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07 누구나에게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 사람을 지키고 싶은것은 당연한 일 일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내가 자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지키기 위해서 내 옆에만 두고있다면 무의식중에 소중함을 잊어버려 소홀해질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해서 했던 행동이 서로에게 독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민윤기가 그랬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난 나와 민윤기의 관계를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난 우리의 우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 있는 민윤기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그 사람도 나를 똑같이 소중히 여겨주기를 바랬고 그랬기에 지키기 위해서 민윤기를 내 남자친구라는 틀에 가둬놓았다. 하지만 그 관계, 소중히 여겨지고 싶었던 그 관계에서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에 난 상처받았다. 곁에만 두려했던 내 욕심이었고 그로 인해 받은 벌이었다. 익숙하다는 것, 서로에게 소홀하다는 것은 여러가지 마음의 상처의 근원지였다. 언제부터 민윤기에게 소중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느끼게 된 때부터 난 무의식중에 내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내가 상대방을 소홀히 여기면 상대방도 그럴 것이 당연하거늘 난 이기적이게도 계속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바랬다. 언제부턴가 민윤기가 익숙해져버려 그런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 설렘을 느끼지 못했던 그때, 사실 그때에 우리 사이를 정리해야되지 않았을까싶다. 한번도 상상한적 없었던 일이기에 내게는 용기가 부족했다. 용기가 부족했기에 외면했고 지금 나는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늦어서는 안되었다. 너무 오래 지켜왔기 때문에 머뭇거렸고 그랬기에 지금은 위험해진 이 관계를 되돌릴수 없을 만큼 더 늦어버리기전에 끝내야했다. 그렇지만 9년이라는 추억을 한순간의 말로 정리하는 것은 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날 저녁 민윤기가 집으로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다가 방에 불이켜지자마자 무작정 민윤기의 집에 찾아가 벨을 누르고 민윤기를 불러냈다. 피곤한 듯한 모습의 민윤기가 몇 분째 입도 떼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내게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저 머뭇거리고 있을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입을 다물고 미동도 않는 내게 초반에는 왜 그러냐고 물어오던 민윤기도 어느새 입을 다문채 그저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시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고 저절로 내려간 내 시야에 내가 신고 있는 운동화가 들어왔다. 민윤기가 제대한 후에 기어코 선물을 사주겠다며 백화점에 데려가 골라보라고 했을 때, 갓 제대해서 돈도 없으면서 무슨 선물을 사주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무관심한척 주위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커플 운동화. 커플 아이템을 맞춰서 하는 것은 유치하다고 생각해왔던 나였기에 나도 내가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의 난 민윤기와 커플 운동화를 신고 싶었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을 아는 민윤기 역시 적잖이 놀란 눈치였지만 순순히 내 요청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그 운동화를 샀다. 아까 집을 나오면서 무심결에 신은 신발이었는데 학교를 갈때 뛰는 일이 잦아 최근에 자주 신었던 그 운동화였다. 한동안 그 신발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힘겹게 입을 떼었다. " 윤기야. " " 응. "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낮게 잠긴 민윤기의 목소리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민윤기의 시선이 오로지 나를 향해있었다. " 이 신발, 니가 나한테 사준거 기억나? " " 응. " " 물론 이 신발 내가 사달라고 하긴 했지만, 여자는 신발 사주면 도망간다잖아. " " ... " " 근데 어떡하지. " " ... " " ...나 너한테서 도망갈까 해. " 내 말에 곧게 나를 향해있던 그 시선이 흔들렸다. 민윤기의 얼굴이 굳었고 우리 사이엔 잠시동안 침묵이 존재했다. " 나 너 여자친구, 이제 안 할래. " " ... " " 돌아가고 싶어. 너랑 친구였던 때로. " 한번 시동이 걸린 입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 나 요즘 힘들어. " " ... " " 웃기지. 넌 나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 혼자 힘들어하고 일방적으로 이렇게 통보하는거. " " ... " " 윤기야. 난 네가 참 좋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근데 이게 너를 친구로 생각해서인지 애인으로 생각해서인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 " ... " "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너에 대해 계속 헷갈려하고 있었던것 같아. 어쩌면 왜 그랬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 " ... " " 너를 잃을까봐 무서웠어. 이제 더 이상은 예전처럼 널 볼 수 없을까봐. 그래서 말 못하고 그랬는데. 근데 아니야, 내 욕심이었나봐 그건. 내 옆에 있으면 나, 너한테 상처를 줄지도 몰라. 나 너에게 그러고 싶지 않아. " " 윤기야. " " ...응. " " 이제 널 놓아주고 싶어. " " ... " "우리... 더 이상은 가면 안돼. 여기서 멈추자. 네 여자친구로 있었던 9년은 이제 잊고 앞으로는 너한테 친구로 남고 싶어. 나중에 내가 후회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 그러고 싶어. " " ... " " ...미안해. " 주책맞게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혼자 오해하고 기대하고 실망한 것도 나였고, 지금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 것도 나였다. 더 이상 아프기 싫어서 전했던 이별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민윤기에게 미안했고 나에게 미안했으며, 우리의 9년이라는 그 긴 시간에게 미안했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를 민윤기는 제 품에 안아주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다른 손으로는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안겨 본 민윤기의 품은 생각보다 넓고 따뜻했다.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은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는 나에게 민윤기가 전한 말은 단 하나였다. 내게 화를 내는 말도 아니었고 날 원망하는 말도 아니었고 알겠다는 그 흔한 대답도 아니었다. ' 미안해. ' 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도 민윤기가 전했던 그 세 글자는 내게 가장 잘 전달되었고 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 좀 쉬어. " " 응. " " 너 그대로 자면 내일 눈 엄청 붓는다. 찜질 하고 자. "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날 민윤기는 내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응. 고마워. 짧게 떨어진 내 대답을 들은 민윤기는 천천히 뒤를 돌아 집을 나섰다. 민윤기가 나가고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펑펑 울었기에 갈증이 났으며 머리가 아팠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몸을 일으켜 집어들은 컵은 익숙하지만 낯선 물건이었다. 민윤기가 이사를 온 후 집에 물건을 채워넣을때 선물한 식기 중 하나였다. 자주 드나들던 민윤기네 집에서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 컵을 바라보다가 우습게도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집고 또 집 안을 뒤져서 찾은 물건들을 바닥 한 가운데에 놓았다. 전부 민윤기와 관련된 물건들이었다. 첫 생일 선물로 받은 이제는 꾀죄죄해진 인형, 찢어질 듯 낡은 민윤기 무료이용권, 민윤기가 좋아하는 고급 헤드폰, 고등학생 민윤기가 첫 농구 경기에서 이기고 받은 농구공과 트로피, 언제인지 모를 민윤기가 우리 집에 두고 간 옷과 별 목걸이 등등. 그리고 신발장의 운동화까지. 우습게도 그 물건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거실 바닥에 쌓인 것들은 나에게 우리의 지난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울컥 치밀어오는 감정에 이를 악 물었다. 지난 시절이 주는 기억 때문에 괴로웠고 힘들었다. 자꾸 과거의 민윤기를, 나를 지금, 현재와 비교했고 돌아갈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과거에만 머무르려는 나 자신을 꾸짖었고 그런 나에서 달라지려고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민윤기에게 힘겹게 내 마음을 전했고 정리했다. 그렇게 간신히 현재로 나왔다. 그런데도 난 지금 내 과거를, 추억을 헤집어 놓았다. 거실 바닥을 가득 메운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지난 시절을 정리하려고, 잊으려고 하는건 바보같은 짓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던 지나온 시절의 기억을 감당하기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난 민윤기와의 헤어짐이 날 과거에 갇혀 있는 날 구해줄수 없었음을 알았다. 우리의 9년을 지울수는 없었다. 정리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추억을 붙잡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건 그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 그것 뿐이었다. 알람 소리에 깨어나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오늘 수업이 오후에만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제 민윤기의 말대로 찜질을 하고 잤더니 다행히도 눈이 별로 붓지 않아 펑펑 운 티가 나지는 않았다. 기지개를 펴다가 무심코 바라 본 시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후 수업만 있다 할지라도 결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전화를 받으려던 손이 잠깐 멈칫했다. 김태형의 전화였다. " 여보세요. " " 굿모닝. " " 어? 어, 응... " " 시간은 모닝이 아니지만 왠지 너한테는 아직 아침일것 같아서. 너 지금 일어났지? " " 응. 방금 일어났어. " " 그럴 줄 알았다. 오늘 오후 수업이야? " " 응. 지금 준비하고 나가려고. " " 그래? " 어제 일 때문에 괜히 혼자 어색해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노력하며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김태형의 목소리에는 전혀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김태형도 나처럼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 나 오늘 어디 좀 가서 학교에 없어. " " 아, 그래? " " 나 보고 싶어서 찾을까봐 말해두는 거야. 보고 싶어도 좀 참고. " " 얼씨구. " " 그리고, " " 어? " " 네가 어제 한 말, 못들은걸로 할게. " " ... " " 사람 마음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거 아니잖아. 그래서 난 지금 너 좋아하는 마음 못 바꿔. 못 그만둬. " " ... " " 그냥 친구로 옆에 있을게. 너 부담같은거 안 줄게. " " 야... " " 그래도 네가 안 봐주면... 그냥 그렇게 평생 옆에 있지 뭐. " " ... " " 짝사랑 상담 전문가로 취직이나 해야겠다. " 어이없는 그 발언에 피식하고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김태형은 늘 엉뚱했고 당당했으며 솔직했다. 나는 그런 김태형의 모습이 좋았으며 또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전화를 끊고 부리나케 나갈 준비를 했다. 서두른 덕분에 다행히 여유있게 길을 걸으며 학교로 갈 수 있었다. " 같이 가! " 따스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나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민윤기였다. " 안녕. " " 어? 어, 안녕. 학교 가? " " 응. 너도? 오후 수업? " " 아, 응. 조금만 늦게 깼으면 늦을뻔했어. " " 뭐야. 방금 일어났어? " " 응. " " 하긴 어제 그렇게 울었으니 피곤할만도 하지. " 민윤기의 입에서 어제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발이 땅에라도 붙은 듯 움직이질 않았다. 민윤기는 분명 어제라고 언급했으며 울었던 나를 기억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민윤기의 행동은 날 의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아, 근데 넌 뭘 그렇게 우냐. 난 진짜 너 울다가 쓰러지는 줄 알... " 계속 말을 하며 몇 발자국 더 걸어가던 민윤기는 그제야 자신의 옆이 비었음을 알아채고 멈춰 섰다. 그리고는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 뭐해? " " ... " " 야, 간만에 베프랑 같이 학교 가는데 늦어서 되겠냐. 어디서 농땡이 피우면서 놀다가 늦었냐고 혼나고 싶어? 빨리 와. " 민윤기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돌아 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래, 베프. 우리 친구지. 어제 분명 내가 먼저 일방적으로 말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라는 그 단어는 왜인지 내 마음 한 구석을 콕콕 찔렀다. 어느새 저만치 걸어가버린 민윤기를 따라잡으려면 달려야했다. 늘 신던 민윤기와의 운동화가 아닌 새 구두를 신고 달리는 일은 내게 낯설었다. 새 신발을 신고 달리는 내 모습처럼, 오랜시간을 친구라는 이름안에서 연인으로 지내다가 온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다는 새삼스레 자각하게 된 사실은 내게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ㅠㅠㅠㅠ 바빠진 탓에 예전같은 연재텀은 힘들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자주 찾아올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기다려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들 하나하나가 저에게 큰 힘이라는거 알아주세요^-^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암호닉 신청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