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조악하다. 조잡하고, 더럽고, 잔혹하다. 가지런한 이빨 뒤에 모나지 않게 자리잡은, 하지만 늘 신경을 거슬리는 덧니로 담배필터를 짓씹던 홍빈이 흔들의자에 누워 앞발을 핥는 고양이를 지긋이 내려다봤다. 그리고 하얀 손에 들려있던 크리스털 잔을 떠올렸다. 그 잔에 담겨있던 체리색의 액체도. 그 하얀 손 끝을 보면서 문득 누나들이 그리도 좋아하던 영화를 떠올렸다. 트와일라잇. 뱀파이어와 인간이 사랑한다는 웃기고 멍청한 소재를 가지고 소위 말하는 '대박'을 이끌어낸 영화. 그의 말간 얼굴을 보며 여자들의 환상 속에서 아름답게 꾸며졌을 뿐인 괴물을 떠올렸다. 하얗고, 붉고, 까맣다. 하얀 얼굴과 손 끝, 부어오른듯한 느낌을 주는 붉고 도톰한 입술, 새카만 색으로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분명히 새하얀 색일 몸을 덮고 있는 블랙 수트. 하, 하는 웃음을 터트린 홍빈이 구깃구깃해져 공모양을 띄고 있는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졌다. 장난감인줄 착각한 고양이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발로 종이를 이리저리 굴렸다. 다른 공과 달리 발톱에 걸려 찢어지는 종이공이 당황스러웠던지 고양이가 제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반쯤 펴진 종이 사이로 보이는 것은 괴물의 얼굴. 그 괴물에게 황혼을 선사해야 하는 사냥꾼. 아아, 그러면 그 사냥꾼이 괴물에게 홀려버린 것 같을 때에는, 무엇을 해야하나? 이런 건 누나들과 지겹게 봤던 멍청한 영화에서도 나오질 않던데. 역시 멍청하고 쓸데없는 영화다, 그리 생각한 홍빈은 다시 새로 입에 문 장초를 덧니로 짓씹기 시작했다. *** "우리 어제 봤죠?" 무료한 얼굴로 흔들의자에 앉아, 큰 키와 덩치에 비해 작고 하얀, 소년의 것을 띄고 있는 맨 발을 꼼질거리던 택운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새 담요 안으로 자취를 감춘 하얀 발에 약간은 비웃음이 담긴 미소를 지은 홍빈이 택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선시대 여인네같이 구는 꼴이란. "글쎄요.. 본 적이, 있던가." "파티에서 봤는데. 옆에 계시던 회장님과 인사도 했구요." "아.. 미안해요. 내가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봐." "괜찮아요, 저는 J그룹 이사 이 홍빈이에요. 이번 전자기기 사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회장님 밑에서 일하게 됐어요. 회장님이 오늘 많이 늦으실 것 같으셔서, 택운씨가 외로움을 타신다고 시간이 나면 뭐라도 같이 먹어줬으면 하셔서." 택운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내리감았다가 밀어올렸다. 그 느릿함이 답답하기 보단 잠에 취한 고양이같은 느낌을 주어 여유로움을 풍겼다. 그에 화답하듯 홍빈이 혀를 내어 입술을 느릿하게 축였다. 뭘, 먹고 싶어요? 홍빈이 볼 위에 볼우물을 파내었다. 그 미소에 살며시 담요 밖으로 하얀 발을 드러낸 택운이 옅은,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선시대 여인네들에게 맨발은 알몸을 보여주는 것 만큼의 수치. 그래서 외간남자들에게 발을 보여주는 것은, 제 몸에 대한 일종의 허락. 참 웃기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서양의 괴물을 닮은 주제에, 동양여자의 행색으로 저를 홀리는 꼴이라니. 혀로 덧니를 몇 번 훑던 홍빈이 택운의 뒷목을 움켜잡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의 치열을 훑을 때마다 혀가 송곳니에 찢긴 것 마냥 입 안 가득 혈향이 맴돌았다. 너는 괴물이다, 어쩌다 돌연변이로 태어나 송곳니만을 지니지 않은 괴물. 하아, 입술을 떼어내자 약에 취한 정키처럼 풀린 눈을 한 택운이 홍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괴물에게 홀린 사냥꾼은, 무얼 해야하나? *** 비밀을 품고 있다는게 참 발끝부터 간질간질하고 아찔한 기분을 준다. 며칠 째 이루어지는 밀회도 그러했다. 늙은이의 흔적이 여직 끈적하게 남아있는 택운의 다리 사이를 유린하던 홍빈이 나체의 판판한 가슴팍을 서로 맞대었다. 꽤나 표정이 없는 편의 택운의 표정이 많아질 때에는 본능이 이성을 지배했을 때, 또는 애가 탈 때. 낑낑거리며 하얀 손으로 홍빈의 팔을 붙잡은 택운이 붉은 입술을 짓씹었다. 얼른, 얼르은. 보채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홍빈이 택운의 귓볼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그리곤 속삭였다. "믿고있던 세상이 뒤집히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요?" "..너는?" 그리곤 둘 다 말이 없었다. 행위에만 열중하는듯 보이는 둘은 다른, 아니 같을지도 모르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래서 하늘이여, 좆같은 괴물에게 홀린 사냥꾼은, 무얼 해야하죠? *** 하, 하하. 덧니가 신경이 쓰였다. 새하얀 러그 위에 무릎을 꿇은 홍빈이 총을 새하얀 발치로 밀어보냈다. 그리곤 양 손을 들었다. 그 때까지 계속 혀로 덧니를 훑었다. 거슬리는 감각이었다. 진작 뽑아버릴 것을 그랬나. 이 와중에도 새카만 방아쇠를 감고있는 새하얀 손가락이 지독하게 섹시하다고 생각한 홍빈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죽여야하고, 나는 너를 죽여야 했고." "..." 끅끅,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한참을 웃던 홍빈이 나른한 눈빛으로 택운을 올려다 보았다. 어차피 더럽고 추잡한 인생이었고, 아름다울 것 없는 세상이었다. 미련은 없다. 다만 늙은이에게 늘 휘둘리는 정택운이 안쓰러웠을 뿐. 날 죽이고, 내 피를 밟고 밖으로 나서면 배가 볼록한 늙은이의 밑에서 기계적인 신음만을 내뱉겠지. "세상은 참 조악해." "..." "조잡하고, 더럽고, 추악하지." 하얀 손 끝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냈다. 철컥, 장전이 되는 소리가 섹시하다고 느껴진 건 꽤나 오랜만인 것 같은데. 너는 괴물이다. 나는 너를 잡아야했던 사냥꾼이다. 푸른 벽지가 내가 바라보기엔 너무 부끄러워 잘 올려다보지 않았던 하늘을 대신해주는 것 같았다. 정택운의 방에서 하늘을 보며 하얀 손이 터트린 화약으로 죽는다니, 꽤 로맨틱하지 않는가. "근데 너를 봐서, 꽤 아름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세상이." 탕! 귀를 찢을듯한 총성이 방을 울리고 눈 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있는 주제에, 단정하게 정리된 엄지손톱으로 새하얀 검지손가락 위를 쥐어뜯고 있는 택운의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웠다. 생각해보니 더 이상, 덧니가 거슬리지 않았다. 새빨갛던 눈 앞이, 새카맣게 점멸했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홍빈이 웃음을 지었다. Q. 괴물에게 홀려버린 사냥꾼은, 무얼 해야하죠? A. 빠져나오지 않으면 괴물이 사냥꾼을 집어삼킬겁니다. 그러니 끊어버리세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겁니다. 택운이는, 홍빈이의 덧니. 신경쓰이고 신경쓰였던 것이지만 뽑아내지 않고 방치해뒀더니 홍빈이의 몸에 구멍을 뚫어, 더 이상 제가 신경쓰이지 않게 했죠. 시험공부하다가 짜증나서.. 는 뻥이고 사실 콩택 0929 웹진만 죽어라 읽은 주제에 머리를 가득 채운 시험 스트레스 풀려고 진짜 막 쓴, 괜히 무거운 척만 하는 허접한 글이에용. 낄낄. 시험이 끝나는 7일 이후에나 햇콩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ㄸㄹㄹ 학업을 반쯤 포기한지는 오래지만ㅋㅋㅋㅋ 그래도 하긴 해야하는 슬픈 고딩이니까여^_^ 그럼 내 독자님들ㅠㅠ 아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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