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는 왜..."
"백성들의 삶이 어떠한지 이 두 눈으로 보고 배워야하지 않겠느냐."
"그 전에 다른 생각이 있으셔서 나오신 것 아닙니까?"
"... 장신구... 를 파는 곳이 어딘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장신구 가게를 곧바로 찾아내는 진환이다. 알록달록 예쁜 장신구들은 여인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아주 적합한 듯 하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주변의 아낙네들 또한 그 장신구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빈에게 무엇이 어울릴 것 같으냐."
"아, 하긴 우리 빈은 안어울리는 것이 없지."
혼잣말을 해가며 이리저리 둘러보던 원을 허탈한듯 웃으며 바라보는 진환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각하고는 서둘러 분홍색 나비 노리개와 꽃문양이 박혀있는 옥반지를 샀다. 빈궁이 좋아하겠지? 묻는 말에 예, 하며 미소짓는 진환이다. 궁 안에만 갇혀지내다 가끔씩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날이면 장을 둘러보는 재미에 원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알기에 서둘러 발걸음 할 수 밖에 없었다.
"혹 내가 가는 길에 사라지거든 이 선물은 꼭 빈궁에게 전해주어야한다. 한빈에게 들켰다간 전해주지 않을 것이 뻔하니."
"예, 걱정마십시오"
궁으로 가는 내내 손에 쥔 반지와 노리개를 보며 미소짓던 원이였다.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조상궁"
"예, 마마"
"조상궁은 어떤 꽃을 좋아하는가?"
"꽃이라면 다 좋습니다. 특히 마마께서 좋아하는 장미는 더더욱이구요."
"이유는?"
"이유라 한다면, ... 마마께서 좋아하시기에 그렇다 답할 수 있겠습니다"
"에이, 식상하다."
'빈궁은 무슨 꽃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장미를 참 좋아합니다.'
'미혹되게 만드는 힘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 장미는 아름답지만 그 미에 미혹되게 만들어 가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요.'
'그런 얍삽해빠진 꽃이 장미말고 더 있겠습니까.'
"조상궁"
"예, 마마"
"지금이 몇 시인가?"
"신시쯤 되었을겁니다. 그건 왜..."
"시강원, 시강원에 가자."
"시강원이요?"
*신시: 오후 3시~ 5시
*시강원: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했던 관청
그의 말에 따르면 신시, 지금 쯤이면 한빈, 원래 저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럼 그 전에 나와 원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한빈은 모르는건가? 정말, 하나도?
"얼른 가자. 저하를 뵈어야겠다."
마음이 분주해졌다. 그에게 묻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잠시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 모두 그에게 다 고하고 사실인지 묻고싶었다. 물론 상냥한 답변을 해줄 그는 아니라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서기 전 거울로 다시 한번 얼굴을 살폈다. 이미 원에게는 꾸미지않은 모습까지 다 보였지만 한빈은 달랐다. 그에게만큼은 모든것이 완벽해야만 했다. 작은 흠이라도 생겼다가는 저번처럼 또 당할지 모를테니까.
"세자빈마마!"
"... 세자저하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예, 곧 나오실겁니다."
김내관의 말을 듣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시강원 앞 연못을 내다보기도 하고, 시강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고.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기도 하다가 곧 나온다했으면서 아직까지 나오지않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져 시강원 문을 흘기며 쳐다보기도 했다.
"김내관."
"예, 마마."
"금방 나오신다하지않았더냐."
"예, 그것이... 제가 살피고 오겠습니다."
김내관이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무료함의 극치를 맛보고 있는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빈궁."
"... 저하."
날보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다 시강원에서 내려와 내 곁으로 왔다.
"여긴 또 어인 일입니까."
표정하고는.
"저하께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 빈궁은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참 많은 듯 하오."
한빈 맞구나. 또 하나씩 틱틱 거리는 거 보니.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듯 하온데, 자선당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자선당: 세자, 세자빈이 거처하던 동궁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겁니까."
"꼭 여기서 얘기하기를 원하십니까."
'저하, 빈궁마마를 따르소서.'
진환의 말에도 영 아니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빈이 어쩔 수 없는 듯 알겠다며 자선당으로 나섰다. 진작에 그럴 것을. 자선당으로 가는 내내 평소에도 그랬듯이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그다. 주변을 살피지도, 걸음이 느린 나를 배려하기는 커녕 성큼성큼 빠르게도 저 멀리 앞서버린다. 원은 내가 걱정될 때나 저 걸음이였지, 같이 화원을 거닐때는 나와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었었는데. 여기서부터 둘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그래서, 할 말이 무엇입니까. 빈궁도 알다시피 나는 매우 바쁜 사람입니다. 얼른 할 말만 하고 나가야하니..."
"원, 원군 얘기입니다."
"... 지금, 원이라고 했습니까."
"예. 오늘 보았습니다, 원군을."
원군을 보았다는 말에 잠시 놀란듯 했으나 이내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되돌아오는 그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 언제부터 그러신겁니까."
"나도 잘 모릅니다. 내가 이렇다는걸 내가 자각하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사방이 적진인 이 궁에서 자신의 결함을 자신이 자각하고 난 후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것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전에 원이 말했던 것 처럼 종묘와 사직에 큰 파장이 일테니까. 부부사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밉다가도 그의 아픈 면을 보게 되었을 때엔 나 또한 그 아픔에 휩싸이게 만든다.
*종묘와 사직: 왕실과 나라
"빈궁"
"많이 놀랐습니까."
이어진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그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위로였다. 사실 어쩌면 위로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한빈일지도 모르는데.
"...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원이라는 그 자는 빈궁에게 어떤 해가 끼쳐지기라도 하면 시간불문하고 나올지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꼭 시간을 지키는 자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오늘 아침에 문안을 올리고 나오는 길에 그대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곧 ... 정신을 잃었습니다."
"제가 그대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많이 놀랐을테니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라며 방을 나서려는 순간 원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나 그를 다시 불렀다. 그의 말대로라면 오늘 원은, 밤이 다 가기 전 날 찾아올 것이다.
"저하"
"... 왜 그러십니까."
"원이,"
"..."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찾아오겠다했습니다."
"... 그건 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원의 일입니다."
"저하, 저하를 찾으셔야합니다. 저하의 본모습을 온전히 갖추셔야합니다."
"이미 그러기엔 늦었습니다. 이 또한 병이라면 병일 것입니다.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인간된 도리 아닙니까."
그 말만을 남기고 다시 그는 뒤돌아 방을 나갔다. 지금 그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다면 후에 이 나라의 군주가 되었을 때 그것은 매우 크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아직 나라고해서 원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되는 것만은 분명했다. 원에게 말해야만 했다. 그는 내게 또 다른 설렘을 가져다주었으나 한빈에겐 독이 될지도 모르는 이였다.
"마마, 김내관이옵니다"
"들게"
한빈이 간지 얼마되지않고서 김내관이 내 방을 찾았다. 내게 예를 갖추던 그는 색동의 주머니를 내게 건네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에 김내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저잣거리에 나가 원군께서 빈궁께 드리라 명했던 선물이옵니다."
"... 원군이?"
"예, 저하께 들키지 않아야한다며 몇 번이고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일찍이 선물을 가져다 드리려하였으나 시간상 여의치 못하여 이제야 드리게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아니다, 괜찮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김내관이 나가고 색동의 주머니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그 안엔 꽃 문양의 옥반지와 분홍색의 나비노리개가 들어있었다. 순간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고스란히 올려져있는 반지와 노리개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가 다시 색동주머니 속에 넣었다.
"... 원. 이원."
이원이 찾아올 때까지, 이 곳에서 그를 기다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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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마음인데 암호닉까지 덜컥 받아버렸어요ㅠ 독자님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암호닉 초록프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