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도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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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동네사람들!!!!!!!!!우리 사귑니다!!!!!!사귀어요!!!!!!!!
카페에 출근하기 전까지 네번째 손가락이 간질거려서 참지못했다.
그 날 반지를 손에 끼고 그와 꼭 포옹까지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잘 때까지 벌렁벌렁거리는 심장이 가라앉질 않아서 혼이 났더랬지... 무튼 지금 이 커플링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와 도경수 씨 그리고 밥을 먹다가 우연히 내 손을 본 우리 엄마, 이렇게 밖에 없다. 빨리 전봇대들이 왔으면 좋!!!!!!!!!겠!!!!!!!!!!!!!!다!!!!!!!!!!!!!!!!
카운터에 앉아서 흐흐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고있는데 마침 사이좋게 나란히 카페로 들어오는 전봇대 브라더스
" 훈이 왔엌ㅋㅋㅋㅋㅋㅋ "
" 열이두~ ㅎㅎㅎㅎㅎㅎ "
...
뭐야 왜 저렇게 신나하면서 들어와.. 아씨 커플링 자랑하려고 했는데 뭔데 저렇게 신나해...불안하게...
" 너네들 뭔데 그렇게 좋아해 "
반지를 만지작 거리며 쭈글이처럼 물어보니 박찬열은 크게 콧방귀를 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 내가 드디어 천사 누나랑 영화를 봤다는 이 말씀이지 "
... 뭐래 찌랭이새끼가.. 나는 또 졸라 대단한거라고...나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반지를 낀 왼손으로 아~ 그래~하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자 어때 내 반지가 좀 빛나니? 하지만 그것도 눈치 못 챈 고구마 답답이 녀석들은 계속해서 천사 누나거린다.
이이이이ㅣㅣㅣㅇ!!!!! 오기가 터진 나는 굴하지 않고 왼손으로 허공에 의미없는 제스쳐를 취하고 왼손으로 턱을 괸다거나 뽀큐도 왼손으로 날려주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내 반지만 블러처리 되서 보이는 건지 내 반지를 알아주지 못했다. 왜 내가 커플링 했다는 걸 아무도 몰라주지?
박찬열은 구석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오세훈은 테이블에 앉아 잡일을 기다리는데 뚱하니 카운터에 서서 생각해보니까 진짜 짜증난다. 어떻게 이렇게 몰라줄 수가 있어
" 야 진짜 너네들 너무해"
" 싫어 훈이는 배추할래 "
미친거 아니야?
온 얼굴로 지금 딥빡 상태라는 걸 알려주고나서야 오세훈은 겨우 닥쳤다. 짜증나!!!!! 진짜 이것들도 내가 친구라고 어? 아오!!!!!!!!!! 내가 대학생활 잘못했지!!!!!! 그냥 과탑 시완오빠하고 놀았어야했어!!!!!!!!
" 왜 그러는데 "
뒤늦게 앞치마를 매고와서 나를 콕 찌르는 박찬열. 내가 왜 그러냐고? 왜? 어퍼컷을 날릴 듯 날쌔게 손을 올려 박찬열의 코 앞에서 반지를 보여주었다.
박찬열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슬금슬금 눈이 커졌다. 이제 반지가 HD로 보이니?
" 엌 웬 반지? "
아 답답해.. 그래 이건 반지지!! 이게 근데 보통 반지가 아니야!! 무려 커플링!!! 그니까!!!!!!!
" 도경수 씨하고 나하고 사귄다고!!!! "
" 뭐? 이제 사귄다고? "
사귄다는 말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본인이 더 놀라는 오세훈. 이제 사귀냐니...
" 사귀고 있던 거 아니었어? "
... 아니거든..? 손 제대로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무슨 사귀고 있던 거야 사귀고 있기는... 너무 얼척이 없어 한심한 표정으로 있으니 오세훈이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 나는 내가 이러다 썸으로 끝난다고 뭐라고 한 이후부터 둘이 부둥부둥 껴안고 막 맨날 보고싶다고 그래서 사귀는 줄 알았지 "
" 열이도 "
내가.. 내가 이런 반응을 원한게 아닌데... 나는 ..내가 바라던 반응은... 나아아ㅏㅏ닛??????????둘이 사귄다고??????????스에상에!!!!!!!!!!!!!!!맙소사!!!!!!!!!!!!!! 와우!!!!!!!!!!!콩그레이츄레이션!!!!!!!!!!!!!!추카해!!!!!!!!!!!!!!!! 이런 걸 원했는데... 이런 쌈싸먹을 것들...
나는 조용히 됐어... 라고 하며 시무룩하게 날 찌르는 박찬열의 손길을 쳐내고 주방 쪽으로 등을 돌렸다. 그런 내 눈치를 보던 박찬열은 갑자기 크게 박수를 치며 외쳤다.
" 이야!!! 내 친구!! 어? 야 내가 해낼 줄 알았어!! 경수형이랑 사귈 줄 알았다니까? 너 임마! 축하한다!! "
...
" 시끄러워 "
" 미안 "
뒤늦게 축하해주면 뭐해. 이미 김샜구만. 얘네들을 상대로 무언가 작은 거라도 바랐던 나도 내가 웃겨서 화난 척도 못하겠다.씨이 거리며 괜히 가장 가까이 있는 박찬열을 때려주고 다시 의자에 앉으려는데 오세훈이 피식 웃고는 물었다.
" 야 그래서, 경수형이 뭐라고 고백하던 "
" 그걸 왜 "
뭐라고 고백하든 말든 사귄다는게 중요한거 아닌가..? 나는 반지에서 손을 놓을 새도 없이 만지작 거리며 오세훈을 흘겨보았다.
" 아니 궁금하잖아. 사랑해요~ 내 마음을 받아주세요~하면서 반지 줬냐? "
그 말에 푸핰하며 웃음이 터진 박찬열은 한 술 더떠
" 경수형이면 무릎까지 꿇었을지도 몰라. 완전 로맨틱하게! 나랑 사귀어주세요! 박력! "
완전 쳐맞을래? 이것들이 연애를 못해서 감이 없구만? 하루라도 연애선배인 내가 알려줘야지. 나는 검지를 좌우로 까딱까딱 거리며 댓츠노노를 외쳤다.마음같아서는 반지 낀 약지로 하고 싶지만 그걸 피는 것도 힘들어서..
" 너네가 키만 컸지 뭘 모르네 "
" 그럼 경수형이 어떻게 했는데, 키만 큰 훈이한테 좀 알려주시죠 "
그래, 내가 좀 알려주지. 나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조용히 그 날 상황을 회상하며 감성에 젖어들어갔다.
" 그 때는.. 눈이 왔지 ... "
" 오오오~ "
뭐람 그냥 눈이 왔었다고 한 건데...무튼 그런 녀석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뿌듯하게 웃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 한옥마을 데이트가 끝나고 차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
" 오오오오오오~ "
" 이젠 좀 조용히 해 "
" 응 "
한 마디 끝날 때마다 무슨 오오오야, 방청알바도 아니고. 그제야 평소처럼 입을 다물고 내 말에 집중하는 전봇대 브라더스
" 가다가 딱 멈춰서서 눈을 구경하는데 도경수 씨가 나하고 마주보는거야 "
... 표정으로 말하는 오세훈. 내가 조용히 하라는 말에 굳이 입 밖으로 소리는 안내지만 오세훈의 오오오~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 하다.
" 그러면서 이제 당당히 어울린다는 소리도 듣고싶고 당당히 커플링도 끼고 싶다고 반지를 뙇! 보여주면서 나처럼 이~쁜 여자가 도경수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막막!! "
말을 하면 할 수록 다시 그 때가 떠올라 나 스스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나 혼자 그랬으면 쪽팔렸겠지만 중요한건 박찬열도 으오와앜ㅋㅋㅋㅋ 하면서 방방 뛰었다는 거. 역시 내 친구다워
" 거기다가 이 반지 사실 같이 노점 구경했을 때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거거든? 근데 또 이걸 언제 사와서~ "
" 와 존나 쩐다. 너가 망설일 때 내가 경수형 채갔어야했어 "
오세훈은 연신 감탄을 하며 헛소리를 했다. 이미 도경수 씨는 내가 겟또-☆
" 너네 진짜 도경수 씨 극진히 모셔라 "
내 말에 으응~ 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하던 오세훈은 자기 손톱을 보다가 이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 야 그럼 너는 경수형한테 자기야~ 이런거 안해? "
...뭐? ㅁ..뭔야?? 충격 먹은 얼굴로 있으니 오세훈은 다시 한 번 소름 돋는 자기야~를 시전했고 옆에 있던 박찬열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 훈이 너는 얘가 자기야~ 하는 꼴을 보고싶냐 "
" 볼만 할 거 같은데 "
볼만 해? 아주 그냥 볼만한 구경거리 만들어줘? 나 참 이것들이 나를 무시하네
" 야 내가 어? 자기야 그래 그거 어? 아 쉽지! 그거 세글자 그거 하나 못말하겠냐? 다 뜻이 있어서 안하는거야 "
물론 뜻따위 없다. 사귄지도 얼마 안됐는데 무슨 자기야야 자기야는.. 무엇보다 오글거리잖아! 오글오글!!!
" 오~ 그럼 조금있다가 경수형 오면 한 번 해봐 "
뭘 자꾸 해보래!!!!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박찬열이 에이~ 하며 내 어깨를 툭 밀었다.
" 왜 경수형한테 한 번만 해줘, 진짜 그거 한 번 말해주면 경수형이 너한테 폭 빠져가지고 헤어나오지를 못 할 거다 "
이건 분명 박찬열의 취향일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솔깃하지.. ㅇ..안돼..!! 안된다구..!! 내 팔랑귀..!!!! 일부러 귀를 꼭 막으며 양 쪽 스테레오로 자기야~ 거리는 목소리를 떨쳐내려했지만 놈들은 끈질겼다.
" 훈이가 졸라 좋은 꿀팁을 주는거야~ 진짜 눈웃음하고 자기야~ 한 번이면 뿅간다니까 "
" 맞아, 만약 우리 천사 누나가 그랬으면 나 지금 이미 좋아서 죽어있을 걸 "
..정말..? 거기에 넘어가버린 나는 눈을 굴려 전봇대들을 흘끔 쳐다보았고 놈들은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머리를 작게 끄덕거렸다.
" 진짜 그거 하나면 남자들 좋아해? "
의심의 눈초리로 곁눈질로 전봇대들을 흘겼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넘어가고있다는 뜻
" 진짜야! 진심 야 우리가 남자인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야 "
.. 오세훈 얘 은근 막 던지는 말같은데 이게 또 설득력 있단 말이야.. 놈들은 내가 넘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듯 강냉이 털기에 박차를 가했다.
" 나는 천사 누나가 나한테 한 번 자기야~ 소리 해줬으면 좋겠는데 너는 뭐라고 망설이냐 "
" 그러니까 얘가 지금까지 연애를 못한 이유가 있다니까? "
" 답답아! 자기야 하는게 그렇게 힘드냐? "
그래!! 힘들다!! 그게 얼마나 힘든데!! 지금 내 눈 앞에 도경수 씨가 있다고 생각만 하고 자기야 해보라고 해도 못 할 판에 얼굴을 맞대고 하라고?
" 너 경수형한테 자기야 한 번만 하면 경수형이 너 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하자고 한다 "
그리고 결정타를 날린 오세훈
... 그건 안되는데.. 졸업하면 취업도 해야하고.. 해외여행도 갔다와야하고.... 으으 하지만 너무 끌리는 걸..!! 도경수 씨가 나를 데려간다니.. 나는 이게 뭐라고 한참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을 하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 알았어, 한 번 해보도록 하지 "
*
" 좋은 아침입니다 "
평소에 같은 팀원들에게만 딱딱하게 출근했습니다. 라고 인사하던 경수가 언젠가부터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원들에게까지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좀 더 부드러운 좋은 아침입니다.이다. 경수는 모르지만 전사원들에게 사장님 아들이라고 유명한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해주다니. 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한편 이게 해고통보는 아닐까 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아마 경수가 갑자기 성격이 부드러워진 건 한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성격이 아기 볼살처럼 말랑말랑해진 것에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었을 것, 그게 지금 경수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게 콧노래를 부르던 경수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면서까지 마주치는 사원들마다 족족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받는 사람들의 기분은 애매모호해졌다. 그렇게 계속 인사를 하며 자기 책상까지 온 경수는 아직 종인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바로 기분 좋게 업무를 시작하려 컴퓨터를 키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데
" 도경수 씨 그 손 스탑 "
출근을 안한게 아니라 모닝커피를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던 종인이 다시 돌아왔다. 종인은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 할 생각은 안하고 키보드 위에 올려진 경수의 왼손 약지를 쿡쿡 찔렀다.
" 이~게 뭐야 "
" 예? "
" 이 흉물스러운 반지는 뭐야 "
흉물스럽다니... 빈정이 상한 경수는 아무 말 없이 왼손을 품에 꼭 쥐었다.
" 혹시 커플링이라거나 커플링이라거나 "
" ... "
" 커플링이야???? "
경수는 으악! 하며 사무실이 떠나가라 커플링이냐고 묻는 종인의 입을 섣불리 막았다. 하지만 이미 뱉고 난 이후라서 경수가 있는 기획 1팀부터 3팀까지 모든 사람들이 파티션 위로 눈만 내밀고 종인과 경수를 쳐다보았다.
" 아. 하하.. 다들 일하세요 "
경수는 억지로 어금니를 꽉 물고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아들이 일하라고 하는데 해야지,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경수는 소리없는 탄식을 하며 종인을 이끌고 휴게실로 향했다.
" 왜 그래 도경수 씨, 화났어? "
경수는 한참 주먹이 아프지않게 벽을 치다가 후우 하며 겨우 마음을 달래고서 말했다.
" 김종인 씨, 혹시 김종인 씨가 말했습니까? "
" 뭘 "
" 제가 연애한다고요 "
종인은 딱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이가 공중분해되었다. 내가? 내가 도경수 씨 연애한다고 말했다고?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나?
" 내가 그걸 왜 말해 "
" 아니 그럼 왜 오늘 커플링 그거 크게 으으으!!! "
" .. 진정해 도경수 씨"
서로 마음을 트고 경수는 경수 나름대로 연애를 하더니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본모습을 다 보여준다, 종인은 그런 경수가 웃겼지만 꾹 참고 의자에 앉혔다.
" 저희 어머니께서 한 번 회사에 오셨던 모양입니다. "
" 근데 "
뭐가 그렇게 분한건지 후! 하며 깊에 한숨을 뱉고 말하는 경수에 종인은 웃음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회사에 제가 연애한다고 다 소문이 났다고..!! "
결국 웃음을 참지못하고 빵 터뜨려버린 종인, 경수는 종인의 웃음에 원인은 이 인간이다! 라는 걸 확신하고 눈에 불을 켰다.
" 아닠ㅋㅋㅋ앜ㅋㅋㅋ 아니 도경숰ㅋㅋ앀ㅋㅋㅋ "
이쯤되면 웃음이 멈출 법도 한데 이상하게 계속 웃는 종인을 쳐다보다가 경수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 와 나 진짜 도경수 씨, 그 소문 내가 아무리 말을 안하고 망부석같이 있어도 다 나게 되있었던 거야 "
" ..예? "
ㄱ..그럼 누가.. 종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그걸 회사 사람들이 왜 모르겠어. 생각을 해봐 "
" ... "
" 사장님 아들이라고 들어온 사람이 처음에는 대리석마냥 딱딱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막 풀어져! 거기다 먹구름 걷히고 핑크빛 기류까지 몰고다녀! 누가 눈치를 못채겠냐고 "
얼마나 웃었던건지 종인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경수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 도경수 씨 덕분에 오랜만에 웃었네, 그럼 이제 연애하는 좋은 친구, 우리 들어가서 일이나 할까? "
... 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도경수 씨 연애만 하지말고 일에 집중해~ "
평소같았다면 상사들이 그냥 정신줄 놓고 있으니까 이렇게 일처리를 하는거 아니냐고 깠을텐데 이제를 연애한다고 그거대로 꼬투리 잡아서 까기 시작했다. 대체 좋아해야하는 건지 싫어해야하는 건지. 분명 그녀와 사귀는 건 좋은데 이런 식으로 놀림받는 건 싫고 아니 왜 연애하는게 놀림거리가 되야하는거지? 이래서 사람들이 비밀 연애를 하는가 보다.
경수는 이런저런 생각에 고통받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인내심을 쌓았다.
" 도경수 씨 "
파티션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을 거는 종인
" 이제 점심시간이야. "
그러고서는 또 웃음을 빵 터뜨린다. 아까 전부터 상태가 이상하더라니.. 경수는 종인의 상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내가 아까 개발부 갔다오면서 마케팅부 잠깐 들렀거든? "
" ... "
" 밥 먹으면서 도경수 씨 넷째 손가락이 좀 따가울 거 같더라 "
그리고 그 말이 실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수근수근. 사장님 아들 연애한대!! 소곤소곤. 저기 커플링 꼈잖아!! 숙덕숙덕. 여자가 다른 기업 딸이라던데? 속닥속닥. 거기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래! 소근소근. 약혼까지 했다더라!
크흡
" 아이 진짜 도경수 씨 더럽게 "
" ..죄송합니다 "
귀를 쫑긋 세우고 다른 사원들이 자신을 보며 하는 말을 듣던 경수는 타는 목에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종인은 얼굴에 튄 물을 털어내다가 이내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 머리부분을 마이크 대듯이 경수에게 들이밀었다.
" 아아, 김종인 리포터입니다! 지금 리터소프트 스캔들의 중심에 서계신 도경수 씨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
" 지금 뭐하는ㄱ.. "
" 여자친구분께서는 혹시 다른 기업 따님이신데다가 미스코리아가 맞습니까? 거기다가 약혼까지 했다고요? "
.... 참.. 누가 저런 소문을 지어내는건지. 하라는 일은 안하고 지극 정성이다 지극 정성. 경수는 묵묵히 밥 한 숟가락을 떴다. 종인은 뻘쭘하게 내밀었던 숟가락을 거두고 말했다.
" 신경쓰지마. 소문이 다 그렇지 뭐, 이제 얼마 안가서 다 잠잠해질 걸 "
" 그러기만 바라야겠습니다. "
하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경수의 네번째 손가락에 꽂힌 시선들은 끊어지지 않았다.
물론 퇴근 할 때에도
" 도경수 씨 여자친구 보러가? "
평소에 인사만 하던 2팀 과장님도
" 그래 한참 좋을 때지! 우리 도사원 화이팅! "
어렸을 때부터 뵈었던 상무님까지
하루종일 기가 쪽쪽 빨리는 느낌... 구내식당에서 저녁까지 꾸역꾸역 먹은 후 터덜터덜 걷는 종인을 붙잡고 누가 따라올까 재빨리 차에 올라탄 경수는 미친듯이 시동을 걸었다.
이럴 때일수록 힐링이 필요하다.
*
" ○○씨! 괜찮아요? "
저녁 피크타임이 끝나고 거칠게 문을 열고 뛰어들어온 도경수 씨가 난데없이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안괜찮을 건 뭐있담..
" 괜찮은데.. 왜 그래요? "
질려있는 얼굴이 꼭 악몽을 꾸고 난 사람같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손을 뻗어 카운터에 기대 숨을 고르고 있는 도경수 씨의 헝클어진 머리를 한 올 한 올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전봇대 브라더스의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미소
" 아... 제가 오늘 좀 피곤해서.. "
대체!! 리터소프트는!!! 왜!! 이렇게 사람을 굴려먹어!!! 명색에 사장님 아들인데 이렇게 굴려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이러다 또 아프랴 싶어 계산은 스킵, 자리에 앉으라고 재촉한 뒤 커피를 만드는데 저기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만들어준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던 오세훈이 말했다.
" 아~ 찬열아~ 자기! 일은 자기!가 잘하라고 했지~ "
...? 왠지 모를 불안감에 스팀밀크를 만들던 손을 순간 멈추었다.
" 맞아~ 그렇지 자기! 일은 자기!가 잘하기로 했지! "
분명 굳이 내가 놈들을 쳐다보지 않아도 박찬열은 내 눈치를 보며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빨리 그 볼트모트와도 같은 말을 하라는 지시. 피쳐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커피를 다 만들 때까지 그 놈의 자기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 훈이 자기!소개서 써야하는데~ "
학원도 제대로 안나가는 놈이 자기소개서를 써야한다는 헛소리에다가
" 요즘 도 자기! 가 많이 비싸나? "
도자기 부셔먹을 것 같이 생긴게 도자기 가격을 물어보질않나... 나한테 왜 이래!!!!!!!
도경수 씨 앞에서 험한 말 쓰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커피를 트레이에 담아 홀로 나가는데 고의적으로 박찬열이 날 툭치고 지나가면서 작게 속삭였다.
' 빨리 해 "
이게 벌칙도 아니고... 왜 끝까지 나를 가만히 냅두질 않지? 나는 그냥 빈 말인 줄 알았는데...
울며겨자먹기로 하트와 아무것도 없는 카푸치노 두 잔을 내려놓고 도경수 씨 바로 옆에 서서 한참 무언가 고민하는 척 했다.
" 오늘 무슨 일 있었던 거 맞죠?"
" 그게 아니라 저..! "
도경수 씨는 자꾸 무슨 일 타령이다. 아니 오늘 완전 평화로웠는데 저 전봇대 브라더스 빼면....
내 말에 도경수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ㅈ.. 자....ㅈ..즈..자... "
" 자? "
" ㅈ..자..자ㄱ..자기...쟈키쟈키!!!!! "
....
" 하하 오랜만에 쟈키쟈키라는 과자가 먹고싶네요 사러가야겠어요 "
아아ㅏ아아아ㅏ아ㅏ!!!!!!!!!!!!!!으악!!!!!!!!!!!!!!!!!!!!!!!!! 이건 진짜 두고두고 못잊을 블랙히스토리...진짜 너무 쪽팔려서 곧바로 카운터로 돌아오긴 했지만 진짜 땅을 치면서 통곡하고싶다. 도경수 씨는 그런 날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 많이 먹고 싶었나봐요. 집에 갈 때 잠깐 편의점 들러서 사갈까요? "
" ...네... "
고마워요... 나의 쓰레기같은 발언에도 이쁘게 웃어주고 거기다가 사가자니...나는 몰래 카운터에 이마를 찧으며 나 년을 원망했다. 그냥 자기야라고 질러버릴 걸... 왜 거기서 쟈키쟈키가 나와서...이런... 나는 핵폐기물이야...
양 손으로 교묘하게 얼굴을 가리고 옆으로 박찬열을 흘깃 쳐다보니 꽤나 언짢은 얼굴이다.
...
알아 나도.. 근데 너가 그렇게 언짢아 할 필요는 없잖아...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려 손가락틈 사이로 도경수 씨 쪽을 보니 바로 가까이에 있는 김종인 씨가 오세훈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내가 모를 줄 알았지!!!!!
하지만 이미 서로 신호 교환을 완료한 뒤라 김종인 씨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한 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 대학생 때는 자기! 계발이 참 중요해, 안그래 ○○씨? "
저한테 물어보지 마시죠.. 여기에 대학생이 저 혼자인 것도 아니고... 어휴 진짜 김종인 씨까지 왜 이래...
그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도경수 씨는 그 동그란 눈만 굴리면서 맞아요. 대학생 때는 자기 계발이 정말 중요하죠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제발 저 사람의 시커먼 속마음을 알아줘요 도경수 씨!!!
" 오늘은 잠 자기! 딱 좋은 것 같아. 훈이 잠깐 눈 좀 붙여도 돼? "
" 그 전에 형이 세훈이 자기! 소개서 쓰는 것 좀 도와줄게 "
" 형 그러면 열이 자기! 소개서 쓰는 것도 도와주세요! "
전봇대 브라더스도 벅찬데 김종인 씨까지 합세하니 정말 힘들구료... 근데 중요한 건 진짜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그 말을 어떻게 하냐고!!! 단 둘이 있을 때도 힘든데 손님들 다 나가도 보는 눈이 세 명이 더있는데.
나도 정말 자기야 라고 다정하게 해주고 싶지만 너네들 앞에서는 해주기 싫네요. 그런 마음을 담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다들 조금씩 지쳐떨어지는 것 같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 마감 때까지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도경수 씨 조금 심심하더라도 참아주세요!!!
" 아~ 좀 해주지 독한 기지배 "
마감까지 세 남자의 공세를 겨우 막아내고 도경수 씨가 차를 가지고 온다며 기다리는데 시야에서 그가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오세훈이 내게 질타를 날린다.
" 그니까. 야 그리고 쟈키쟈키가 뭐냐 쟈키쟈키가 "
그건 나도 후회하고 있습니다만..^^ 다시는 그 말 꺼내지 마시죠.. 가슴 아프니까...
" 그러게요. 한 번 해주지. 오늘 도경수 씨 회사에서 조금 힘들었는데 "
...? 힘들었다구요? 리터소프트!!!! 네 이놈!!!!! 도대체 왜!!!!! 소중한 도경수 씨인데ㅠㅠㅠㅠㅠㅠㅠㅠ
김종인 씨의 팔을 꽉 붙들고 직접 묻기보다 악력으로 답을 얻어내려했지만 자기야 라고 말하면서 물어보세요 라는 대답밖에 얻을 수 밖에 없었다.
시무룩하게 있으니 김종인 씨가 먼저 분위기 전환 삼아 이번 주말에 이렇게 다섯명이서 술 한 잔 하는게 어떻냐고 물었고 전봇대 브라더스는 무조건 콜콜을 외쳤다. 물론 내 대답과 도경수 씨의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반강제랄까...^^
에이 무슨 술이냐고 얼마나 마시는 거냐며 내빼는데어느새 도경수 씨의 차가 보이고 전봇대 브라더스는 오밤 중에 하는 게임이 제맛이라며 피씨방으로 직행, 김종인 씨는 병원 면회로 각자 뿔뿔히 흩어졌다.
시린 입김을 뿜으며 오늘도 역시나 문을 열어주는 도경수 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 많이 춥죠. 앞으로는 주차장까지 같이 갈까요? "
도경수 씨는 놀고있던 내 왼손을 꼭 잡고는 약지에 끼워진 커플링을 소중하게 한 번 쓸었다.
" 그럴까요? 맞다 참, 도경수 씨 오늘 회사에서 좀 힘들었다면서요 "
핸들을 돌리던 도경수 씨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 회사에서 누가 괴롭혀요? 다 말해요 진짜 "
내가 다 부셔벌랑께.
내 반응에 푸흐흐 웃던 도경수 씨는 꿋꿋이 도로를 보며 말했다.
" 아뇨. 그냥 사람들이 저한테 너무 관심이 많아서 "
...도경수 씨.. 그렇게 안봤는데 도끼병...?
" 아 저한테 많은게 아니라 ○○씨한테 많은 건가? "
" 네? 저한테요? "
나는 리터소프트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도경수 씨하고 김종인 씨밖에 모르는데.. 그 외에는 콧털만큼도 모릅니다만? 혹시 내가 어느새 강남 카페 여신으로 소문ㄴ... 그래 이건 무리수였어. 무튼 나한테 왜 관심이 많죠? 왜 때문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도경수 씨를 바라보았다.
" 회사에 소문 다 났거든요 "
?
" 저 여자친구 생겼다고 "
..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도경수 씨는 사장님 아들이었다. 사장님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분명 회사에 사는 이끼벌레도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그럼 사장님까지 아니 도경수 씨 아버님까지 아신다는 소리 아녀?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 어떡해요... 그럼... "
도경수 씨만 곤란해지게 생겼네. 그렇게 큰 기업이면 약혼도 하고 정략결혼 이런 거 하지 않나? 나야 뭐 엄마가 밥먹다가 커플링보고 이 놈 기지배 이럴 줄 알았다며 한 소리 들은게 다지만...
" 그러게요 어떡할까요 "
도경수 씨는 핸들을 잡은 두 손 중 오른손을 들어 꼭 모아 쥔 내 두 손을 감쌌다.
" 꼼짝없이 ○○씨 나하고 같이 살게 생겼네 "
ㅇ..어... 예상 외의 말이라 순간 당황했다. 나는 뭐 우리 한동안 접촉하지 말아요. 혹은 사귀는 거 비밀로 해요. 이럴 줄 알았는데 같이 살게 생겼다니. 정말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같이 살게 생겼..ㅎ....
나를 당황케 해놓고서는 도경수 씨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보인다.
다행이다.
솔직히 내가 아직 대학생이고 집안도 별 거 없어서 걱정했는데. 도경수 씨는 이렇게 매순간마다 나를 안심시켜준다.
쑥스럽게 히히 웃는데 한창 핸들을 움직이던 도경수 씨가 갓길에 차를 대고 고개를 살짝 숙여 창 밖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 여기 편의점 있네요. 아까 과자 먹고싶다고 했잖아요 "
괜찮은데... 쟈키쟈키만 하면 속이 울렁거려서.. 순수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도경수 씨의 시선을 피하다가 사온다는 그의 말에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 아뇨 아뇨!! 괜찮아요!! "
" 금방 갔다올게요 "
괜찮다니까아..!!! 도경수 씨의 팔에 매달리 듯이 있으니 이상한 걸 느꼈는지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쥔다.
이 말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몸을 도경수 씨에게 기울여 귓가에 자...기...야... 라고 속삭여주었다.
물론 이걸 제대로 들었을 지는 모르겠다. 너무 떨리는 바람에 양 울음소리로 말해서.. 아후 창피해. 다시 제대로 앉아 나를 진득히 따라오는 도경수 씨의 시선만 억지로 피하기에 여념없었다.
" 이거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헛나와서 과자 먹고싶다고 말한 거에요 "
" 이게 뭔데요? "
역시 못들은 거...
" 네? 뭘 말하려고 했는데요 "
...
" 그러면서 기대하는 표정하지 마요 "
저거저거 입꼬리 슬금슬금 올라가는 거 다보이는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내가 눈을 쫙 째자 도경수 씨는 들켰다는 듯이 이제는 대놓고 웃으며 말했다.
" 다시 한 번만 해주면 안돼요? "
죄송하지만 이건 쿨타임이 있어서.. 1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리플레이는 절대 없다는 나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 한 번만, 진짜. 제대로 못들어서 그래요 "
" 안돼요! "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아 입을 가리던 손으로 이젠 시야를 가렸다.
" 한 번만 해주세요. 자기야! "
끝에 붙은 자기야는 그걸 다시 한 번 해달라는 말인지 아니면 내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도경수 씨가 끈질기다는 것은 확실했다.
*
" ○○씨! 괜찮아요? "
헐레벌떡 주차를 해놓고 곧바로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가 혹여라도 봉변을 당하고 있을 그녀를 찾았다. 다행히 그녀는 굉장히 편안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내주었다.
" 괜찮은데.. 왜 그래요? "
다행이다. 그녀는 이제 익숙한 손길로 내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옛날에는 누가 내 머리 만지는 거 싫어했는데 이제는 편안해서 너무 좋다. 아니 ○○씨라서 좋은 건가?
" 아... 제가 오늘 좀 피곤해서.. "
회사에서 조금 피곤했어요. 지금 바로 그녀 곁에서 다 털어놓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차마 그러진 못하겠다. 그저 그녀가 앉아있으라고 하니까 가만히 앉아있을 수 밖에
그런데 오늘 카페가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다. 원래는 전봇대 브라더스는 일하거나 그냥 구석에서 둘이 속닥 거렸는데 오늘은 다들으라는 식으로 외쳐댄다.
" 훈이 자기!소개서 써야하는데~ "
" 요즘 도 자기! 가 많이 비싸나? "
입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나... 귀만 긁적거리면서 그녀의 커피를 기다렸다. 빨리 하트 먹고싶다.
" 오늘 무슨 일 있었던 거 맞죠?"
직접 커피를 가지고 오는 ○○씨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있다. 매일매일 그녀의 얼굴을 관찰하는 도경수로서 눈치 챌 수 밖에 없을 정도
" 그게 아니라 저..! "
그녀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대체 어떤 일이길래... 침묵이 길어질수록 속이 타들어간다.
" ㅈ.. 자....ㅈ..즈..자... "
" 자? "
자꾸 누가 괴롭히나요?
" ㅈ..자..자ㄱ..자기...쟈키쟈키!!!!! "
....? 쟈키쟈키가 누ㄱ....
" 하하 오랜만에 쟈키쟈키라는 과자가 먹고싶네요 사러가야겠어요 "
... 아하.. 과자가 많이 먹고 싶었구나 ○○씨.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지, 과자 사오라고.. 아니면 내가 먼저 연락할 걸 그랬나, 먹고 싶은 거 있냐고. 앞으로 미리 연락하고 와야겠다.
" 많이 먹고 싶었나봐요. 집에 갈 때 잠깐 편의점 들러서 사갈까요? "
" ...네... "
드디어 처음 그녀가 내게 무언가 사달라고 부탁했다. 첫번째 부탁인만큼 온 편의점을 돌면서 쟈키쟈키라는 과자를 다 털어야겠다. 그녀의 부탁 하나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주변이 더 시끄러워진 것도 모르고 ○○씨 하트의 맛을 음미했다. 오늘따라 그녀의 말 수가 적어진 건 아쉽지만
카페 마감 후 그녀를 배웅해주기 위해 차를 가지러 주차장에 가 먼저 트렁크를 살펴보았다. 과자를 박스 채로 사면 얼마나 들어갈까? 음.. 다음에는 차를 더 큰 걸 사야하나. 한참 계산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추위에 떨고 있을 그녀를 위해 시동을 걸었다. 먹고싶다고 하면 그 때 그 때 바로 사면 되겠지
" 많이 춥죠. 앞으로는 주차장까지 같이 갈까요? "
트렁크를 살펴보느라 좀 늦게 갔더니 차에 올라탄 그녀의 얼굴이 추위에 새하얘져있다. 아.. 그런 멍청한 계산따위 하는게 아니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역시나 이쁘게 빛나고 있는 반지는 보면 볼수록 뿌듯하기 짝이 없다.
" 그럴까요? 맞다 참, 도경수 씨 오늘 회사에서 좀 힘들었다면서요 "
.. 그런 쓸 때 없는 말을 할 사람은 오늘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은데.
김종인 씨, 왜 그런 쓸모없는 말을 해서..
" 회사에서 누가 괴롭혀요? 다 말해요 진짜 "
조금 부담스러웠을 뿐 힘들지는 않았는데 누가 괴롭히냐는 그녀의 말이 너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음 이건 아닌가
" 아 저한테 많은게 아니라 ○○씨한테 많은 건가? "
" 네? 저한테요? "
내 말에 곧바로 놀라며 대답하는 그녀.
네, ○○씨한테 관심이 많아요. 그것도 아주.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 회사에 소문 다 났거든요 "
오늘 하루종일 제 여자친구가 대체 누구냐고 회사가 보통 난리도 아니었어요.
" 저 여자친구 생겼다고 "
그래서 저희 엄마도 많이 궁금해하더라구요. 나중에 한옥마을 같이 갔을 때 찍었던 사진 보여드리려하는데 그래도 될까요? 분명 좋아하실 거에요.
" 어떡해요... 그럼... "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관심이 집중되어있는 자기자신보다 나를 걱정하는 듯했다. 걱정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씨 인 것 같은데. 오물조물거리는 그녀의 손이 귀여워 잡을까 말까 하다가 다시금 반짝이는 커플링덕분에 안심하고 손을 꼭 잡았다.
" 그러게요 어떡할까요 "
이제 얼마 안있으면 부모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다 알 것 같은데 그러면
" 꼼짝없이 ○○씨 나하고 같이 살게 생겼네 "
사실 농담같지만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내 진심도 섞여있으니까. 한참을 꼬물딱 거리던 그녀는 같이 살게 생겼다는 말에 뭐에요~ 라며 짖궂은 장난으로 치부하기보다 오히려 말없이 수줍게 웃어주었다.
이러면 내 기대도 더 커지는데 ...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기대 해도 되죠..?
오묘하지만 기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조금씩 그녀의 집에 가까워질 때 우연히 편의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 여기 편의점 있네요. 아까 과자 먹고싶다고 했잖아요 "
있는 거 제가 다 사올게요!
" 아뇨 아뇨!! 괜찮아요!! "
" 금방 갔다올게요 "
○○씨는 괜찮다며 애써 내 팔을 붙잡았다.아까 먹고 싶다고...자꾸 머리를 도리도리 흔드는 그녀에 풀렀던 안전벨트는 다시 손에 쥐었다.
혹시 속이 안좋은 건가 싶어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지켜보니 헛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훅 얼굴을 들이밀어 내 귀 가까이 무언가 속삭인다.
' ㅈ..ㅏ..기..야... '
그러고선 다시 자세를 제대로 고쳐앉고 눈을 억지로 깜빡이며 괜히 머리를 정리하는 그녀.
듣고 난 후 5초간은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무슨 말인지 천천히 곱씹어보니. ㅈ.. ㅏ기야...자기야....자기야??????????????????????????????????????
" 이거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헛나와서 과자 먹고싶다고 말한 거에요 "
" 이게 뭔데요? "
지금 방금 자기야 라고 말한거에요???????????????????????? 진짜 꿈에서만 그리던 말이었는데 진짜로 자기야라고 말한거에요??????????????????? 부부끼리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저한테 자기야라고 말한거 맞아요?????????????????
" 네? 뭘 말하려고 했는데요 "
괜히 못들은 척 다시 한 번 들어보려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눈치챈 그녀가 말했다.
" 그러면서 기대하는 표정하지 마요 "
..들켰다.
" 다시 한 번만 해주면 안돼요? "
저 진짜 제대로 못들었는데. 한 번만 더 해줘요. 그녀가 내게 자기야라고 단 한 마디만 해줬을 뿐인데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린다. 그동안 꼬박꼬박 도경수 씨, 도경수 씨 했으면서 오늘 갑자기 자기야라니. 원래 이쁜데 이쁜짓만 하니까 더 이쁘네
" 한 번만, 진짜. 제대로 못들어서 그래요 "
" 안돼요! "
이제는 내가 부끄러운 듯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조르기 시작했다. 생전 부모님한테도 졸라본 적이 없는데. 자기야 라는 한 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애타게 만드네요.
오늘 회사에서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 번에 받은 것에 대한 포상같이 모든 피로가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옛날만해도 내 인생에 연애는 평생 없을 것 같고 또 안 할 줄 알았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사랑을 하라는 거구나
끝까지 손을 내리지않고 도리도리만 하는 그녀
그러면 먼저 시작했으니까 저도 할 거에요!
" 한 번만 해주세요. 자기야! "
*
아이 진짜.. 이 사람이.. 도경수 씨도 집에 도착해서 다 씻고 누웠는지 이런 톡을 보낸다.
확실히 전봇대 브라더스 말처럼 좋아하는 것 같긴한데 내가 곤란해진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의지의 도경수 씨. 이런데에서 끈질기다니까
.. 음 톡이라면 뭐 할 수 있을 것 같긴한ㄷ...
[♡♡♡♡♡우리경수씨♡♡♡♡♡]
지이잉,지이잉, 톡으로요?라고 보내자마자 도경수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뭘까 싶어 잠깐 망설이다 바로 전화를 받으니
「 아뇨, 전화로 해야죠 」
란다.
" .. 전화로.. 굳이.. "
「 빨리 해주세요. 그러면 내일 힘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
하.. 내 남자의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나는 말을 하기 전 깊게 심호흡을 했다. 후욱후욱
도경수 씨도 내 기미를 느꼈는지 묵묵히 말을 기다렸다. 좋아 이대로 지르고 바로 끊자
" .. ㅈ.. ㅈ..."
「 ... 」
" 자기야!!!! "
뚝
그리고 저 멀리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하.. 현기증.. 지금 내가 결투신청을 한 건지 애교를 부린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했다. 비록 전투적으로 외치긴 했어도..
잠시동안 휴대폰에 손을 대기 무서웠지만 결국에는 주섬주섬 챙겨들고 제자리로 와 도경수 씨 반응을 보니
전봇대 브라더스 ★ 김종인 씨
" 자기야 라는 말은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 도경수 씨 X " 그 놈의 자기야가 뭐길래! " 카페노예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됴됴륵님/종순이님/몽구님/복숭아님/핫초코님/첸스님/모나리자님/쀼님/2평님/맴매맹님
꽯뚧쐛뢟님/이웃집여자님/제인님/베이비파우더님/데후니님/안녕님/안열님/랭거스님/6002님/사랑둥이님
부릉부릉님/전봇대님/딸기님/설렘사님/소녀님/제이너님/경수하트워더님/민속만두님/시카고걸님/모카님
찬효세한님/마름달님/세시님/로운님/스누피님/언어영역님/모찌님/블리님/도즈님/SH님
메리미님/쉬림프님/박력탬님(죄송합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