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도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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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도 순서는 없어요
후욱후욱, 지금은 밤 11시
잠이 안온다. 눈을 아무리 감고 양을 세고 미친듯이 운동을 하고 나면 잠이 온다길래 한밤 중에 춤을 추며 몸을 흔들었지만 잠은 개뿔 엔돌핀이 돌아 너무 활기가 넘친다. 안되는데 내일 다크서클 내려가면 안되는데... 더듬더듬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아 초록창에 [ 잠 잘오는 방법 ] 을 쳐보았다.
상추를 많이 드세요.
따뜻한 우유를 드세요.
공부를 하세요.
에잇 이런 제기랄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누워있던 허리를 일으켜 이불 위로 소중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내가 이 시간에 왜 이런 원맨쇼를 하느냐. 그니까 ...
그래그래 이틀 전 카페 알바 끝난 후로 가보자
도대체 허리도 안아픈지 또 90도 폴더인사를 하는 그. 나는 어색한 이 상황을 빨리 풀기위해 억지로 하하 웃으며 먼저 재빠르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엄마 맞은편에 앉았다.
" 하하 밖이 춥다. 도경수 씨 이리와서 앉아요 "
어서 앉으라고 내 옆자리를 팡팡 쳤구만 이번에도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주춤주춤거리며 내 옆에 앉는다. 엄마 도대체 왜 이래? 라는 불꽃같은 눈빛을 엄마에게 보냈지만 단번에 씹히고 말았다.
죄를 지은 사람마냥 무릎을 꿇고 앉은 도경수 씨는 멋쩍게 웃으며 차에서부터 가져온 쇼핑백 하나를 엄마에게 들이밀었다. 잠시만 이거.. 어... 아까 대강 봤는데. 이러 졸래 비싼 화장품 브랜드 아니야?
그렇다 쇼핑백에 고급지게 적혀있는 저건 비싸봤자 한 통에 10 만 원도 안넘는 수분크림을 쓰는 평범한 대학생인 나에게 그냥 이름만 들어보았던 겁나 비싼 명품 크림이었다. 무려 작은거 한 통에 20 만 원이 넘는..
헐 미친 거 아니야? 도경수 씨 미쳤어요?
요즘 들어 부쩍 주름 져가는 피부에 민감해진 엄마가 이 브랜드를 모를 리가 없었다. 모전여전이라고 나와 똑같이 그 쇼핑백을 본 엄마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 ㅇ.. 이게 뭔가.. "
" 저번에 민폐를 끼쳐서...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
도경수 씨도 많이 긴장했는지 손에 난 땀을 허벅지에 슥슥 문지르며 대답했다. 이게 약소한거면.. 선물을 보고 할 말을 잃은 엄마 대신 도경수 씨를 툭치며 말했다.
" 하하 무슨 이런 선물을 다 준비했어요... "
" 아닙니다. 혹시 마음에 안드신다면 따로 더 준비해오겠ㅅ "
" 아니에요. 선물 잘 받을게요. 마음에 드네요. 도서방 "
아무렴 저렇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데 마음에 안들면 그건 양심이 없는ㄱ ..
..
?????????????? 도서방???????????
" 무슨 도서방이야! "
도서방 소리에 너무 놀란 내가 상을 쾅치며 외쳤다.
선물 하나로 완전히 술고래 이미지에서 도서방으로 바뀐 도경수 씨는 조용히 말을 듣고 있다가 쿡쿡 거리며 웃었다.
" 아니 손님이 오셨는데 차라도 한 잔 내야지 "
처음 도경수 씨 봤을 때는 차는 무슨 국물 한 수저도 없을 것처럼 굴더니 이제는 차까지 내오겠다며 자리에 일어서는 엄마
" 아닙니다 잠깐 시간이 나서 찾아뵌거라 말씀 드릴 것도 있고... "
그런 엄마를 제지하고 제자리에 앉아 코를 한 번 쓸던 도경수 씨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곤 말했다.
" 그게.. 목요일 날 저녁에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저녁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
웬 저녁? 아까 알바 쉬라고 한 것도, 엄마 시간 있냐고 물어본 것도 이거 때문에 물어본 건가? 갑작스러운 저녁 제안에 엄마와 같이 크게 눈을 뜨고 도경수 씨를 쳐다보니 수줍게 웃는다.
" 저희 어머니께서 한 번 만나 뵙고싶으시다고 하셔서... 만약 아버님도 시간이 되시면 모두 다 같이 와주셨으면 합니다"
ㅁ..무ㅜ뭣? ㅇ..어머니? 도경수 씨 어머니????????????????? ㅅ...상견례 하자는 건가?????????????
도경수 씨가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나서 두 번 폭풍이 몰아쳤다. 하나는 선물로 인한 폭풍 또 다른 하나는 난데없는 상견례 약속
" 아 만약 어머님,아버님 두 분 다 시간이 안되신다면 다른 때로 할 수도 있ㄴ.. "
도경수 씨는 두 모녀가 입을 다물지 못하자 하던 말을 끊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나?? 아니 다른 약속도 아니고 양 쪽 어른들이 만나는 약속을 이렇게 꺼내도 되나????? 하긴 다른 방법이 없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 그러니까 지금 상견례를 하자는. 이 말인가요? "
엄마는 습 하 습 하 작게 심호흡을 한 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었다.
" 네. 그냥 마음 편안하게 드시고 가볍게 한 번 만나보시는 자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상견례 [명사]
1. 공식적으로 서로 만나보는 예
가볍게는 무슨 가볍게야 이 사람아!!!!!!!!!!!!!!!!!!!
엄마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도경수 씨가 내민 쇼핑백을 만지작거렸다. 저건 분명 선물은 탐나는데 갑작스러운 중대한 약속에 갈등을 때리고있다는 증거..!!
" ㄱ..그래요.. 그럼..언제라구요? "
쇼핑백을 뒤로 숨기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엄마. 우리 엄마.. 비싼 크림 써보고 싶었구나... 미안해.. 카페 노예인 못난 딸이 미안해....
엄마의 승낙에 기쁜 화색을 숨기지 못한 도경수 씨가 말했다.
" 목요일 날 저녁 5시에 제가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선 이내 손에 찬 시계를 보던 도경수 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보다.
" 많이 늦었네요. 이만 가야되지 않아요? "
팔꿈치로 도경수 씨를 툭 치며 한 내 말에 선물을 받고나서부터 온화해진 엄마가 성모마리아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일어났다. 소오름..
" 아휴 내가 주책맞게 바쁜 사람 붙잡고 있었네 "
" 괜찮습니다 "
" 아니에요. 시간도 많이 늦었을텐데 사돈 걱정하실라 얼른 들어가봐요 "
도서방에 사돈? 아 진짜 왜 저래!! 내가 김칫국 장인인 줄 알았는데 1호 김칫국 장인이 여기 있었네? 오글오글 굽는 손을 등 뒤로 숨기고 굽신굽신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는 도경수 씨를 따라갔다.
" 우리 도서방 오늘 선물 고맙고 목요일 날에 봐요~ "
.. 처음 도경수 씨 볼 때랑은 보는 사람까지 황당 할 정도로 달라진 태도와 그 놈의 도서방 소리..
"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도 친절히 맞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뒷전으로 밀려난 나는 얹짢은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도경수 씨에게 인사했다.
" ... 도경수 씨 운전 조심히하고 잘 들어가요 "
" 내일 봐요 "
그리고나서도 현관 밖에서 안나오셔도 괜찮습니다. 아유 손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면서 한창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조용해진 후 뿌듯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 뭐야, 도서방? 비싼 선물 받으니까 도서방 소리가 절로 나오나봐? "
" 음~음~ 너가 저 선물 좀 까봐라 "
내 빈정거림은 귓등으로 안듣고 콧노래를 부르는 엄마의 명령에 터덜터덜 걸어가 그 비싼 크림 좀 보자 하면서 선물을 까니 세상에.. 크림만 사온게 아니라 아이크림에 바디크림까지.. 이 비싼 걸.. 혹시 도경수 씨 엄마껄 훔쳐온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삐까뻔쩍한 내용물을 보자마자 엄마는 또다시 눈을 뒤집고 어머어머 하며 달려들었다.
" 어후~ 세상에!! 이게 다 뭐야? "
" 와 진짜 도경수 씨 미쳤다. 우리 목요일 날 어떡해? "
이만큼 받았으면 우리는 어떡하냐고!! 도경수 씨 집에서 식모노릇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야? 이거 다 합치면 내 한 달 알바비야!
" 맞다. 엄마가 도서방에 대해서 아는게 없어~ 도서방 몇살이야? 무슨 일하고 "
" 진작에 관심 좀 가져주지 그랬어.. "
실컷 선물 받아놓고 이제서야 도경수 씨에 대해 궁금해하다니.. 나는 크림 하나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 이번에 스물 여덟살, 리터소프트 다녀 "
" 리터소프트? 그건 또 어디야 "
어떻게 우리나라 최고 IT 기업인 리터소프트를 모를 수가 있어? 라고 내심 외쳤지만 사실 나도 도경수 씨 때문에 리터소프트를 알았으니까 엄마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친절히 스마트 폰이라는 좋은 기계를 꺼내들어 초록창에 리터소프트를 쳐주었다.
리터소프트 (상장기업) 이라는 글씨와 함께 밑에 쭈르륵 정렬되어있는 뉴스에는 죄다 칭찬 일색이다. IT계의 다크호스, 대한민국 IT 업계를 이끌어갈 기업 10선, 세계로 뻗어나가는 리터소프트, 천 억 매출의 신화. 오.. 이건 나도 처음보는 거라 놀라운데... 엄마와 함께 감탄을 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 이거 봐 여기 준대기업 수준이라니까? 거기다 사람도 봤지 진국이야 "
한껏 내 남자 치켜올리기에 힘을 쓰는데 흐음, 하며 난데없이 생각을 하는 엄마
" 왜? "
" 도서방 집안 좋니? "
...
보통 좋은 건 아닐 걸... 아마 내가 카페에서 알바를 안했다면 평생 못만나 볼 그런...?
" 집안은 왜, 집안 보지말고 사람을 보라고!! 사람 진국이지? 짱이지? 쩔지? "
" 보통 집안이 아닌 것 같은데 "
" 아 집안은 왜 자꾸 따지냐고!! 도경수 씨 부모님 다 건재하셔! "
내가 알아!! 도경수 씨 어머니,아버지 두 분 다 선물 살 때 내가 같이 있어서 알아!!
" 아니.. 도서방 시계 봤어? "
도경수 씨가 뽀로로 시계를 차든 뭘 차든 뭔 상관...
" 왜? 뭐 롤렉스라도 찼어? "
" 어휴~ 롤렉스 밖에 모르는 촌스러운 것 "
그래!! 나는 남자 시계 롤렉스 밖에 몰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한테 촌스럽다니...( 시무룩 )
" 그럼 무슨 시계 찼는데 "
" 저번에 너네 아빠가 친구따라 적금 깨고 사겠다던 시계 브랜드더라 "
...? 저번에 아빠가 적금 깨겠다고... 아.. 그 때 집 안 한 번 뒤집어졌을 때 였나? 그게 시계 때문이라니... 아빠 명품 시계 하나도 없는데 엄마도 참 시계 그거 얼마한다고 비싸봤자 200...
" 그 시계 브랜드가 제일 싼게 500했나? "
... 아빠가 잘못했네
나는 사귀면서 도경수 씨가 부잣집 아들래미라는 사실을 잊고있었는데 생각보다 곳곳에서 그의 재력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 아. 뭐 집안은.. 목요일 날 만나보면 알겠지... "
굳이 벌써부터 도경수 씨 집안을 까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며 만지작 거리던 크림을 던져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사실 목요일 날 옆 집 민석이네 엄마랑 나비소녀 재방송 보기로 했는데 못보겠네 "
사랑스럽게 크림을 만지작 거리던 엄마가 말했다. 민석이네 엄마랑 놀지 마!!! 그 아줌마 맨날 민석이 오빠 여친 없다고 나한테 의미심장한 미소 보낸단 말이야!! 민석이 오빠는 좋은데 그 아줌마는 별로야!!!!
" 얘 너도 나비소녀 봐라 이게 요즘 참 재밌는데 요즘 애들이 하는 말로 그 ㄲ..ㄲ..그래 꿀잼이다 얘 "
" 나비소녀가 꿀잼이건 딸기잼이건 필요없고 도서방이라고 부르지 좀 마 "
" 흐응 왜? 우리 도서방~ "
아오!!! 도서방이라는 호칭이 이미 입에 달라붙은 엄마를 두고 승질을 부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목요일 저녁... 도경수 씨도 홀로 우리 엄마 보러도 왔는데 나는 엄마랑 같이 뵙는 거니까 ... 그래... 할 수 있어!!! 이 시대의 참한 며느리상으로 꼭 인정받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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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렇게 상견례 약속을 잡게 된 것 이었다. 막상 약속 할 때는 그냥 예만 갖추고 얼굴 한 번 보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되지~ 했는데 이렇게 코 앞에 닥치니 바싹바싹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토할 거 같아
아까 도경수 씨가 나 데려다 줄 때
"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
라고 말 한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나름대로 긴장 안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보일 정도라니... 이제야 도경수 씨의 속 깊은 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가 눈을 꼭 감고 다시 양을 세기 시작했다. 아니 ㅎ.. 도경수 씨를 세어볼까... 도경수 씨 하나... 도경수 씨 둘... 도경수 씨 ㅅ...
...
징그러워...!!
아무리 내 남자라도 이건 아니다 싶어 청양의 해를 맞아 다시 양을 세기 시작했다. 빨리 잠들었으면 좋겠다.
양 하나
양 둘
양 세...ㅅ
양 ㄴ..ㅔ..
양..
ㅇ...
....
" 딸!! 일어나!!! "
매일 아침 나를 깨우던 시끄러운 새소리는 어디가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탈탈 털고있는 엄마가 내 이불을 치워버리고 엉덩이를 찰지게 때렸다. 추웡...오늘 알바쉬는데... 누운 채로 눈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 빨리 준비해 "
" 뭐야... 지금 몇시인데.. "
" 열한 시 삼십 분 "
새벽까지 잠을 설쳤더니 늦게까지도 잤네.. 근데 11시 30분인데 왜 벌써 난리야..
" 시간 많잖아.. 도경수 씨 다섯 시에 데리러 온댔잖아.... "
저 멀리 엄마가 치워버린 이불을 꾸역꾸역 끌고 올라와 다시 덮었다. 하지만 내가 자는게 못마땅한 엄마는 이불을 덮자마자 치우고 또 다시 덮자마자 치우고 그러길 한참, 결국 폭발해버린 내가 외쳤다.
" 아니 왜 그래!! 좀 자자고!! 나 떨려서 잠 설쳤어!! "
" 그니까 일어나 기지배야 "
왜 내가 자고 싶다는 걸 몰라주지... 울고싶다.. 작게 승질을 부리며 침대에 걸터앉자 헝클어진 내 머리를 단정히 정리해주는 엄마
" 지금부터 준비해야 진짜 준비된 여자지 "
준비된 여자고 뭐고 자고싶다. 간질거리는 코를 비비다가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나 가장 먼저 화장실로 직행했다. 가장 신경 안쓰는 척 하면서 뒤에서 제일 신경 쓰고 있는게 엄마라니까... 왠지 그 날부터 밤마다 냉장고에서 썩는 거 아닌가 싶었던 마스크 팩을 꺼내서 한다고 했어.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검지손가락을 넣었다 뺐다하면서 온도를 확인했다. 으 손 시려
제대로 눈도 못뜨고 물이 따뜻해질까지 가만히 있는데 문뜩 도경수 씨가 5시에 온다고 하면 회사 땡땡이 치고 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
오늘 경수는 1년 미만 입사자 자격과 깔끔한 만근으로 유급 연차를 썼다. 사실 유급 연차라는게 있는지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사장 아들이라며 마음대로 농땡이 친다는 소리를 들을까 휴가 때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경수는 이번 한 번만 빼라는 엄마의 달콤한 꼬드김에 넘어간 것이다.
생각 외로 엄마는 그녀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선물을 사야한다며 고민하고 있던 나를 위해 함께 백화점까지 가준 것도 엄마, 점원에게 꼼꼼히 포장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엄마. 선물을 사고 집에 돌아오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 엄마 나이대 되면 피부에 기미끼지 주름 생기지 여간 스트레스 받는게 아니야. 그래서 화장품은 양보 못하잖아 그 쪽 어머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다 "
하며 수다를 떨 정도라면. 거기다 민폐를 끼쳤다고 하니 먼저 저녁을 대접한다고 제안한 것도 엄마였다.
" 엄마는 괜찮아? "
조수석에 앉아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던 엄마는 내 물음에 뭐?하고 되물었다.
" 아버지는 ... 모르겠고 엄마는 한동안 그.. 다른 여자애 좋아했잖아 "
" 아~ 리주, 사실 엄마도 리주 걔 별로였어. 여자애가 여간 방정맞아야지 "
근데 그 방정맞은 애를 왜...
" 그래서 너 엄마가 그만 만나라고 하면 안만날거야? 그것도 아니잖아 "
... 그렇긴 하지. 항상 그래왔듯이 무응답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엄마가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 엄마가 네 아버지하고 결혼 할 때만 해도 네 할아버지가 얼~마나 반대했는지 몰라~ "
" ... "
" 너도 알지? 네 할아버지가 얼마나 꼬장꼬장 하신지, 똑똑한 자기 아들이 별 거 없는 여자애랑 만난다고 그렇게 반대 하시더라니까 "
그리고는 작게 씁쓸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 그 때는 엄청 미웠었는데 지금은 안계시니까 막상 시집오고나서 엄마한테 잘해주신게 생각도 나고 참.. "
흘끔 룸미러를 통해 쳐다보니 내 시선을 느낀 엄마가 후우-하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래서 엄마는 처음부터 잘해줘서 나중에 며늘아가 눈물 콧물 다 빼게하려구 "
" 며늘아가? "
" 그럼 연애가 가벼운거니? 아들 혹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불쑥불쑥 여자친구 집에 쳐들어가고 그런 건 아니지? "
" ㅇ..아니지! "
그냥 기분 좋아서 그래
목요일 아침, 도곡동 타워팰리스 고층에 위치한 넓디 넓은 경수의 집 또한 분주했다.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나서 샵에서 머리를 하고 온다는 엄마를 말렸지만 기어코 초라하게 보일 수 없다며 바락바락 우기는 덕분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와 단둘이 남은 경수는 거실에 홀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넓은 거실을 닦던 아주머니는 그런 경수를 보더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 오늘 아침부터 바쁘시네요 "
" ... "
경수의 표정을 본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걸었나 싶었지만 곧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 오늘 상견례하거든요 "
열심히 밀대걸레로 바닥을 번쩍번쩍 광을 내던 아주머니는 순간 손을 멈추었다. 상견례라니 서른 먹은 자신의 아들도 여자친구가 없어서 허덕이는데...
" 혹시 정략결ㅎ.. "
부잣집에 젊은 나이에 상견례라는 조건 하에 멋대로 판단해버리고 안타깝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에 경수는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 아뇨 아뇨, 제 여자친구는 평범한 대학생이에요. 엄마가 얼굴 한 번 보자고해서 보는 거구요 "
" 대학생? 그렇게 어린 애랑 어떻게.. "
정략결혼이 아니라는 경수의 연애담에 급관심을 보이던 아주머니는 멀리서 밀대걸레를 밀고 있다가 어느새 소파에 앉아있는 경수에게 바짝 다가왔다.
" 이번 년도에 스물 넷인데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났어요 "
" 학생이 카페 아르바이트? 그럼 보자보자 하나, 둘,셋, 네 살 차이? "
... 갑자기 나이가 왜 나오지 생각하던 경수는 그런 셈이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보다던데 딱이네 그래 "
그 말에 경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궁합도 안본다는 네 살 차이라니 정말 인연이 맞나봐요
" 그럼 이제 작은 사모님 생기는 건가요? "
하며 호호 웃는 아주머니와 함께 헤실헤실 웃던 경수는 이내 붕붕 울리는 전화에 웃음을 그쳤다. 전화를 받은 경수는 응,응 하고 간단한 대답 후 휴대폰을 집어 넣고 다시 아주머니를 불렀다.
" 아주머니 "
" 네 "
" 오늘은 청소만 하고 퇴근 하시래요. 아버지도 출장 가시고 빨래도 없고 저녁은 나가서 먹을 거라"
이제 점심 때가 됐는데 벌써 퇴근이라니... 달그락 밀대를 놔버린 아주머니는 평소에도 자신을 배려해주는 집안이라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빠른 퇴근은 다시 한 번 가사도우미로서 이 곳은 최상의 직장임을 체감 할 수 있었다. 파라다이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분명 작은 사모님은 이쁠 거야
그렇게 흥겨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멀뚱히 거실에 있던 경수는 자신도 준비 할 때가 된 것 같아 오랜만에 그동안 발길이 뜸했던 드레스 룸의 문을 열었다. 평소 입는 정장이나 편하게 입는 옷같은 경우는 방 옷장에 고이 모셔져 있기때문에 복잡한 드레스 룸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올 일이 별로 없었던 경수였다.
작은 드레스 룸을 몇발자국 쭉 돌아보다가 이내 한 구석에 손을 뻗어 아둥바둥 휘젓다가 읏차 하며 힘을 주어 뺀 비닐로 덮혀있는 옷걸이 하나.
푸- 목을 막는 퀘퀘한 먼지에 손부채질을 하며 옷걸이에 고이 감싸져있는 비닐을 한겹한겹 벗겨내니 곧 깔끔한 검은 수트 한 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모님께서 처음 성년의 날을 맞은 나에게 주셨던 비싸고도 엄청 비싼 선물이었다. 천쪼가리가 그 당시 200에 육박했다는 건 지금 내 상식선에서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매 행사마다 맞는 수트를 맞춤 제작하고 또 다른 옷을 사고 또사고 하다보니 정작 입을 일이 많이 없어서 잊혀져 갔는데 이렇게 입게 되다니 감회가 색다르다.
구석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거울 앞에 어기적어기적 다가가 이리저리 옷을 대보니 이렇게 보니까 모르겠다. 이 수트를 살 당시에만 해도 자고로 남자는 군대가서 훨씬 많이 커서 오는 법이라고 크게 사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건만.
계속 보고있는 것 보다 입어보는게 낫겠다 싶어 자켓을 한 번 걸쳐보니 이럴수가...!!
군대에서 그렇게 많이 크진 않았나보다. 내심 자켓이 작아졌을 줄 았는데 그냥 딱 맞는 정도. 비싸게 준 수트라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뻘쭘히 거울 앞에 서있다가 주섬주섬 옷가지를 들고 드레스 룸을 나왔다.
멋진 모습으로 준비해서 그녀를 데리러 가야지
그래,어머님께 술고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도서방으로 자리매김 하자! 도경수 넌 할 수 있다!
*
....
" 아휴 이제 우리 도서방 올 시간 다됐네 "
......
" 우리 도서방 올 때 운전 조심히 하라고 전해줘라 "
....
" 우리 도서ㅂ "
저 놈의 도서방 도서방 도서방!!!!!!!!!!!!!!
" 엄마!!!! 가만히 좀 있어!!!!!! "
아침부터 이리저리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녔지만 도경수 씨가 온다던 다섯 시가 다되어가자 더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엄마에 정신이 사납다. 나도 긴장돼서 죽겠는데..!!! 후.. 릴렉스.. 내 피부를 덮고있는 파우더가 깨질까 되도않는 안정을 취한다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 아니~ 엄마가 처음 맞는 사돈이잖아. 긴장되서 그렇지 "
그래.. 엄마한테 도서방이면 도서방의 어머니는 사돈이 맞겠지... 근데 나는 도경수 씨랑 혼인한 적이 없습니다만...? 얼척이 없다 얼척이. 내가 도서방이라고, 사돈이라고 좀 부르지 말라고 해도 벌써 버릇이 되어버린 엄마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정식으로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동동 구르는 발을 멈추지 않는 엄마의 재촉에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바늘이 5시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엄마를 이대로 놔둔다면 아마 발로 땅을 뚫고 내핵까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리 내보내야겠다 싶다.
" 가자가자, 지금 쯤이면 도경수 씨 왔을 거야 "
하며 엄마를 현관으로 밀어넣었다. 그 말에 엄마는 허둥지둥 우리 도서방 기다리게 하면 안된다는 말과 함께 먼저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저번에만 해도 못마땅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더니.. 그 때는 상황이 상황이긴 했지만...
" 가방 무거우실텐데 이리 주십시요 "
언제온건지 갓길에 세워둔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경수 씨는 어디로 나가라는 말을 굳이 안해도 알아서 잘 찾아가서 도서방~~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우리 엄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가방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 도서방은 참 매너가 몸에 배어있어, 괜찮아 괜찮아 "
광대가 하늘로 올라갈 듯 웃는 엄마. 도경수 씨는 손을 거두고 이제는 뒷자석 문을 열어보였다. 냅따 좋다고 차에 올라탄 엄마를 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나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 알았어요 "
왜 이렇게 이 상황이 못마땅하지.. 자꾸만 축축 쳐지는 입꼬리를 쭉 잡아당기고 엄마 옆에 앉으니 그제야 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는 도경수 씨. 차가 벤츠란 걸 알아챈 엄마는 반짝이는 눈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룸미러를 통해 우리 눈치를 보던 도경수 씨가 말했다.
" 불편한 거 있으십니까? "
... 졸지에 도기사가 생긴 것 같다.
" 아니...! 아니에요. 어떻게 젊은 사람이 이런 차를 .. "
유리창을 검지로 쓸어보며 하는 엄마의 대답에 도경수 씨는 소리없이 웃었다.
지금 나는 도경수 씨 어머니와 만나서 긴장하기보다 우리 엄마때문에 더 긴장 중이다. 엄마 제발.. 오늘만 허튼 말 안하면 돼... 다른 때 나한테 나쁜 기지배! 몹쓸 기지배! 막말해도 되니까 오늘만 딸 좀 도와줘...!!
" 다 도착했습니다 "
한참 멍때리며 바깥 풍경을 보다가 다 도착했다는 도기ㅅ.. 아니 도경수 씨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항상 그래왔듯이 도경수 씨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데 그럴 사이도 없이 엄마가 먼저 문을 열고 급하게 차에서 내려버렸다. 덕분에 도경수 씨는 당황한 표정일 뿐이고... 어쩌면 엄마가 정상일 수도 있겠다. 내가 뭐라고 문을 열어주는 걸 기다리고 있었담
당황해하며 서있는 도경수 씨의 표정이 너무 재밌어 엄마를 따라 내린 나는 아무도 모르게 쿡쿡 웃으며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며 그를 재촉했다.
" 우리 엄마는 문 여는거 좋아해요. 그러니까 빨리 가요 "
내 말에 아하하... 하며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웃던 도경수 씨는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고 우리 모녀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역시 도기사
그렇게 안내받은 곳은 겁내 고급져보이는 한식 레스토랑.
... 처음 도경수 씨랑 점심 먹었을 때 생각도 나궁...^^...ㅎ...
처음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도자기들과 전반적으로 번쩍거리는 인테리어는 우리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저 백자 지나가다가 가방으로 잘못건드려서 깨뜨리면 여기서 일해야하려나.. 왜 위험하게 저런걸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디스플레이 해놓고 난리야...
이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를 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기 위해 당당히 가방을 걸고있던 팔을 움츠렸다. 엄마는 그런 딸의 노력도 모르고 조그맣게 콧노래를 부르며 구석으로 안내하는 직원을 앞서 따라가고 도경수 씨는 그도 좋다며 맨 뒤에서 최대한 조신하게 걷는 나의 팔을 잡아이끌었다.
레스토랑 가장 끝,작게 마련 된 룸에 먼저 들어간 엄마가 도경수 씨의 어머니와 안녕하세요~ 하며 나누는 인사 소리가 들리고 쫄보인 내가 들어가기 전 그의 손을 잡아 바로 내 앞에 세웠다.
가라! 도경수 씨!
" 네 여자친구는? "
하지만 아직 직접 얼굴을 대면하진 않았지만 강렬한 포스가 목소리부터 느껴지는 도경수 씨의 어머니. 당장이라도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 주리를 틀 것 같아 퍼뜩 도경수 씨 옆으로 얼굴을 내밀어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라고 합니다~ "
안면근육을 최대한 이용해 이쁘고도 활짝 웃는 얼굴을 만들며 인사를 하니 도경수 씨와 안닮은 듯 굉장히 많이 닮으신 그의 어머님를 볼 수 있었다.
" 인사도 이쁘게 하고 웃는 것도 이쁘네~ 어서 앉아요 "
계속 입꼬리를 올리고있으니까 안면 근육의 떨림이 느껴진다.
네~ 하고 대답하며 엄마 옆에 앉으니 이어 도경수 씨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입을 달래라는 뜻인지 견과류 서너알이 앞에 놓여져있는데 전봇대들이나 그냥 도경수 씨 앞이라면 흡입! 하면서 모조리 흡입 했을 양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입맛만 다셨다.
조용한 정적 속, 후룹 차를 마시던 엄마가 갑자기 잔을 내려놓고 어머! 하며 목에 매었던 스카프를 풀렀다. 이거 내가 준 스카프 아녀.. 마음에 안들어..?
" 사모님, 저랑 스카프가 같으시네요? "
...? 그 말에 도경수 씨와 내 눈 모두 도경수 씨 어머님의 목 주위로 향했다.
.. 진짜네...?
...
아 맞아 그 때 도경수 씨가 나랑 똑같은 거 샀었지
어머님은 음? 하시며 똑같이 스카프를 풀고는 수줍게 웃으셨다.
" 어머, 정말이네요. 우리 경수가 선물로 준건데 "
" 저도 제 딸이 선물로 준건데..? "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엄마에 흠칫하자 호탕하게 웃으시는 어머님
" 정말 따님 너무 이쁘게 키우셨어요. 경수가 제 선물을 사오는 법이 없는데 언제 갑자기 제 선물이라고 스카프를 사오더니.. "
그러며 다시 스카프를 목에 매신다.
" 애가 받기만 했지 준 적은 없었는데 한 번에 너무 딱 마음에 드는 걸 사와서 분명 누가 골라줄거라고 생각만 했지 이렇게 따라샀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네요 "
" 아... 그러셨구나.. "
엄마는 예상 외로 센스쟁이에다가 이쁨받는 나의 모습에 말없이 다시 차를 들이켰다. 봤어 엄마? 엄마 딸이 이렇게 사랑둥이야
생각보다 부드러운 상견례 분위기에 슬슬 내 본모습을 드러내며 앞에 놓인 손톱만한 음식들을 집어먹으려고 하는데 너무 따스한 실내에 콧구멍이 간지럽다. .. 안되는데.. 이런 장소에서 재채기를.. ㅇ..안돼... 첫인상에서 재채기ㄹ
"앗!!힝!!!!!!!!!!! "
....
....
앗힝이라니.... 평소에 하던 에푸롹챠!!!! 에헷취!!!!!!! 처럼 아빠를 닮은 우렁찬 재채기 소리를 참으려고 코와 입을 막다보니 나도 이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도경수 씨의 큭큭거리는 웃음 소리는 끊이지 않고 어머, 지금 재채기 한 거에요? 하며 놀라는 어머님 덕분에 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머뭇머뭇 코를 막고있던 손을 때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려 겨우 고개를 드니 웃음을 꼭 참고계시는 듯 한 어머님의 표정. 그냥 웃으셔도 돼요...
" 제가 딸이 없다보니 ○○양이 굉장히 딸같고 귀엽네요. 이뻐요 "
... 감사합니다.. 좋은 뜻 맞죠..?
큼큼 목을 가다듬고 표정을 관리하는데 어머님께서 먼저 말씀하셨다.
" 사실 경수가 집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이 없어서 제가 ○○양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거구요 "
도경수 씨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어머님을 닮은 건가... 또박또박 정리된 말들이 귀에 쏙속 박힌다. 나는 잡았던 젓가락을 놓고 상 아래로 손을 내려 허벅지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우리 집에서 그렇게 긴장을 하던 도경수 씨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 스물 세살, 아니 이번 년도에 스물 넷에 히터대 다녀요. 도경수 씨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처음 만났어요 "
또... 또 뭘 말해야하지.. 또..
" 저희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구요? "
" 네 이모께서 카페를 하셔서 거기서 일손 좀 거들고있어요. 이제 4학년이라 취업준비하면서 자격증때문에 학원도 다녀야해서... "
옆에서 열심히 밥을 먹던 엄마는 나와 어머님의 대화는 아웃오브안중.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 저희 회사 ' 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 .. 저희 회사요..? "
열심히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엄마가 영혼없는 눈빛으로 말했다.하지만 그런 어이없는 물음에도 어머님은 당황하지않고 맞받아 쳐주셨다.
" 네, 리터소프트요 "
" ㅈ.. 저희 회사면.. "
" 저희 바깥양반이 하는 회사에요. 아직 작아서 앞으로 더 커야겠지만요 "
... 작다뇨..? 직원을 몇백명씩 데리고 있는 회사가 작다뇨??? 연매출 천억원 신화를 기록한 회사가 작다뇨?????????????? 나레기로는 꿈도 못꾸는 회사가 작다뇨????????????????? 나는 이미 도경수 씨의 집안을 알고있어서 조용히 있었지만 이 사실을 처음 듣는 엄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혹시 ○○양도 모르고 있었나요? "
아뇨 알고있었습니다. 엄마만 모르고 있었을 뿐. 어색하게 웃으며 눈에서 레이져를 발사할 듯 강렬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엄마를 애써 모면하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한동안 형식적인 대화만 주고받다가 본식을 준비해주겠다는 직원의 등장에 각자 앞에는 한정식 레스토랑에 걸맞게 메인 코스인 반상이 차려지고 그와 함께 도경수 씨와 나 사이에 고기가 놓여졌다. 한우라더니 맞는 듯, 저 미친 때깔 좀 봐... 저런 건 사진을 찍어야하는데...힐끔힐끔 먼저 어른들께서 드시기만 기다리다가 어머님께서 고기를 한 점 가져가자마자 나 또한 재빨리 고기를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아 진심 마음같아서는 내가 다 먹고싶다.
정말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다먹을 것같아 고기에는 손도 안대고 밥만 공략하는 도경수 씨의 밥 위에 손을 뻗어 고기를 얹어주었다. 내가 다 먹기 전에 한 번 맛보라고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 어쩜 챙겨주는 것도 이쁘네 "
... 칭찬을 해주시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싸가지 없어보이겠지...?
" ㅎㅎ..감사합니다~ "
이번 대화로 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다니시는 걸 보면 도경수 씨는 어머님을 닮은게 확실하다.
" 이렇게 너 챙겨주는 거 ○○양밖에 없다? 잘 해 "
아휴..ㅎㅎ.. 왜 이렇게 띄워주세요.. 밥을 먹는 도경수 씨의 팔을 툭치며 말씀하시는 어머님
밥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던 도경수 씨는 내가 놓아준 고기를 빤히보다가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 노력중이야 "
그렇게 흐르는 미묘한 기류에 몸에 좋은 나물이란 나물은 모조리 먹어치우던 엄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너도 도서ㅂ.. 아니 경수군한테 잘 해 "
" 도서방이요? 저희 경수가 어느새 도서방이 됐나봐요 "
이럴 줄 알았어... 어머님은 처음 언뜻 비친 엄마의 말실수를 놓치지 않으셨다. 내가 그렇게 도서방! 도서방!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 오늘 하루만 제발 참아달라고 했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에 도경수 씨는 열심히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들릴 듯 말 듯 코웃음을 뱉었다. 나는 여기서 뭐라고 어떻게 끼어들 거리도 없어 가만히 엄마가 빨리 현명한 대처를 하길 바랐는데 대답할 타이밍을 어머님께 빼앗기고 말았다.
" 아, 여러가지 말씀드릴 것도 있고 우리 저녁 먹고 차 한 잔 하는 건 어떨까요? 사모님하고 단둘이서만 "
엄마는 뜻 밖의 애프터 신청에 눈이 동그래졌다. 물론 나도. 나는 우리 경수가 왜 도서방이죠? 대체 누구 서방인데 도서방이죠??? 라고 따지실..물으실줄 알았다. 거기다가 단둘이서 차를 마시자니.. 궁금해죽으라는 뜻인가
집에 가면 엄마한테 착 달라붙어서 무슨 얘기했냐고 다 물어봐야지.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뜬금없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물으셨다.
" ○○양은 우리 경수 어디가 좋아서 이렇게 만나는 거에요? "
.. 내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라서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머님과 마주친 눈을 스르르 허공으로 피하며 곰곰이 생각하니 맞은편에 앉아 바로 보이는 도경수 씨의 얼굴에 꽤나 긴장이 감돌았다. 뭐 이런 질문을.. 이라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달까
나는 본격적으로 도경수 씨와 폴인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내 남자 띄우기 작전에 다시 들어갔다. 도경수 씨 오글거려도 좀 참아줘요!
" 처음에 만났을 때는 적극적이지 않은 듯 적극적이더라구요~ 제 배에서 꼬르륵 나니까 막 샌드위치도 주고 "
" 우리 경수가요? "
어머님은 처음 한 마디를 듣자마자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 매일매일 회사끝나고 카페에 오기도 힘들텐데 맨날 눈도장 찍고 애쓰는게 다 보였다니까요? "
" 세상에, 도경수... "
어머님께서는 큰 눈동자를 굴리던 도경수 씨와 눈이 딱 마주치자마자 크게 웃으시며 팔을 찰싹찰싹 때리셨다.
" 세상에, 우리 경수한테 그런 면이 있었다니. 흥미로운데요? "
" 그렇게 얼굴 매일보고 또 저 아플 때 걱정도 해주고 밥도 같이 먹어보고 하니까 아, 사람 참 괜찮다 이게 느껴지는 거에요 "
" 엄마 아플 땐 콧털만큼도 걱정 안해주는 애인데, ○○양을 정말 좋아하나봐요 "
부끄러운 나머지 보다보다 못한 도경수 씨가 내 쪽으로 기운 어머님의 어깨를 살살 밀었다.
" 엄마.. 밥 먹자 "
" 밥은 일찍부터 다먹고 디저트 나올 때야.더 얘기해봐요. 들으니까 또 이게 재밌네 "
어머님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재밌어하셨다. 그에 신이 난 나는 디저트를 먹으며 그동안 이야기 중 전화번호 따간 이야기, 도경수 씨가 전봇대 브라더스에 질투했던 이야기 등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참 화기애애한 디저트 타임이 지나고 시계를 보던 어머님께서는 들었던 찻잔을 입에 대지도 않고 내려놓으셨다.
" 저, 사모님이랑 저는 따로 다른 곳에서 차 한 잔 하실까요? "
물론 우리 엄마는 거부 할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분이서 마저 차 다마시고 나오라며 먼저 룸을 빠져나가시고 그와 함께 긴장이 물 빠져나가듯 쭉 풀렸다,.
" 하.. 끝났다.. "
" 많이 불편했어요? "
네, 니요
" 아뇨. 아무래도 공식적이고 어른도 계시는 자리라서 너무 긴장했나봐요 "
" 사실 저도 그래서 밥만 먹었어요 "
왠지 말도 안하고 밥만 먹더라니.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꼭 쥐며 말했다.
" 근데 우리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보통 어른들 만나뵙는 건 진도 끝판왕인데 "
" 아직 아버님 안 뵀는데.. "
" 아무튼요! "
내 말에 음, 하고 눈을 굴리는 도경수 씨
" 그래도 이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정식으로 허락받고 만나는 거니 더 낫지않아요? "
...
" 그렇긴 하네요 "
이렇게 도경수 씨 어머니도 나를 좋아하고 우리 엄마도 도경수 씨를 좋아하고! 한결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럼 우리도 이만 나갈까요? "
도경수 씨는 고개를 쭉 빼 내 텅텅 빈 찻잔을 보며 말했다. 어머낫..!! 이게 언제 증발했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도경수 씨를 따라 가방을 챙겨들고 나갈 때도 역시 옆에 나란히 걷는 그도 모르게 장식되어있는 백자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쌔까매진 밤, 카페 알바할 때보다는 빨리 도착했지만 오늘도 다름없이 하늘은 달이 떠있는 한밤 중이다. 도경수 씨와 가로등 불빛과 달빛에 의지해 걸으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가로등 밑에서 굿바이 인사를 하려는데 도경수 씨가 잡은 손에 오히려 힘을 주며 놓지않았다.
" 오늘 고생했어요 "
" 아뇨, 어머님이 너무 좋은 분이셔서 고생이랄 것도 없었는데요 뭐.. "
그러니 나는 이만 집에 들어가야하니 이 손 좀 놔주시죠? 도경수 씨와 나 사이의 연결고리마냥 끊어지지 않는 손깍지에 당황하자 그가 성큼 내게 다가왔다.
" 근데 그거 알아요? "
뭔지 묻지도 않고 그거 아냐니.. 도경수 씨는 머리를 설레설레 젓는 나를 보며 잔잔히 미소를 짓던 입꼬리를 조금 더 올렸다.
" 저 지금 제정신이에요 "
.. 예 그런 것 같네요
" ... "
" 술도 안마셨고 "
" ... "
" 저번에 제대로 된 모습 갖추고 정식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
.... 저번에...?
" 지금 제정신이긴 한데 냄새때문에 안되겠네요 "
" 네? "
" 다음에 제대로 된 모습 갖추고 정식으로 할게요 "
...
새록새록 떠오르는 얼굴 빨개지는 지난 날의 기억. 아니 오히려 얼굴 빨개져야 할 건 도경수 씨 아닌가? 왜 내가 다 부끄럽지.. 다 기억난다는 듯 내 심각한 표정에 도경수 씨는 내 양손을 다시 손으로 포박하듯 꼭 감싸고 다시 한 번 얼굴을 가까이 했다.
" 어때요? 기억나요? "
" ... "
아무렴요 너무 생생해서 지금도 부끄러운데. 입술을 꾹 물었다가 놓기를 반복 도경수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려들었다.
" 내 자기잖아, 맞죠? "
" ...네.. "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니 더 뭐라고 할 새 없이 도경수 씨가 머리를 살짝 비스듬히 해 귀엽게 쪽 입을 맞대었다.
...ㅉ..쪽?
기습뽀뽀에 깜짝 놀란 내가 으악!하며 괴성을 칠 정신도 없이 아까보다 더 밝아진 도경수 씨의 얼굴만 바라보자 그제야 우리 사이 포박하듯 잡았던 내 두 손을 자유롭게 풀어주며 바람에 헝클어진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정리해주었다.
" 그동안 욕심만 냈는데 드디어 했네요 "
..그동안 욕심 났다니... 화끈거리는 두 볼을 차가운 손바닥으로 덮으며 되도 않는 얼굴 가리기를 하고 있으니 내 손을 치우며 이쁜데 왜 그래요 한다.
더 이상 못참겠다 싶은 내가 허둥지둥 집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 조심히 들어가요! "
라고 외치는 도경수 씨
오늘 하루종일 정신없이 이게 웬일이야!!!!!!!!!
*
그녀를 데려다 주기위해 나란히 익숙한 골목길을 걷다보니 문뜩 밥 먹을 때 엄마에게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 처음에 만났을 때는 적극적이지 않은 듯 적극적이더라구요~ "
나는 되게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적극적이지 않은 듯... 이라니 그렇게 상남자 도경수를 외쳤건만 아무래도 내가 조금 소심하게 다가간 것 같다. 이번 상견례로 정식적으로 사귀는 사이인 만큼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로
" 오늘 고생했어요 "
" 아뇨, 어머님이 너무 좋은 분이셔서 고생이랄 것도 없었는데요 뭐.. "
긴장한게 눈에 보였는데, 말도 이쁘게 하네. 살금살금 남모르게 집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저번에 한 약속은 지켜야죠.
" 근데 그거 알아요? "
내 물음에 그녀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 저 지금 제정신이에요 "
정신이 너무 말끔해서 큰일일 정도에요!
" ... "
" 술도 안마셨고 "
" ... "
" 저번에 제대로 된 모습 갖추고 정식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
저번에 제가 한 말 잊진 않았겠죠?
역시 기억나는 듯 난감한 표정을 하는 그녀. 비교적 장난스럽게 그리고 진심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차가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 어때요? 기억나요? "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녀의 얼굴은 이미 다 기억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 내 자기잖아, 맞죠? "
대답
" ...네.. "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리고 더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그동안 바라왔던, 항상 꿈꿔왔던 입맞춤을 그것도 그녀와.
말캉한 입술이 잠깐 닿았다 떨어졌을 때는 상상 속으로만 생각했던 쪽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왔다. 그리고 느꼈다. 그동안 머릿 속에 댕댕댕- 종소리가 울린다고 하더니 이런 걸 말하는 거구나..!!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가 따로없었다. 물론 그녀의 앞이라 그걸 밖으로 마구 소리를 치면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멋대로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그동안 욕심만 냈는데 드디어 했네요 "
뽀뽀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 진짜 이쁘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소중히 쓰다듬어주며 놓았던 손을 풀어주니 많이 부끄러운지 다급히 얼굴을 가린다.
" 이쁜데 왜 그래요 "
하지만 그녀는 많이 부끄러웠던 건지 인사도 안해주고는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들어가버렸다. 귀여워
나는 아까 그 감촉을 잊지 못하는 입술을 어루만지며 외쳤다.
" 조심히 들어가요! "
내 첫 입술을 그대에게
*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제가 말했져 아마 진도에 고속도로를 뚫을거라고...^*^ ... 유후!!! 드디어 사귄지 얼마 안된 주제에 뽀뽀를 했습니다!!!!!!! ㅊㅋㅊㅋ!!! 그와 함께 경수는 파워 오브 머니 덕분에 술고래 이미지에서도 탈피! ㅊㅋㅊㅋ
사실 원래 낮에는 안올리려고했는데 밤 중에 올리면 독자님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같구ㅠㅠㅠㅠㅠ유ㅠㅠ유유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나가기 전에 올립니다! 그래도 사랑해주실거죠 여러분ㅠㅠㅠㅠㅠ
사실 제가 이제 도부자 플롯을 완결까지 쭉쭉 생각하면서 번외도 틈틈이 쓰고 여러 글을 써보는데 저는 왜 이리 일반 로맨스나 정극을 생각 못하겠졐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 엄마가 맨날 로코만 보여주고 좋아하다보니 저도 너무 로코만 봤나봐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죄다 또라이같은 것만 생각하곸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지! 쎅시! 퇴폐!의 절정에 이르는 진지물 쓰고싶은데ㅠㅠㅠㅠㅠㅠㅠㅠ 맨날 이상한 것만 나오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징징) 덕분에 강남 사는 도부자가 이렇게 유치뽕짝 해피해피한 로코물이 될 수 있었지만.. 히유..네!!!!여러분 저는 로코가 좋슴미다!! 로코 싸라해!!!! 그런고로 진지물은 조금 더 생각해보고 써야겠어여ㅋㅋㅋㅋㅋ
우리 도부자 봐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제가 아끼는거 알죠??????????많이 사랑해여ㅠㅠㅠㅠㅠ 싸라해요!!!!!!!!로코보다 더!!!!!!!!
[ 암호닉 ]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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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님/전봇대님/딸기님/설렘사님/소녀님/제이너님/경수하트워더님/민속만두님/시카고걸님/모카님
찬효세한님/마름달님/세시님/로운님/스누피님/언어영역님/모찌님/블리님/도즈님/SH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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