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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김남길 강동원 온앤오프 성찬 엑소 라이즈
6233 전체글ll조회 1955l 2

  "Sir! There are filling up on the deck!" 

  (선장님! 갑판에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Shit. Lower the sails and send a distress signal right now!" 

  (제길. 지금 당장 돛을 내리고 구조 신호를 보내!) 

  "The storm is too much! We can not go up to the top of the deck, man!" 

  (풍랑이 너무 심합니다! 갑판 위로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Shut the fuck up! We are part of a ship, not a man!" 

  (닥쳐!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배의 일원들이다!) 

  "But……." 

  (하지만…….) 

  "The command as uncle for you, not captain. Listen up, sweetheart." 

  (네게 선장이 아닌 삼촌으로서 명령한다. 잘 들어라, 아가야.) 

  "…Okay." 

  (…네.) 

  "The sea is crying. Within ten minutes the ship would be sunk." 

  (바다가 울고 있다. 십 분 안에는 배가 침몰하게 될 거다.) 

  "I know, man." 

  (저도 알아요, 삼촌.) 

  "…Would be deprived of your life to the sea?" 

  (…곧 바다에게 목숨을 빼앗기게 될 것도?) 

  "Yes. And that's also not just me." 

  (네. 그게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도요.) 


 


 


 


 

  담담한 대꾸에 선장의 푸른 눈이 잠시 흔들렸다. 목숨을 희망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벌써 기관실에도 검은 빛깔의 심해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의 조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언젠가부터 제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해군용 모자를 한 번 꾹 눌러 쥐었다. 열 명 남짓이 되는 선원들은 모두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도 지독하게 차분한 모습들이었다. 


 


 


 


 

  "I want all of you to return the mother. But I am a captain without the talent and would not do that. I'm sorry. Sorry, creating a lifetime to live in the sea." 

  (너희 모두를 엄마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하지만 재능 없는 선장이라 그러지는 못하겠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게 만들어서.) 


 


 


 


 

  무언가에 선박이 충돌했고 그로 인해 기관실의 전력이 희미해졌다. 점멸하고 있는 전등 아래에서 선장은 마저 말을 이었다. 


 


 


 


 

  "…Junhoe, the boy. Where is he now?" 

  (…준회, 그 아이. 그 앤 지금 어디 있지?) 

  "Do not think he is alive. He's dead." 

  (그가 살았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는 죽었어요.) 


 


 


 


 

  단호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선장은 소년의 죽음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믿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마른 동양인 소년일 뿐이고 막 인질 자격을 잃어버린 불쌍한 존재였다. 선장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연민의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렵게 손에 넣은 삶의 기회를 이토록 허무하게 짓이기게 된 소년이 안쓰러웠다. 그는 눈을 감아 작게 찬송가를 중얼거리는 것으로 소년을 애도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노랫말이기도 했다.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바다는 짐승처럼 배를 휘몰아 삼켰고 그 곳엔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됐다. 모두의 몸이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건, 해적들에게 갖은 협박을 받고 힘겹게 살아난 소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차가운 해수면이 몸에 닿아올 때부터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한국을 떠나 하와이로 가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부터. 소년은 차가운 바다에 몸을 맡겼다. 눈이 감겼다. 숨이 끊어졌다. 


 


 


 


 


 


 

 

 

 


 

소년이여 

written by 6233 


 


 


 


 


 


 

  "Are you going to commit suicide?" 

  (자살할 거야?) 


 


 


 


 

  모든 수업이 끝난 직후 노아는 그렇게 물어왔다. 그 애의 금발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무른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벙어리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노아를 무시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았다. 그 앤 이 곳에서 알아주는 날라리였고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한테 지나친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노아는 나태하게 보이지만 실은 모든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을 오지랖이라고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정신병자 flip한테 최대한 잘생긴 얼굴로 말을 걸었고 더럽다고 욕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크지 않은 교실의 내부는 모두 제각기 다른 색깔의 눈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검은 눈을 가진 나는 지루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길고 요점이 없는 제인의 목소리는 들을 가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교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도 아무렇지 않게 방관해버리니 어떻게 보면 담임으로서의 자질도 최악이라고 평 지을 수 있었다. 나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속이 더부룩해지는 급식 메뉴도 별로고 체육실에서 태연한 얼굴로 관계를 맺는 애들도 별로다. 그리고 그게 싫어서 확 죽어버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는 더 더욱 별로였다. 


 


 

  가도 좋다는 제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가 벌 떼처럼 교실 안을 빠져나갔다. 나는 최대한 느리게 가방을 쌌다. 아직 포장을 벗기지 않은 불어 교과서는 일부러 챙기지 않았고 언젠가 상담 교사로부터 받은 적이 있는 편지 한 통도 책상 속으로 그대로 방치했다. 교실을 나서게 되는 건 내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아가 내 옆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 앤 곧 부스러질 것만 같은 머리칼을 찰랑거리면서 내게로 막대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물론 나는 받지 않았다. 오늘은 내 생일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이브도 아니었다. 할로윈 데이도 아니었다. 내가 그 애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선물을 무시했을 때 노아는 작게 fucking, 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가벼운 가방을 어깨에 걸고 이만 하교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바다 위로 몸을 던지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맞게 될 그저 그런 동양인 소녀의 자살이 내일 아침 어떻게 보도될 수 있을지 나는 잠깐 예상했다. 난 그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기억될 것도 없다고 믿었다. 


 


 


 


 

  "Do not die, candy. My brambles." 

  (죽지 마, 캔디. 내 들장미 소녀야.) 

  "……." 

  "You did not yet know Hawaii is immersed in water." 

  (아직 하와이가 물에 잠기는 걸 보지 않았잖아.) 

  "보고 싶지 않아." 

  "And, yet you have not slept with me." 

  (그리고, 나랑 아직 자지도 않았잖아.) 


 


 


 


 

  그 뒤로 노아는 몇 번 더 서투른 한국어로 내게 질 낮은 농담을 건넸다. 그 앤 동양인이라면 무조건 캔디를 동경하는 줄 알고 있다. 나는 그 만화를 본 적이 없다.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아마 내 할머니의 엄마 쯤이나 얼굴을 붉히고 좋아했을 만화다. 


 


 

  그 앤 교복을 입고 있지도 않았다. 노아는 날이 좀 추워지면 즐겨 입는 것 같던 녹색 스웨터 차림으로 혓바닥을 내밀며 눈가를 접고 웃고 있었다. 큰 키로 문 앞을 가로막았고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단지 나랑 자고 싶어서 이런 짓을 할 애는 아니었다. 당장 나와 같은 Senior에도 그 애랑 자고 싶어서 매일 난리를 치는 애들이 널리고 널렸다. 나는 노아가 나로부터 얻고자 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나는 그 애에게 단 조금도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그 애가 뭘 좋아하는지, 오늘 같은 날엔 어떤 일로 시간을 보내는지 알고 있지 않았다. 덕분에 그 연장선으로 그 애의 속셈 역시 알 길이 없었다. 


 


 


 


 

  "I'll pick you first thing in my ark. When Hawaii disappears." 

  (내 방주에 제일 먼저 너를 태울 거야. 하와이가 사라지는 날에.) 

  "Sorry, I'll refuse. I'm sick in the belly." 

  (미안한데, 거절할게. 배 멀미가 있어서.) 


 


 


 


 

  그 앤 내 역겨운 발음을 듣고도 웃지 않았다. 딱딱하고 어색한 내 영어를 과연 알아들었을지, 그것부터가 일단 미지수였다. 노아는 아까처럼 혓바닥을 낼름거리다가 입술을 당기며 이내 옆으로 몸을 비켰다. 지나가라는 뜻인 줄 알고 그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그 애의 차가운 손이 갑자기 내 덜미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놀라서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Do not die. Do not die. All right?" 

  (죽지 마. 죽지 마. 알았어?) 

  "…놔!" 

  "쉿, 조용." 

  "……." 

  "See you tomorrow." 

  (그럼 내일 보자.) 


 


 


 


 

  죽겠다는 건 난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쏘아주려던 걸 참고 나는 교실을 나왔다. 괜한 감정 소모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본 노아는 안녕의 의미로 기세 좋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길게 늘어진 가방 끈을 어깨 위로 한 번 고쳐 올리며 입술을 씹었다. 노아의 파란 눈은 격정적이다. 지독하고, 악착스럽고, 짐승 같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왠지 물에서 호흡을 잃는 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이 찾아온다. 반면에 그런 더러움을 품고도 그 애의 눈은 지독하고 악착스럽고 짐승을 닮아 아름다웠다. 계속해서 눈 맞춤을 하고 있노라면 손에서 민들레 씨가 부화하는 것 같았다. 노아의 눈은 간지러웠다. 


 


 

  나는 거창하게 지어진 교문을 나왔고 정류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정류장 앞엔 스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황토색 교복들이 무더기로 모여있었다. 그 틈에 섞여 동질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는 조용함을 원했다. 주변 어딘가에서 자꾸만 노아가 어른거리는 것을 애써 뿌리치고, 나는 학교와 가까운 해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보 같지만 정말로 죽을 생각이었다. 


 


 

  하늘은 창백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와이는 세계의 유일한 섬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한국은 이미 곳곳이 바다로 변했고 이 곳에서 살게 됐을 땐 절반 가량에 물에 잠식되고 말았다. 꼭 한국만 그런 불행을 겪게 된 것은 아니다. 모든 곳이 그렇게 변했다. 영토를 잃은 사람들은 미쳐서 날뛰었고 각 나라의 정상들은 예상처럼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에 나라를 잃었고 비행선에 몸을 실어 어디론가 떠났다. 나와 내 가족 역시 그 집단에 속했다. 우리는 되는 대로 하와이를 찾아가 몇 년 동안 나름 잘 지냈다. 바다 마을 외곽에 폭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폭동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이유 없는 포탄 투하와 총 싸움은 실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피해의 잣대는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한테로 돌아왔다. 검은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빤 하와이 정부로부터 총살 당했고 엄마는 행방이 사라졌다. 나는 순식간에 가족을 잃었고 매일 같이 각하의 앞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 그게 과연 도착할 가능성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편지 보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중엔 차라리 나를 창녀로 만들라고 썼다. 언젠가 바다가 증발하고 한국을 되찾으면 모든 책임을 하와이로 묻겠다고 했다. 철 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 때 내 울분을 어디론가 쏟아내고 싶었고 그게 이뤄져서 아주 약간 기뻤다. 


 


 

  하와이를 둘러싼 바다는 점점 커졌다. 불행의 징조였다. 하와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요즘 이 곳을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다음 주면 모든 학교에도 임시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질 예정이었다. 더불어 결코 임시적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걸 믿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제인이 며칠 전에 현란한 필기체로 사직서를 채우는 것을 봤다. 모두가 조급해졌다. 그 안에 시간을 멈추고 숨을 쉬고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바다에 도착하고 나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애매한 어둠에 괜히 시야가 침침해졌다. 자살할 거냐고 묻던 노아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던 나 자신도 함께 생각이 났다. 어째서 그 애가 내게 그런 것을 물어왔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죽음을 미리 알아채고 두려워하던 모습은 아니었기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실은 그 앤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단지 태도가 조금 불량하고 남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담배를 필뿐이었다. 


 


 

  절벽을 오르면서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기를. 그냥 모두에게 잊힌 채 죽어갈 수 있기를. 


 


 

  저녁에서 밤으로 바뀌어가던 순간에 나는 질끈 눈을 감고 바다 위로 떨어졌다. 망설이진 않았다. 예전에 겪었던 즐겁고 행복한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그렇게 죽었다. 삼 초도 되지 않아 나는 바다 안으로 떠밀렸고, 그 때 들려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난 누구도 내 자살을 목격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했다. 별빛을 머금기 시작하던 바다는 안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예뻤다. 죽기 전으로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 그런 모습이라서 다행이었다. 나는 점점 호흡이 탁해지는 걸 느꼈다. 두렵진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후회가 됐다. 노아가 건네던 사탕을 받았어야 했다. 


 


 

  보통 사 분 정도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 책에서 그렇게 배웠고, 실제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분을 넘기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속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왜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게 꿈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느낄 틈도 없이 숨이 멈추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이렇게 아직까지 눈을 뜨고 바다 안을 헤엄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왜 이렇게 무거워." 


 


 


 


 

  낯선 목소리가 들리면서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흐려졌다. 나는 일순간 내가 보고 있는 게 캄캄한 하늘인지 캄캄한 바다인지가 헷갈려 얼굴을 구겨야 했다. 바다를 빠져나가는 몸이 추웠다.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이 감겼다. 거친 손이 내 뺨을 두드리는 게 느껴졌지만 눈을 뜰 수는 없었다. 나는 마침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감각이 정지됐고 지금 그나마 숨을 쉬고 있는 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귓바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피가 쏠리는 그 곳으로 생각을 집중했다. 목소리는 분명 한국어를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따뜻한 무언가가 턱선을 움켜잡고 입을 맞췄다. 밀어내고 싶은데 몸은 이미 시체가 되어 남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누군가가 불어넣는 숨결을 받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건 분명 인공호흡이었다. 눈은 아직 뜨이지도 않았는데 보이는 상황이 좆 같아서 나는 속으로 욕설을 씹어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우연히 이 곳을 지나가던 변태에게 키스를 당하고 있는 시체가 되고 싶었다. 


 


 

  얼마 후에 눈은 기적적으로 뜨였다. 잔기침이 났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차가운 물이 내 자살이 완벽히 실패되고 말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거친 숨이 나왔다. 나는 부드러운 모래 위에 죽은 것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당장 일어나 상황 파악을 하고 싶은데 물을 먹은 몸은 여전히 힘이 없었다. 그저 가까운 곳에서 아까 그 낯설고 선명한 목소리가 느껴질 뿐이었다. 고갤 돌릴 힘조차 없어서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추워? 그러길래 왜 겁도 없이 그런 짓을 해." 


 


 


 


 

  나는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남자인 것을 깨달았다. 생애 첫 키스를 이름도 모르는 남자한테서 뺏겼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분해졌다. 동시에 아무 탈 없이 한국어를 쓰고 있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더불어 묻고 싶었다. 왜 나를 살렸는지. 곧 침몰될 하와이에 안전 요원이 배치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남자는 바다에 떨어지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 그냥 순간적으로 정의로운 마음이 생겨나 나를 살렸을 것이다. 무리 없이 맞춰지는 이 상황은 내가 떠올려 본 적 없는 경우의 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몸에 조금 따뜻함이 돌기 시작했을 때 다시 눈을 떴다. 당연히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내 옆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나는 빠르게 그의 옆선을 쳐다봤다. 떨어지는 선이 성숙해도 내 또래였다. 나는 버겁게 몸을 일으켜 그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몸을 일으키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바다 어딘가를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교복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었다. 그 때에서야 남자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한데 나는 바다 밖에 오래 있을 수 없어." 

  "……." 

  "집에 데려다주진 못할 것 같아." 


 


 


 


 

  그가 쓰는 말을 알아듣고 나는 남자가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곳에서 보기 드문 검은색 눈이 어둠 속에서도 또렷히 빛났다. 나는 그걸 보고 조금 할 말이 없어졌다. 같은 국적을 가진 내 또래를 만났음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내 자살을 방해한 것에 대해 짜증을 부려야 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바다 밖에서는 오래 있을 수 없다는 남자의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인상을 찌푸리고 좀 더 자세히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의 목젖 옆으로 두 개의 가느다란 아가미가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명을 내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침을 삼키며 다시 한 번 남자를 쳐다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남자는 정말로 두 개의 아가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건 느리게 속살을 내비치며 팔딱이고 있었다. 빨갛게 보이는 속살이 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시선을 감지한 남자가 다시 먼 바다 끝으로 눈길을 돌렸다. 


 


 


 


 

  "속으로 나를 욕하고 있지? 미안해. 하지만 살릴 수밖에 없었어." 

  "……." 

  "바다가……. 너만은 죽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알려줬어." 

  "……." 

  "줄곧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인어를 만났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계속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그가 답답해서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해줄 말이 많았다. 


 


 


 


 

  "무슨 짓이야. 너 때문에 내일 다시 학교에 나가야 되잖아!" 

  "다행이네." 

  "…뭐?" 

  "오늘처럼 다시 학교에 나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평범하게 살아.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 

  "……날 언제 본 적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네가 뭘 알아!" 

  "죽지 마." 

  "……." 

  "죽으려고 하지 마." 


 


 


 


 

  남자는 피부 위에 아가미를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게 정상이었다. 나처럼 검은 머리칼을 가졌고, 얼굴엔 잘생긴 눈과 코와 입이 달렸고, 손이 불구인 것도 아니고 밑으로 뻗은 두 다리도 멀쩡했다. 그래서인지 남자에겐 거부감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 못할 말을 늘어놓고 있는 건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내가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방해했고 나한테 혼란을 주고 있다. 


 


 


 


 

  "내 이름은 준회야." 

  "……." 

  "혹시 나를 알고 있어?" 


 


 


 


 

  나는 그냥 몸을 일으켰다. 젖은 몸을 이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속으로는 그냥 물고기 유전자가 섞인 괴물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뿐이라고 여겼다. 나는 자살에 실패했고, 덕분에 내일 다시 학교로 가 지겨운 따돌림과 함께 담배 냄새를 풍기는 노아를 만나 머리 아픈 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저절로 욕이 나오는 상황에 열이 끓는 것도 모른 채로 그렇게 계속 해안선을 걸었다. 


 


 

  문득 뒤를 돌았을 때, 준회, 그는 더 이상 그 곳에 없었다. 


 


 

  바닷가를 나와서 버스를 탔다. 돈이 없다고 말하자 버스 기사는 내 꼴을 확인한 뒤 그냥 타라고 했다. 버스 안엔 나와 바게트를 뜯고 있는 노인 한 명이 전부였다. 버스 허공을 채우고 있는 라디오 소리 같은 건 귀에 꽂히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준회의 아가미를 떠올렸다. 역겨운 게 아니었다. 징그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내 속을 뒤집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바다에게 먹혔던 몸이 무거웠다. 


 


 

  홀로 좁은 집에 도착했을 땐 정신을 잃을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좋은 핑계가 생겨 차라리 다행이었다. 감기로 일주일 쯤 학교를 쉬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갤 저었다. 상관 없었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하와이의 모든 학교들은 역할을 잃은 채 버려지게 된다. 이대로 누워만 있다가 하와이가 바다에 잠기는 걸 보며 죽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난 입술을 씹으면서 젖은 옷을 벗었다. 


 


 

  침대는 너무 낡아서 누우면 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익숙한 소음을 들으면서 이불을 목 끝까지 덮었다. 어쩌면 하와이가 침몰되기 전에, 열병으로 몸이 다 타버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죽지 마. 준회의 음성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죽으려고 하지 마. 눈을 더 질끈 감았다. 아가미를 가진 괴물이 계속해서 내 잠을 괴롭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늦은 시간에 노아가 떠올랐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말을 섞는 건 그 애가 전부였다. 그 애의 눈이 그리워졌다. 파랗고 보석 같은 그 애의 눈이 준회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와이, 하와이, 하와이, 내가 죽게 될 곳. 좋지 않은 꿈을 꾸면서 나는 입으로 하와이를 중얼거렸다. 


 


 


 


 


 


 

/ 

안녕하세요 독자 님들! 

언제 한 번 바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단편으로라도 적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ㅋㅋㅋㅋㅋ 

조금... 적나라한 단어들이 나와서 놀라셨죠...? 

최대한 타지의 느낌을 담아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ㅎㅎㅎㅎ 

이 이상의 수위는 없으니 마음 놓고 보셔도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문에 나온 flip이란 단어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단어로 정말 정말정말 정ㅁ란런ㅁㅇㄹ정말정말 나쁜 말이랍니다... 진짜진ㄴㄴ짜진짜! 못된 말이에요... ㅠㅠ 

글에 생동감을 넣고 싶어서 쓰기는 했지만... 혹시나 보기 불편하신 분이 계시면 말씀해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혹시나 영어 철자가 틀리면 어쩌나... 말도 안 되는 걸 문장이라고 적어놨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네요...★ 


 


 

좋은 주말 되시고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다음엔 한양으로 만납시다~ 안녕!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와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오랜만에 제대로된 글을 읽어보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보이는 아이가 타의로 인해 되살아난게 여실히 느껴져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2
헐 분위기랑 표현이....bb 걍장난아니네요
9년 전
독자3
우와ㅜㅠㅠㅠ작가님 글 처음 읽어보는데 필력이 아주ㅠㅠㅠ문체가 완전 제스타일이세요ㅠㅠ신알신 하고 가요!!
작가님 작품 다른것도 전부 봐야겠어요ㅎㅎㅎ

9년 전
독자4
와ㅜㅜㅜㅜㅜㅜ대박이다ㅠㅠ인어
9년 전
독자5
와 되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랄까.. 영화나 드라마나 만화속에서나 보던 인어?ㅜ분위기도 그렇고 대사 하나하나가 짱짱
9년 전
독자6
ㅠㅠ주네는진짜알음다운 소년이야ㅠㅠㅠ핡핡
9년 전
독자7
준회
9년 전
독자8
아니세상에..작가님 저 방금 수준높은 판타지 동화 한편을 읽은것 같아요 정말 흔하지 않은 소재와 작가님의 필력이 합쳐지니 진짜 신비로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너무 멋진글을 읽은 것 같네요 작가님 저 지금 떨리고 설레요 구준회가 아가미를 가진 인어라니..섹시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역시 작가님의 글은 수준이 높은 것 같아요! 매번 읽으면서 감탄합니다!이번글도 추천누르고 갈게요^♡^
9년 전
독자9
뒷편기다릴게요ㅠㅠㅠ이런분위기 너무너무좋아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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