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그 얘기 들었어? 세자저하와 빈궁마마 얘기 말이야."
"아, 합방?!"
"내가 거기에 있었는데, 저하께서 빈궁마마를 얼른 데려오라고 김내관한테 보채는거있지?"
"진짜?! 저하 그러실 분 아니시지않아?"
"아니라니까, 그동안 그 마음을 꽁꽁 숨겨두신거지."
"야 이러다 곧 원손보는거아니야?"
*원손: 왕의 손자, 왕세자의 아들
"맞다, 합방 때 화련이가 거기에 있었는데 저하께서 빈궁마마를 확 끌어당겨 눕히시더니...!"
"지금 무슨 얘길 하고있는 것이냐."
"조..조상궁마마."
"어서 자리로 가지 못할까!!!"
"..예, 예 마마!"
어젯일로 자꾸만 모여드는 나인들을 해산시키며 돌아다니던 조상궁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것만 같았다. 합방이 이루어졌던 어젯밤, 모든 나인들을 자선당 마당으로 내보내버렸던 세자라, 빈궁마마가 혹 놀라진 않으셨을까, 그래도 첫 합방인데 하며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마냥 걱정하던 조상궁이였다. 한숨을 푹 내쉬던 조상궁 옆으로 김내관이 다가왔다.
"별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 걱정, 안합니다."
"표정이 거짓을 고하지못하는데 어찌 숨기려하십니까."
김내관의 말에 작게 웃던 조상궁은 조심스레 김내관에게 물었다. 그는 어젯밤, 유일하게 자선당 안을 지켰으니까.
"어젯밤, 무탈하셨는지요."
"저 말입니까?"
"아뇨, 세자저하와 세자빈마마 말입니다."
"허, 아뇨. 어젯밤에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예, 예?"
"저 나인들이 말한 것 처럼 곧 원손을 기대하심이 어떠실런지...?"
"기, 김내관!!!"
빽 소리치는 조상궁을 보며 한껏 웃던 진환은 농, 농입니다. 하며 조상궁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씁쓸한 미소를 지니고 있던 그 였다.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어젯밤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기만 하면 된다던 한빈의 말은 또 다시 우리를 침묵으로 만들었다. 그런 것도 잠시, 일단 어찌되었던간에 침소에 들긴해야하니까... 그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 불 끌까요?"
내 물음에 피식 웃던 그가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자리서 일어나 큰 촛불을 후, 하고 끄고났더니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 어. 옆으로 가야되나, 어디더라. 일단 자리에 앉아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손을 내미는데, 내 손목을 끌어당기는 한빈이다. 숨소리, 숨소리가 바로 느껴진다. 지금, 너무나 가깝다.
"..."
"..."
조심스레 내 허리로 올라오는 손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순간 긴장이 온 몸에 흐르는 듯 하다. 나를 안고는 강압적으로 눕히더니 나즈막히 그가 말했다.
"... 그대는 나의 빈입니다. 내가 아닌, 그 누구의 빈도 아닙니다."
"... 아시겠습니까."
이미 긴장이 훅 들어가버린 상태라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가깝다, 가깝다, 너무 가까운데 이거? 이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들어가기 전 조상궁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마, 그저 저하께 몸을 맡기시면 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그저 저하를 따르시면...'
맡겨? 뭘 맡겨. 눈을 감아? 누굴 따라?! 나도 모르게 상상해버린 뒷일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지금!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슬슬 어둠에 적응이 돼 조금씩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자 한빈에게서 나오려하는데, 한빈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거칠어진 숨소리에 지탱하고 있는 손은 떨려오기까지 한다.
"저하, 저하!!"
"..... 하, 조..조용하세요."
"어디 아프신게 아닙니까. 왜그러십니까, 어서 어의를...!"
"..... 조용, 조용!!"
내게 소리치면서도 계속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한빈의 이마를 짚으려하자 내 손을 탁 쳐내버린다. 그에 서운함을 느낀 것도 잠시, 한빈의 상태가 우선이기에 아랑곳하지않았다.
"저하, 저하 상태가 지금 매우 안좋습니다. 얼른 어의를 불러야만...!"
".. 내 말에... 답부터 하세요."
"..... 예?"
한빈에게서 나와 얼른 김내관을 불러야겠다 생각하며 움직이려는데, 자기 말에 답부터 하라며 일어서려는 내 팔을 붙잡고 도로 눕혀버린다.
"... 그대는 나의 빈입니다. 내가 아닌, 그 누구의 빈도 아닙니다."
"... 아시겠습니까."
거칠어지는 숨소리, 식은땀은 뻘뻘, 갈라지는 목소리.
"얼른... 얼른... 대답하세요, 빈궁."
초점이 풀리는 눈, 떨리는 손끝.
그의 손등 위로 살포시 손을 올리곤 천천히 답했다.
"... 항상 세자저하 곁에 있었습니다."
"항상... 저하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누구의 빈도,"
"... 아닌, 저하의 빈이옵니다."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털썩, 그대로 내 대답을 듣자마자 버티고 있던 한빈이 내 옆으로 쓰러지고야 말았다. 놀란 마음에 저하, 하고 불렀지만 대답이 없는 한빈이었다.
"밖에 누구 없느냐, 김내관!! 김내관!!!"
밖에서 기다리던 김내관이 내 목소리에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재빨리 초를 켜던 그는 곧바로 한빈과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하께서 쓰러지셨다, 얼른 어의를...!"
"걱정마시옵소서, 마마. 곧 깨어나실겁니다."
"무슨 소리냐, 아까부터 식은땀이 온 몸에 흘렀다 이러다 저하께서...!"
"원, 원군일겁니다."
침착하게 원군이 나올거라 대답하는 진환을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보다 손끝에 기척이 느껴짐에 한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그가 다시 눈을 감고는 피식 웃는다. 목소리는 아까의 한빈과 같이 약간 갈라져있었다.
"... 한빈. 한빈과 있었던 것입니까."
"... 원, ... 인 것 입니까."
"오늘 밤이 가기 전에, 내 그대를 찾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진환아, 이만 나가보거라."
"... 예, 저하."
진환이 나가고 아직도 놀란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자 두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선 그에게 물었다.
"... 정말 원군이십니까."
"아까도 말하지않았습니까."
"... 아까 그럼... 식은땀이 나고 괴로워하시던것은..."
"인격이 바뀌기 전에, 그러한 증상을 보이곤 합니다."
다시 한숨을 뱉는 날 걱정스럽다는듯 쳐다보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던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미안할게 어딨겠습니까."
"계속, 그대를 볼 때 마다.. 놀라게.. 하지 않습니까."
"..."
"그대를 웃게 만들고 싶은데, 자꾸 놀라게하니... 제가 두려워지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그의 말에 남모를 슬픔이 섞여있는 듯 했다. 한빈에겐 골칫덩어리일지 모르나 어쩌면 원 그 자에게도 자신은 골칫거리다라고 느끼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저하는 한 분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한 몸에 두 사람이 살고 있다 하여도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렇게.. 저하는 한 분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대답대신 미소짓던 원은 다시 슬픈표정을 풀고 원래의 밝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빈과 무얼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같이."
"밤에,"
"같은 이부자리 위에서."
"정...말로 아무것도...?"
응큼하게 하나씩 자꾸 추궁하는 원에 모, 모릅니다! 하고 뒤돌아서버리자 다시 털썩 누워버리는 그다.
"아, 서운합니다 빈궁. 한빈과 잘되다가 내가 나와 실망한 것입니까."
"... 그, 그것이 아니라... 자꾸 추궁을 하시니...!"
당황하는 날보며 웃던 그가 다시 일어나 턱을 괴곤 한손으론 내 볼을 가볍게 톡톡 치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리저리 날 살핀다.
"... 왜그러십니까?"
"빈궁은 언제부터 예뻤습니까?"
"... 아, 아니 그게 지금..."
"아침에 보아도, 이렇게 늦은 밤에 보아도 여전히 예쁘십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를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선을 회피하려하는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으려 입을 꾹 닫던 그가 이부자리 옆 놓여진 서랍에서 서책 한 권을 꺼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예, ... 무료할땐 서책읽기로 달래곤 합니다."
"그럼 이 책도 읽어보셨는지요."
아까 꺼내던 그 책을 내게 건네던 그는 그 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처음으로 저잣거리에 나가 샀던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사실 이 후속편 또한 있다는 소문에 기대하였으나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 무슨 내용입니까?"
"음... 내면의 상처로 인해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 어, 그 책..!"
"왜그러십니까, 아시는 책입니까?"
"혹, 이 책의 마지막 글귀에.."
"누구나 가면을 쓰며 살아간다."
"그 누구도 그 가면을 벗길 권리는 없다."
같이 그 글귀를 말함과 동시에 서로를 보며 웃고 말았다. 원군, 원군도 이 책을 알고 있었구나.
"빈궁 이 책을 알고계셨던 겁니까."
"어릴 적 서책방에 놀러가면 꼭 읽었던 책이였습니다. 이 책 제목이 뭐였는지..."
"... 별빛."
"...?"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그것이 제목입니다. 라는 끝 말에 책 표지를 읽으려 보았으나 표지엔 아무것도 적혀있지가 않았다. 뒤 쪽 표지를 보아도, 안을 보아도, 제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 제목이.."
".. 그 책은 표지에 제목이 적혀있는 책이 아닙니다."
"이 내용 안에서, 찾아야만 하는.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은."
그 말이 묘하게 다가왔다. 내용에서 찾아야하는 책이라. 왜인지 모르게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책을 앞으로도 많이 보게 될 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같이 읽으시겠습니까? 라는 말에 가볍게 고갤 끄덕이니, 잠시 고민하는듯 하던 그는 내 손에 들린 책을 가져갔다.
"제게 남은 시간도 별로 없으니, 제가 좋아하는 구절 몇개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제 목소리는 책 읽을 때 가장 매력적입니다. 복받으신줄 아셔야 할 겁니다."
그의 말에 작게 웃다 알겠다며 빨리 읽으라고 보챘다. 그 또한 웃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원은 책에서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구절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원이 얼마나 읽었을까, 꾸벅이며 잠들어버린 빈궁에 원은 읽기를 멈추곤 빈궁을 사랑스럽다는듯 턱을괴곤 바라보았다. 꾸벅, 꾸벅. 자꾸만 떨어지는 고개가 귀여운지 피식 웃다 이내 빈궁을 베개로 조심히 눕히는 그다.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주곤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마저 읽지 못했던 구절들을 다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대를 사랑하여 그대를 위해서가 아닌 단지 나를 위한, 나의 이기적이고, 또 일방적인 마음인것을."
"그것이, 연모 인 것을."
*연모: 이성을 사랑하여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 연모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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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원이 좋다... (하트) (원이 읽어준 책 내용은 후에 나올거에요!) 날씨가 너무 춥죠ㅠㅠ 저는 벌써 감기에 걸려버렸습니다ㅠ 독자님들은 절대! 저처럼 날풀린것같다고 칠렐레팔렐레 돌아다니시면 안됩니다 (댓츠노노) 따뜻하게 옷 든든히 입으셔야해요. 건강이 최우선이잖아요b 오늘도 조별내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암호닉!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어요!) 초록프글 님 ♡ 뀰지난 님 ♡ 달빛 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