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친구라고도, 그렇다고 모르는 아이라고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아이가 있었어. 걔가 중학교 때 부터 안 앤데. 솔직히 그때는 지금처럼 연락을 잘 못하잖아. 근데 걔가 또 우리 옆집이라. 그래서 그냥 심심하면 밤에 만나서 놀고 그랬어. 학교에선 그렇게 친한 척 하진 않았지. 그저 그랬어.
근데, 아마 고등학교 올라가고 몇달 뒤 였을거야. 걔가 날 보는 시선이 조금 씩 바뀐게.
그 때 마침 우리학교가 사립으로 바뀌면서 두발자유가 되서. 기르기만 했던 머리를 파마한다는게 미용실 아줌마의 착오로 흐물흐물 하게 되버렸지 뭐야. 그냥 곱슬머리같다고 해야되나. 되게 파마머리 치곤 차분해 보였어. 근데 그 머리도 예뻤던 것 같아. 무엇보다 걔가 되게 좋아했거든. 친구로서 머리가 예쁘다고 좋아하는 거지만 나도 기분 좋았어. 왜냐면 중학교땐 몰랐지만 되게 잘생겨 졌거든. 원래 잘생긴 사람이 그러면 설레기 나름이잖아.
아까 앞에도 말했듯이 걔는 잘생겼었어. 우리학교에서 제일 잘생겼대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어. 그래서 여자애들이 많이 꼬였어.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여자애들이 나랑 친구여도 고운 시선으로 볼 수가 없었어. 잘은 모르겠는데 확실한건 걔도 그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거든.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즈음에 걔가 연습생으로 들어갔단 소리를 들었어. 역시 사람은 얼굴이 잘생겨야 하나봐. 그냥 이제 멀어지겠구나. 하고 딴 사람 생각하듯 했지.
의외로 걔는 연습시간이 짧았어. 고 2 후반정도에 데뷔가 확정됬다면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나도 그러려니 했지. 또 신기하기도 했고. 바로 옆집살던 꼴뚜기 같던 애가 파란만장한 연예계로 데뷔한다니까. 언제 앨범이라도 나오면 하나 사야겠다- 하고 생각하곤 내 할일을 했어. 그 외에도 다른 소문들이 많이 들렸지만 근거 없는 소문이였거든.
그러던때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어. 평소 같으면 독서실에 가지만 그 날엔 가족들이 여행을 가서 그런지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었는데. 옆집에서 이사가는 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무슨일이지 하고 나가봤지. 그랬더니 그 아이 집이 이사가고 있더라고. 물론 그 아이도 이삿짐을 거들어 주고 있었고.
"이사 가는거야?"
"어 그렇게 됬네."
"데뷔한다면서. 열심히 해"
"응. 너도 열심히 해. 공부"
그냥 간단간단하게 얘기하곤 난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공부했어. 전화번호가 있으니까 딱히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만약 옆집에 계속 산다고 해도 데뷔를 하면 잘 찾아오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그 아이는 그날부터 학교도 잘 나오지 않았어. 이제 완벽하게 데뷔연습을 한다고 들었어. 나와 다른 세상 얘기같이 느껴졌지.
그러다가 고3즈음에 티비에 나왔다고 들었어. 보니까 잘하는 거 같더라. 예명도 지었고. 당신은 나의오빠? 라는 프로그램이라고 들었어. 근데 난 듣기만 한게. 공부를 해야 했거든. 내 나름대로 가고싶은 대학교도 정해둔 참 이였어.
고3이 되니까 시간은 예전과 다르게 빨리빨리 지나가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여름방학이였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니 수능이 한달도 채 안남았었어. 그때는 정말 휴대폰이고 티비고 뭐고 다 끄고 공부에만 집중했는데. 그때 만약 안그랬다면 걔랑 연락할 수 있었을 지도 몰라. 문자가 왔었거든. 번호 바꾼다고. 근데 내가 한달동안 무시하니까. 아마 걔도 내가 번호를 바꿨다고 생각 했나봐. 그래서 엇갈려버리고 서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 조차 없어졌어.
수능이 끝나고 설레는 캠퍼스 생활이 시작 됬어. 나름 나만의 캠퍼스 판타지가 있었는데. 다 아니더라. 그냥 힘들었어. 고등학교와 다른 게 편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혼자 산다는 게 제일 무서웠어. 나 혼자 다른지역에 뚝 떨어져 있으니까 소외감도 느꼈고. 그냥 향수병 같았어.
그러다 그러다가, 티비를 보는데 그 애가 나왔어. 정말 데뷔초때. 아니 학생때와 다르게 정말 잘생겨졌더라. 물론 그때도 잘생겼지만. 그래서 어쩌다보니까 멤버들도 마음에 들구 그래서 좋아하게 되었어. 그냥 남들이 알지못하게 조금조금. 앨범을 하나하나 모으곤 컴백한다는 소식에 냉큼 예약구매를 했지.
학창시절에도 그랬지만 난 운이 좋은가봐. 팬싸인회에 당첨이 됬거든. 오랜만에 걔를 본다는 생각에 조금 두근되기도 했지만. 걔가 아직까지 나를 기억할리는 미지수잖아. 그래서 그냥 팬으로써 가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로 했어. 그래도 알아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고등학교때랑 다른게 없거든. 여전히 긴머리에 웨이브였어. 그냥 이머리가 제일 익숙했거든. 염색한번 하지 않은 머리를 보면서 꾸밀까 생각하다 말았어. 뭘 이렇게 신경쓰나 좀 새삼스럽기도 했고.
그리고 팬싸인회장에 갔어. 내 생각과 같게 팬들은 엄청 많았어. 뒤에서 미는애들도 없지 않아 있었지. 근데 나랑 똑같은 머리스타일이 많았어. 긴머리 웨이브 말이야. 어쩌다가 중학생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걔 이상형이 방송에서 언급된 적이 매우 많은데 긴머리 웨이브래. 역시 옛날부터 알아봤지만 집착은 대단한거 같았어. 구체적이잖아. 걔다가 그렇게 언급한지도 좀 됬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팬싸인회가 시작됬어. 내 번호순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내 차례가 왔어. 그래서 난 떨리는 마음으로 앨범을 들고 하나하나 사인을 받기 시작했어. 다들 하나같이 성격이 좋았어. 다정스럽게 물어보는 태도에 설레기도 했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그 아이의 차례가 왔어.
"이름이요?"
"나뚜기요."
걔가 이름을 슥슥 적다가 멈칫하더니 나를 들여다 봤어. 혹시 날 알아본건가 싶어서 기대했는데 아니더라. 그냥 머리가 예쁘다면서 웃더라. 그래서 약간 실망하기도 했어. 그래서 아 네. 하면서 나도 웃었어. 그 자리에서 정색하면서 그럴 순 없잖아? 그러니까 갑자기 걔가 그러더라.
"P.S 써드릴까요?"
"네?"
"써드릴게요."
그러더니 싸인을 한 앨범 사진 밑에 슥슥슥 뭘 적더니 딱 덮어서 주더라. 그러곤 말했어. 다음에 또봐요. 나는 약간 웃으면서 내려왔어. 그리곤 곧바로 집에갔지. 딱히 계속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것도 내 예상이 틀렸었나봐. 집에와서 P.S를 확인했을 땐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어.
'오랜만이다. 여기까지 와줘서 감동인데. 끝날때까지 기다려.'
아. 다시 가야되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끝날 시간이더라구. 어쩔 수 없지 뭐. 기회가 된다면 또 당첨되겠지. 아쉬운 마음은 크지 않았어. 왜냐면 엄연히 걔는 공인이고 나는 일반인이니까. 그러니까 인소같은 특별한 상상은 안했거든. 그리고 그 그룹은 한두달 정도 활동을 끝내곤 다시 휴식기간에 접어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