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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민윤기x야쿠르트남 박지민 3 

 

 

내 말이 끝나자마자 웃음을 빵 터트린 고딩은 당최 웃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쯤 내 얼굴은 홍당무 수준을 넘어서 태양초 고추장 정도는 됐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이 이렇게까지 화끈 거릴 수가 없다. 분명히 김태형이 시킨 대로 내가 저 고딩 놈한테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할려고 했을 뿐인데 하필이면 왜, 많고 많은 훈계들 중에 요쿠르트… 아, 생각하기도 싫다 진짜. 인정하고싶지는 않다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태형 말마따나 찌질한 찌민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 죽을 병에 걸려서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흑역사를 고르라 하면 방금 일을 제일 먼저 고를 것이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보니 내 주댕이가 그렇게 못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댕이를 쭉 내밀고 왼손으로 툭툭 쳤다. 망할 주댕이. 방정맞은 박지민 주댕이. 

 

 

"푸하하하하하하. 아, 아오 배야. 너 덕분에 간만에 빵터졌다. 푸하하, 나보다 요쿠르트 500줄 더머거쪄? 구래쪄?" 

"…너 조용히 해." 

"아 진짜 눈물 날 정도로 웃기네." 

"……" 

"근데 너 몇살인데 나보다 다섯 살 많다고 한 거야." 

"……니가 알아서 뭐하게." 

"어쭈, 요쿠르트 500줄 더 먹으면 그따구로 대답하나." 

"조용히 해 이 고딩아... 씨이..." 

"주댕이나 쳐 때리지 말고 니 옆에 요플레나 치워. 요즘엔 애도 안 흘리는 걸. 내가 살다살다 먹을 걸 이렇게 신박하게 버리는 놈은 처음 봤다." 

 

 

그 말에 내 옆에 고이 모셔 두었던 복숭아 요플레가 번뜩 생각 나서 고개를 돌렸다. 아까 일어나서 뭐라 할 때 엎어진 건지 반 정도 남겨뒀던 요플레가 모조리 다 정자에 엎질러져 있었다. 이렇게 더운 여름 날씨에, 어르신들 쉬시는 정자에, 달달한 복숭아 요플레를 엎어놓고 주댕이 때리기에만 집중했었다니... 오늘은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에이씨." 

"얼굴이 애처럼 생겨서 그런가 하는 짓도 애네 애." 

"너만 아니였음 요플레 엎을 일도 없었잖아!" 

"그러게 누가 맨날 쳐 쉬면서 요플레나 쳐 먹으랬나." 

 

 

내가 저 복숭아 요플레 단가가 얼만지, 몰래 하나씩 빼 먹으려면 내가 꼬맹이들과 아주머니들에게 야쿠르트를 얼마나 많이 팔아재껴야 되는지, 남들은 잘 안 먹는 복숭아 요플레가 얼마나 맛있는지도 모를 거다. 그러니 복숭아 요플레한테 저렇게 모질게 대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물티슈도 휴지도 없는데 저 걸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야, 고딩. 너 휴지 있어?" 

"있으면 뭐 해줄건데. 맨입으로 받아먹을라고." 

"…넌 이 꼬라지를 보고도 나한테 뭘 바래?" 

"휴지 받기 싫어?" 

"……" 

"얼른 말해봐." 

"…복숭아 요플레 세 개 줄게." 

 

 

고딩은 내 제안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3초 정도 망설이더니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기 가방에서 뭘 뒤적뒤적 거리더니 휴대용 휴지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니 제안도 너무 애 같애서 별론데 불쌍하니까 이 엉아가 준다. 이거라도 써서 닦아." 

"...ㄱ, 고마워." 

 

 

저 고딩이 건네준 휴지를 받아들고 휴지를 뽑으려고 했는데 열어보니 한 쪽은 물티슈가 있고 한 쪽에는 싸구려 휴지가 있는 휴지였다. 예상도 못 했던 물티슈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고딩은 팔짱을 끼고 날 내려보고 있었다. 괜히 움찔해서 나는 시선을 내리고 물티슈와 휴지로 정자를 깨끗히 정리했다. 그리고서 리어카에서 복숭아 요플레 세 개와 일회용 스푼까지 챙겨서 고딩에게 건넸다. 

 

 

"너가 맘에 들든 말든 일단 약속한 거니까." 

"그래 내 마음에 안 들지만 일단 받을게." 

"끝까지 그러지 씨이... 여튼 휴지는 고마웠어." 

"오해 하지 마라. 그 거 길 가다가 받은 건데 버리려다가 그냥 버리기 귀찮아서 너 준거다." 

 

 

어이가 없어서 줬던 복숭아 요플레를 도로 뺏고 싶었다. 아니 요즘 고딩들은 다 말 꼬라지가 저런가? 복숭아 요플레 그 거 내가 먹을려고 겨우겨우 세 개 꽁쳐놓은 건데. 꿀밤이나 한 대 먹이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고딩은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그 날 밤 호프집에서 김태형을 만나 내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나서 김태형과 그 고딩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내 얘기를 들었던 김태형은 그 고딩이 한적한 아파트 사이에서 웃어서 소리가 울렸던 것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제끼는 바람에 다시는 그 호프집은 못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날 더러 계속 찌민,찌민 거렸다. 김태형의 술주정 반 놀림 반의 해결책을 들으면서 내 속을 위해서라도 둘 다 안 만나는게 답이다 싶어서 거의 일주일 가까이 피해다니고 있었다.  

김태형 따위야 내가 연락 씹고 안 만나주면 그만이었지만 그 고딩 놈이 문제였다. 일단 이 동네 어디 사는지도 모를 뿐더러 학교에 제 때 맞춰서 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가 피해 다닌다 한들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백날 피해다녀봤자 그 놈이 내가 다니는 길목으로 잠깐 들러도 끝인 것을. 찌질해보이지만 무려 2주에 가까운 일주일 동안 그 녀석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하지만 그 녀석 때문에 메이저 장사루트가 바뀌어서 매출은 약간 휘청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아침 배달을 끝마치고 이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두 번째로 후미진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아 복숭아 요플레를 먹고 있었다. 어찌된 게 이 요플레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하이얀 빛깔의 요플레에 노오란 복숭아를 같이 스푼에 담아서 한 입에 쏙 넣으면... 

 

 

"안 보이더니 잔소리 안 들을려고 이젠 숨어서 농땡질이네. 완전 애가 따로없네." 

 

 

쟤는 도대체 왜 학교도 안 나가고 이 시간만 되면 나한테 얼쩡거리면서 날 귀찮게 하는 걸까. 이번에는 요플레를 엎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후루룹 먹어 치우고 리어카에 달아놓은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고딩을 올려다 봤다. 

 

 

"이름이 뭐였더라... 고딩 너는 이 시간에 학교 안 가? 너 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찾아와." 

"나 피해 다니면서 장사는 잘 했냐?" 

"그 걸 왜 물어봐. 난 어련히 장사 잘하는데..." 

"그럼 너도 왜 나 학교 다니는 걸 물어봐." 

"아니, 넌 학생이고 난," 

"그 거나 이 거나 똑같은 질문이지. 바보 아냐."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대답 쓱 피하지." 

"나도 물어봤잖아." 

 

 

그 말을 끝으로 고딩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두고 내 옆에 거리를 두고 앉았다. 물론 여름이라 더운 탓도 있었지만 쟤가 떨어져 앉는 이유는 내가 싫어서 일게 뻔하다. 그나저나 쟤는 날 싫어하면서 내가 있는 곳을 용케 알아내고 찾아오는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날 싫어해서든 좋아해서든 찾아온 게 용해서 리어카 아이스박스를 열고 요쿠르트를 하나 꺼내 빨대까지 꽂아서 건넸다. 내가 내민 요쿠르트를 힐끗 쳐다보다가 지도 더웠는지 뺏어가듯이 가져갔다. 고딩이 가져간 후에 나도 요쿠르트를 하나 꺼내서 입에 물었다. 

 

 

"야 고딩. 너는 그 때 나 싫다 해놓고 왜 자꾸 쫒아다녀?" 

"이름 고딩 아니다." 

"음... 윤기야, 너는 왜 그 때 나 싫ㄷ," 

"성 떼고 부르지마. 징그러우니까." 

"하, 그래. 너 왜 자꾸 따라다녀?" 

 

 

정말 궁금했다. 처음 나 봤을 때 좆 달린 놈이 무슨 야쿠르트 아줌마 장사냐면서 가시돋은 말로 사람 자존심을 난도질 해놓더니 이리저리 숨어있어도 나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것마냥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오는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내가 왜 싫은지, 그럼에도 왜 나를 찾아오는 건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참 나. 적반하장도 어이가 없네." 

"…뭐?" 

"너 나랑 몇번 마주쳤는지는 아냐?" 

"뭐! 나랑 여러번 마주쳤잖아!" 

"고작 3번이거든." 

"……" 

"그리고 너 맨날 앉던 정자나 여기나 내가 맨날 오는 곳인데 그 새 뭐 전세라도 냈냐? 나는 뭐 쉬면 꼬와?" 

"……" 

"살다살다 이런 도끼병 환자는 또 처음 본다." 

 

 

말을 끝낸 고딩이 얼마남지 않은 요쿠르트를 다 마시고 벤치위에 올려놨다. 고딩 말이 맞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겨우 세 번 마주친 사이고 그 사이에 복잡하고 쪽팔린 일은 있었다만 그냐 서로 모른 척하면 남일 뿐이었다. 다섯살 어린 애한테 쪽팔리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요쿠르트를 양손에 쥐고 빨대만 빤히 쳐다봤다. 고딩이 나를 불렀다. 

 

 

"야, 너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애 같다." 

"…이씨, 야 고딩. 너 자꾸 나한테 애, 애 거릴래?" 

"고딩아니고 민윤기. 이름 알면서 고딩고딩 거리는 건 꼰대 같아서 듣기 싫어." 

"그래, 민윤기. 너 말 잘했어. 너도 나 세 번 밖에 안 본 주제에 자꾸 반말할래?" 

"너가 너무 애처럼 생겼잖아." 

"야 그게 말이 돼? 내가 너보다 다섯살ㅇ," 

"날 열일곱, 열여덟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 너 생각보다 나이 많아." 

"몇 살인데." 

"스물." 

"……" 

"넌 몇 살인데." 

"...난 스물 넷." 

 

 

서로 눈을 크게 뜬 채로(사실 고딩, 아니 민윤기는 눈이 작아서 크게 떴는지 잘 모르겠다.)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많아봐야 열아홉이라 생각하면서 다섯살이라 한 건데. 쟤도 내 나이가 지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겠지. 

 

 

"야 그럼... 너 꿇은거야?" 

"사정 있어서." 

"무슨 사정?" 

"알아서 뭐하게." 

"혹시 아냐. 내가 고민이라도 들어줄지." 

"너한텐 고민 있어도 말할 생각 없다." 

"아 왜애. 이래봬도 내가 너보다 엉아잖아." 

"나중에 말해줄게." 

"뭐야... 뭐, 사고라도 쳤어?" 

"……" 

"민윤기 너 좀 놀았나보다? 그래서 꿇었지? 그렇게 안 봤는데 문제아네 너." 

 

 

농담 반 진담 반 샐샐 웃으며 물어본 건데 민윤기 표정이 썰렁했다. 아까 눈 크게 뜰 때만 해도 짜증나는 고딩이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스무살처럼 보여서 좋았는데. 지금 쟤 표정은 내가 무슨 말 실수라도 한 것 같은 상황이었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 저런 표정 짓고 있으면 괜히 내가 더 무섭다. 

 

 

"야." 

"……" 

"농담이라도 말 가려서 해라." 

"……" 

"남에 대해서 뭣도 모르면서 말 함부로 내뱉지말라고." 

"아니 난," 

"형 취급 받고 싶음 말부터 똑바로 해." 

 

 

민윤기는 화가 단단히 났는지 말을 끝으로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걸쳐매고 어디론가 걸어가버렸다. 내가 장난친 걸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건가? 아님 내가 장난이랍시고 민윤기의 사정에 대해 장난스럽게 추측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인 것 같았다. 서로 툴툴 거리는 사이가 될 바에야 친해지려고 다가가 본 건데... 괜시리 힘이 쭉 빠졌다. 민윤기에게 할 사과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민윤기가 벤치에 올려놓고 간 빈 요쿠르트 병을 집어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고3이라 시험기간+모의고사(+ㄱㄱ때문에ㅠㅠ)이 겹쳐서 너무 늦었네요ㅠㅠ 죄송해요 그래서 이번엔 양을 지난번 보다 늘려보려고 노력해서 들고왔습니다 

윤기의 츤츤데레함이 잘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느껴지시나요? 윤기는 의외로 지민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어요 *---* 이런 글 찌는게 너무 오랜 만이라 어색하고 못나겠지만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ㅠㅠㅠ 앞으로는 최대한 자주, 빨리 찾아뵙도록 할게요! 댓글 달아주심 큰 힘이 됩니다! 

 

+글 올리러 왔다가 쓰차 당해서 타롯포인트 삼십분 가까이 돌렸는데 초반 3분만에 되어있었네요...ㅠlㅇ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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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지민이 진짜 귀여운거 같아요 찌민이! 윤기는 무슨 사정이길래 화를 낸 걸까요 괜히 걱정돼요ㅠㅜ
8년 전
독자2
스물 넷 지민이가 이렇게 귀엽다니ㅠㅠㅠ(사망) 윤기는 뭐 때문에 일 년 꿇었을까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ㅠㅠ
8년 전
독자3
으아 지민이 너무 애기같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융기두 사정이 있었을 텐데.... 지민이는 다음에 보면 사과하는거로ㅠㅠㅠ ㅜㅜㅜㅜ응으ㅡ응응 오늘두 잘 보고가욥...♡
8년 전
독자4
서로 나이듣고 놀라는게 왜이리 귀여운지ㅋㅋㅋㅋ 윤기군이 꿇은 이유가 있을텐데 대체 무엇일까요8ㅅ8
8년 전
독자5
찌민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니예요??ㅠㅠㅠㅠㅜㅜㅜㅜㅜ어ㅡ어으어 사랑해요 작가님 완전 재밌어요!!!신알신 할게요!!
8년 전
독자6
아진짜 귀여워요ㅠㅠㅠ빨리 지민이랑 윤기랑 친해져서 윤기가 왜 꿇었는지 말해줬으면 좋겠어요ㅠㅠㅠㅠㅠ공지읽으니까 고3이시라던데 화이팅 하세여!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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