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우리에게 아뢰기를, 궁 바로 앞에서 화살이 날아왔고 그 끝에 달린 편지에선 불미스러운 글자가 쓰여 있었다고 하옵니다."
"…글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말씀 드리기 송구하오나, 난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혼례가 끝나고 내전으로 돌아온 왕비는 충신의 말을 경청하며 놀란 가슴을 애써 달래었다. 그녀는 지금 막 충신으로부터 궁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는 걸 전해듣게 됐다. 너무도 충격적인 사실에 왕비는 형편 없이 떨리고 있는 입술을 다물어버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머리는 금방 뜨거워졌고, 열이 올라 메스꺼운 현기증이 돌았다. 왜 어째서 이런 불행이 궁을 찾아오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동혁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예, 그를 궁까지 보필했던 호위무관 곤이 상세히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이 맞습니까?"
"……예?"
"그대가 고한 그 사태가 동혁이 꾸민 일이 아닌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런 걸 물어 확인하는 게 마치 당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처럼 왕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충신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충신은 잠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을 아꼈다. 오랜 시간을 그녀의 곁에서 일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걸 바라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다. 왕비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럴 동안 충신은 속으로, 어떤 말을 건네야만 최대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지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일부러 일을 꾸미고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목 위에 그런 흉은 생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곤 역시, 그의 말을 받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마, 결정적으로 그 또한 지금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가 아닙니까."
"그 흉터의 자국을, 직접 보았습니까?"
"…소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곤이 그렇게 일러주었습니다. 마마. 그는 범인이 아닙니다."
충신은 있는 힘껏 그를 변호했지만 왕비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궁의 힘에 마음을 빼앗겨 형을 죽이고 또 다른 음를 꾸미고 있는 존재가 바로 동혁이었다. 그녀는 이미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충신은 어서 빨리 왕의 옥체가 나아지기를 바랬다. 하루라도 빨리 병으로부터 벗어나, 아무 잘못 없는 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려는 조선의 국모를 눈치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에 모든 것을 치중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건 동혁에게 한정적으로 특히 심하게 작용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자를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자익위사에 정원 열 넷을 비롯하여 여덟을 더 추가하여 배치했으니, 걱정 마옵소서."
"……한빈, 그 아이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지킬 것입니다……."
충신은 그녀의 눈에서 언뜻 지독한 모성애가 나풀거리는 것을 보았다. 저절로 손에 땀이 쥐어졌다. 숨이 막혔다.
이내 궁녀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와 소반에 뜨거운 차 두 잔을 내놓았다. 퍼지는 냄새가 향긋했지만 왕비는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 누군가가 궁을 해치려고 하고 있다. 진환을 앗아간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젠 아주 궁을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손 끝이 떨리도록 주먹을 쥐었다. 일을 꾸미고 있는 범인의 정체 따위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동혁을, 그를 영영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앞으로 동혁이 궁에 출입하는 것을 금하세요."
"…그도 엄연한 전하의 귀중한 자식이온데 어찌 그런 명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자식은 맞지만 귀중하지는 않습니다."
"……마마, 부디 뜻을 거두소서."
"유배를 내리고 싶은 것을 참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
"제가 왜 그 아이에게 세자빈의 가르침을 맡긴 줄 아십니까."
"……."
"그만큼 궁을 출입하는 빈도가 높아지면 그 아이가 발목을 잡힐 횟수 역시 전과 비할 바 없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이젠 범인으로 그 아이가 지명될 터이니 더 이상 궁의 출입을 허가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량을 베푸는 착각을 일으키는 말투였다. 충신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고자 한 것을 그냥 포기하였다. 왕비에겐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토록 바른 성품의 그에게 죄를 물어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늙은 신하의 무력한 변호 따위가 그녀에게 먹힐 리 없었다. 충신은 찻잎이 잔 안으로 가라앉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왕비의 명을 받아야 할지, 소신껏 거절을 해야 할지 그는 고심하고 있었다.
충신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안쓰러워도 왕비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비겁한 현실이 사무치게 화가 나서 내전을 빠져나오는 순간에 억지로 역한 숨을 삼켜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알면서도 외면해야 한다는 건 정말로 괴로운 일이었다.
13
눈은 자연스럽게 뜨였다. 아침이 밝았음을 알리는 햇살이 평화롭게 방 안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잠 투정도 없이 성급히 몸을 일으키고 흠칫거렸다. 불길한 직감이 스멀스멀 뺨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문을 열고 고개를 숙여 기다리고 있는 궁녀들에게 물었다.
"해가 뜨고 몇 시간이 지났습니까?"
"예, 빈궁마마. 두 시간이 조금 지났습니다."
"……이럴 수가."
"저하께서 오늘 문안은 혼자 올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잠을 깨워드리려고 하였으나, 저하께서 만류하시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아닙니다, 죄송하실 것 없습니다. 저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예, 세자시강원으로 조강을 하러 가셨습니다."
부러지게 말한 궁녀는 이내 방 안으로 들어와 내 머리칼을 땋았고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다른 궁녀들은 농에서 비단을 꺼내 내가 팔을 꿰어 입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옷을 걸쳤다. 결이 부드러운 당의의 고름을 여미고 길이가 살짝 남는 빨간색 치맛단을 잡았다. 궁녀들은 할 일을 마치고 방으로 나갔고 아침을 내오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라서 적막한 이 공간이 별궁과 크게 다를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그는 내게 아무 뜻 없이 같이 자자고 했고, 나는 그게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한빈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내가 거절하던 순간에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주어야 할지 아니면 거짓된 사랑을 보여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냥 그가 하는 것 따라 적당히 얌전히 굴면 되겠지.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빈은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왕비가 머무는 처소를 찾아가 문안을 올리고, 아침을 먹는다. 겸상은 상황에 따라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각자 방에서 혼자 먹는다는 게 보통이라는 뜻이었다. 간단히 밥을 먹고 그는 아침 공부를 하러 이 곳, 자선당의 옆에 있는 세자시강원으로 건너가고 나는 그냥 방 안에 남아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 때마다 끼니를 챙겨먹고 몸을 씻는다. 세자빈이라고 해서 매일 매일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평범함과 밋밋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일과는 시작하고 오 분도 되지 않아서 싫증이 났다.
꼭 아침에 함께 문안을 드리러 가자고 당부까지 받아놓고 늦잠을 자버렸다. 마주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잠자리가 같은 공간에 있는데 그건 바래봤자 어차피 수포였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를 보면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선 요리와 각종 나물 반찬과 함께 밥을 먹고 나는 무료하게 앉아있었다. 정말 지독하게도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을 잡고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 깨우치지 못한 어려운 한자들이 너무 많이 나와 그럴 수 없었다. 밖에 나가면 준회가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후원으로 가 산책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저번에 옆구리를 잡고 비틀대던 게 생각나 그냥 관뒀다. 괜히 나 때문에 진작에 나았을 몸이 여전히 아픈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날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나는 그 날 학교 기숙사를 관리하는 수학 선생한테 외출증을 끊고 엄마 집으로 가 저녁을 같이 먹었었다. 그리고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던 단편 영화를 봤다. 그게 끝이었다. 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이내 가방을 챙겨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상한 부적을 받았다거나 깊고 깊은 우물에 빠졌다거나, 그런 일도 없었다. 한 마디로, 이렇게나 멀고 아득한 과거인 조선에 올 법한 일은 애초에 저지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어쩌자고 이런 상황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 곳을 만났던 첫 날부터 사실을 털어놓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곳에 온지 벌써 거의 삼 주가 넘는 시간이 되었다. 남은 일생을 모두 세자빈으로만 보내고 싶지 않으면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이 곳으로 오게 된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방법을 궁리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다. 지금 이런 내 처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도움 받을 곳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오로지 나 혼자서만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도 일단은 뭐라도 해야 했다. 이렇게 하는 것 없이 시간을 죽일 수는 없다. 다짐은 막연했지만 막상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금방 떠올랐다. 하루 일과를 간단한게 적어 기록한다거나 이 곳 사람들과의 대화들을 기억해놓으면 작고 사소할지라도 나중에 서울로 되돌아갈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앞으로 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하루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은 더디게 갔고, 졸리게 흘렀다. 소반 위에 턱을 괴고 있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사방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안개를 확인하고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는 꿈이었다. 배경은 밤이었고 어딘지는 몰랐다. 나는 이전의 꿈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계속 쫓아가고 있었다. 숨이 벅차오르기 시작했고 그는 내게서 점점 멀어졌다. 왜인지 내 머릿속엔 그를 꼭 잡아 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계속 그를 쫓아갔다. 거리를 비추는 달빛이 영롱했고 이젠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목 끝에 산소가 부족했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뒤에서 내 바로 옆으로 긴 화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꿈인데도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에, 무언가가 크게 굴러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세자였다. 세자가 내 앞에서 넘어져 있었다. 단잠이 끝나고 처음으로 보인 게 바로 그 모습이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채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세자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바꾸었다. 그는 부산스럽게 헛기침을 하며 답지 않게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저, 그, 보, 보려고 보려던 게 아닙니다. 점심 때가 되어, 그게, 그러니까……. 그게 또 그대와 같이 밥을 먹고 싶었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대가 눈을 감고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예?"
"큼, 아침에 왜 약속을 어기셨습니까? 저는 세상에서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제일 싫, 히끅, 어…. 히끅."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한빈의 얼굴이 붉었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 격렬한 딸꾹질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그냥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제의 그처럼 입을 맞출 기세로 그를 놀라게 할 수도 없었고, 겁이 나서 함부로 그의 등을 토닥여줄 수도 없었다. 히끅, 히끅. 그는 좀처럼 멎지 않는 딸꾹질에 오만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크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나를 보고 있던 그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살짝 웃었다. 처음으로 그가 귀엽게 느껴졌다.
한빈의 기침 소리를 듣고, 닫힌 문 밖으로 궁녀들 몇 명이 놀라 소리쳤다. 저하, 의원을 불러드리겠사옵니다. 그 말에 한빈은 기겁을 하며 그녀들을 나무랐다. 아픈 것이 아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어서 썩 물러가거라! 그는 자신의 체통을 지키지 못해서 초조한 모습이었다.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딸꾹질을 들킨 것이 영 마음에 걸리는지 그는 이마에 손을 얹고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다 그대 때문이 아닙니까."
"예? 저는 그냥 잠에서 일어난 것밖에는…."
"그게 잘못입니다."
한빈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아까 귀엽다고 한 거 취소. 나에게 냉담하고 막무가내인 건 여전했다.
그는 짙은 녹색의 곤룡포를 한 번 팔락인 뒤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를 따라 그 앞에 앉았다. 우리는 소반을 사이에 두고 잠시 오고 가는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는 생각이 많은 것처럼 고단한 눈을 했다.
"중식을 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입니다."
"그렇습니까."
"……저하께서는?"
"저도 아직입니다."
"…그렇습니까……."
"……."
"……."
그냥 눈 딱 감고 같이 점심 먹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하면 될 것을 한빈은 자꾸 말을 질질 끌었다. 그 태도가 답답했다. 왜 이럴 때는 직설적인 모습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평소엔 할 말 다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도 혼자 다 하면서.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가 대단한 숙맥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윤에게는 예외일 테니 말 그대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내 추측 중 하나였다.
"……제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아,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간혹 늦잠을 자는 날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게 오늘일 줄 몰랐습니다."
"됐습니다, 대신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셔야 합니다."
"…예, 그래야지요."
그 뒤로 우리는 계속 정적이었다. 내 사과를 듣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으면 이제 볼 일이 끝났으니 몸을 일으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아까처럼 고단한 눈으로 허공 어딘가를 계속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말이 더 남았으면 어서 끝내고 일어나주었으면 했다. 따지자면 정략적으로 결혼한 사이에, 심지어는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몇 분이고 계속 말 없이 마주보고 있자니 심기가 껄끄러웠다.
이내 그가 품 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어 내게로 내밀었다. 봉투로 추정되는 작은 종이 주머니도 있었다. 종이 위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이걸 친절히 설명해줄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송 주부의 아들인 혜민서의 의원을 이 곳, 궁으로 오시기를 부탁 드렸다고."
"……제가 결정한 것이 아니오라…."
"갑자기 마음 약한 소리를 드려 죄송하지만 아직 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제가 조선을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필히 전하의 옥체가 평안하셔야 합니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말을 어렵게 바꾸었다. 한빈은 말을 마치고 가지고 온 필묵함을 꺼내어 소반 위로 올렸다. 그는 그걸 조심스럽게 열어 안에서 먹과 벼루를 찾았고 궁녀를 불러 물이 담긴 연적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이내 익숙하게 먹을 갈았다. 그가 그러고 있을 동안 나는 다시 한 번 윤형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물론 그가 쉽게 그런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고심 끝에 최선을 생각하며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에는 전적으로 나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렇게 나약한 마음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궁은 여러 위험이 많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자칫 누구에게 밉보이게 되면 평생 눈총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게 바로 이 곳이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감수하고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이 상책이었다. 나는 윤형이 되도록이면 늦게 이 곳을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빈은 별 다른 말 없이 내게로 붓을 건넸다. 나는 그걸 한 손으로 쥐었고, 그가 열심히 갈아 만든 먹을 절반 쯤 묻혀 종이 위로 가져갔다. 나도 모르게 한글을 적을 뻔했다. 천천히 동혁이 알려준 한자들을 생각하며 윤형에게 보낼 편지가 될 종이 위로 붓을 긋기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앞에서 가시가 돋은 말투가 들려왔다.
"그 글자는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
"어떻게 된 게, 여인이시면서 저보다 졸필이십니까."
한빈이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다그쳤다. 찬우도 나를 악필이 심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괜히 속이 찔리는 것을 제치고 나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에게로 대뜸 붓을 내밀었다. 그 행동을 지켜보는 그의 눈이 어리둥절했다.
"졸필이라 죄송합니다. 제 글씨가 못나서 보기 싫으시다면, 저하께서 대신 이 붓을 잡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예, 안 되겠습니다."
그는 누굴 놀리는 것처럼 대꾸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붓을 고쳐 잡았다. 자긴 얼마나 명필이길래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궁금했다. 분명 저번에 독서를 싫어한다고 했으니 글 쓰기에도 소질이 없을 것이었다. 제 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은 주제에 내 글씨의 좋고 나쁨을 논하는 그가 얄미웠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면서 계속 동혁을 생각했다. 그가 지금 옆에 있다고 믿었다. 그가 가르쳐준 방식으로만 붓을 움직이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하니 붓은 아까보다 수월하게 움직였다.
"정녕 글 공부를 하신 게 맞습니까? 글자 끝 맺음이 다 틀렸습니다."
"……."
"이래서야 의원이 우리의 편지를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붓에 새로운 먹을 묻히고 있을 때 그가 유심히 종이 위의 글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앞에서 비아냥대는 것을 더는 참아줄 수가 없어서 얼굴을 찌푸리려는데, 뜬금 없이 그가 몸을 일으켜 내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잠시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그가 바로 뒤에서 내 손 위로 손바닥을 겹쳤다. 그는 붓을 쥔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천천히 종이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그가 숨을 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손 끝이 덜덜 떨렸다. 그는 그 때 좀 더 힘을 주었다. 단단한 손 잡음이었다.
"…이렇게 쉬운 글자를, 왜 그렇게 복잡하게 적으려고 하십니까……."
그가 내 귓바퀴를 잡아먹을 것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내 손을 쥔 채로 빠르게 붓을 움직여, 금방 편지를 완성했다. 초반의 글자는 흐트러짐이 많은데 그가 내 손을 잡고 쓴 글씨들은 하나 같이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그가 악필이리라는 내 예상이 보기 좋게 엇나갔다. 한빈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의 손뼉에 아주 약간 먹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굳이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와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다가 생긴 흔적이었다.
세자가 편지를 반으로 접어 품 속으로 넣었다. 신하를 시켜 오늘 안으로 혜민서에 보내겠습니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느 틈엔가 문을 열고 들어온 궁녀가 필묵함에 묵과 벼루를 챙겨 넣고 있었다. 궁녀의 손 동작은 조심스러웠다.
"저하, 빈궁마마와 함께 겸상을 하시겠습니까?"
궁녀가 문득 물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곤룡포를 단장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그냥 여길 나가 자신의 방으로 갈 것 같았다. 그에게 배웅을 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한빈이 그런 나를 제지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부인과 마주앉아 점심을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구나."
그가 뚫어지게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목소리가 능청스러웠다. 궁녀가 알았다는 대답을 올리며 방을 나갔다. 그가 나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것은 좋았지만, 그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윤의 존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표정, 이런 말들, 이런 음성. 모두 그녀에게 먼저 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전하의 병이 호전되는 길에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아닙니다, 감사는 제가 아닌 의원에게 표하셔야지요."
"아버지도 그대를 보면 좋아하실 겁니다."
한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말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워서, 나는 그냥 생각을 접었다.
아까의 꿈이 떠올랐다.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그 꿈은, 내가 이 곳으로 오게 된 이유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직감을 줬다. 안개가 사방으로 퍼지고 누군가를 계속해서 쫓아가는 꿈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미래를 예지하는 꿈일까?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이르지만, 그 꿈이 나타내는 건 이전에 겪어본 일과는 관련이 없었으므로 지금의 상황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앞으로 좀 더 유심히 꿈을 관찰하기로 다짐했다.
이윽고 궁녀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들은 지금 우리 사이에 놓인 소반보다 아주 약간 더 큰 크기의 상을 들고 있었다. 그녀들은 소반을 치우고 그 비워진 자리에 상을 놓았다. 아까 아침에 봤던 것보다 반찬 수가 훨씬 더 많았다. 궁녀들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고 한빈은 말 없이 수저를 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밥을 먹고 있자니 예전에 아빠랑 때때로 늦은 저녁을 같이 하던 것이 생각났다. 나와 아빠는 항상 식은 밥을 먹었고 늘 말이 없는 식사를 했다. 상을 차리는 것과 치우는 것 모두가 내 몫이었다. 아빠는 무뚝뚝했고 내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았다. 세자와 겸상해 밥을 먹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 때처럼 대화가 없는 식사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이 쪽이 훨씬 편했다. 한빈은 심하게 편식을 할 것처럼 생겨서 의외로 이런 저런 반찬들을 많이 집어먹었다.
크게 대단할 것 없는 점심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앞으로 기억에 많이 남을 것만 같았다. 궁녀가 시간을 잘 맞춰 방 안으로 들어왔고 상을 밖으로 가져갔다.
한빈은 이내 몸을 일으켰고 내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럼 저는 이제 주강을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려던 순간에, 밖에서 무언가를 알리는 궁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빈궁마마, 성균관의 정 도령이 마마를 만나러 입궐하셨습니다."
정 도령이라면 찬우였다. 그가 성균관에 다니고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빈은 문으로 가져가려던 손을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는 휙 빠르게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가 저번에 찬우와의 만남을 끊으라던 게 생각났다. 그는 표정이 매섭게 변해 있었지만 나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누구입니까? 설마, 내게 모란을 보냈던?"
"예, 맞습니다……."
내 대답에 그의 눈가가 가늘게 접혔다. 그는 펴고 있던 손을 도로 아래로 내렸다. 공부하러 가겠다는 마음을 접어버렸는지 그는 다시 내 옆으로 와 무릎을 굽혀 앉았다.
"내가 남편이니 같이 있겠습니다."
그는 즉흥적이었다. 더불어 이게 무슨 짓인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찬우에게 한빈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그러나 지금 한빈에게 몸을 일으킬 마음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표정이 태평스러웠고 여유가 넘쳤다. 이래도 들어오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는 식의 태도였다.
"마마, 문을 열어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겠습니다."
먼 곳에서 궁녀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방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이 안을 들어오고 있는 사람은 새삼스럽게 확인할 것도 없이 찬우였다. 향나무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려고 하다가, 옆에 있는 한빈을 알아채고는 급하게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표정에는 얼떨떨하고 놀란 기색이 넘쳤다. 그런 그에게 조금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말을 높이며 우리를 마주보고 앉았다. 한빈은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의도치 않은 삼자대면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찬우는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한빈이 먼저 말을 가로채었다.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송구하오나 무엇을 바라는 용건이 있어 이 곳을 찾은 것은 아니옵니다. 그저 혼례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워 왔습니다."
"흠, 죄송하지 않으셔도 되니 이만 일어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한빈이 날을 세워 대꾸했다. 찬우는 거기서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해졌다.
"실은, 집에서 몸종들이 시장에 내놓을 과자를 새로 구웠는데 세자빈이 생각나서 가져왔습니다. 그대께서 예전부터 약과와 이 숙실과를 참 좋아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과자는 궁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친히 제 생각을 하시고 이렇게 과자를 챙겨주셔서……."
"아닙니다."
잠시 대화 속에서 그가 제외됐다. 나는 신기한 얼굴로 찬우가 내밀고 있는 과자 봉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향나무가 풍기는 향기에 달콤한 냄새는 조금 가려졌지만 그래도 과자는 충분히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군침이 돌았다. 한빈은 짜증이 나는 것을 맘껏 내색하며 그런 나를 쳐다봤다.
"빈궁, 방금 나와 밥을 먹고도 그게 눈에 들어옵니까?"
"저하께서도 조금 드시겠습니까?"
나는 일부러 딴 소리를 했다. 봉투에서 약과 한 개를 꺼내 입으로 깨물었다. 입 속으로 달콤함이 퍼지기 시작했다. 다른 봉투에서 과자를 꺼내 그에게로 건넸지만 한빈은 받지 않았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불편한 심기를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거 자꾸 먹었다간 빈궁의 이빨이 모조리 썩어버릴 것입니다."
"그 땐 의원께 상태를 봐달라고 하면 됩니다."
"하."
"저하께선 원래 단 음식을 싫어하십니까?"
한빈은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찬우는 나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악의 없는 웃음이었지만 한빈은 여전히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저 약과를 입 안으로 집어넣고 찬우를 바라봤다. 그가 이렇게 직접 이 곳을 찾아오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가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립지 않게 넉넉히 그의 얼굴을 쳐다봐야 했다.
"저하, 이만 세자시강원에 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됐습니다.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됩니다."
그가 나를 째려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찬우는 전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번에 보냈던 편지를 받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세자빈."
편지? 편지라면, 세자가 죽은 날에 향단이 가지고 왔던 그것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감퇴하지 않은 기억력에 내심 기뻐하며 찬우에게 대꾸했다.
"기억합니다. 받았습니다. 그대께서 그림을 보러오라고 편지에 적으셨습니다."
"…무슨 그림을 말씀하십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원이 그렇게 읽어주었습니다."
막힘 없는 내 대답에 찬우의 눈이 일순간 흔들렸다. 나는 그게 의아해서 그에게 되물었다. 한빈은 옆에서 무료하게 턱을 괴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그림을 보러 가겠습니다."
"그림이라면 궁의 도화원에도 실력자가 많으니 언제든지 좋은 것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빈궁."
한빈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찬우는 아까보다 경직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아픈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갤 저었다. 나는 그를 배웅하려고 일어섰다. 찬우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나와 한빈에게 고개를 숙여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조만간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우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향나무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찬우와의 만남이 너무 짧았다. 아쉬웠다. 나는 멍하게 그가 나간 문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빈도 이 곳을 나갈 준비를 했다. 그가 몸을 일으켰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와 눈을 맞추면서 형식적으로 인사했다.
"가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궁녀가 대신 문을 열었고, 나는 이 곳을 빠져나가는 한빈의 등 뒤를 얼른 따라갔다. 그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것은 자선당의 마루를 건너 마당으로 향할 때였다. 그는 신을 신다가 말고 나를 쳐다봤다.
"어딜 가십니까? 설마 그 자를 보러?"
"아닙니다, 저하를 세자시강원까지 배웅해드리고 싶어서……."
작은 내 목소리에 세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됐으니 가라고 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었다. 그는 내가 신을 신고 몸을 일으킬 동안 기다려주었다. 궁녀들은 복도에서 고갤 숙이고 있었고 나는 한 걸음 앞서서 걷고 있는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그는 걸음 폭을 조금 늦추기도 하면서 세자시강원을 향해 움직였다. 그 곳은 나와 그의 방이 있는 자선당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다 왔으니, 가셔도 됩니다."
"예."
우리의 끝 인사는 간결했다. 한빈은 미련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자마자 보인 게 검은 것 투성이라서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길게 빼고 위를 올려보자, 익숙한 눈이 보였다. 준회였다. 소리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난 그가 나를 낮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향나무의 용도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
"썩은 시체를 그 향으로 감추기 위함입니다."
"…뭐?"
"그 향은 세상 모든 것을 감출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습니다."
"……."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준회의 눈이 검었다. 꼭 밤처럼 검었다. 나는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수 없었다. 그가, 살짝 눈을 접어 웃고 있었다.
/
*유배: 죄인을 멀리 귀양 보내는 처벌.
*문안: 웃어른께 안부를 여쭘.
*세자시강원: 조선시대에서 세자의 교육을 맡은 관청.
*조강: 아침 공부.
*졸필: 악필의 다른 말. 글씨를 못 쓰거나 그런 사람을 지칭함.
*주강: 낮 공부.
*약과: 밀가루와 꿀로 반죽해 기름에 지진 과자.
*숙실과: 과일을 익혀 만든 과자.
*향나무: 시체가 부패하여 냄새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사를 지낼 때까지 향을 피우는 용도로 사용된 나무.
안녕하세요 독자 님들!
새해가 밝았는데 다들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더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영화를 보고 와서... 매우 힘들고 지치네요 ^^ ㅋㅋㅋㅋㅋㅋㅋ
저번 편에서 마지막 문장을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셔서 설명드리는데,
그가 단 것을 삼키고 있다는, 이상한 착각이 들었다. = 그 정도로 그의 말이 달콤했다.
이런 뜻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으셔요...★
그리고 저번 편에서 아주 장문의 댓글을 남겨주신 비회원 독자 님...!
암호닉은 언제나 받으니 부담 가지지 마시고 신청해주셔도 됩니다..!!!!
신청해주시면... 제 사랑을 드릴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나나킥 님
빈블리 님
김빱 님
일이세개 님
뜨뚜 님
뿌요뿌요 님
한빈아춤추자 님
또또 님
슬기 님
동동동 님
총총총 님
꾸준해 님
꾸주네 님
김한빈김지원 님
꾸욥 님
헤헷 님
페브리즈 님
햇님 님
떡볶이 님
파랑짹짹이 님
혜민서송씨 님
케빈 님
팬더 님
갠짠 님
천상여자 님
동동만두 님
눈물점 님
두둠칫 님
말고도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어렵게 댓글 남겨주시는 비회원 분들도 항상... 감사드려요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울먹)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 편에서 만나요!
(잽싸게 사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