가 유치한걸 아는데, 어쩔 수가 없다니까?
"가자."
"응?"
"아, 저기 내 파트너 있네. 먼저 갈게."
걸음을 쿵쾅대며 먼저 걸어나가는 나를, 친구들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BGM 끊겼으면 다시 틀어주세요!)
"춤추는거 좋아해?"
"아뇨, 별로요."
내 말에 파트너는 재밌다는 웃음을 지었다.
"파티도 안 좋아해, 춤추는 것도 싫어해. 뭐가 좋아?"
"가만히 집에 있는거요."
"뭐, 그것도 나름 나쁘지는 않지."
파티장 안은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런 어두컴컴한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는 느낌은 딱 질색이었다. 결국 나는 파트너와 그저 테이블에 앉아 말이나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파트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저기, 네 전 남자친구네."
그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과연, 10미터 쯤 떨어진 곳에 김종대가 서있었다. 옆에는 그의 파트너와 함께 말이다. 참 사이 좋아보이네. 다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별로 상관 없어요."
"쟤는 아닌 것 같은데?"
"네?"
내 파트너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팔 내려요. 무거워요."
"왜 이렇게 쌀쌀맞아."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기분 안 나쁜데."
"그럼 왜-"
"됐고, 그만 일어날까?"
그가 자리를 떴다. 그를 따라 나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던 그가 말했다.
"팔짱 껴."
"...네?"
"그래야지 좀 더 재밌지."
그제서야 여전히 내 쪽을 바라보며 못 박힌 듯 서있는 김종대가 보였다. 순간 반항심이 일었다.
"가요, 이제."
내가 팔짱을 끼자 김종대의 눈빛이 뾰족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아, 나는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
생각보다 파티는 꽤 재밌었다. 아니, 파티가 재밌었다기 보다는 내 파트너가 상당히 괜찮았다. 그와 나는 의외로 말이 잘 통했다. 통하는게 많았달까. 그는 심지어 나의 김종대에 대한 불평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아니, 제가 짜증날만 하지 않아요?"
"그렇네."
"아까 막, 팔짱껴도 뭐라 하지도 않고."
"그건 너도 복수 했잖아."
"저는 솔직히 이런 저도 한심해요."
"왜?"
"유치하잖아요, 이렇게되면 뭐가 달라요..."
말 끝을 흐렸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말했다.
"원래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
"..."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커플들끼리 하는 치정싸움이지 뭐."
"..."
"둘이 아직 서로 좋아하긴 하네."
그제서야 그의 눈치가 보였다. 그가 어제 뭐라고 했던가. 김종대와 내가 만나기 전부터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이렇게 나는 또 눈치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고등학생은 항상 어른과 아이라는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본인이 어른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다. 나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완전히 성장했다고, 어른이라고, 철들었다고 소리 높혀 말했다. 학생들은 누구나 어른이라는 존재를 동경한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깨달은건.
나는 아직도 많이 어리다. 지금까지 어른스러운 척을 해왔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죄송해요."
"괜찮아, 덕분에 오늘 재밌긴 했어."
"..."
"나는 신파극 찍는 취미 없다."
그는 내게 씩 웃었다. 여전히 나의 죄책감은 가시지 않았지만 말이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그가 말했다.
"끝날 때 다 됐네."
"..."
"뭐라고 말 좀 해. 갑자기 어색하게."
"진짜 죄송해요. 저는-"
"그만. 나는 치정싸움 끼는거 싫다니까?"
"..."
"됐고, 이제 마무리인데, 크게 한 건은 해야겠지 않겠어?"
"어..."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밀어내려했지만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막았다.
"이정도는 해야지."
"근데,"
"진짜로는 안해."
"..."
"치정싸움 싫다고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치정싸움이다, 그치."
그와 한참 그 자세로 앉아있었다. 누가 보면 그와 키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게 분명했다.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하지만 김종대와 키스를 나눌 때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와 키스를 할때는 설렘에 심장이 뛰었지만, 지금은...그래, 지금은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갑자기 그가 나에게서 확 떨어졌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초점을 되찾자, 그의 뒤로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한 김종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김종대는 무작정 나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고나갔다. 급하게 돌아본 내 파트너는, 나에게 잘해보라며 씩 웃어보였다.
밖에 나가서도 김종대는 가쁜 숨만 몰아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고 말이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김종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나 화나게 만드려고 작정했지."
"..."
"옷은 또 그게 뭔데."
"..."
"그런 옷차림으로 다른 남자한테 안기고, 팔짱끼는게 넌 괜찮아?"
그가 말을 이어나갈수록 그의 어조는 점점 격양되어갔다.
"나는 안 괜찮아."
"..."
"우리 헤어진 사이도 아니잖아, 그냥 잠깐 아는 척만 하지 말자며. 그런데 오늘 이건 뭐야?"
"..."
"이건 내가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돼?"
"..."
"...저번에 내가 잘못한건 인정, 내가 잘 몰랐어."
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는 숨이 차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이었다.
"내가 잘 몰랐어. 네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 그건 정말 내가 잘못했어."
"..."
"네가 불안해할거라는 생각도 못했고, 너한테 말 해줬어야 했는데. 너가 서운할거라는 생각도 못했어."
"..."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 없도록 할게."
"..."
"너가 나보고 일주일 동안 아는척 하지 말자고 했을 때-"
"나도 미안해."
내 말에 종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야. 너가 미안할 거 없어."
"..."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었어."
"..."
"만약 그 일주일이 없었으면 나는 앞으로도 네 마음 이해 못하고 서운하게 했을거고, 우린 더 크게 싸웠을거야."
"..."
"그 사람하고 키스한건 조금 잘못했지만."
그가 나를 밉지않게 흘겼다.
"내가 질투를 안 한다고?"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나는 너가 네 친구하고 있는 것도 짜증나."
"...종대야."
"너가 그렇게 달라붙고 짧은 옷 입은채로 그 남자하고 붙어있는거 보면서, 눈이 뒤집히는게 이런말인가 싶더라"
"..."
"저번에도 말했잖아. 고작 강아지한테도 질투하는 난데,"
"..."
"어떻게 내가 질투가 안나겠어, 응?"
그의 말을 들으며 나 또한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려든 나의 잘못이었다.
"내가 너 고개 숙이는 모습 싫다고 했잖아."
"..."
"고개 들어. 너 잘못한거 하나도 없어."
"..."
"아니다, 하나 있네."
그가 내 턱을 들어올리더니 나의 입술을 그의 옷 소매로 벅벅 닦기 시작했다. 얼얼한 느낌에 그만하라며 그의 팔목을 붙잡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문득 움직임을 멈춘 그가 말했다.
"이렇게 예쁜데."
"..."
"감히 누구껄 넘봐."
그리고 그는 내게 입맞췄다. 그와 나의 혀가 질척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나누던 깊은 입맞춤에, 그를 잠시 밀어냈다.
"왜."
"아니, 사실 그 사람하고 진짜로 키스한거 아니야."
"그럼?"
"그냥 하는 척만 한건데-"
"...너가 하자고 한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우리 여주는 밀당도 잘해. 그치?"
그와 다시 입술이 맞물렸다. 그와의 입술이 잠시 떨어질때마다 나는 소리에 민망해 죽을 뻔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와의 키스에 열중했다. 내가 막 그의 목에 팔을 둘렀을 때였다. 진득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뗀 그가 말했다.
"여주야."
"응."
"너랑 있으면 어린애가 된 느낌이야."
"...응?"
"나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그건 나도 느낀 감정인데...
"얼마나 내가 부족하고 미숙한 존재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돼."
"..."
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그가 말했다.
"좋아해, 여주야."
"..."
"미치도록."
이번엔 내가 먼저 입을 맞췄다. 나의 서툰 키스에 그의 웃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밖에 서있었다. 파티를 끝내고 나온 학생들이 우리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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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대 운동하는 장면이 없네요...넘나 아쉬운것
브금 좋으니까 안들으신 분들 꼭 들으세요 ㅠㅠ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