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비온다.
옷 젖는거 싫은데, 부루퉁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민 성열이 신발장 위에 놓여있는 노란 우산을 집곤 집 밖으로 나갔다.
툭툭 길바닥에 튕겨 저한테 오는 빗방울에 심통이 난 성열이 온갖 짜증을 내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 담장에 혼자 앉아 제 발을 핥아대는 고양이가 성열의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를 본 성열의 눈이 반짝 빛났고 이내 성열이 고양이가 도망갈까 싶어 조심, 조심히 발걸음을 담장 쪽으로 옮겼다.
“와, 이쁘다.”
파란 고양이의 눈에 제 모습이 비치자 활짝 웃은 성열이 바닥에 우산을 내려놓고는 담장 위로 손을 올려 고양이를 들어 제 품에 꼭 껴안았다.
아, 너무 이쁘다.
자신의 품에 안겨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저와 눈을 맞춰오는 고양이에 웃음 터지려는걸 막은 성열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이내 입술을 고양이에게 가져다댔다.
“아이, 귀여워라. 집에 가서 밥이나 줘야지.”
*
“네 이름은 뭘로 할까? 고양아”
얌전하게 앉아 빨간 혀를 낼름낼름 거리며 흰 우유를 핥아먹고 있는 고양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성열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찰싹 손바닥 박수를 쳤다.
“쫑이! 쫑이다, 쫑이!”
고양아, 오늘부터 네 이름은 쫑이야, 알겠어?
신나서 방방 뛰는 성열을 물끄럼 쳐다보던 쫑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다시 우유로 고개를 돌렸다.
“쫑아, 넌 안 좋아? 이 형아가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쫑아, 쫑아, 쫑아아...
먹는데 옆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자꾸 귀찮게 하는 성열에 화가 난 쫑이가 앞발을 휘둘러 성열의 손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아파!
짧게 소리지른 성열이 씩씩거리다 쫑이가 먹고있던 우유그릇을 뺏어 높은 식탁 위에 올려두고는 흥 소리를 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 우유, 내 우유 내놔, 우유우유우유우유우유
성열이 들어간 방의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쫑이 한참을 쳐다봐도 성열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퍽하고 방바닥을 몇 번 때린 뒤 우아한 자세로 일어나 우유에게 다가갔다.
좀만 더, 좀만 더, 우유우유우유우유
쫑이의 애를 태우는 듯 살짝씩만 부딪혀오는 우유그릇의 감촉에 성질이 난 쫑이 거칠게 앞 발을 놀리자 우유그릇이 퍽! 하고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제 발바닥에 튀긴 우유를 살짝 핥은 쫑이 바닥에 쏟아진 우유를 보고는 저걸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이내 발걸음을 반대 쪽으로 돌렸다.
난 우아하니까.
“야! 쫑, 쫑!! 뭐하는거야!”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온 성열이 성질을 내며 쫑이를 안아들었다.
“이씨, 쫑이 젖었잖아!”
우리 쫑이 털 끈적해지겠다, 이씽
볼멘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을 욕실로 옮기는 성열에 쫑이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
“쫑! 오늘부턴 여기서 자는거야, 알았지?”
푹신푹신한 베개에 자신을 뉘어주는 성열의 손에 쫑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보름달이 성열의 방안을 비추자 귀를 몇 번 쫑긋하던 쫑이 고개를 팍 쳐들고 이불 안으로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들어갔다.
그리고 이불이 들썩들썩 들리기 시작하더니 팍하고 성열의 손이 아닌 사람의 손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연이어 머리도 튀어나와 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이불에서 나와 몸을 쭉쭉펴는 스트레칭을 몇 번 하고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성열의 쪽으로 머리를 숙여 빤히 쳐다봤다.
“얘 나 좋아하나?”
먹을 것도 주고, 내가 지 할퀴었는데도 씻겨주고, 이런 폭신한 곳에다가도 재워주고.. 음..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대해주더라.. 아.. 뭐더라.. 나 분명 어디서 봤는데..
인상을 찡그리며 기억을 더듬던 쫑이 뭔가 생각난듯 눈을 반짝 빛냈다.
*
“응..”
뭔가 계속 자기를 핥는 이상한 기분이 든 성열이 두 손으로 눈을 비비고는 자신의 몸에 올라와있는 무언가를 옆으로 밀쳤다.
쫑인가..
“하지마, 쫑아..”
자신의 만류에도 계속 자신의 배쪽을 핥아오는 쫑이에 이상한 기분이 든 성열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쫑이를 밀쳤는데. 어라?
“아ㅇㅣㅋ?”
“...”
“아ㅇㅣㅋ아ㅇㅣㅋ?”
“......”
“악!! 사람살려!! 도둑이야!!!!”
인상을 찡그리며 제 입을 막는 낯선이에 겁에 질린 성열이 손을 뻗어 낯선이를 마구마구 밀치면서 때리기 시작했다.
“쉿, 조용히 해”
“놔!!놔!!”
“쉿, 쉿, 나 쫑이야.”
“우리 쫑이 어쨌어!”
“진정해, 나 쫑이라니깐?”
“.....?”
갑자기 자신이 쫑이라고 말해오는 낯선이에 저항을 멈추고 이상한 표정을 지은 성열이 얼굴을 그 사람에게로 가까이 댄 후 천천히 관찰했다.
“쫑이?”
“응”
“진짜 쫑이야?”
“응, 진짜 쫑이.”
“근데 왜 사람이야?”
“달 떴으니깐.”
“쫑이 달 뜨면 사람으로 변신해?”
“응”
그렇구나, 하며 헤실헤실 웃던 성열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손을 들어 자신을 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내리치고는 소리질렀다.
“니가 무슨 쫑이야! 변신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가!!”
연속으로 성열이에게 얻어맞은 쫑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고는 으르렁대며 성열을 침대 위로 밀쳤다.
“어?”
“너 나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에 맞게 대해줄라 했는데, 이젠 너 싫어 그러니까 내 맘대로 할거야.”
“뭐?”
*
하지, 마...
침대시트를 꼭 부여잡은채로 자신의 밑에서 흔들리는 하얀 살결의 나신에 느리게 제 입술을 혀로 핥은 쫑이 고개를 숙여 성열의 등에 입술을 갖져다 대고는 세게 빨아 올리기 시작했다.
“아흑.. 진짜...”
“이쁘다.”
암컷도 아닌데 왜 이리 예쁘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잠시 멍하니 생각하던 쫑이 이내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밑에 있던 성열에게서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마, 응, 하지마..”
“이미 벌써 했는데 아직도 튕겨, 튕기길.”
“나 힘들어.. 그만 해, 응?”
“싫어.”
아직 한참 남았는걸.
등에도 모자라 목과 팔에도 울혈을 남기려는지 쪽쪽 제 몸을 빨아올리는 자칭 쫑이라는 낯선이를 보곤 성열이 울먹였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쫑아, 쫑아...”
“응.”
“그만하면, 읏, 안되?”
“응, 안되.”
“흑, 왜 안되? 응!”
“아직 덜 풀렸으니깐.”
“뭐가? 앗!”
성열의 질문을 무시한채 제 할 일만 열중하던 쫑이 갑자기 목소리의 톤이 확 높아진 성열을 눈치채고는 그 곳을 세게 쳐 올렸다.
“응! 안, 흣 되!”
“여기구나.”
“응, 싫어, 싫...어!”
몸을 부들부들떨며 자신에게 매달려 오는 성열에 한순간 이성을 놓을뻔한 쫑이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는 입을 열었다.
“성열아.”
“응, 읏! 말, 시키지, 핫! 마!”
“나 고양이로 돌아가지 말까.”
너 너무 귀엽다 근데 고양이로 돌아가면 이런거 못 하잖아.
근데 평소엔 고양이가 더 편한데, 몸도 가볍고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도 있고, 어쩌지.
“응, 말해봐 나 고양이로 돌아가, 말아”
“읏! 돌, 아가!”
“......미워.”
성열이 미워, 나빠.
*
정사를 끝내자마자 이불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낯선 이에 성열이 삐그덕 거리는 몸을 힘겹게 들어올려 이불을 걷어냈다.
“...어라?”
분명 그 사람 여기로 들어갔는데, 이상하다.
이불 밑을 더 자세하게 쳐다보지만 쫑이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설마..
“쫑아.”
손을 뻗어 쫑이를 가볍게 쓰다듬자 쫑이가 아까완 달리 얌전한 태도로 갸르릉 거린다.
“너 설마 아까 그 사람이야..?”
성열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린 쫑이 성열에게로 다가와 옆에 누웠다.
“...설마..”
허.. 참.. 살다보니 이런일도 다 있네..
헛웃음을 내뱉은 성열이 허공을 쳐다보다 쫑이를 쳐다보다를 반복하다가 픽 웃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내가 꿈 꾼거겠지... 설마...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키고 욕실로 들어선 성열이 거울에 비치는 제 몸을 보고 기함했다.
온 몸에 빼곡히 새겨져 있는 울혈, 울혈, 울혈.
이, 이, 이 고양이새끼가 진짜...
입술을 꼭 깨문 성열이 씩씩거리며 욕실에서 나와 쫑이에게로 다가가 퍽퍽 쫑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나쁜놈!!!”
아파!
높게 소리치던 쫑이 성열의 손이 매운지 휙 날렵하게 몸을 날려 성열의 방에서 벗어나 거실에 있는 쇼파위에 앉아 제 머리를 쥐 뜯으며 소리 지르는 성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흥 저건 또 왜 난리야.
내가 친히 내꺼라는 자국 좀 내줬더니.
이거 아무한테나 안 해주는건데 내 맘도 모르고 이성열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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