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12
퇴원은 당일 점심 시간대 이후 바로 퇴원이었으나
나는 엄마에게 뭐라 둘러댈 말이 없었다.
차를 타고 집에 오는 와중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헌데 오히려 그 침묵이 나에게 말을 요구하는 것만 같아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는 척을 했더랬다.
오른손을 올려 목덜미를 더듬었다.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두 개였다.
밴드의 가장자리를 괜히 뜯을 듯 말 듯하며 만지작댔다.
차가 집앞에 도착하고나서야 깨달았다.
'씨발 나 저기 어떻게 들어감?'
"ㅇㅇ아, 안 내려?"
나는 차 문 손잡이만 꽉 붙들었다. 차마 열어제낄 수가 없었다.
오늘 새벽의 기억이 말짱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연단 말인가.
결국 엄마가 차 문을 밖에서 열어버렸고 나는 슬금슬금 차에서 내렸다.
엄마 아빠가 앞서 집안에 발을 들였고
나는 엄마 등 뒤에 바싹 붙어 들어갔다.
주방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애써 정면만 바라봤다.
주방에 눈길을 두면 왠지 착시라도 일어날 것만 같다.
그 주네라는 요괴 새끼를 마주하게 되는 착시.
나는 내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오르기 전에 엄마를 바라봤다.
키 큰 화분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제발 나를 정신병자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박한 바램을 묻어두며 2층으로 올라갔다.
어지러운 것도, 비틀거리는 것도 아니지만 난간을 꼭 잡았다.
나는 내 방 문 앞에 섰다. 들어가진 못했다.
몇분을 망설였다. 다리가 아파서 문 앞에 주저앉았다.
모아 세운 두 다리를 팔로 감싸곤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그때, 내 방 안에서 희미한 잡음이 들려왔다.
나는 귀를 의심하면서도 귀를 쫑긋하며 기울였다.
'다.....이야.....'
동동의 목소리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문에다 귀를 갖다댔다.
'다 내 잘못이야....'
동동이 흐느끼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청아한 목소리가 새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항상 시끄러운 하이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야, 동동."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다짜고짜 말했다.
책상 위 보틀 옆에 주저앉아있던 동동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동동은 볼따구를 쓱 닦으며 눈물을 지웠다.
그리고는 날 보며 울먹거리면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금방 무사하구나, 역시...."
"야, 스톱. 그자리에 가만히 있어."
그 애처로운 얼굴에다 대고 냉정한 말투를 내뱉는 건 나 또한 맘이 아팠다.
동동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정말로 스톱을 했다.
일어나려다가 말은 그 애매한 자세로.
동동의 표정이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만 같다. '왜?'하는 표정.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꺼내었다.
".....네 짓이야?"
".....어?"
"네 짓이냐고 묻잖아. 새벽일 말이야."
"집주인....나는....ㄱ.."
"네 짓이 아니면 왜야? 왜 그런 일이 일어난거지?
왜 하필 나지? 내가 뭘 잘못했지?"
".........."
정말로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
무방비 상태에서 내 말을 모두 받아낸 동동은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처음엔 조금 놀란 표정이었으나, 어째 지금은 담담해졌다.
그 무서울 정도로 담담한 표정에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정말 얘 짓인거야? 라는 생각이 들려 하기 직전, 동동이 입을 열었다.
"주네는...."
"......"
"주네는 구역 감시자가 아냐...."
"뭐?"
"그런데 날 데리러 오는 일을 주네에게 시켰다는 건...."
"그러니까 너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
"나 때문인 거 맞아 집주인! 하지만...!"
동동의 눈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할말을 가득 담은 눈빛이었다.
그것이 말 대신 눈물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급작 혈압이 올라 목이 화끈거렸다.
목덜미의 상처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 새낀 어딨어."
"주네는 갔어. 이제 집주인을 해치진 못할거야. 그러니 걱정마."
나는 책가방 옆에 던져둔 보틀 상자를 꺼내었다.
상자의 틈이 벌어져 찢겨져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보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허탈한 맘에 허공에 한숨만 뱉었다.
어느새 동동이 바닥에 내려와 내 곁에 서있었다.
"내가 다 수를 써 놓았으니 이제 안전할....."
"다 네놈들 때문이야."
"....어?"
"널 진작에 버렸어야 했어."
"......"
무섭도록 담담한 가시돋힌 말이 나왔다.
너만 슬픈 거 아니라고. 나도 아프다고. 알아달라고.
"널 애초에 버렸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거야."
내 가시돋힌 말에 동동의 눈이 커졌다.
간만에 훤히 보이는 까만 눈동자엔 슬픔이 차오른다.
동동도 나도, 슬픔을 눈으로 쏟아냈다.
동동도 울고 나도 울었다.
목덜미의 상처가 나를 더 부추기는 것만 같다.
더 하라고. 더 하라고. 더, 해보라고.
나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책상으로 향했다.
동동은 우는 와중에 궁금한 듯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동동의 보틀 앞에 섰다.
나는 동동의 보틀을 집어들었다.
"그냥 꺼졌으면 좋겠다. 되돌아갔으면 좋겠어.
너랑 내가 만나기 전으로 말야."
나는 창문을 거칠게 열어제끼고 동동의 보틀을 세게 던져버렸다.
너무 격하게 던져서 어깨가 뻐근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동동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바깥의 어딘가에서 보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둔탁한 소리를 시작으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집 마당도 젖어가고, 아스팔트 도로도 점점이 젖어들었다.
아주 작은 동동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신세가 많았어."
"......"
"집주인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생각은 없었어.
집주인의 영혼을 가져가겠다는 계획은 놓아버린지 오래거든.
근데, 본의 아니게 불행을 안겨줘서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
"집주인이 가라고 하지 않아도 갈 생각이었어.
아, 이젠 집주인이 아니지?"
"......"
"이제 너의 시간을 돌려줄게."
동동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서서
활짝 열린 창문의 턱으로 올랐다.
동동은 한 손으로 커튼을 붙잡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울먹임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억지스런 무덤덤함. 그게 더 안쓰러웠다.
"소원 들어주기로 한 거 기억나? 소원 말해봐."
"...됐어. 안 들어줘도 돼."
"한번만. 말해봐. 응?"
동동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꺼내보였다.
동동과의 첫만남 때 보았던 그 소원석이란 것이다.
비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영롱하게 빛났다.
"그냥....비 맞지 말고 꺼져버려."
"내가 비 안 맞고 가는 거. 그게 소원이야?"
"어."
"정말 그게 다야? 널 위한 건 없어?"
"그게 날 위한 거야."
내말에 동동은 체념한 듯 어깨에 힘을 뺐다.
동동은 소원석을 두손으로 잡고 주문을 외웠다.
나는 동동의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이내 소원석이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라지더니
동동의 머리위에 희미한 막이 생겨났다.
우산이라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동동은 눈 깜짝할 새 우비도 입고 있었다.
동동은 내가 마지막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동동은 비가 되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뒤늦게 혼잣말을 뱉었다.
"나의 시간을 돌려준다고?"
빗방울이 방 안으로 조금씩 들이치는데도 창문을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오는 날의 특유의 차갑고 눅눅한 냄새가 방 안에 스며들었다.
"원래 내 삶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할까?"
동동은 내게서 항상 좋은 향내가 난다 말했었다.
나는 평생 동동의 향기를 비 냄새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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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게, 제가 이걸 어제 썼었는데 오늘 마침 비가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