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들은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냐는 물음에 난감해하잖아, 근데 난 정말 딱 기억해.내가 처음 ㅇㅇ이를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였어. 내가 남중 출신이라 교실에 교복입은 여자가 있다는 경험을 고등학교 때
처음 해봤는데.
"아, 아 꺼져!!"
"내가 왜애애?"
"아..진짜 맞기전에 니네반으로 꺼져."
고등학생이되고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에, 난 같은 중학교를 나왔던 친구들이랑 장난치면서 떠들고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는 듯 주먹을 꽉 말아쥐고 부들거리는거야. 내가 또 성격이 한 오지랖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웃으면서 걔네 둘 싸우는 걸 지켜봤거든.
"으..김종대 개새끼.."
그때 그 여자애가 ㅇㅇ이었고, 여자애를 신나게 놀리던 남자애가 김종대였어. 걔넨 중학교때부터 친했었다고 그랬거든. 아니, 말로는 중학교때부터 서롤 죽이고 싶었다고 그러는데. 그게 친했다는 말이지 뭐.
얘가 고등학교때는 얼굴이 진짜 아기같았어. 처음 봤을 때도 진짜 17살 답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는 짓도 진짜 애같은거야. 김종대랑 매일같이 싸우고 자리에 앉아서 부들거리고 그러다가 김종대가 화해하자며 매점빵하나 사오면 좋다고 헤헤 웃으면서 김종대짱! 이러고 앉아있어.
그렇게 첫 등교날은 김종대랑 얘랑 투닥대다가 끝나버렸어. 첫 날이라 수업도 안한 탓이었지. 나도 내 친구들이랑 교문 벗어나면서 집으로 가려하는데, 애들이 갑자기 걔 얘기를 꺼내는거야.
"근데 변백현, 너 그 여자애랑 아는사이?"
"누구?"
"오늘 니 옆에 앉은 여자애."
"아니 처음 본 앤데."
"걔 진심 내 스탈."
내 친구 하나가 귀엽다면서 오버를 떠니까 같이 있던애들도 맞다면서 맞장구치는거야.
원래 자기들끼리 지나가는 여자보고도 예쁘다고 하는 애들이니까 별 상관안했지. 그렇게 애들이랑 히히덕거리면서 집에 가고, 다음 날 여느 때 처럼
학교를 갔어. 또 왁자지껄 떠들면서 교실에 도착했는데 그 날은 걔가 내 옆자리에 없었던거야. 학교를 아예 안온 것 같았어. 나도 그냥 뒷자리 애들이랑
떠드는데, 자꾸 신경이 쓰이는거야. 우리가 아직 자리를 정하지 않은거라 맘대로 앉는 형식이었는데 얘가 오기전에 내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을까봐
괜히 조마조마하고. 그렇다고 내가 걔 자리라면서 맡아놓기에는 아직 말도 한마디 안해본 사이잖아.
"변백현 짝꿍 언제오냐~"
"무슨 내 짝꿍이야, 자리없어서 앉은거지."
"무슨! 여자가 들끓는 변백현한테 새로운 여자가 붙은거지!"
"야, 내가 무슨 여자가,"
애들이 깝죽대는거 받아치고 있는데 걔가 막 뛰어와서 내 옆자리에 엄청 자연스럽게 가방을 던지고 앉아서 숨을 몰아쉬는거야. 하필이면 여자얘기하고
있을 때. 내 친구들도 얘 이야기 하다가 얘가 갑자기 등장하니까 민망했는지 괜히 큼큼거리면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려. 이 어색한 상황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걔는 자기가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굉장히 만족한 듯 앞에 앉은 여자애들이랑 신나게 얘기를 하고있었어.
5분 정도 지나서 첫교시 선생님 들어오시고 진짜 첫 수업을 하는데, 왜 고등학교와서 첫 수업!이러면 되게 설레고 막 그러지 않아?
근데 얘는 수업 시작하자마자 가방을 뒤적뒤적하더니,
"책 좀 같이 보자!"
"어?어."
책을 안가져왔다면서 내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자기손으로 끌어다 우리 책상 중간에 떡하니 놔. 내가 원래 성격이 저렇게 어물쩡거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걔가 그 당시 너무 당차서 내가 어버버거릴 정도였어. 대학 실습 때 치이고, 병원가서 치이느라 성격이 많이 변했지만 고등학교 땐 정말 발랄한 여고생. 딱 그거였거든.
"야..남자애 손이 이게 뭐야?"
"손?"
"진-짜 예쁘다. 내 손톱은 물어뜯어서 이런데!"
책상 사이에 둔 책에다가 꾸역꾸역 필기하는 내 손을 갑자기 턱 잡더니 예쁘다며 감탄도 하고, 자기 손이랑 옆에 놓고 비교도 하고 그랬어.
손 예쁘다는 소리는 귀에 박히도록 들었는데도 처음보는 애한테 듣는 소리였어서 그랬는지 또 새로운거야.
ㅇㅇ이는 우리 처음 만나서 했던 말같은 것들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거든. 처음엔 그런식으로 말을 텄고
얘도 엄청난 오지라퍼여서 쉬는 시간에 놀러온 김종대 소개시켜주고 그랬어. 내가 남자애들이랑 굉장히 격하게 노는 스타일이었는데 김종대도
만만찮게 격한 애였던거야.
정말 김종대랑은 심각하게 격했어. 복도에서 멀쩡히 걷는 애 발걸어서 넘어뜨리고, 이제 발거는게 안먹히니까 뒤에서 달려와서 올라타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몰래 휴대폰하고 있으면 일부러 고개 빼꼼 내밀고 "어? 종대야 뭐해?" 이래서 휴대폰 뺏기게 만들고.
딱 정해서 말하자면, 나는 김종대한테만 짓궂었고 김종대는 나랑 ㅇㅇ이 둘 다 똑같이 대했어. ㅇㅇ이가 교복치마를 입고가든 체육복을 입고가든
상관안하고 발걸어 넘어뜨리기 일쑤였고 항상 걔 어깨에 팔 걸쳐놓고 다니곤 했어. 처음에는 얘도 어깨아프다고 칭얼거렸는데 김종대가 싸그리 무시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더라고.
무튼 처음에는 내가 남중출신이라 ㅇㅇ이한테 막 대하지 못하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학교 여자애들한텐 정말 남자애랑 다름없이 대하는데. 이런 고민도 많이했어.
그렇다고 내가 얘를 좋아하는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 정도로 허물 없는 사이였으니까.
그렇게 계속 아니라고 합리화시키던 내가 단번에 내 마음을 깨달았던 일이, 얘가 학교에서 크게 다쳤던 적이 있었어.
그 때는 여름방학이었는데 고등학생이었으니까 방학 때도 학교에서 자습을 하라고 시켰었거든. 그래서 다들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학교를 나와서
자습을 하긴 하는데 중간에 도망가고 튀는 일의 연속이었지. 나는 그 때 부터 이미 의대를 생각하고 있었고해서 애들이랑 몇 번 자습 째고 놀러간 적은
있었지만 ㅇㅇ이처럼 매일같이 튀고 책 한번 안펴고 자거나 그러진 않았어. 근데 얘는 정말 공부가 싫었는지 자습을 항상 쨌거든. 정말 매일매일.
방학 때는 자습 감독하시는 선생님 한 분 오시고 한분이 전교생을 다 케어하시니까 솔직히 튀기 좋은 조건이었단 말이야.
"백현아, 나 이따가 명단에 이름 적어줘!"
"또 어디가게?"
"..날씨봐..이게 학교에서 자습을 하고 있을 날씨야?"
"넌 비와도 째잖아."
"날씨 안좋은데 공부까지하면 기분이 더 안 좋아져서 그런거야."
"핑계는..갔다가 다시 올거야?"
"응! 딱 한시간 있다가, 시원한거 사다줄게!"
얘가 매일같이 자습을 째긴 해도 한시간 있다올게, 하고 나가면 정말 한시간 뒤에 들어왔어. 그렇게 공부했으니 대학도 알아주는 대학으로 진학한거겠지.
날씨가 너무 덥다고 빙수 먹고 오겠다며 나간 애가 한시간이 넘도록 안들어와. 대낮이었고 뭐 애들이랑 노느라 늦는가보다 하고 내버려뒀어.
놓았던 샤프 다시 들고 지문 읽어내려가는데 ㅇㅇ이랑 같이 다니던 여자애가 교실로 뛰어들어오더니, 그 조용한 와중에 내 손목 끄집고 끌어내는거야.
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끌려서 교실 밖으로 나왔는데 걔 친구가 빨리 따라오라면서 무슨일이냐는 내 물음에 대답도 안해주고 뛰어가.
그렇게 복도 코너를 돌았더니 애들이 우르르 모여있는데 그제서야 걔 친구가,
"계단 뛰어올라오다가 넘어졌는데, 너 불러야될 것 같아서.."
내가 모여있는 애들 헤집고 봤더니 김종대가 자기 교복 셔츠 벗어서 얘 머리 꾸욱 누르고 있고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져있는거야.
놀라서 김종대가 잡고있던 셔츠 치우고 상처난 곳 봤더니 이마가 찢어졌는지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어.
"변백현, 너 먹으라고 아이스크림 사오다가 이케 됐잖아."
그 와중에 웃음이 나오는지 헤실헤실 특유의 웃음 지으면서 피묻은 내 손에 쭈쭈바하나 쥐어주는데, 정말 욱하고 뭐가 올라오는거야.
"내가 아이스크림 사오라고 그랬어?"
"백현이 공부하는데 더울까봐!"
고등학교 때는 나부를 때 야, 너, 이것보다는 백현아, 백현이 이렇게 많이 불렀었어. 지금은 덜해졌지만.
"내가 너한테 덥다 그랬냐고."
"야, 왜 정색하고 그래..난 이거 녹을까봐, 쭈쭈바 녹으면 안뜯어지니까.."
선생님을 불러야하나, 말아야하나 애들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어. 뒤늦게 얘기 들어보니까 ㅇㅇ이가 아이스크림들고 올라오는 걸 보고 김종대는 여느때처럼
발을 걸었던거야. 근데 정말 재수없게도 발 걸때마다 잘 피하던 애가 그 날따라 그걸 못피하고 그대로 걸렸는데 그게 하필 계단 앞이라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박아버렸대. 그 상황에서 선생님 부르면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일이 커지거든, 김종대도 징계받을게 뻔하고.
그래서 얘가 더 괜찮다고 웃고있었던거야. 나는 그 상황이 너무 화가나서, 항상 자습 중간에 놀러나갔다오면 아이스크림이나 시원한 마실거 사들고
나한테 갖다주곤 했었는데 아이스크림 안녹게 가져오겠다고 뛰다가 넘어져서 얼굴에 상처낸게 너무 화가나는거야.
그 때도 학교가 집주변이라 병원이 바로 앞에 있었으니까 그냥 얘를 업고 뛰어서 병원까지 갔어. 그 때 그 병원이 우리가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지. 걔한테 이마 누르고 있으라고 하고 막 뛰는데 얘가 더워서 그런지, 피를 흘려서 그런지 어지럽다는거야.
"백현아, 걸어가면 안돼? 나 흔들려서 머리 울려."
"저 앞인데 좀 참아."
"나 그럼 어깨에 얼굴 대도 돼?"
"어?"
"옷에 피 묻을텐데, 너 교복."
진짜 저 정도로 착했었거든. 솔직히 다쳐서 업혀가는 애가 내 옷에 피묻는걸 걱정하는게 말이나 돼? 여름인데다가 하필이면 대낮이어서 밖이 질식할 정도로 더웠단말야. 그래서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얘가 뒤에서 계속 손으로 땀 닦아줄정도로, 그정도로 착했었어. 결국 자기가 빨아주겠다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병원까지 갔어.
병원가서 계단에서 굴렀다했더니 파상풍 주사 한대 맞고 봉합하는데 얘가 또 파상풍 주사 그거 하나 맞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나오는거야. 난 또 그게 너무 귀여워서 막 웃었는데, 그때는 파상풍주사가 그렇게 아픈주사였단 걸 몰랐었지.
"유치원생도 아니고 주사맞고 우냐, 애같이."
"와나.. 니가 저거 맞아봐. 장난아닌데."
이마 찢어져가지고는 잘도 웃길래 나도 한시름 놨었어. 정말 괜찮은것 같아서. 그래도 길게 찢어지는 바람에 꿰매기는 해야된다고 그래서 혼자 처치실로 들어갔는데 또 혼자보내기는 마음 불편한거야.
"같이 가줘?"
"내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아까 내가 유치원생이라고 했던거 꽁해져가지고는 저러고 혼자 쏙 들어가버렸어. 뭐, 마취 다 하고 할테고 별 걱정안하고 내버려뒀지. 혼자 응급실에 앉아서 발 탁탁 치며 기다리는데 김종대가 ㅇㅇ이 가방이랑 짐같은거 챙겨서 온거야.
"발을 왜 걸어, 걸기는."
"피할 줄 알았지. 꿰맨대?얼마나?"
"여덟바늘인가.."
"많이도 찢겼네. 담임한테 탈탈 털리고 왔다."
김종대 성격에 자기가 이런상황만들어놓고 넘어갈 애가 아니라서 결국 자기가 얘기하고 왔었나봐. 담임이 또 ㅇㅇ이를 되게 예뻐했어서 김종대는 더 깨졌을거야. 징계로 화장실청소 할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처치실에서 간호사가 나오더니 김종대를 부르는거야.
"김종대씨 되시는 분이 누구세요?"
"아, 전데요."
"따라 들어오시겠어요? 환자분이 찾으시는데."
그 소리에 김종대 벌떡 일어나서 간호사 졸졸 따라 들어가버리고 처치실 안에서 ㅇㅇ이가 투정부리는 소리 들리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 김종대가 들어가고 몇분 있다가 둘이 나오는데 들어갈 땐 웃으면서 들어간애가 눈물 펑펑 흘리면서 나와. 김종대는 우는 애가 웃긴지 실실 웃으면서 눈물 닦아주고 있고.
"아팠어~?"
"어..바늘로 막.."
"바늘로 막? 막 찔렀어? 너 그럼 이마에 빵꾸 나는 거 아냐?"
"..죽을래?"
김종대가 걔를 아무리 남자애처럼 다뤄도 한번씩 애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어. 그래서 그런지 엄청 다정하게 달래면서 손으로 눈물 닦아주는데 그때 처음으로 김종대한테 질투아닌 질투를 했었던 것 같아. 막상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어. 김종대는 ㅇㅇ이랑 중학교때부터 친구였으니까 4년째 친구였던 거고 나는 고작해봐야 친해진지 4개월됐던 거였으니까, 김종대한테 훨씬 의지하는 건 자연스러웠던 거지.
그래도 괜히 내가 서운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건 내 앞에선 괜찮은 척 헤헤 웃다가 김종대 앞에서는 그렇게 와르르 무너졌다는 사실이었어. 그만큼 그 당시 김종대와 ㅇㅇ이 사이에는 내가 끼어들지 못할만큼의 관계가 형성이 되어있었고 걔는 벌써 김종대한테 엄청난 의지를 하고있었던거지. 김종대도 그게 자연스러웠을거고, 그래서 둘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었어. 내가 걔를 좋아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도 이때까지는 애써 꾹꾹 참으며 넘어갔어. 솔직히 인정하기도 싫었고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리고 두번째로 일이 터졌을 때는 김종대도 알아챌만큼 내가 많이 심란해했었는데 그 일도 우리가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이야.
지각은 해도 학교는 매일같이 나오던 애가 학교를 안온거야. 전화를 해도 안받고. 하루종일 어디갔나 생각하다가 쉬는시간에 김종대반으로 찾아갔어.
"아, 걔 시골 내려갔어!"
"시골? 시험기간에?"
"응 그렇게 됐나봐."
그 때 김종대가 어색하게 웃는걸 눈치챘어야했는데 시험기간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으니 그렇구나,하고 넘겼지. 문자를 한통 남겼는데 문자에 답장도 없었어. 하루 종일 답장이 왔나 휴대폰만 열어보다가 문자가 징하고 도착했어. 빠르게 문자를 열어보니 엄마한테서 온 문자였어.
[아들, 엄마 검진 결과 오는 길에 가져와.]
아, 허망하게 문자를 내려보다가 집에가는 길에 병원을 들러야겠다 싶었어.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오후자습 한시간 한 뒤에 야간자습은 빠질 생각으로 가방을 챙겨서 학교를 빠져나왔지.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목에 병원이 위치한거라,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 로비에 들렀어.
대기표를 뽑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구경을 하는데, 그 때 내 눈앞에 보였던 사람이 ㅇㅇ이랑 김종대였던거지. 시골에 갔다던 애가 왜 병원에 병원복을 입고 있으며, 시골에 갔다던 아이와 김종대는 왜 저리 웃으면서 장난을 치고 있나. 머리속에서 여러 생각이 한번에 스쳐갔는데 그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될 리가 없었고 내 대기번호가 울리는 것도 모른채 가만히 둘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어, 변..백현?"
저 멀리서 김종대가 나를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짧게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나는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하지 못했어.
그렇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성큼성큼 로비를 걸어나왔고 드르륵,드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ㅇㅇ이가 뛰어와서 내 팔목을 붙들었어. 그리고 습관처럼 팔목에서 손으로 내려와 내 손을 잡고 우물쭈물 하면서 이야기를 해.
"백현아, 그런게 아니라.."
"어디 아파?"
"내가 일부러 말 안한게 아니라.."
"아파?"
애가 내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변명하려고 하는데 그 당시 얼굴에 통통하게 올라있었던 볼살이 쭉 빠진 모습인거야. 아까 느꼈던 그 감정이 뭔지 생각도 제대로 못한채 그저 수척해진 애가 병원복을 입고 팔에는 수액줄을 치렁치렁 달고 내 앞에 서있다는게 나한테는 제일 중요하게 다가왔어. 그 때 확실히 느꼈지. 아, 얘가 좋구나. 하고.
그 때 얘가 스트레스성 위염이 심하게 도졌었나봐. 자기 말로는 항상 달고다니던 병이었다고 하는데 시험기간에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게 더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위랑 식도가 다 상해버렸다고 입원수속을 밟으라고 하더래. 그래서 김종대한테는 말을 했는데, 나한테는 말하기가 망설여졌다는거야. 시험기간이었고, 나는 의대 준비중이었고. 삐끗해서 내신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큰 타격이 가니까 그게 자기는 걸렸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얘가 입원했다는 걸 알았던 그 날 부터 수업이 끝나자마자 책을 짊어지고 병실에서 살았어.
"좀 가, 가! 응?"
"5시에 노란 주사 맞지 않아?"
"아.."
"거봐."
"그럼 다섯시에 딱 가!"
우리가 부르던 노란 주사라고, 매일 항생제를 맞는 게 있었는데 그게 얘 말로는 주사를 찌를 때도 아프지만 약물이 들어올 때도 아프대. 그 때는 그게 항생젠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약물이 노랗길래 노란 주사라고 불렀었어. 그걸 맞으면 한참을 팔이 아프다고 김종대한테 징징거리는 걸 봐서 노란 주사 이야기를 꺼냈더니 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샤프를 쥐어들어.
"백현아, 내 친구 있지.."
"공부 안할래?"
"넌 내 친구가 뭐가 그렇게 싫은데! 다른 얘기하면 맞장구 치면서 내 친구 얘기만 나오면 공부하라하더라? 어?"
"싫어, 걔한테도 그렇게 말해."
샤프 쥐어들고 책 읽기 시작한지 몇 분 지났다고, 바로 쓰고 있던 안경을 벗더니 자기 친구 얘기를 꺼내는거야. 사실 공부중에 공부하기 싫어서 딴소리를 더 많이 하는 건 내 쪽이었지만, 정말 얘 친구 얘기는 그만 듣고 싶었어. 그럴 만도 한게, 나는 네가 맘에 드는데 왜 자꾸 네 친구 이야기를 하냔 말이야. 걔 친구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니 뭐라니 하면서 번호를 알려주니 마니, 혼자 더 신나버렸어. 한참을 연락하네 마네 실랑이를 하다가 공포의 노란 주사를 맞을 시간이 왔어. 친화력도 좋아서는 벌써 저 주사 주는 간호사랑 친해졌는지 바로 아는 척을 해.
"오늘은 종대 없네?"
"걔 어제 야자 튄 거 걸려서 청소한대요!"
"그럼 오늘은,"
간호사가 말 끝을 흐리면서 눈짓으로 나를 가르키는거야. 나도 모르게 팔을 받쳐준답시고 얼른 침대 끝으로 와서 팔을 붙잡았어. 김종대가 항상 이렇게 했었거든.
"팔을 살짝 이렇게 들었다가, 주사 빠지면 문질러주면 돼요. 너무 세게하면 멍들구."
별 것도 아닌데, 나만 바짝 긴장해서는 팔을 들었다가 슥슥 문질렀어. 너무 세게하면 멍든다는 말에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할까 힘을 뺐다가, 줬다가, 혼자 난리 법석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멍이 쉽게 생길 일은 없었을 거구, 항생제가 그 정도로 아픈 주사도 아니었어. 그저 그 때는 얘가 조금 엄살 부리는 거에 안달이 난 나를 발견했던 거지.
아마 그 날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생각한 뒤에 내린 결론이었을 거야. 얘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 만큼 나는 얘를 가벼운 친구로만 생각하지 않는 구나, 하고. 한참 공부에 집중해도 모자를 시기에 병원 침대에 마주보고 앉아서는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몇시간이고 공부하는 척 들여다 볼 만큼 같이 있고 싶었구나, 하는 거? 지금 생각하면 풋내기 짝사랑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생활의 오르락 내리락을 좌지우지 했을 만큼 커져버렸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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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백현이 시점에서 보는 과거이야기 듣고싶다고 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 때 끄적거리다가 이제야 가져와봐여..(사실 언제 꺼내야 할지 타이밍 못잡아서)
그나저나 오늘이 으르렁1주년이라고..오랜만에 인티왔다가 놀란 나란 더쿠..ㅎ..이그조 정말 사랑함당..ㅎ..ㅎ..
오늘 괜사 경수 보고 오열할 뻔해써여..우리 경수 지상파방송에서 그것도 드라마에서..! 웃기만 해도 더쿠는 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밤낮이 바뀐 탓에 자꾸 새벽에 올려서 죄성해여..ㅎ..ㅎ전 이거 올리고 또 한 3시간은 잉여짓 하다 잠이 들 예정이지만..담부턴 일찍 일찍 오는 습관을!
답댓도 다 다는 부지런함을! 기르겠슴니다. 사랑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