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성열의 집 현관문을 닫은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우현이 급하게 쓰라려오는 손에 인상을 찌푸리며 현관문 앞으로 기대섰다.
"하으,ᆢ."
안 그래도 요즘들어 자잘한 상처들로 보기도 좋지 않던 손이, 양손 다 붉은 피로 물들어 바닥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지, 하고 잠깐을 고민하던 우현이 여전히 왼쪽 손에 자잘히 박혀있는 유리조각을 천천히 빼려 눈을 꽉 감았다.
천천히 빠져나오는 유리조각으로 인해 더욱 더 쓰라려오는 손바닥으로 더욱 심각해진 출혈에 우현이 픽, 웃었다. 오른 쪽 손에 깊게 박힌 커다란 유리조각은 뺄 힘도 없을 뿐더러 감각 조차 느껴지지않았다. 여전히 손에 유리조각이 박힌채로 우현이 손을 꽉, 쥐었다. 이제 손도 제대로 못 쓰겠네. 병신같이, 이성열 마음도 못 잡는데.. 손까지 못 쓰는 병신이라. 피식 웃어보이던 우현이 쏟아지듯 떨어지는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봤다.
"ᆢ성열아,"
미친듯이 아파야하는게 정상인데, 왜 저는 마음이 더 아픈지. 우현이 천천히 문 앞으로 주저앉았다. 어느새 꽉 쥔 손틈 사이로 붉게 번져가는 핏물로 인해 점점 더 감겨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떠낸 우현이 천천히 성열을 불렀다.
"성열아.. 이성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이호원의 사랑을 받을 방법이 저런 병신같은 방법 뿐일까. 우현이 천천히 감겨오는 눈을 감았다. 툭, 볼 위로 떨어진 눈물방울을 손으로 닦아낸 우현이 물이 묻자 더욱 아려와 새어나오려하는 신음을 입술을 꾹 물어 막았다.
"ᆢ나 그냥, 이렇게.. 흐, 죽어버릴까,"
그냥 이 상태 그대로 이호원이 올 때까지 있으면, 난 죽지 않을까. 과다 출혈이라던가. 우현이 픽 웃었다. 왜 하필이면 이성열을 좋아했을까, 왜 이성열은 이호원의 형이였을까. 왜 이성열은, 이호원을 사랑할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제 친구 이호원이였을까.
"ᆢ아, 씨발.. 존나.. , 하ᆢ.."
차라리 보지라도 말걸 그랬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생기기 전에 성열을 피했어야했는데, 입술을 꾹 물었는데도 새어나오는 울음소리에 우현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ᆢ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우현이 꽉, 쥐었다. 진짜, 이렇게 죽어버렸으면ᆢ.
언제나 그랬듯이 이성열의 뒤에서 이성열을 지켜주면서. 그렇게, 누구한테도 들키지않고. 이젠 정말 못 참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끝으로 우현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툭, 떨어진 눈물방울이 우현의 하얀 와이셔츠 위로 번져갔다.
*
"....김명수"
- ᆢ뭐, 빨리 말해,
"너 이성열 좋아하냐"
- ᆢᆢ.
아무 이유 없이 퍼마셨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이제 집이나 가야겠다. 하고 일어나는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이성열에 힘이 빠져버려 비틀거리는 몸을 힘겹게 걸어 집 주변으로 도착했을때, 김명수, 라는 그 이름이 떠올라 잘 눌리지도 않는 휴대폰 액정을 꾹, 꾹 눌러 김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아하지 마라."
- ᆢ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끊,
"내꺼니까."
- ...니꺼일지 내꺼일지는, 이성열 손에 달려있겠지. 끊는다, 앞으로 이런식으로 전화걸지마라. 술 쳐먹고 술주정 부리는건, 이성열이 아니라면 싫거든,
띠, 띠, 띠- 하고 끊겨버리는 전화에 호원이 천천히 휴대폰을 내렸다. 좆같게도 좋아하는게 맞았다. 취기가 확 달아나버리는 느낌에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 휴대폰을 꽂아넣은 호원이 제 집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캄캄하게 어둠을 받은 길고 긴 복도가 오늘따라 왜 이리 더 길어보이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제 집 앞에 늘어진 인영에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인상을 팍 쓴 호원이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
문 앞에 늘어진 인영은 이성열이 아니였다. 혹시나 이성열일까 하고 다가간 그자리에는 제 친구가 길게 늘어져있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하고 우현을 일으키려 든 호원의 손에 차가울만큼 축축한 액체가 느껴졌다. 뭐, 야. 이게, 무슨ᆢ 우현을 급하게 일으킨 호원이 바닥 가득 고여있는 핏물에 놀라 여전히 제 몸에 기대어 축 늘어진 우현을 미친듯이 흔들기 시작했다.
"남우현!!!! 야! 남우, 씨발.. 남우현!!"
반짝, 캄캄한 어둠속에서 우현의 왼쪽 손 아래에 떨어진 자잘한 유리조각들이 빛났다. 호원이 급하게 유리조각을 집어들곤 날카롭게 날이 선 유리 조각을 한번 바라봤다. 여전히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유리조각을 본 호원이 작게 욕을 읖조렸다. 두려웠다. 이게 무슨 일인지, 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차갑디 차가운 우현의 오른 쪽 손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ᆢ하, 씨.. 씨발.."
생각했던데로 깊게 유리조각이 박혀있었다, 기다란 상처와 손바닥 전체를 뒤덮은 핏물에 호원이 주먹을 꽉 쥐었다. 숨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우현의 얼굴에 손을 들었다가, 그것 조차도 무서워 손을 내린 호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현을 들쳐맨 호원이 왔던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뛰는 도중 주머니에 꽂혀있던 휴대폰을 급하게 꺼내든 호원이 최근통화목록에 자리한 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명수, 제발ᆢ, 전화ᆢ 후, 좀 받아라ᆢ"
- ...씨발, 전화 하지말,
"하, 김명, 수! ᆢ남우현이 죽, 하, 죽을 것 같아, 우신병원, 후으.. 씨발, 지금 당장, 하아ᆢ 뛰어, 와."
- ᆢ뭐? 야, 이호원, 무슨 소리야! 천천히 좀 말해봐!!
운동을 좋아하던 우현이였기에 보기와는 다른 무게에 우현을 업은 호원의 다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휴대폰을 손에 쥔채로 우현을 등에 업은 호원이 당황한건지 계속해서 말을 더듬는 명수의 전화를 급하게 끊어 버리곤 눈 앞에 보이는 시끌벅적한 응급실 입구로 들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호원이 자신을 보고 달려오는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에 급하게 우현을 의사가 이끄는 대로 눕혔다. 피가 범벅된채 창백한 우현의 모습을 보고 놀란듯이 왜 이런거냐 호원을 향해 묻는 의사에 저도 모르니 어떻게 좀 해보라며 의사에게 큰 소리를 치자, 우현의 얼굴을 만져본 의사가 간호사를 불렀다.
피로 붉게 물든 손을 살피던 의사가 적지 않은 간호사와 함께 우현의 침대를 끌고는 수술실로 사라져버리자 호원이 급하게 따라가다 문 앞에 멈춰섰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정신을 차리자 이제서야 제 코를 찔러오는 피비린내에 제 손을 옷에 닦아내곤 옆에 놓여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ᆢ헉, 하ᆢ 이호원!!! 무슨 소리야, 하, 남우현이... 남우현이 왜 죽어."
"... 저 새끼 손에 출혈이, 장난이 아니였어. 바닥 전체가 피투성이에 애가 차갑다못해 시체같은게ᆢ 창백해서, 죽은 것 같아서.. 무서워서 확인도 못하고 왔는데, 씨발ᆢ 왜.."
ᆢ 이호원, 너야? 니가 그랬어? 수술실 앞을 울리는 명수의 작은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호원이 저를 바라보며 원망스런 표정을 짖고있는 명수를 바라보곤 어이가 없다는듯 실소를 터트렸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니가 했냐고, 니가 남우현 저렇게 만들었냐고."
이 개새끼가 진짜 미쳤나!! 제 앞으로 다가와 되도 안되는 말을 짓걸이는 명수에 호원이 주먹을 쳐들었다.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친구였고, 성열이 제 형이 되었을때 부터 줄곧 저와 함께 있었던 형제같은 친구였다. 유일하게 제가 투정을 부리고, 농담을 해도 웃으며 받아주던 친구. 그런 아이를 제가 저렇게 만들다니 말도 안되는 말이였다. 적어도, 중학교때 처음 만난 명수보다야, 저와 훨씬 오랫동안을 함께했던 친구였으니까.
"왜, 남우현도 이성열 좋아하기라도 하던?"
"ᆢ김명수!!"
"...때려봐, 나도 저렇게 한번 만들어보지 그래."
악에 바친 명수의 목소리가 호원의 귀를 파고 들었다. 들었던 주먹을 천천히 내려놓은 호원이 다시 의자에 털썩 앉은 채로 마른 세수를 해댔다. 그만하자. 지금은 남우현 저 새끼 왜 저렇게 된건지, 그게 중요한거니까.
".... 우리집 앞에 쓰러져서 피 잔뜩 쏟은채로 있었어, 나도.. 나도 왜 저렇게 된건지 모르겠어."
"이성열은,"
"제발 이성열 얘기 좀 그만해!!"
남우현 성격에, 어디가서 쳐맞고 저러고 있을 인간은 아니니까. 자기 화를 못 이긴거거나, 진짜ᆢ 죽고싶었거나. 떨리지도 않은 단호한 음성에 호원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룩덜룩 손에 묻은 핏자국에 한숨을 푹 쉰 호원이 천천히 명수를 바라봤다.
"..."
"...여기 있어, 내가 이성열 데리고 올테니까."
ᆢ그 병신같은 새끼 데려와봤자, 뭐하게. 호원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명수가 뒤를 돌았다. ᆢ혹시 모르잖아, 이성열도ᆢ 어디 아프거나, 다쳤을지.
*
이성열, 성열아. 호원의 말대로 정말 피가 바닥을 적시다 못해 흐르고 있었다. 꼭 호원의 집 안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습에 명수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성열의 집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건지 고요하기만 한 집에 더욱 바빠진 명수의 손이 도어락을 탁탁 쳐댔다. 비밀번호, 비밀번호ᆢ 0328? 순갓 명수의 뇌리를 스쳐간 호원의 생일에 재빨리 도어락을 누른 명수가 삑, 하고 열리는 문에 씁쓸함을 보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급하거 집으로 들어간 명수가 다른집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평범한 분위기에 천천히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성열."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이 조용한 집 안에 깊숙히 이어진 복도 끝에 자리한 하얀 문을 벌컥 연 명수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에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ᆢ이성열? 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성열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단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항상 웃던 예쁜 얼굴의 미간이 찌푸러져 있었다는 것, 그것 뿐이였다.
너는, 웃는게 더 예쁜데.. 명수의 손가락이 성열의 얼굴로 향하는 동시에, 성열의 빨간 입술이 열렸다. 흐ᆢ 호워나. 성열의 입술 새로 새어나온 이름은 제가 아닌 호원이였다. ᆢ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은 명수가 슬픈 웃음을 지어보이며 손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ᆢ미안해.. 호원아, "
툭, 하고 성열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떨어진다. 감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에 명수가 성열의 손을 잡았다. 성열아. 들릴까, 꿈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성열의 귓가에 제 목소리가 들릴까. 여전히 찌푸러진 미간을 제 손가락으로 펴낸 명수가 서서히 올라가는 성열의 눈꺼풀에 살짝 놀라 손을 떼어냈다.
"ᆢ김.. 명수?"
아직 잠이 덜 깬건지 명수의 이름을 툭 내뱉은 성열이 저도 놀랐는지 고개를 들고는 제 입을 막는다.
"...어디 아픈 곳ᆢ 없지."
ᆢ그런거 없는데, 왜애? 성열이 잠깐 당황하던 손을 내리고는 이불을 천천히 걷어냈다. 그러곤 벌떡 일어나더니 헤헤 웃는다. 왜? 응? 바보처럼 웃고 있던 얼굴이 천천히 펴졌다.
"남우, 아니ᆢ 그냥, 보고싶어서.. 아, 그러니까ᆢ."
남우현이 다쳤다고 말하기 싫었다. 그냥 싫다, 이성열이 혹시라도 뛰쳐나갈까봐, 혹 이성열과 관련되어있을까봐. 불안해서, 남우현이 많이 다쳤다고 말하기가 싫었다.
으엥, 내가? 그러고보니 이상했다. 아니 미친듯이 이상하다. 분명히 이성열인데, 제가 아는 그 이성열이라기엔 너무 멀쩡했다. 평소의 항상 웃던 얼굴도, 어수룩한 발음도. 전혀 성열 같지가 않았다. 당황해 미간을 찌푸린 명수가 성열을 멍하니 쳐다보자 그 모습에 픽 웃은 성열이 명수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명수야."
천천히 내려가 제 볼을 쓰다듬던 성열의 손가락이 점점 멀어졌다. 그러고는 저보다 조금 더 큰 명수의 어깨에 얼굴을 천천히 묻은 성열이 비식 웃고는 뻣뻣하게 굳은 채로 가만히 서있는 명수의 손을 잡았다.
"너어ᆢ, 나 좋아해?"
또렷하게 들려오는 문장과 발음에 명수가 그제서야 깨닿고는 피식 웃었다. 이게, 진짜 이성열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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