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13 (내가 느끼는 너와, 네가 느끼는 나)
사각사각. 정적만이 감도는 도서관 안은 어느 누군가의 샤프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김종인은… 엎드려 자는 중이구나.
오늘은 주말, 토요일이었다.
김종인과 놀이터에서 어색하게나마 화해를 하고나서야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다. 아침마다 등교를 같이 하고 급식도 같이 먹고 하교도 같이 했다. 괜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진 않다는듯, 과외 시간이면 녀석은 입을 꾸욱 다문 채 그의 말에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곤 했다. 그게 조금은 답답하긴 했지만, 둘이 티격대며 신경전을 벌이는 것보단 훨씬 나은 것 같았다.
특별할 일 없는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계속 지나가다보니 어느새 여름방학이었다. 수능 때 치를 사탐 과목으로는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선택했다. 그에 김종인은 지리신이라도 되겠냐며, 나중에 저를 데리고 세계일주나 좀 시켜달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곤 했다. 생각해보니 수능은 벌써 4개월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정신 차려보면 내일이 수능 날이겠지. 잡으려 애써도 잡히지 않는 것이 시간이었고, 마음대로 멈추고 조종할 수 없는 것 또한 시간이었다. 남은 4개월… 열심히 해야겠지.
평일엔 야간 자율학습과 과외, 그리고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거라는 내 말에 김종인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난 평일엔 야자, 과외. 그리고 주말엔 하루종일 PC방에 박혀있을 예정이다.'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제 스케줄까지 알려주던 녀석을 보며 한심하다는듯 혀를 끌끌 찼다. 수능이 대략 4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김종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아무런 조급함을 느끼지 않은 채 꼬박꼬박 PC방에 출석 도장을 찍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주말엔 PC방에 집을 짓고 살 거라 떵떵거리며 말하던 녀석이 웬 일인지 오늘은 도서관에 모습을 보였다. 옆엔 오세훈을 단 채 말이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던 녀석의 옆엔 싱글벙글 웃고있는 오세훈이 있었고, 오세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자리에 제 백팩을 내려놓은 뒤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김종인은 하는 수 없이 오세훈의 옆자리에 앉아야 했고, 제 가방 속에서 사회문화 문제집을 하나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딱히 공부를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김종인을 보려면 오세훈을 지나쳐서 봐야 했기 때문에 몸을 살짝 움직여야 했다. 키가 훤칠한 오세훈은 다리만 긴 줄 알았는데, 앉은 키마저 길었다. 키가 큰 편에 속하는 김종인의 모습까지 오세훈의 앉은 키에 가려져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지금, 김종인은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책상에 엎으려 딥슬립(Deep Sleep)이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 얘 왜이리 자냐."
"원래 잠이 좀 많잖아."
수학 문제집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샤프를 돌리고있던 오세훈이 제 옆을 흘끗 보더니 약간의 한숨이 섞인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항상 있는 일이라 별 감흥 없다는듯 말을 툭 꺼내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그러더니 제가 들고있던 샤프의 뚜껑 부분으로 김종인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 오세훈이 제 옆구리를 찌를 때마다 몸을 움찔하던 김종인이 처음은 버티는 듯하더니 꽤나 끈질기게 이어지는 오세훈의 행동으로 인해 신경질적으로 상체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오세훈 관종이냐? 자는데 왜 자꾸 건드려."
"야, 왔으면 공부를 해야지. 잠 자려고 여기 온 거 아니잖아."
제법 그럴 듯한 말을 건네는 오세훈의 문제집을 흘끗 바라보았다. 김종인한테 잔소리를 해대는 넌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나 보자,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나 녀석의 문제집은 새하얀 도화지마냥 깨끗하기만 했다. 문제에만 대충 밑줄을 그어놓고 동그라미 표시를 여러 번 해둔 것이 전부인 페이지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도찐개찐이구만 뭘.
"됐고, ○○이 공부하는데 방해되니까 닥치고 있자."
내 이름을 넣어 문장을 말하는 오세훈 탓에 소름이 끼쳤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오세훈은 정말이지 능구렁이의 정석 같았다. 낯간지럽게 들릴 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오세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뱉자, 곧이어 녀석의 시선이 내게 꽂혀왔다.
"미안, 우리 너무 시끄럽지?"
"… 아, 괜찮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제 손을 살짝 들어 내 등을 작게 토닥이던 오세훈의 손길이 금세 잠잠해졌다. 흘끗 김종인의 눈치를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짓곤 아예 몸을 내쪽으로 돌리며 턱을 괸 채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따가운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럽게 느껴져 일부러 문제집 쪽으로 집중을 가했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쪽 손으로 내 필통을 만지작거리던 오세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열심히 한다. 수능 올 1등급 찍는 거 아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이 왜 안돼. 충분히 가능하지."
"충분하다고? 그럼 네가 올 1등급 찍든지."
"난… 올 7등급 예상."
엄지손가락까지 세워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오세훈을 바라보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뭐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도 애매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굴려 기껏 생각해낸 해답이 그것이었다. 그래, 올 7등듭이라니 굉장히 멋있는걸. 77777이라니…. 마치 행운이 다섯 번이나 찾아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세훈아! … 라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세훈은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은 건지, 자꾸만 내게 말을 걸어 귀찮게 굴기 바빴다. 나 초딩 때 막 파란색 딱딱한 필통 가지고 다녔었는데, 거기 안에 게임기도 있었다? 게임이 여섯 갠가 있었는데 완전 재밌었다니까. 나 학교에서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게임하고 그랬었어. 진짜 용자였지. 그 어린 나이에 선생님 눈치도 안 보고 대놓고 게임을 했으니…. 근데 그거 건전지가 엄청 빨리 닳았어. 그게 좀 아쉬웠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 섬세히 말해주는 오세훈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한껏 업된 채 제 이야기를 풀어놓는 녀석의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듣고 싶진 않았지만, 도중에 말을 끊으면 왠지 미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이트 좀."
그러나, 열심히 떠들어대던 오세훈의 입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꾸욱 다물어졌다. 화이트 좀 빌려달라며 오세훈과 내 사이에 제 팔을 집어넣은 채, 녀석의 손에 들려있던 내 필통을 확 낚아채가는 김종인의 행동 탓이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다시 제 자리로 유유히 걸음을 옮기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빌려간 화이트로 문제집의 어느 부분에 화이트를 칠하던 김종인이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부나 해."
녀석의 딱딱한 말에 괜히 입술이 불퉁 튀어나왔다. 자기도 자고 일어났으면서…. 가운데 껴서 눈치만 살살 보던 오세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조근조근 말했다. 그 말이 또 김종인의 신경을 건드린 건지, 쓰고 난 화이트를 다시 내 필통 속에 집어넣던 녀석이 오세훈에게 시선을 옮기곤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잠깐 나와봐."
*
오늘은 토요일. 7일 중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는 황금 같은 주말 중 하루였다. 아침부터 PC방에 가서 자리 좀 맡아놓자 연락을 해온 오세훈에게 '콜.'이라는 간단한 답장을 보내곤 여유롭게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
그리고 집을 나선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집으로 향하곤, 방에 놓여있던 책가방을 멘 채 또다시 집을 나섰다. 지금쯤 아마 도서관에 있겠지.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니, 아마 지금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수능이 4개월밖에 남지 않은 것에 대한 긴장감과 조급함 따위를 느끼고 공부를 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순간의 감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젠 주말의 PC방보다 주말에 너와 함께 있는 도서관이 더 좋을 듯했다. 안그래도 머리에 안 들어오는 공부 내용이, 너랑 있으면 그에 배로는 더 안 들어올 게 뻔했지만 상관 없었다. 내가 공부하러 도서관을 가겠어? 네 얼굴 보러 가는 거지.
[웬 도서관? PC방 가자 했잖아;]
[아, 몰라. 그럼 나도 갈래. 너 지금 ㅇㄷ냐]
*
찰거머리 같은 오세훈은 정말이지 끈덕진 놈인 듯했다. 소풍이라도 가는 양 싱글벙글 웃으며 백팩을 메고 나온 녀석의 모습에 그저 한숨이 나왔다. 도서관까지 따라오는 건 도대체 무슨… 아니, 왜 끼는 건데. 저새끼는 눈치라는 게 없는 건가. 눈치는 밥말아먹은 오세훈 때문에 정말이지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 후로도 오세훈은 계속해서 내 신경을 긁어댔다. 내 자리를 스틸해 먼저 앉아버리지 않나, 살짝 건들기도 아까워 나도 손을 못 대고있는 애한테 아무렇지 않게 스킨쉽을 하지 않나. 아예 대놓고 몸을 그쪽으로 돌려 제법 친한 척을 해보이며 온갖 쓸 데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만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주 소심하고 소심한 방법을 골라 오세훈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고자 녀석을 밖으로 불러냈다.
*
"또 뭐. 안에서 얘기하지 뭘 밖으로 불러내고 그러냐."
"너 여기 왜 따라왔냐. 나 엿 먹이려고 왔어?"
"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먼저 일을 벌인 셈인 녀석이 도리어 화를 내듯 답했다.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더욱 짜증이 났다. 괜히 큰소리를 내며 직설적으로 말을 했다간 돌이킬 수 없을 법한 일을 내 스스로 만들게 될 것만 같아 애써 속으로 화를 삭히곤 오세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쟤 원래 공부할 때 누가 옆에서 조잘거리는 거 질색하는 애야."
"……."
"네가 무슨 감정으로 자꾸 찝쩍거리고 들이대는 건진 모르겠는데, 닥치고 공부나 해라."
역시 돌려 말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오세훈한테 숨기고 있던 감정을 들켜봤자 좋을 것 하나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그러나, 역시 돌려 말하기란 힘들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직설적인 사람이었지.
"너 혹시."
"……."
"유치하게 질투… 뭐 이런 거냐?"
"뭐?"
"아님 그냥 쓸 데 없는 오지랖인 건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작게 박수를 치는 녀석을 바라보며 인상을 굳혔다. 왠지 휘말려들고 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괜스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도 웃긴 건지, 한참이나 소리내 웃던 오세훈이 내 어깨를 작게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야, 우리 친구잖아."
"……."
"나한테까지 숨기는 이유가 뭔데?"
"뭐라는 거야. 알아 듣게 좀 말해."
"너 ○○이 좋아하지."
"뭐?"
"아, 그래. 좋아하는 건 아니라 치자. 어쨌든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 맞지?"
"갑자기 지랄이야, 왜."
"지랄이라니. 김종인 연기 존나 못한다. 야, 내가 눈치백단인 것도 맞는데, 네 발연기도 한 몫 한 것 같다."
녀석의 말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금까지 우려하던 일이 바로 벌어지고 만 셈이었다. 내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마냥 정곡을 콕콕 찔러대듯 말하는 오세훈 탓에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질투났지? 미안. 아깐 그냥 너 떠보려고 해본 거였어."
"……."
"이제야 확신이 드네. 너 ○○이한테 연애감정 같은 거 느끼고 있구나."
"… 개소리 작작해라."
"니니야, 형이 도와줄까? 어? 연애코치 같은 거 해줘? 원해?"
"아, 꺼져. 연애코치 같은 소리 하고있네. 네가 연애를 알아? 연애를 글로 배운 새끼한테 뭘 배워, 배우긴."
능글맞게 말하는 오세훈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정말이지 도움도 안 되는 놈이다. 연애마저 글로 배워버린 오세훈이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해오니 그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오세훈이 연애코치를 해줘? 순간 잊고 지내던 기억 하나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창가를 통해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와 책상을 잔뜩 비추던 어느 점심시간, 급식도 포기한 채 홀로 교실에 남아 기욤 뮈소의 '구해줘'라는 로맨스 소설책을 읽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던 녀석에 대한 기억 말이다. 오세훈은 은근 기집애 같은 면이 있었다. 연애코치 따위 바라지도 않아. 특히 너한텐 더더욱.
"아, 근데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그럼 뭐야. 사랑하는 거야?"
"……."
"미안, 장난이고. 음… 좋아하는 거 맞잖아. 지금까지 네가 해온 행동들을 생각해 봐."
"내가 뭘 했는데."
"… 진짜 안 좋아한다고?"
"어."
"진짜로? 네 한달치 치킨을 걸고?"
"어."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봐."
"뭔데."
"저번에 너 4교시까지만 하고 조퇴했던 적 있지."
"아마."
"너 그때 나한테 부탁했었잖아. ○○이 집 좀 데려다 주라고."
"내가 그랬나."
"기억 안 나는 척하지 말고. 그때 왜 그랬던 건데?"
"그냥. 너 혼자 가는 거 심심할까 봐."
"그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냐."
눈썹을 꿈틀거리며 답답하다는듯 말하는 오세훈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대로 녀석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이상 말해봤자 내게 좋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라고 부정을 하긴 했지만 눈치가 빠른 오세훈은 이미 눈치챈 듯했고, 앞으로 시도때도 없이 놀려댈 게 뻔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아무한테나 그 사실을 떠들어대고 다닐 만큼 입이 가벼운 놈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냥 창피했다. 숨기겠다고 숨긴 건데, 녀석한텐 그게 그렇게나 많이 티가 났나 보다. 나 혼자만 간직하려 애쓰던 마음을 누가 알게 되다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
먼저 자리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들을 바라보며 대충 무언가를 끄적여댔다. 그리고 곧이어 오세훈이 이쪽으로 걸음을 옮겨왔고, 제 자리에 앉는 듯하더니 잠시 멈칫하며 분주히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문제집까지 가방 속에 집어넣곤 내 머리에 제 손을 올려놓은 채 입을 여는 녀석을, 불만이 잔뜩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난 이만 가야겠어."
"……."
"빠이."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며 미련없이 자리를 뜨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헛웃음을 내뱉었다. 안그래도 조용하던 주변이 순식간에 더욱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책상에 올려져있던 휴대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보나마나 오세훈일 게 뻔했다.
[센스 쩔지? 일부러 형아가 자리 피해줬다.]
[둘이 오붓한 시간 가져. 즐거운 도서관 데이트 되시길...♡]
장난기 가득한 녀석의 문자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가운데가 볼록한 모음 하나를 입력해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그리곤 오세훈이 가버려 자연스레 비게 된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오세훈은 싫었지만 단 둘만 남게 된 지금 이 순간은 좋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문제집만 풀고 있는 너를 곁눈질로 실컷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잠시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오세훈이… 아니, 오세훈새끼가… 다 알아버렸어. 내가 너 좋아한다는 걸 그새끼가 알아버렸어. 나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아.
"종이야."
"응."
"오늘 도서관 왜 왔어?"
"아무리 생각해도 수능이 4개월 남은 이 시점에 PC방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손가락으로 내 팔을 톡톡 건드리며 물어오는 네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순간 너 연기 정말 못한다며 비웃던 오세훈의 모습이 생각나 조금은 화가 났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주는 모습에 나름 안도감이 들었다.
"공부는 좀 했냐? 김종인 문제집이나 한 번 검사 해볼까?"
"아, 됐어."
"치, 싱겁긴."
입술을 불퉁 내민 채 삐진 척을 해보이는 모습에 그냥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곤 문득 의도치 않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너랑 연애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너랑 사귀는 남자는 좋겠다. 이런 귀여운 모습도 매일 매일 볼 거 아니야.
오세훈 말이 맞아. 나, 너한테 연애감정 같은 거 느끼고 있어. 티가 났을진 모르겠는데, 너만 보면 막 두근거리고 떨려. 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괜히 설레서 미치겠어. 살짝 건드리기도 아깝고 소중해서 너를 대할 땐 뭔가 더 조심하게 돼. 이런 감정 넌 느껴본 적 있어?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 너도 꼭 느껴보길 바래. 내가 너한테 느끼는 감정들을 너도 나한테 느꼈으면 좋겠어. 나한테 네 존재가 크듯, 너한테도 내 존재가 컸으면 좋겠어. 내가 느끼는 너와 네가 느끼는 내가 동일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감정과 네 감정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 네가 날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애 하고 싶어, 너랑.
*
김종인은 분명 엎드려 잠만 잘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시원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한숨도 안 자고 사회문화를 3강까지 끝내놓았다며 자랑스레 말하던 김종인에게 대견하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도서관을 나섰다. 뻐근하다며 목을 두어 번 움직이던 김종인이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지만….
먼저 버스에 올라타곤 교통카드를 찍었다. 그러나 곧이어 잔액이 부족하다는 알림음이 울렸고, 서둘러 지갑을 열어 현금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텅텅 비어있는 지갑 안엔 만원짜리 한 장과 백원짜리 두어 개가 전부였다.
"아저씨… 제가 지금 만원짜리밖에 없는ㄷ…"
"두 명이요."
뒤에 서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김종인이 내 몫까지 제 교통카드로 찍어주곤 먼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게 조금은 얼떨떨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녀석이 앉아있는 바로 뒤쪽의 빈자리로 다가가 털썩 앉았다.
"……."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김종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어렸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듯했다. 어깨도 넓어졌고 등판도 넓어졌다. 이제 소년에서 어엿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직 열 아홉 살이었지만, 느낌은 그랬다. 더이상 소년이 아닌 것만 같았다.
"김종인."
"왜."
"버스비 내줘서 고마워."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고맙다 할 필요 없어."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김종인이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녀석을 따라 작게 웃음을 짓곤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짧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자꾸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김종인 머리카락은 너무 짧아서 땋을 수도 없어."
"아, 하지마."
"김종인 샴푸 냄새 짱 좋아."
굳이 맡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풍겨오는 산뜻한 샴푸 향이 좋았다. 내 말에 녀석이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방금 꺼낸 말이 조금은 어색해져 작게 헛기침을 하곤 괜히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두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밖은 약간의 어둠이 내리앉아 있었다.
곧이어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서 멈췄고, 제법 널널하던 버스 안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어느새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찬 자리들을 바라보았다. 북적북적했다.
"… 아, 여기 앉으세요."
갑자기 김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제 앞의 손잡이를 잡고있던 임신하신 아주머니께 자리를 양보했다. 고맙다 말하며 천천히 자리에 앉는 아주머니께 작게 웃음을 짓곤 내 앞으로 와 손잡이를 잡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 김종인 짱 멋있네."
실실 웃으며 말하자 괜히 쑥쓰러운지 내 엄지손가락을 꾸욱 눌러버리는 녀석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녀석의 셔츠 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여기 앉을래?"
"됐어. 너 앉아."
내 머리를 꾸욱 누르며 말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만 앉아있는 게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좀 이따가 자리 나면… 어, 저기 두 자리 비었다."
곧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커플이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전에 얼른 가서 앉으라며 녀석에게 말하자, 그쪽으로 흘끗 시선을 주던 김종인이 내 손목을 살짝 잡으며 입술을 뗐다.
"너도 같이."
"어?"
"같이 앉자고."
어린 아이라도 된 양 내 손목을 잡아끌며 말하는 녀석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비어있는 두 자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먼저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김종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아직까지 녀석의 손에 잡혀있는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녀석의 손등 위로 살짝 드러난 힘줄에 괜스레 가슴이 떨렸다. 손목에 닿아있는 녀석의 미적지근한 체온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설렜다.
"김종인."
"응."
"덥지 않아?"
"더워."
버스 안은 나름 시원한 편이었다. 그러나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땀이 송골송골 맺힐 것만 같았다.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김종인은 어떤 마음일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계속 내 손목을 잡고있는 모습이 조금은 궁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자꾸만 마음이 간질간질거리는 게 기분이 좋았다.
요즘들어 김종인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마음이 간질간질, 찌릿찌릿.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나쁜 감정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 건지 모르겠다. 분명 좋아하는 건 아닌데…. 좋아하는 거… 아닌데…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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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왠지 오랜만인 것 같네요.. 참, 일요일 마지막 콘서트 잘 다녀왔습니다..ㅎ 가서 펑펑 울고 왔네요.. 정말 좋았어요♥ 대신 감기를 얻어왔지만...ㅠㅠ 독자 여러분들도 감기 조심하세요! 날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아침 저녁으론 꽤 쌀쌀한 것도 같더라구요.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참 답답합니다. 도대체 행쇼는 언제쯤 하려고... 이러는 건지.... 저도 모르겠네요... 빨리 연인 사이로서의 이야기도 끄적이고 싶긴 한데 왜이리 멀게만 느껴지는 거죠.. 좀만 기다려주세요... 얼른 행쇼하자..☆
스폰지밥/러블리/두부/종이니/기화/핫초코/공삼이육/네네스노윙/지블리/로운/똥잠/알콩/아가야/Paper/세젤빛/꽯뚧쐛뢟/얍얍/늘봄/종이페이퍼/고구마/도비/똥강아지/두둠칫/복숭아/윤아얌/불가/제인/스누피 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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