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잔가봐…." "미스터 블랙?" "조그맣고 귀여운." "종인아! 여기 봐. 종인… 아아악! 씨발 안 비켜? 종인아!!"
주위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었다. 여자아이 둘의 시선이 대포를 들고 종횡무진하는 한 남자에게 가 닿았다. 덩치는 조그맸으며 눈은 컸고, 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마스코트인 입술은 연신 거친 욕설이 나오는데에 쓰였다. 남팬이 커다란 대포를 위협적이게 흔들며 주위를 연신 노려보자, 같이 대포를 들고 있던 여자 찍덕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 뒤에, 사람이 낳은 외모라고는 생각지도 않는 남자가 걸걸한 욕설의 귀여운 남자 사이로 파고들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아 씨발놈아. 나오라고. 나오라고. 여기 내 자리라고." "아잉 경수야, 우리 민석이 좀 찍자." "꺼져라." 이미 찍덕계, 공방계에서 유명한 남 홈마, 도경수와 루한이 그 소란의 주인공이었다.
* *
Mr. Black! 作.Droplet 집으로 돌아 오는 길, 경수는 카메라를 든 채 사진들을 하나하나 훑고 있었다. 아, 씨발. 다 예뻐서 못생기게 나온 사진 못 찾겠잖아. 곤란한듯 사진을 하나하나 쳐다보던 경수가 옆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하나하나 훑는 루한을 응시했다. 곤란한 것은 루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경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사진들 중 하나를 뽑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에 사진을 올리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시작은 단순히 종인이를 찍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점점 주위에 찍덕들이 늘어나다 보니 남은 것은 불타는 경쟁욕구와 김종인을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경수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그대로 트위터에 올렸다. 벌써 여러 사진이 올라왔을테지만 몇 팬들은 다른 프리뷰보다 먼저 경수의 프리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한 경수는 히죽히죽 웃으며 트위터에 글을 써내려갔다.
130114 예쁜 종인이 INDEX UP! ㅂ_ㅂ 생일인데도 열심히 행사뛰는 종인이 멋있다카이~♥ "경수야…."
인덱스 사진을 올리자마자 옆에서 들리는 울먹임이 가득한 목소리에 경수가 응? 하며 시선을 돌렸다. 루한이 제 대포를 든 채 울먹이며, '나 무슨 사진을 올려야 할 지 모르겠어. 골라줘.' 하고 있었다. 경수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루한의 대포를 낚아 챈 후 사진을 하나하나 넘겼다. 경수의 최애는 분명히 종인이 맞았지만, 사실 엑소의 사진 중에서 못 나온 사진을 고르라 한다면 심령사진을 제외하고 못 고르는게 맞았다. 고심끝에 경수는 하나의 사진을 지정해 루한에게 넘겼다.
"이거." 경수의 선택을 본 루한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었다.
"이건…!"
춤을 격하게 춘 나머지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 그야말로 심령사진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사진이 루한의 눈동자에 비췄다.
"개새끼야."
루한은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마음을 담아 경수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저 새끼는 도와줘도 뭐라고 지랄이라니까. 경수가 귀를 후비적 거리며 이야기했다.
"어휴, 중국인이면서 욕설은 어디에서 배워왔는지." "제일 큰 요인은 도경수라고 합니다."
경수는 할 말이 없었다. 처음 루한을 봤을때 루한은‥ 음, 그래 착했다. 욕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얼굴로 돈만 가득 들고 낯선 땅을 밟은 루한은 SNS친구였던 경수를 항상 만나고 싶어하곤 했다. 학업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루한의 아쉬운 이야기였는데, 그래도 항상 밤을 엑소의 이야기로 지새며 보내다 보니 실제로 만나는 친구 이상으로 경수와 친해졌었다. 루한과 경수가 처음 만난 날, 경수는 루한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새끼.'
루한은 정말 미친새끼였다. 이런 얼굴로 팬질을 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게다가 루한은 챙겨 온 돈도 많았다. 앞으로 몇 년 간은 여기에 묵으면서 팬질을 할 거라는 이야기였는데, 경수의 집도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압구정 쪽에 살 정도로 돈이 조금 있는 편이라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는데, 루한은 그런 경수의 생각을 깰 만큼 필요 이상으로 돈을 챙겨 왔었다.
아니, 돈도 많아 얼굴도 잘생겼어. 대체 부족한게 뭔데 팬질을 하는건데? 진심으로 루한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민석이가 좋아서.'였다. 이해 할 수 있었다. 경수 자신도 종인이를 좋아해서 무조건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같은 팬이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이해하겠어? 그리고 경수와 루한은, 아는 인맥들을 총동원해 찍덕일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아련한 일이다. 초기에는 정말 시선도 많이 받았었지. 다른 찍덕들은 경수네를 끼워 주지도 않았다. 거기에 반감을 느낀 경수는 다른 찍덕들을 동료삼지 않고 독자적으로 다녔다. 그들의 대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경수네 홈 미스터 블랙과, 루한의 홈 민스마스터가 흥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어느새 부턴가 경수와 루한이 남 찍덕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경수와 루한의 홈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트래픽이 터지는 것은 예삿일이고 해외팬들도 루한의 도움을 받아 많은 곳에서 몰려들곤 했다.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홈이 됐다. 처음에 재미로 배워두었던 사진찍는 일이 이런데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경수는 답멘들이 달리는 것을 보며 즐거운 기분에 휩싸였다. 아, 종인아. 보고싶다. 본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다시 종인이 보고 싶었다. 경수는 카메라를 뒤져 종인에게 전달한 선물 프리뷰를 올렸다.
종인이에게 미스터 블랙의 선물이 잘 도착했습니다 ㅠ♡ㅠ! 일정 금액이상 서포트 해 주신 분들에겐 미스터 블랙에서 준비한 미니 포토북을 보내드려요! 경수는 트위터에 사진을 올려놓은 후 화면을 껐다. 루한은 아직도 사진을 고르지 못했는지 끙끙대며 사진을 고르다 이내 사진 하나를 골라 드디어 사진을 찍었다. 경수는 루한의 옆에 가서 무슨 사진인지 가만히 응시했다. 예쁘게 나왔네. 경수의 중얼거림에 루한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그치? 아 짜증나. 못 나온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루한의 콩깍지 씌인 발언에 경수는 눈을 가늘게 떠올렸다. 그러시겠지. 괜히 옆에서 풀내를 풍기는 루한을 쳐다보며 경수는 제 코를 틀어막았다. 루한에게 여 보라는 행동이었지만 루한은 그런 경수를 보는둥 마는둥 신나서 프리뷰를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경수는 그런 루한을 한심하게 쳐다보다 컴퓨터를 켰다. 바탕화면 가득 나누어져 있는 폴더들을 보며 경수의 얼굴이 행복하게 변했다. 이것도 종인이, 저것도 종인이. 그리고는 포토샵을 켜서 천천히 종인의 얼굴을 보정하기 시작했다.
모든 연예인들에게 필요한 한 가지 관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보정이었다. 아무리 개같이 찍었더라도 보정이 잘 되면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예쁘게 보였다. 문제는, 보정이 잘못 되면 아무리 예쁘게 찍은 사진이라도 사람들의 눈에는 좆같이 보이는 법이었다. 그래서 경수는, 사진이든 보정이든 전부 예쁘게 하려고 했다. 종인의 얼굴에는 여드름흉터 자국이 조금 심하게 나 있었다. 경수는 보정 할 때마다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지만, 얼굴에 난 여드름 흉터자국을 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꼬물거리던 루한도 열심히 보정작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경수는 보정작업을 하다 말고 사진을 몇개 골라냈다. A급 사진들은 보통 포토북이나, 달력에 들어갈 사진들로 남겨두고 B급 사진들을 올려놓는데, S급 사진같은 경우는 포토북이나 달력에도 잘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경우, 사진들은 보통 홈마스터들끼리 돌려보곤 했다. 물론 보정이 되지 않은 채로.
경수는 사진들을 열심히 보정시킨 뒤 사진 다섯장 정도를 골라 홈페이지에 올렸다. 벌써 보정 끝났어 경수? 하는 물음에 경수는 어, 하고 대답한 뒤 방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들어갔다. 종인이가 웃었다. 자신에게, 김종인이. 밀려오는 뿌듯함에 경수는 미소지었다. 주위 사람들이 종인이 오빠가 나한테 미소지었어! 하고 소리질렀지만 천만의 말씀. 종인이는 간혹 경수가 있는 쪽을 향해서 미소짓곤 했다. 경수의 주위에는 경수의 걸걸한 욕설 덕분인지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 사진을 찍는 것은 오롯이 경수의 몫이었다. 운 좋으면 루한도 종인의 미소를 담곤 했지만 민석을 찍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러기도 드물었다.
경수는 헤실헤실 웃음지었다. "경수야 문자왔어."
루한이 방 문을 덜컥 열었다. 손엔 경수의 빛나는 갤럭시 노트 투가 들려있었다. 며칠 전 공항에서 종인이 갤럭시 노트 투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본 경수가 덩달아 폰을 바꿨었다. 경수가 후닥닥 달려가 문자를 켰다. 내용에는, 이틀 뒤에 엑소가 중국으로 출국하니 오라는 소리였다. 경수는 ㅇㅋ. 하고 문자를 보낸 다음 자리에 드러누웠다. 루한이 무슨 문자였어? 하며 경수를 보채왔다.
"이틀뒤에 엑소 출국. 김포공항."
경수의 말에 루한의 표정이 울상이었다. 아 씨발. 거기에 미친년들 많은데. 우리 민석이 넘어지면 어떡해? 경수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루한의 끝없는 풀내에 질식사 할 것만 같았다. 경수는 옆에 놓여진 푸치바비 인형을 루한의 머리통에 던졌다. 루한은 푸치바비를 잡은 뒤 유유히 경수의 방을 빠져나갔다. 걱정 되는 것은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경수가 찍덕계에서 싸가지 없고 거칠기로 소문이 나 있기는 했지만 그들을 뚫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게다가, 가끔 팬들 때문에 칠칠치 못하게 넘어지는 루한을 보면 종인의 걱정은 배가 되었다. 경수는 이불을 들어 머리 위로 푹 덮었다. 내일은 집 안에 가득 쌓인 포토북들을 포장해 보내야 했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루한은 떠지지 않는 눈으로 경수를 응시했다. 새벽까지 컴퓨터 붙잡고 있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것저것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수를 보며 루한이 크게 하품했다. 이게 바로 찍덕들의 슬픔이지. 루한은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수를 쳐다보다 포토북 몇개를 자신에게로 던지는 경수를 쳐다보며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왜." "빨리 좀 싸. 오늘 배송 할 거란 말이야."
경수의 말에 루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봉투를 뜯어 포토북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사진 되게 예쁘게 나왔네. 루한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력에 넣는 사진은 예쁜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서포트에 돈을 보태 준 사람들에게는 예쁜 사진을 넣어 줄 생각이었다. 달력을 사 주는 건 종인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서포트를 도와 주는 것은 진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이들이 하는 일이니까. 삼백개가 넘는 포토북을 포장하던 루한이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 나 이런거 싫어."
루한의 불만이 터져나오든 말든 경수는 포장에 열심히였다. 열두시쯤, 택배사에서 오기로 했으니 그 전까지는 마쳐야 제대로 택배를 보낼 수 있었다. 루한은 그런 경수를 질린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밥을 해 주지 않을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부엌으로 들어가 전단지를 떼왔다. 뭐 먹지. 루한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옆에서 덥석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짜장면. 루한이 놀란 표정으로 경수를 응시했다. 마지막 하나를 포장한 경수가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쓰레기들은 많지만 받으며 좋아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건 막는거고,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며 사람들이 예쁘다고 좋아하는 것이 눈에 선했다. 경수는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목이 뻐근했다. 루한은 그새 전화기를 들어 중국집에 전화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버블티 먹으러 갈까?"
경수의 말에 루한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랭!
집으로 배달 된 짜장면을 먹은 후 tv를 켜 tv를 보던 경수가 문 밖에서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서둘러 달려나갔다. 택배 아저씨가 PDA를 응시하더니 열리는 문에 경수를 보며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경수는 머쓱해하며 문 앞에 놓았던 택배물들을 꺼냈다. 택배 아저씨는 많네요. 하더니 묵묵히 그것들을 옮겨담았다. 그것들을 다 도와주고 나서야 경수와 루한은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카메라와 지갑을 든 경수가 차를 몰았다. 오늘 목표는 홍대 버블티가게! 루한의 소리지름에 경수가 귀를 틀어막았다.
"졸라 시끄러."
경수의 타박에 루한은 듣는둥 마는둥 창 밖을 응시했다. 자주 가는 버블티가게로 갈 생각이었다. 처음 버블티를 먹게 된 것도 엑소 덕분이었으니 자주 애용하는 가게도 어둠의 루트를 통해 알아낸 엑소의 단골집이었다. 운 좋으면 엑소를 만나는 거였고, 그렇지 않으면…, 죽 쑤는거지 뭐.
"나 피곤해." "버블티 먹고 들어가서 자자."
역시 똥고집. 경수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이야기 해 봤자 루한은 듣지 않을게 분명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 놓은 경수가 버블티 가게 문을 열었다. 뒤를 따라 루한이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타로버블티 하나랑, 초코버블티 하나요.
"나도 타로 버블티." "그럼 내가 초코 먹을게."
경수의 말에 루한이 조용해졌다. 간만에 똑같은거 한 번 먹어보자고, 어? 친근하게 해보자고 같은거 먹어보려고 했더니 너 진짜 너무한다. 루한의 푸념어린 말에 경수가 코웃음을 쳤다. 지랄. 루한은 경수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통유리로 된 버블티 가게에 앉았다. 기지개를 쭉 펴는 순간 통유리로 된 버블티 가게 문이 열렸다.
"어…."
카운터 앞에 서 있는 경수를 무시한 두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타로 버블티 두 개 주세요."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낯익다고 느낀 경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경수가 뒤로 물러섰다. 몸이 낯익은데? 이리저리 위아래로 훑는 경수를 쳐다보던 남자 둘이서 수근수근 이야기하더니 걔 중 한 남자가 검지로 모자를 들어올리며 이야기했다.
"미스터 블랙 홈마님?"
경수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보고 있는게 가짜가 아니라면 분명히, "김종인, 오세훈?"
눈 앞에 있는 것은 김종인과 오세훈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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