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비타님, 리로님 감사합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01
W. 여우
아흐……, 아…하으……. 하……하아, 흐……. 50평을 웃도는 아파트의 내부는 이미 습한 기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큰 집에서 과연 어느방일까. 입구에서부터 울리는 뜨거운 신음소리는 뇌쇄적인 여성의 움직임과 맞물리고 있었다. 우현은 목울대를 건드리는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마 가득 송글송글한 땀이 만들어져나왔다. 색기가 가득 찬 음성은 우현의 서재를 맴돌다 이내 밖으로까지 흩뿌려졌다. 우현의 귓가에 울리는 끈적한 음절, 그리고 우현의 시야에 비치는 화려한 곡선은 이내 우현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우현의 허릿짓이 천천히 스며내려왔다. 우현은 천천히 벗어든 옷을 입었다. 습기 어린 탁자위에 놓여진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천천히 속옷을 집어입는 여자는 자신이 집에 데려다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요, 곧- 애인이 올 것 같아요……. 우현은 익숙하다는 듯 변명했다. 그녀의 내부에 가득 찬 정액만큼……, 이미 그녀는 그에게 있어 아무런 것도 아니었다. 방금전까지는 하룻밤짜리 작업대상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만, 지금은 아마…… 그녀의 속살로부터 흘러내리는 우현의 정액, 그 정액을 닦은 휴지정도……. 껍질까지 모조리 먹어버린 사과를 고이 댁까지 모셔다 줄 만한 매너따위는 찾지 말아야 할 것 이다.
"우현씨, 내일봐요."
우현은 생긋이 웃어주었다. 그녀는 아마 하루종일 우현의 전화를 기다리다 지쳐 먼저 키패드를 누를 것이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또 그만큼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없는 번호, 이제 우현의 전화번호는 우현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차가운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이내 문이 닫혔다. 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끈적한 냄새가 코 속 점막 사이까지 다 달라붙는 것 같았다. 김성규가 알면 또 뭐라 하겠네……. 머리를 긁적이는 게 꽤 고민중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우현은 창문을 열까 생각하다가 귓전을 때리는 바람소리에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귀찮았다. 가을 타는 건가……. 우현은 쇼파에 누워 입술을 곱씹었다. 톡하고 건드린 입술에서 피가 나왔다. 타액을 섞은 여자의 맛이 나는 것 같아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우리 성규는 맛있는데……. 우현은 자신의 머리를 다시 헤집었다. 빨리 성규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린 살결에 입술을 묻고 빨간 열꽃을 피우고 싶었다. 야들거리는 속살이 자신을 물어낼 상상을 하니 아랫도리에 아린 통증이 왔다.
* * * * *
"허, 헙……."
성규는 눈을 떴다. 덜컹거리는 버스는 성규만을 태우고 있었다. 남우현이 바람을 피운다라……. 성규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 상상조차 싫어. 땀에 절은 이마가 보기싫었다. 성규는 땀을 닦아내고는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망원 아파트에 도착합니다. 작은 안내방송이 들렸다. 엉거주춤 정신을 차린 성규는 급하게 벨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맑은 목소리가 시린 공기를 울렸다. 훈훈했던 버스안의 공기가 떠나고 성규의 주위엔 얼음덩어리들이 달라붙었다. 아 춥다-. 성규는 두손을 교차하여 팔을 부볐다.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던 손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외투에는 벌써 시린 자국이 맴돌고 있었다. 성규는 후-하고 입김을 불어보았다. 입 속을 울리던 뜨거운 숨결은 이내 하얗게 변질되었다.
[띡.띡.띡.띡.]
익숙한 기계음이 우현의 귀를 틔어주었다. 어, 김성규다-, 김성규. 우현은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뭐야, 집이 왜 이렇게 후끈해……? 밖의 차가운 날씨와는 다르게 방안이 후덥덥하자 성규의 눈썹이 팔자를 그렸다. 야, 남우……. 우현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성규의 입술을 핥아올렸다. 으흐……. 가녀린 음성이 우현에게로 먹혀들어갔다. 남우혀어……. 성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을 마셨다. 달콤한 숨결이 오간 뒤에 우현은 진한 키스를 마치고 입술을 뗐다. 성규의 눈썹이 다시 질끈 올라갔다. 우현은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짓이겨진 성규의 미간을 풀어주었다. 사르르 녹는 성규의 눈썹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내가 너를 어쩌면 좋아, 진짜……. 성규는 제 혼자 중얼거리더니 우현을 톡- 밀쳐내었다. 성규는 안방으로 들어가서는 입은 옷을 훅 벗어내었다. 우현은 성규가 던진 웃옷을 받아들었다. 우현의 코 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김성규의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성규는 입술에 묻은 그의 타액을 살짝 닦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피곤해, 얼른 자……."
성규는 그저 계속 말을 이었다. 피곤하니까 먼저 자, 나 좀 씻을게……. 야, 김성규……. 그만 불러, 닳겠다……. 성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우현의 가슴에 불을 내는 것 같았다. 답답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말을 따로 뱉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말을 말자…….성규는 벗던 옷을 마저 벗고는 이어 가볍게 속옷을 챙겼다. 성규는 샤워부스로 들어가 천천히 온도를 맞추었다. 타일로 떨어지는 물의 소리가 차분히 성규를 울렸다. 하얗게 타오르는 김이 거울에 서리기 시작했다. 달칵- 하는 소리가 욕실로 들어왔다. 성규야……. 아! 깜짝이야…!. 우현의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성규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슨 일 있어? 성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우현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옷은 왜 또 다 벗었어, 나 씻고나서 씻어. 성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자 우현이 뾰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내가 씻겨줄래. 능글맞게 웃으며 쪼르르 욕실안으로 들어오는 게 너무나도 귀여웠다. 돼…됐어, 저리가…. 성규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저리가라는 시늉을 보였지만 우현은 막무가내로 샤워부스 속으로 들어왔다. 저리가래도……. 성규의 등 뒤에 선 우현이 천천히 몸을 적셔갔다. 따뜻한 물은 둘의 온도를 공유시켰다. 우현이 성규에게 다가와 샤워볼로 성규의 몸을 씻어주었다. 상체 여기저기에 하얀 거품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우현은 무릎을 꿇고 성규의 것에 손을 대었다. 으흐……, 야아……. 성규는 진한 숨을 내뱉으며 우현을 밀어내었다. 이젠 내가 씻을게. 우현이 아쉽다는 듯 입술을 내밀었다. 하지만 성규는 그런 우현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머리에 샴푸칠을 했다.
"야-, 진짜 혼자 씻을거야?"
"…어푸, 우…?"
우현은 눈을 뜨지 못하는 건지 버둥거리는 성규를 보자 장난끼가 솟았다. 성규의 엉덩이에 가느다란 손가락이 맴돌았다. 으! 뭐하는…, 잠끄안…. 성규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손을 엉덩이에 대었지만 이내 우현의 손가락이 그의 속살을 파고 들어왔다. 하으…, 누…눈에 거푸움……. 성규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급하게 샴푸를 헹궈내었다. 성규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몸을 돌렸다. 예상대로 성규의 뒤에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바보같이 웃고 있는 우현이 서 있었다. 성규는 볼에 탱탱히 바람을 집어넣었다. 우현은 눈웃음을 흘리며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대충 '잘못했어…….' 라는 정도의 의미였다. 그 순간, 성규가 우현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맞췄다. 강하게 얽매여오는 혀가 우현을 자극했다. 샤워부스를 가린 공기보다 더 뜨거운 숨결이 살아흘렀다. 선정성 짙은 키스가 자꾸만 몸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다. 서서히 부풀어오르는 둘의 욕구가 몸을 흔들었다.
* * * * *
창문 사이로 붉은 기운이 뻗쳐왔다. 분명 해가 떠오고 있는 것이었다. 일찍이 눈을 뜬 새들이 전깃줄에 앉아 짹짹대고 있었다. 성규는 맨살을 타고 오르는 이불가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 고민하던 성규의 입술이 조금씩 달싹였다. 우현아, 자…? 아니, 왜……. 낮게 깔린 중저음이 성규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너 몇살이냐……. 성규의 질문에 우현은 답이 없었다. 잠에 취한 건지, 아니면 대답하기 귀찮은 건지……. 서른 둘. 꾸밈없는 단어가 침대 속으로 퍼졌다. 서른 둘이라……. 우현과 성규는 자그마치 15년째였다. 남들은 1년만 사귀어도 지겹다며 치를 떠는 연애. 지금 그 연애가 벌써 햇수로만 쳐도 15년째라는 말이다. 볼 것, 못 볼 것 가리지 않고 지내 온 지도 오래되어 강산이 한 번 변했을 것이다. 성규는 결혼이야기를 꺼내려다 다시 마른 침을 삼켰다. 당사자들보다 더 달달 볶는 부모님들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 없을 우현이었다. 성규는 꾹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뒤돌아 누워있는 그의 등을 덥썩 안았다. 맨살에 닿는 부드러움이 사각거리는 것 같았다. 아, 끈적거려, 떨어져.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당황한 성규가 어버버 거리기도 잠시 우현은 담배를 찾았다. 내 담배 봤어? 차가운 목소리가 성규의 귓가를 웅웅댔다.
"한 대만 피고 올게……."
성규는 항상 그가 부러웠다. 거침없는 목소리와 막힘없는 행동……. 우현은 쌀쌀한 날씨에 가디건을 걸치나 싶더니 베란다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규는 그의 등에서 떨어져나온 손을 천천히 침대위로 내렸다. 민망하게 떨어진 팔이 초라해보였다. 성규는 하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성규도 느껴오고 있었다. 요즘 우현이 변했다는 것을. 어디서부턴가 느껴지는 어색한 말투는 자신에게 사용하던 어투가 아니었다. 집안가득 퍼지는 정액냄새는 흔한 자기위로와는 달랐다. 끈적한 땀의 향기와 진한 향수가 섞여있었다. 아마 우현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아마 자신이 꾼 꿈은, 자신이 집에 오기전까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 성규는 바로 누워 팔을 이마에 대었다. 괜히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 같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눈꼬리를 따라 흩어졌다. 권태기인가……. 성규의 웃음이 푸스스 진동했다. 이런 짜증나고 화나는 상황에서도 우현의 마음이 단순한 권태기이를 바라는 자신. 성규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되돌리고 싶었다. 15년전으로-. 자신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어린 남우현이 있던 그 때로……. 끅끅거리는 숨이 머리를 울렸다. 성규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 없이 살 수 없다던 그는 변했고, 그 없이도 살 수 있다던 자신은 그가 되었다. 11월의 가을은 차가웠다.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여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음쓰는 다각이니만큼, 제가 비축분도 많이 쌓아놓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어제, 모든 것이 다, 날아가는 바람에 하하- 다행히 휴대폰에 옮겨두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한 편에 한 커플링이 나올 예정입니다. 어휴, 손이 바쁘네요, 사실 픽홍보를 먼저 하게 되서, 너무 죄송합니다.
기다리게 해서 말이지요, 엉엉- 원래는 그게 순서가 아닌데 말이지요, 어휴-.
그대들, 정말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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