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05 김태형은 그냥 친구였다. 그렇기에 나는 찔릴 것이 없었다. 아니 없어야했다. 그런데 굳어있는 민윤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괜시리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침묵 속에서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던 나와 민윤기를 번갈아서 바라 본 김태형이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민윤기에게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 " ...아, 안녕하세요. " " 혹시 남자친구세요? " " 네. " " 그렇구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전 김태형이에요. " " 민윤기입니다. " " 혹시나해서 말씀드리는건데요. 저, 그냥 친구에요." " ... " " 오해하시는거 아니죠?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 " 네. 안 해요. " " 그럼 됐다. 남자친구도 오셨니까 전 이제 갈게요. " 그 말을 끝으로 가벼운 목인사를 하고 민윤기에게서 내 쪽으로 돌아선 김태형이 다시 걸음을 옮겨서 내 옆에 멈춰섰다. " 나 그냥 친구라고 했는데 괜찮겠지? " " ... " " 뭐, 아직은 그냥 친구 맞으니까. " " 어?" " 나 갈게. 조심해서 가. " 내게 속사포처럼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말들을 내뱉던 김태형은 잔뜩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윙크를 한 후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런 김태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황당함에 얼이 빠져 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엔 어느새 민윤기가 내 앞으로 걸어와있었다. " 학교? 이제 와? " " 응. 어디 가? " " 응. 편의점가려고. " " 아. " " ... " " 그...방금 저 사람 있잖아. " " 응. " " 그냥 친구인데 혹시 오해할까봐. 얼마전에 새로 만났는데 우리 과였나봐. 근데 난 왜 처음 봤는지 몰라. 아무튼 그래서 좀 친해졌는데 소개시켜주는걸 깜빡... " " 그냥 친구라며. " " 어? " " 오해 안해. 걱정하지마. " " 아... " " 그리고 너 친구들, 나한테 다 소개시켜줘야하는거 아니잖아. 내가 아는 친구도 있고 모르는 친구도 있고, 그런거지 뭐. " " 어? 어 응... " 쭈뼛거리며 말을 꺼내던 나에게 민윤기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만 가겠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분명 나는 민윤기가 오해할까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고 걱정한게 맞았다. 그런데 내 마음 한 구석은 민윤기가 오해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편해지지 않았다. 아무리 민윤기 스타일이라지만 너무 쿨해서 그런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잘 안 보이네. 민윤기는 이 동네 싫어하겠다. 민윤기는 어릴 때부터 별을 참 좋아했다. 밤에 그냥 별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며 내게 수도 없이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난 여자인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남자인 넌 참 특이하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민윤기는 그건 남녀차별 발언이라며 발끈했고 나는 발끈한 민윤기를 보며 웃었다. 민윤기는 전에 살던 동네를 참 좋아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동네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동네의 위치는 민윤기의 취향에 제격이었다. 민윤기는 그 동네를 참 좋아했다. 밤이 되면 그 동네는 몹시나 깜깜해졌고 그와 반대로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매우 환했다. 나는 늘 동네가 너무 깜깜하다고 투덜대었고 민윤기는 별을 잘 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한다며 나를 달랬다. 어느새부터인가 야자가 끝나고 집에 올 때마다 줄곧 별 타령을 하는 민윤기 덕분에 나도 별을 좋아하게 되었다. 민윤기의 별 사랑은 지극했고 꾸준했다. 20살이 되어서 처음 맞던 내 생일에는 내게 별 목걸이는 선물했다. 목걸이를 선물 받고 나서 한동안 밤에 나갈 일이 있을 땐 괜히 그 목걸이를 하고 나갔다. 민윤기는 나중에 꼭 별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살 것이라고 내게 말했었다. 그렇게나 별을 좋아하는 민윤기에게 별 하나 잘 보이지 않는 이 동네가 결코 좋을리 없었다. 그 생각에 민윤기가 걸어간 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걸음을 옮겨 집으로 들어갔다. [ 남자친구 오해 안하는거 맞지? ] "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 [ 안 싸운거 맞지? ] " 싸웠으면 내가 너랑 이러고 있겠냐. " [ 다행이다. ] " 응 " [ 아니, 근데 은근히 기분 나쁘네. ] " 뭐가 또. " 집에 돌아와 씻자마자 받은 남자친구와 싸우지는 않았냐는 걱정으로 시작 되었던 김태형의 전화는 어느새 김태형의 투덜거림으로 변해 있었다. [ 왜 오해를 안 해? 자기 여자친구가 밤에 낯선 남자랑 같이 있는데? ] " 뭐? " [ 내가 어? 뭐 남자같지도 않다 이런건가? ] " ... " [ 내 남자다움을 한번 보여줘? ] 전화기 너머의 김태형의 목소리가 커졌다. ' 참 김태형스러운 발상이다. ' 라는 생각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 뭐라는거야. 진짜. 빨리 자기나 해. " [ 너 남자친구라니까 내가 한번 참는다. ] " 어휴, 끊는다. 잘 자. " [ 응. 너도 잘 자. ]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으려던 찰나에 창문 건너편으로 보이는 민윤기 집의 불이 꺼졌다. 지금 자려나. 침대에 벌러덩 누으며 즐겨찾기에서 익숙한 그 이름을 찾아 카톡을 보냈다. [ 자? ] [ 응 지금 자려고. ] 또 한참 후에, 혹은 내일 아침에나 답이 오겠지하며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작은 진동과 함께 웬일로 돌아오는 빠른 답장에 몸을 일으키며 답장했다. [ 웬일이야? 오늘은 빨리 자네. ] [ 오늘 좀 피곤해서. ] [ 아, 그래? 나도 지금 자려고! ] [ 응. 잘 자. ] 애매하게 끊겨버린 대화에 다시 침대에 누우면서 핸드폰을 침대 저 멀리 던졌다. 그럼 그렇지. 자려고 손을 뻗어 불을 끄자마자 어둠 속에서 핸드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혹시 민윤기인가하고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 잘 자고 내 꿈 꿔❤ ] 세상에나, 이게 뭐람. 셀카와 함께 전송 된 닭살스러운 내용과 이모티콘에 저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사진 속 김태형은 브이와 함께 한껏 귀여운척을 하고 있었다. 멘트까지 능청스러운게 역시 김태형스럽다며 카톡 방을 나갔고 순간 멈칫했다. 핸드폰 액정에는 민윤기와 김태형에게서 온 카톡이 나란히 보여졌다. 딱딱한 마침표로 끝난 문장과 애교 섞인 하트로 끝이 난 문장. 두 문장이 보여주고 있는 확연한 차이에 괜히 마음 한 켠이 씁쓸해졌다.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핸드폰을 다시 머리 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난 남자친구와 친구 사이에서 말도 안되게도 내 남자친구는 누구인지, 난 누구랑 연애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려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지금 누구랑 누굴 비교해. 나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그런 걸 헷갈려하는 내 나쁜 머리 탓에 나는 그 날 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오랜만에 한번 만나자는 친구와 약속을 잡기 위해서 달력을 보던 중, 그동안에 까먹고 있었던 작은 메모가 문뜩 눈에 들어왔다. # 9주년 벌써 내일이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돌아오곤 했던 기념일이지만 어느새 코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군대에 있던 민윤기의 면회를 가지 못한 작년을 제외한 그동안의 기념일에는 민윤기와 함께 보내곤 했었다. 나도 민윤기도 작은 기념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 날만큼은 만나 함께 지내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내일도 마찬가지로 만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친구도 별로 없는게 매일 뭐가 그리 바쁘신지 미리 말하지 않고 우리의 만남이 성사된 적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작년에는 만나지도 못해서 챙기지 못한 기념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는데 민윤기가 기억할리 없었다. 민윤기에게 연락을할까말까 참 많이 망설였다. 당연히 기억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고 내가 말을 하면 혹여나 부담이 될까봐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난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다. 아닌 경우에 상처받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민윤기가 혹시나 알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기대가 나를 민윤기에게 연락하도록 만들었다. [ 윤기야. ] [ 내일 바빠? ] 톡을 보낸 후에도 오래도록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는 숫자 1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민윤기에 대한 서운함을 받아내는것은 애꿎은 숫자 1의 몫이었다. 결국 자판을 꾹꾹 눌러 연달아 몇 개의 메세지를 더 보내야했다. [ 안 바쁘면 내일 만날래? ] [ 약속 있으면 말고... ] 그렇게 톡을 마져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 놓으려던 찰나에 갑작스레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민윤기인가 싶어서 반가운 마음에 확인했지만 뜬금없이 걸려 온 김태형의 전화였다. 아마도, 지금 내 얼굴은 나 실망했어요.라고 알리고 있을 것이다. " 응. " [ 완전 대박 대박 초대박! ] " 뭐가 또. " [ 내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다던 그 뮤지컬 있잖아. 아는 형이 줘서 표 생겼어. 무려 두 장이나. ] " 오. 좋겠다. 그거 재밌대서 나도 보고 싶었는데. " [ 그치. 완전 좋겠지. ] " 응, 좋겠다. 뭐야, 너 지금 나 부러우라고 자랑하는거지? " [ 아니, 자랑하는거 아닌데. 나 지금 간접적으로 데이트 신청하는거잖아. 둔팅아. ] " 야,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야. " [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그래, 소풍! 됐어? ] " 같이 보러가자고? 언제? " [ 이거 이번주까지던데? 근데 나 내일밖에 시간이 안 날거 같아. 이 오빠가 좀 슈퍼스타잖아. ] " 허, 친구 없다고 친구 해달라고 엄청 조르던게 누구였더라. " [ 요즘에도 그런 사람도 있어? 누가 작업을 그렇게 올드하게 건다니. ] " 어휴, 몰라. 어찌나 징징대던지. " [ 그러면 그냥 그 사람이랑 내일 한 번 놀아줘라. 응? 같이 갈거지? ] " 내일? " [ 왜? 안돼? 약속 있어? ] 지금 약속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 죽일 놈의 애매한 타이밍. 잠깐 전화기에서 귀를 떼고 민윤기와의 카톡방을 눌러 확인했다. 답장은커녕 사라지지도 않은 숫자 1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 가는거지? 응? 가는거다? ] 답이 없는 채팅방과 스피커에서 나오는 김태형의 칭얼거림. 알겠다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난 하염없이 민윤기의 답을 기다려야 했다. 민윤기, 빨리 좀 보란 말이야. ' 응. ' 그거 한 글자면 되는데! [ 가자? 나랑 가줄거지? ] " ... " [ 응? 같이 가자- ] 민윤기의 답을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숫자 1은 결국 사라지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내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그 의지를 반영하듯 스피커 너머 김태형의 칭얼거림은 끝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 알았어. 내일 가. " [ 아싸! 너 공강인 날이지? 내가 집 앞으로 갈게. ] " 그냥 거기서 봐. 뭘 데리러 와. " [ 내 맘이거든. 몰라, 난 데리러 갈거야. ]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이었던 김태형 전화에 또 내가 졌다. 이상하게 김태형은 나에게 이길수 없는 존재였다. 아무리 이기려고 해도 결국엔 늘 내가 지게 되었다. 김태형은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지 않아도 이기는 민윤기와는 달랐다. 사실 난 그것이 민윤기가 항상 나에게 일부러 져주기 때문임을 잘 알고있었다. 요즘에 나도 모르게 자꾸 민윤기와 김태형을 비교하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하곤 한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을 비교하고 있는 내가, 나도 왜 이러는지 참 혼란스러웠다. [ 아니야. 그냥 못 본걸로 해. ] 결국 핸드폰을 켜서 민윤기에게 못 본걸로 해달라는 찌질한 톡을 보냈다. 아마 민윤기는 또 그러려니 하겠지. 그렇게 난 민윤기와의 연애 중 처음으로 민윤기가 아닌 다른 사람과 기념일을 보내게 되었다. 핸드폰을 내려 놓으려다가 김태형에게 내일 데리러 오지 말라는 부탁의 말도 보냈다. 그래봤자 김태형은 가볍게 무시할 것이고 내일 우리 집 앞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너무 늦게 찾아왔네요ㅠㅠㅠ 3월이 시작 된 뒤로 부쩍 바빠졌습니다ㅠㅠ! 여러분들도 새로운 시작에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늘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작은 칭찬이 늘 제게 큰 힘이 된다는거 알아주세요~~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