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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맛없어요?”



“아뇨, 맛있어요! 하하…”

 

 

왜 하필이면 맛있다고 온 곳이 도경수네 파스타집 인지...운도 지지리 없다.

요리사이자 오너인 도경수가 직접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다행히도 알바생들이 많이 바뀌어서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감사했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 맛있게 먹을 수 없다니! 이건 고문이야!!

 

 

“누구 찾는 사람 있어요?”

 

“네? 아...아뇨.”

 

“아까부터 계속 두리번 거리 길래.”

 

“인테리어가 참 예뻐서요!”

 

 

민석오빠는 눈치가 빨랐다. 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만해도,

아니 자기가 아는 맛집이라며 여길 소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추워서 바르르 떠는 내 목에 자기 목도리를 감아주고 장갑을 손수 껴주는 그 눈치와 센스에 아주 설레고 좋았는데.

지금은 그 눈치에 내 위가 쪼그라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솔직히 민석오빠는 얼굴도 존나 내 취향에다가 매너도 좋고 스펙도 뭣도 다 좋았지만 불편했다.

내가 카페에서 강아지라고 신나게 소리친 이후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모습이,

 부르르 떠는 몸짓에 자기도 추위를 잘 타면서 목도리며 장갑이며 나에게 둘러주는 행동이 뭘 뜻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생각한 게 바로 어젯밤이면서 현실에서는 다른 남자의 호감에 전혀 안 괜찮은 나다.

결국 먹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에 후식도 치우고 바로 일어났다.

급하게 옷을 챙기는 나에게 아까처럼 목도리와 장갑을 꼭꼭 챙겨주고는 만족한 듯 예쁘게 웃는다.

 하 시발... 생긴 건 내 취향이어서 진짜....사람 존나 좋게...... 변태 같은 미소를 목도리에 가리고 출구로 돌아섰다.

그리고 아주 예쁜 여자와 같이 들어오는 박찬열과 눈이 마주쳤다.

 

 

“...박찬열”

 

 

방정맞은 입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난 무슨 생각으로 박찬열을 부른 걸까.

 매번 우리가 데이트 하던 식당에 여자를 데리고 온 배신감? 아니면 그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든 후에도 행복해 보이는 그 웃음?

그 어느 것이든 아주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누구에요, 오빠?”

 

“아....”

 

“먼저 지나갈게요.”

 

“어! 잠깐!”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박찬열이 이상한지 그의 팔에 더욱 붙으며 나를 보는 그 여자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어깨를 치며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왔다.

민석오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물이 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손에 잡혀 근처 벤치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꺼내 건네준다.

끄흡, 흐엉 같은 추한 소리를 내며 눈물을 질질 짰다.

 

 

“울지마요...”

 

“흐...죄..죄송해요....”

 

“아니에요...”

 

“죄송해요....”

 

“아뇨...내가...미안해요....”

 

“오빠가 뭐가 미안해요...”

 

 

민석오빠는 눈물 끝에 훌쩍거리는 내 등을 쓸어주며 한숨을 푹 내뱉는다.

뜨거운 숨이 차갑게 얼어 작은 물방울이 된다. 마치 내 마음처럼. 한때 뜨거웠던 마음은 이별에 눈물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내 마음은 아직도 뜨거웠나. 왜 식지 않았나?

내가 울음을 그친 후에도 한마디 없던 민석오빠는 날 집에 데려다 주고 조용히 돌아섰다.

아마도 눈치 빠른 오빠는 알았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어떤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로 널브러졌다.

지쳤다.

 박찬열과 함께 나눈 사랑도, 그 미칠 듯 한 분노와 배신감과 함께 밀려오는 그리움까지 그 열기에 내 몸에 모든 수분이 다 말라버린듯 했다.

나에게는 겨울이 필요하다.

다음날 아침 나를 깨운 건 예상외로 민석오빠의 전화였다. 잠깐 이야기하고 싶다며 우리 집 앞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추한몰골을 다 보여서 별로 만나고 싶진 않았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목도리와 장갑은 돌려줘야겠지. 어제와 다르게 간단하게 보통 때 처럼 차려입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살짝 웃으며 음료를 주문하고는 정적이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저...여기 목도리랑 장갑...”

 

“아, 깜박 잊고 있었네요.”

 

“죄송해요. 시간이 없어서 빨지는 못했어요.”

 

“괜찮아요. 이것 때문에 만나자고 한거 아니니까.”

 

“그럼...”

 

“할 얘기가 있어요.”

 

 

오빠는 좀 긴장한 표정으로 한숨을 후 뱉었다. 자신도 굉장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말을 하려고 몇 번이나 입을 열다 닫기를 반복했다. 난 재촉하지 않고 오빠를 기다렸다.

 

 

“사실, 그 소개팅 자리는 제가 나갈 곳이 아니었어요.”

 

“알고 있었어요.”

 

“아니, 준면이 대신이 아니었어요.”

 

“준면오빠 대신 나온 게 아니라고요?”

 

“네. 사실....”

 

“박찬열...이란 사람이었어요. 나갈 사람은.”

 

 

이게 뭔가 싶었다. 박찬열이라니?

 

 

“사실 김준면과 박찬열 둘이 아는 사이에요. 그래서 준면이가 널 소개 받았을 때 박찬열을 대신 내보내려고 했어요.

 물론, 상대가 너인지는 가르쳐주지 않고요. 그 사람이 많이 후회하고 힘들어 했다고, 이건 기회라면서.”

 

“하...”

 

“박찬열은 준면이에게 이야기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너도...”

 

“나를요?”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에요. 그냥 박찬열과 사귀었고, 헤어진 상태라는 것 정도.”

 

“아...그런데 왜....”

 

“좋아했어요.”

 

“.......네?”

 

“처음엔 그냥 호감 정도였어요. 김준면이 아는 동생이 연애하더니 염장을 지른다면서 널 자랑하는 카톡들을 자주 보여주는데, 어느 날부터 탐이 나는거에요.

볼 때마다 바뀌는 프로필 사진들도, 네가 해주는 행동에 행복해 하는 모습도.”

 

“하...하...”

 

“준면이 소개팅 이야기를 듣고 수정이라는 친구 번호를 몰래 가져가서 사정을 설명했어요.

수정이라는 친구가 길길이 날뛰면서 박찬열과는 안된다고 해서 제가 나온다고 했어요.”

 

“그럼...어제...”

 

“박찬열 옆에 있던 사람은 제가 동생한테 부탁해서 소개시킨 여자에요. 준면이는 아마 너랑 박찬열이 만난 줄 알겠지만.”

 

갑자기 마음이 텅 빈 듯 허무해졌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니고 뭔가 뒤죽박죽 섞여서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오히려 수정이가 이 사실을 알았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자신도 많이 힘든 만큼 수정이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혼자 얼마나 삭혔을까.

그럼 민석오빠는 나에게 뭘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걸까. 그냥 이 사실을 고해성사 하고 싶어서?

 

 

“미안해요.”

 

“아뇨...오빠가 나온 게 더 다행이에요. 정말요.”

 

“좋아해요.”

 

“아...”

 

“당장 만나자는 건 아니에요. 어제 봤으니까. 그래도 계속 만나고 싶어요.”

 

“저는.....”

 

“많은 거 안 바래요. 그냥 밥 먹고 영화보고 그 정도라도...”

 

 

대답을 못하고 숙인 눈 끝에 담담히 말하는 그 얼굴과 반대로 살짝 떨리는 붉은 손끝이 보였다. 떨고 있다.

잘생기고 똑똑한데다 매너까지 좋은 이 남자가 내가 좋다며 손끝을 떨고 있다. 갑자기 내 가슴까지 살살 떠는 느낌이다.

우습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찬열 때문에 지옥같이 타오르던 마음이 기분 좋게 살살 떨린다.

기분이 좋다.

여름의 뜨거움은 겨울의 차가움에 눈 녹듯 사라진다.

 

 

 

 

 

 

 

 

 

 

 

 

 

 

 

 

 

 

흐ㅡㅎ하ㅓ허ㅓ허허헣 재성해여....ㅅ그르이 ㅅ쓰레기야...허흐헣러흐흫

미아네여.흐흫흐ㅓ거흐흐흐허허흐허허흐흫

늦게 와서 미아네여..ㅠㅓㅠㅓㅓ허허흐ㅡ푸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암호닉

 

 

 

 

 

워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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