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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할 네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졌기 때문에 헉 소리나는 가격이었지만 카드를 긁어 사기로 결심한 그 코트. 부러 모르는 척 해달라고 엄마께 간곡히 부탁했는데도 이여주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 몇 달 전부터 코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돈을 모으기 시작하는데, 돈 아낀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카카오빵도 안 사먹더란다. 안쓰러워서 내 돈으로 계속 먹였긴 한데 뭐, 됐다. 좋아하는거에 의의를 두는게 좋으니까.
이여주와의 사이는 그 아이의 생일날 이후로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집요하게 왜 그랬는지 이유를 불라고 했는데 그건 끝까지 말을 안 해줬다. 흑역사 같으니까 잊어달래나 뭐래나. 그냥 나는 단지 예전같이 돌아온 사이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이여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정말로,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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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둔 한가로운 주말이었다. 슬슬 더워지는 공기에, 더위를 잘 타는 나는 기운을 잃고 일찌감치 일어나 가죽소파에 널부러져 있었다. 밖에나 나가볼까 하다가 이여주가 잠시 생각나긴 했는데, 그 아이도 이쯤되면 춘곤증에 정신 못차려 기진맥진 할 걸 뻔히 알고있기 때문에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딱 그 순간에 이여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 정국아. "
목소리가 꽤 진지하다. 분위기를 잡는 폼이, 또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어, 왜?
" 너 나 좋아해? "
쿵.
철렁.
" 어?! 뭐라고?! "
나는 이여주가 미쳤다거나, 아니면 내가 미쳐서 헛소리가 들린다거나 뭐 그런 두가지 정도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놨지만 다시 한 번 물어오는 이여주의 목소리에 사고하는 방법까지 잊어버릴 뻔 했다. 너 나 좋아하냐고.
" 나 뭐라고 대답 해야해? "
" 너 할거 없으면 우리집으로 와. "
" 지금?! "
" 응. 바빠? "
" ㅇ,아니 바쁜건 아닌데..."
" 할 말 있어서 그래. "
" 아, 어. 곧 갈게. "
" 응. "
그러고는 뚝 끊어진 전화. 나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아까전의 통화에서 나는 답지않게 말을 더듬고 목소리를 키웠다. 아마 올해들어 가장 흥분한 목소리를 냈을거다. 이여주도 눈치챘을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여주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이유다. 어떻게 알았지?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저 질문을 한 의도는?
숨기라면 평생도 숨길 수 있는 감정이다. 이미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우정을 빙자한 짝사랑을 그 아이 옆에서 언제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옆에서 따라다니며 챙겨주는건 일상이기에. 그걸로 사심을 채우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이여주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들키지만 않으면 짝사랑 쯤은 언제든. 그런 마음이었는데. 한숨이 절로 난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무튼 난 이여주 집으로 가야했기에 재빨리 샤워를 하고 이여주가 작년에 사준 후드티를 급하게 껴입었다. 손이 자꾸 이상한데 들어가서 혼났다. 이와중에도 떨리는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여주네 집에 도착했는데, 문을 따고 들어갈지 초인종을 누를지 고민하던 찰나에 그 아이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왔어? 제법 다정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왜 그렇게 긴장해? 도리도리. 이여주는 별 애를 다 본다며 문을 열어주고는 주방으로 갔다. 나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이여주를 따라 주방으로 갔다.
" 왜 부른거야? "
" 어? 심심하잖아. "
" 그냥 단지 그것 때문에? 할 말 있다며."
" ㅇ,어? "
".................."
이상한 침묵만 흘렀다. 우리 사이에 전혀 없었던 그런 어색함. 그 아이는 좋아하지도 않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치마는 왜 입고 있는걸까. 물을 따라주길래 잔을 들고 소파 끝에 앉았다. 이여주도 나를 따라 소파 끝에 앉았다. 정적만 계속 되었다. 나는 질식사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아까 물어본거 그,그거 뭐야? "
" 뭐? "
" 아니 그거 있잖아…, "
" 아 그거..? "
"......................"
"......................"
얘가 대체 뭐하려고 여기에 날 불렀나 싶고, 말 안 하는 이유가 뭐고, 난 왜 얘한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넌 왜 나보다 더 긴장하는지. 진짜 눈 앞이 캄캄했었다. 그 때, 정적을 깨고 이여주가 말을 꺼냈다.
나 뭐 하나 말해도 돼? 아니아니, 물어봐도 돼?
"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
" 아, 진짜. 야, 듣고 나 미워하면 안돼. 웃겨도 웃으면 안돼. 알겠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널 왜 부른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 응. 말해봐. "
" 있잖아. 후......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렇게 시작해서 몇 십분 동안이나 조잘조잘 말하는 그 작은 입. 나는 그동안 자꾸만 올라가는 광대를 막을 수 없었다.
기나긴 너의 말의 끝나는 듯 싶더니 결국에는,
나 너 좋아하나봐, 정국아.
말을 잘 끝내나 싶었는데 또 운다. 아이처럼 흐느끼면서 운다.
*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여주가....나를 좋아한다고? 나는 아직까지 내가 미쳐 있는줄 알았다. 바란 적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혼자 웅얼거리면서 울고있는 이여주를 바라봤다. 어렵게 시작한 그 말에는 내가 몰랐던 많은 사실이 담겨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고, 얼마전에 자꾸 피하고 그랬던 것도 그 마음이 너무 버거워져서 그랬다고 했다. 자기도 너무너무 속상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랬다면서. 자기는 나랑 너무 오랫동안 봐와서 나는 자기를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선뜻 말을 못했다면서. 미안하다고. 근데 울긴 왜 울어. 그리고 뭐가 미안해. 여자가 모양빠지게 이게 뭐야....하면서 눈물을 닦는 너의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벅차올라서 너를 홧김에 껴안아버렸다.
" 정국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줘, 알겠지? "
뭘 그냥 넘어가. 얘는 엄청 바보라서 내가 안아주는 것도 그냥 어릴 때처럼 울면 달래주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을거다. 나는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고만 있다.
" 정국아, 정국아- 알겠지? 어? 아 왜 대답을 안 하는거야...이거 놔. "
그러고는 내 품을 비집고 빠져나오는데 또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 너 지금 나 되게 웃기고 하찮고 그렇지? 사실 나도 그래. "
" 아니. "
" 응? "
" 나도 너한테 말할거 있는데 해도 돼? "
" 아니..불안하니까 하지마. "
눈물기 머금은 목소리로 하지말라며 귀를 막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할줄 알고?
" 나도 너 좋아해. "
뭐라고?! 이여주는 진짜 말 그래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스라치게. 그 모양새가 너무 웃겨서 끅끅 거리면서 웃는데, 이여주는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됐는지 가만히 나를 올려다만 보고 있다.
" 야, 너 집에 가. "
" 어? 왜! "
" 아 집에 가. 쪽팔리니까…, 제발. 제발...."
" 싫은데? "
내가 자꾸만 깐족거리니까 이여주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기어이 나를 쫒아냈다. 아,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팠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한참동안이나 씩씩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사실 아직까지 이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녁에 이여주를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맘을 좀 추스렸다. 그동안 혼자 속앓이를 했을 이여주한테 내심 미안해졌다.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니. 근데 왜 나는 자기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티를 많이 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내는건 아니었는데. 맨날 옆에 같이 있으니까 서로 꿈에도 몰랐나보다. 둘 다 바보였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삽질이구나. 나는 왜 고백할 생각을 전혀 못했을까? 여자애가 좋아하는 남자애를 저렇게 집에 불러서 자기 맘을 고백하는게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을지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친한 소꿉친구라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맘고생을 얼마나 했을까. 계속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만 공존했다. 그렇게 이여주 생각만 하다가 까무룩 저녁즈음이 되었다. 나는 서로 마음 확인만 하고 끝냈기 때문에 이제 입장정리를 하자! 라고 생각하며 당차게 이여주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퉁명스럽다.
" 아 싫어 …, 나 지금 니 얼굴 보기 너무 창피해. 미칠 것 같아. "
" 하던 이야기는 마저 끝내야 할거 아니야. 잠시만, 진짜 잠시만."
" 어디로… "
" 집 앞에 카페에 앉아 있어. 금방 나갈게. "
못 이기는 척 이여주가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내가 용기를 낼 차례였다. 이여주가 다 해놓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끝내는건 내가 해야하지 않나 싶어서.
우리 사이에 이제 변화가 생기는걸까, 여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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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ㅅ; 늦어서 미안해요 (울뛰)
이제 드디어 삽질이 끝나고 행쇼...! 는 다음 화에 ㅎ^ㅎ...이번 화 왜 이렇게 오글거리죠..제가 모태솔로라 상황표현에 무리가 있네요 하하하하하!
무튼 함께 이만큼 달려와준 독자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둘이 싸우는거 보고 싶으신가요? 넣자니 또 조심스러워져서 흐흐.. 싸우는거 보고 싶다면 댓글에 의견 표출 조금씩 해주시는걸로? 다음 화는 또 언제 올지 보장은 없으나... 제가 시간날 때 꼭 올리도록 할게요!ㅠㅁㅠ.... 연재텀이 길어져도 작가가 바쁘구나 하고 생각해주세요 8ㅅ8...
하는 일은 없지만 이것저것 바쁜 중생을 용서해주셨으면...☆..(목탁소리)
매번 댓글 달아주시는 여러분 모두 감사해요! 좋은 붙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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