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하면서 누가 내 앞에 딱 서는 바람에 걸음을 멈췄다. 정국아!
"어디, 갔다 와요?"
"어? 응. 오빠가 왔다길래"
"친오빠?"
어디 갔다 오냐고 물으면서 내 옆으로 오길래 같이 집까지 걸었다.
"응. 근데 너 지금 집 들어가는거야?"
"네. 어제 외박했으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죠"
"자랑이다 아주"
같이 나란히 걷는데 정국이가 내 앞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날 빤히 쳐다보는 거다. 뭐야 왜 이래!
"누나 화장 안 했네요?"
아!! 나 화장 안 했다!! 오빠 왔다고 씻고 바로 뛰어가는 바람에 진짜 화장 하나도 안 했는데!! 내가 미쳐ㅠㅠ
"밖에서 화장 안 한 모습 처음 봐"
"그...."
정국이에게 감정이 생긴 뒤로는 왠지 완벽한 쌩얼로 있기 민망하고 쪽팔려서 집인데도 비비는 꼭 발랐었는데... 그리고 정국이가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 내 쌩얼은 별로 못 봤을 거다...
뭐 어차피 아까 정국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봤긴 했지만.. 그래도....ㅠㅠ 정국이 말마따나 밖에 나오는데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쌩 민낯으로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역시 안해도 예쁘네"
헐. 정국이 말에 가던 길을 멈추고 서버렸다. 지금 저거 나한테 한 말이야? 와.... 저러니까 내가 안 넘어가냐고... 여자 꼬시는 많고 많은 말 중 하나일 테지만. 그 말에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안 가요?"
내가 멈추는 바람에 정국이가 몇 발자국 앞에 있었는데 날 돌아보더니 환하게 웃는 거다.... 순간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모자를 더 푹 눌러썼다. 못 봤겠지?
"누나 오늘 저녁 뭐 먹어요?"
"먹고 싶은거 있어?"
"음.. 누나가 잘하는 거"
"내가 잘하는 거? 닭볶음탕?"
"누나 그거 잘해요?"
웬일이래. 3개월쯤 같이 살면서 정국이랑 저녁 먹은 건 손에 꼽을 수 있을꺼다. 항상 밖에 나가서 늦게 들어오니까. 아침은 먹지도 않지 애매한 시간에 나가서 점심도 잘 안 먹고.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응! 나 식당 차려도 돼"
"나한테 시집오면 되겠네"
집에 도착해서 정국이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순간 심쿵..... 하...숨쉬기 힘들어... 누가 산소호흡기 좀.... 정국아 인간적으로 내 심장 괴롭히는 건 하루에 한번씩만 하자... 삶의 위협을 느낀다 내가...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는 정국이와 달리 난 또 몸이 굳어버려서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장난이에요"
씩 웃으면서 내 손목을 잡아 날 집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내가 진짜 여기서 살다가는 제 명에 못 살지....
처음 정국이가 들어왔을 때는 저런 말을 던져도 또 여자 꼬시는 법 나한테 시전하시네. 하면서 그냥 넘겼는데 지금은 저런 말 하나하나에 심장이 요동을 친다. 병이야..병....
왜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한테 무슨 말만 하면 괜히 거기에 의미 부여하고 하는거... 분명 다른 여자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뿐인데 알면서 자꾸 기대하게 되는 그런 거...
"형도 있네? 그럼 우리 오늘 오랜만에 셋이서 밥 먹겠네요"
쟤는 왜 안 나가고.... 약간 기대하고 있었는데...
거실에 나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자 인형을 품에 안고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티비를 보고 있는 김태형이다. 아직도 화난거야?
정국이 목소리에 티비를 보던 눈을 정국이에게 돌렸다가 내가 따라 들어오는 걸 보고 다시 티비로 고개를 돌리는 거다...
"형 왜 저래요?"
그런 태형이의 태도에 정국이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말해...하나도 말 못 해...
....
주방에서 분주하게 닭볶음탕을 만드는 동안 김태형은 계속 앉아서 티비만 봤다지... 도와달란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라면 요리하는 내 옆에 와서 도와준다며 괜히 일만 더 만들고 했을 텐데 가만히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진짜 많이 화난 게 맞나 보다. 대체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지.
"진짜 닭볶음탕 하는거에요?"
다 씻었는지 정국이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면서 나한테 다가왔다. 이런 샴푸냄새ㅠㅠ 촉촉히 젖은 정국이 머리라니... 요리고 나발이고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나 변태 아니다! 정신 차리자!!
실은 닭볶음탕을 잘해서가 아니고 그냥 냉장고에 닭을 사 놨던 게 생각나서 던진 거 뿐이었다. 뭐, 닭볶음탕 못하는 것도 아니고.
"뭐 도와줄까요?"
"아냐"
정국이가 머리를 털다 말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물어봤다. 니가 옆에 있으면 내가 뭘 하질 못한다.....
"그래도"
"그냥"
"야, 전정국! 일루 와바"
그냥 가서 앉아있으라구.... 말하려 했는데 김태형이 정국이를 불렀다. 바로 뒤에 있는데 크게도 말하네.
"왜요?"
"채널 좀 돌려"
"네?"
왜 저래....기껏 정국이가 자기 옆에 앉자 저런다. 자긴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나도 어이가 없는데 정국이는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몰라 심심한가 보지. 정국이도 불러주고 난 만드는 데나 신경 써야겠다.
보글보글 잘 끓고 있군! 맛있는 냄새가 났다! 간을 봐야 하는데 아까부터 계속 맛을 봐서 모르겠길래 정국이를 불렀다.
"정국아 와서 간 좀 봐주라"
내 말에 김태형한테 잡혀서 온갖 괴롭힘을 받고 있던 정국이가 얼른 일어나서 내 옆으로 왔다. 국물을 조금 떠서 후-불고 먹여주니까
"우아! 맛있어요"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내주는 거다. 역시 넌 최고야 정국아ㅠㅠ
"진짜? 그럼 이제 밥 먹자"
....
"형 진짜 안 먹어요?"
"야, 너 진짜 그럴래? 독 안 탔어. 권해줄 때 먹어"
"내가 니가 만든 걸 왜 먹어"
유치하게! 괜한 거에 오기 부리고 있어! 지금까지 잘만 먹어놓고 말이야
밥 먹자는 내 말에 김태형은 보란듯이 핸드폰을 들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짜장면 집..... 내가 만든 거 안 먹겠다나 뭐라나...
짜장면 한 개는 안 보내준다니까 보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다가 결국 자기가 이겼는지 뿌듯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배달 온 짜장면을 우리 앞에서 후루륵 먹고 있다지...
"둘이 무슨 일 있었어요?"
날 째려보면서 짜장면을 후륵 거리는 태형이를 보면서 정국이가 물었다. 아니.. 없었어.. 없었다고 해줘 태형아..말할꺼니...? 설마.. 너 그런 애 아니지...?
김태형을 얼마나 불쌍한 눈으로 쳐다봤는지....
"아니"
고맙다ㅠㅠ 넌 유치하고 뒤끝도 더럽게 길지만 착한 아이인거 같다ㅠㅠ
"너 그거 가지고 배 안 차잖아"
한 다섯 젓가락 들었나. 벌써 짜장면 그릇이 비어있더라고. 곱빼기에 탕수육까지 먹어도 모자란 놈이 짜장면 하나 시켜서 뭘 어쩐다는 거야.
그냥 같이 먹지 괜히 튕기냐 튕기기를. 나한테 화가 났어도 저 맛있는 닭볶음탕이 무슨 죄야?
"차"
한번 썩소를 지어주고는 다시 티비 앞으로 가버렸다. 이따 배고프다 너 분명.
몰라 난 분명 몇 번이고 권했어. 자기가 안 먹는다는데 뭐. 정국아 많이 먹어~
"진짜 맛있다. 앞으로 맨날 집에서 먹어야겠네"
정국이 그릇에 한가득 덜어주니까 맛있게 먹으면서 내게 말해줬다. 그래 너라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ㅠㅠ
밥을 다 먹고 치우는데 정국이가 자기가 설거지를 한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길래 괜찮다고 괜찮다고 해서 겨우 말렸다. 덕분에 태형이한테 잡혀서 또 괴롭힘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살짝 미안...
설거지를 다 하고 나도 티비 앞으로 가서 러그 위에 앉았다. 태형이를 꼬셔서 러그를 산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겨울인데 집에 소파도 없고 차가운 바닥에 앉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겨우 돈을 조금 받아 예쁜 러그를 사서 깔았다.
그렇게 산 러그인데 제일 덕을 보는 건 나도 아니고 바로 태형이었다. 틈만 나면 러그 위에 누워서 몸을 비비적댔다. 자기가 무슨 고양인 줄 알어.
지금도 정국이 무릎을 베고 누워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비비적거리고 있다. 내가 그런 정국이 옆에 가서 앉으니까 앉는 나를 정국이가 계속 쳐다보다가 태형이가 덮고 있는 담요를 휙 낚아채서는 나한테 덮어줬다. 아주 이쁜 짓만 골라서 하지...
"야! 나 춥단말야!"
"좀 참아요. 남자가"
"남자가 추위 더 타는데"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몸을 웅크리길래 정국이가 덮어준 담요를 둘러쓰고 일어나서 내 방에 있는 담요를 가져와서 태형이한테 덮어줬다. 하여간.
"이런다고 내 화가 풀릴 줄 아나 본데"
"아닌데"
"아님 말고 흥"
왜 저래....순수한 뜻으로 덮어준 거거든. 몰라...저렇게 점점 풀리다가 흐지부지 넘어가겠지 뭐... 제발 그러길 빈다.
"여보세요?"
좀 오래 집에 있는다고 했지. 정국이가 전화를 받더니 잠깐 나갔다 온다 하고 또 나가버렸다. 그 잠깐은 한 시간이 되고 세 시간이 되겠지. 늘 그랬다. 어쩌겠어.
정국이 다리를 베고 누워있던 태형이가 정국이가 없어지니까 자기 사자 인형인 뷔를 베고 누워있다가 그게 불편했는지 꼼지락꼼지락 나한테 다가오는 거다.
그러더니 아빠다리 하고 있는 내 다리를 쭈욱 펴고는 거기에 누웠다. 아깐 내가 만들었다고 닭볶음탕도 안 먹었으면서....
"왜 누워. 내 다린데"
"니 다리가 아니고 무야"
...... 넌 개자식이야.... 진짜 저 머리를 한대 치고 싶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참는다....
가만히 앉아서 둘이 티비를 보고 있다가 태형이가 고개를 돌리더니 똑바로 눕는 거다. 천장만 보고 있길래 내가 내려다보니까 날 쳐다보더니
"나 배고파"
하는 거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니가 애냐. 어후...
"치킨 먹을래?"
실은 나도 아까 먹은 저녁이 다 소화가 돼서 야식이 당길 시간이 되긴 했다. 아까도 닭을 먹긴 했지만 치느님은 언제나 옳으니까.
태형이가 치킨 먹자는 내 말에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끄덕 거렸다. 나한테 화난 애 맞는지... 태형이 머리 속엔 그냥 배가 고프단 사실만 있는 것 같았다. 좋았어! 이렇게 잊혀지는 거야...
....
"잘먹겠습니다!"
술 먹고 망할 짓을 한 게 미안해서 치킨은 내가 사기로 했다. 까짓거... 치킨으로 퉁 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한가지 아쉬운 건....치맥이 아니라는거ㅠㅠ 그 짓을 했는데 아무리 취하지 않는다고 해도 도저히 내 양심에 맥주를 먹을 수가 없는 거다...
크... 아쉬운 대로 콜라나 먹어야지ㅠㅠ
"콜라도 먹어!"
태형이가 캔을 따다가 좀 흘렸는지 한 모금 마시고는 나한테 건네줬다. 화 따위....저 멍청이... 뭐. 나야 다행이지.
쩝쩝쩝 둘이 치킨을 맛있게 뜯었다. 역시 야식은 치킨이지!
근데 옆에서 김태형은... 후드득 후드득 죄다 흘리면서 먹는 거다. 아휴....
"잘한다"
응? 하면서 나를 쳐다보는데 어이구.. 입에 다 묻었다. 옆에 휴지를 가져와서 톡톡 닦아주니까 활짝 웃다가
"너도 좀 묻히면서 먹어. 내가 닦아주게"
너나 잘 먹어... 난 입에 뭐 묻으면 묻은 거 알고 바로 내가 닦아.... 그리고 너처럼 묻히면서 안 먹는다 나는.
둘이서 순식간에 닭 한 마리를 해치우고 손을 닦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역시 치킨은 손으로 뜯어야 제맛인 거다! 근데 얘는 왜 또 여기로 들어오는 건데...
"야, 니 화장실로 가"
"니 비누 냄새가 더 조아~"
어련하시겠어.... 물을 틀어서 손에 물을 묻히는데 내 손이 있는데도 그 위에 손을 올리는 거다. 난 니가 썼던 물 쓰라는 거야 뭐야.
이씨- 하면서 물 묻은 손에 비누칠을 하려고 비누를 들어서 문질 문질 거품을 냈다. 태형이가 그걸 보고 있다가 비누는 안 들고 내 손을 감싸고 문질 거리는거다.
그 환한 웃음은 역시나 잊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가 닦아준다면서 자기 손바닥에 내 손가락을 문질 거리고 깍지도 껴서 보글보글... 거 진짜 귀찮게 하네.
"내가 할거야! 그렇게 하면 잘 안 닦인다고"
"닦여, 닦여. 내가 진짜 깨끗하게 닦아줄게!"
깨끗하게 닦아준다면서 그렇게 한참을 문질 거리는거다. 덕분에 화장실에는 상큼한 레몬 냄새가 퍼졌다. 향기 좋은 비누를 사길 잘했지~ 손 닦을 때마다 기분이 좋단말야.
가만히 내 손에 집중하고 있는 태형이를 보고 있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알아서 하라고 놔뒀는데.... 얘가 언제까지 이럴려고...
한참을 문질 거리다가 내가 그만하라고 해서 겨우 거품을 헹구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어? 아미야, 우리 양치 안 했다"
그러게. 양치를 안 했구나. 너 때문이야! 손 닦는데 뭐 그렇게 오래 걸려가지고. 그리고 너랑 이제 양치 같이 안 할 거야....
오늘은 태형이가 많구나ㅠㅠㅠㅠㅠㅠㅠ 앞으로 더 많아지자 태형아ㅠㅜㅠㅜㅜㅠㅜㅠㅜ
경축!!!! 오늘은 태태 생일ㅠㅠㅠㅠㅠㅠㅠ 태어나줘서 고마워 태형아ㅠㅜㅠ 사랑한다 마니마니 오늘하루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어!!
뭐 해준것도 없는데 우리한테 선물도 주고ㅠㅠㅠ 넌 천사야ㅠㅜㅠㅜ 불러준 노래 진짜 잘 듣고 있어 역시 태형이다!!!! 목소리가 꿀이야 꿀ㅠㅠㅠㅠ
왜 태형이한테 하고싶은 말 여기다 적는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태데이에 모두 즐겁게 보내세요~!!!!
그럼 저는 물러갑니다~
♥♥♥♥♥♥♥♥♥♥암호닉♥♥♥♥♥♥♥♥♥♥
모카님♥ 런치란다님♥ 민슈가님♥ 권지용님♥ 단미님♥ 기화님♥ 스웩님♥ 랩모니님♥ 현기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