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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적국의 황태자 전정국, 그리고 남장여자중인 나 07 | 인스티즈

 

나는 기죽은 채로 연무장을 나와,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전정국을 흘끗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살벌하게 얼어붙은 얼굴에 하려던 말도 쏘옥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화났나..? 사실 왜 화났는지 그 이유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나는 전정국의 눈치를 보며 그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나가자마자 바로 퍼부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아서인지 그는 일단 자리 좀 옮기죠, 하고서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따위는 확인하지도 않은 채 혼자 성큼성큼 걸어나섰다. 당황한 나도 정신을 차리고 사라지는 전정국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보폭이 넓어서 그런지 따라잡기가 조금 힘들었다. 저번부터 느꼈던거지만 너 걸음 빠르다니까, 이 짜식아.

모퉁이를 돌아 조금 한적한 공간이 나오자 전정국이 걸음을 멈추고서는 나를 향해 뒤돌아섰다. 다시 아까와 같은 장면. 전정국은 화를 꾹꾹 눌러내려 낮아진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거긴 대체 왜 간 겁니까."

"가고 싶어서 간 거 아니에요, 절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어서..."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고 나왔어야 될 거 아닙니까. 왜 거기에 계속 있었냐, 그 말이지."

"말 할 기회를 놓쳐서 그랬어요. 그리고 제가 가고 싶어서 간 거 아니라니까요?"


내가 가고 싶어서 제 발로 간 것도 아닌데 앞뒤 사정에는 관심없고 나를 몰아붙이는 그의 말에 화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딱히 잘못한게 있다고 짚이는 것은 없었기에,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지자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비딱하게 올라갔다. 날카로운 내 말투에 전정국의 눈썹이 더 위로 치켜올라갔다. 어이구, 조금만 더 올라가면 눈썹이 하늘로 승천하시겄어.

비뚜름해지기 시작하는 내 눈에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모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우리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조금씩 감돌기 시작했다. 어쩌라고, 뭐? 그렇게 니가 보면 어쩔 건데? 어?

전정국도 참아줄 생각이 없는 건지 냉기서린 말로 날 향해 쏘아붙였다.

 

"뭘 잘했다고 그러는거에요 지금?"

"잘한 건 없지만 못한 것도 없는데요. 그리고 전하께서 먼저 아무데나 돌아다녀도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래도 칼 들고 난리치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내 행동을 난리라고 표현하는 전정국의 말에 열이 제대로 받았다. 솔직히 내가 가고 싶어서 갔냐? 그 이상한 남자가 날 멋대로 보충된 인원이느니, 뭐니 해서 끌고 간 거지. 대련하게 된 것도 내가 원해서 했냐? 박지민이 내 실력을 보겠다느니 어쩌겠거니 해서 한 건데!!

나는 진심으로 억울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잘못한 게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중간에 나갈 기회를 놓친 것밖에 없다.

 

나는 눈을 홉뜬 채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전정국이 화를 내는 건 보지 못했던지라 약간 무서웠지만, 정작 나도 화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한게 난리였냐? 나름 꽤 진지한 대결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신나게 깎아내리는 말에 쓸데없는 자존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애써 참으며 나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예, 예 제가 멋도 모르고 난리를 피웠죠?"

"...지금, 말투,"


잔뜩 비꼬는 내 말에 전정국의 기분이 더 바닥으로 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의 주위로 냉기가 더 내렸지만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한 마디 하려고? 근데 내가 더 말할 건데? 아직 할 말 남아있거든?


"제가 감히 황실의 위엄을 실추시킨 것 같네요. 하긴, 머리에 든 게 아무것도 없는 제가 하는 일이 다 멍청하게 보이시겠죠."

"....이름,"

"눈치없게 빠져나갈 기회도 놓친 것이 정말 큰 죄네요. 생각해보니까 이게 정말 엄청난 죄인 것 같아요. 어떤 말로도 전하의 노여움을 풀 순 없을테니까, 미천한 저의 목을 베어서 처벌해주시면 황송스럽겠나이다."

"성이름!!!!"


삐딱하게 말하는 내 말에 제대로 열받은 건지 전정국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질렀던 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나는 조금전까지 상했던 감정도 모두 사라진 채 너무 놀라 제자리에 그대로 굳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전정국은 내가 겁먹은 것을 보더니 약간 후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여전히 화는 풀리지 않은 듯, 눈을 감으며 머리를 거칠게 뒤로 쓸어넘겼다. 후, 하고 삭인 화를 밖으로 내뱉던 전정국은 조금의 간격을 두고 입을 열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

"그래, 내가 말이 좀 심하게 나간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똑같이 나와서야 되겠어요?"

"........죄송합니다."


방금전과는 달리 누그러진 말투로, 잘못을 인정하는 전정국의 모습에 나도 사과를 했다. 그래.. 치졸하게 똑같이 맞받아친 내가 겁없는 하룻강아지지. 뭣도 없는 신분으로 감히 황태자한테 언성을 높인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가, 전정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로 돌아온 말투였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안 다쳤잖아요..."

"그래도 혹시나 다쳤으면?"


전정국이 날 휙 돌아보았다. 전쟁터도 아니고, 대련이었는데 다칠 리가. 그저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합을 겨루는 거라 진검으로 하는 거라고 해도 다칠 일이라 해봤자 해도, 얕은 생채기 정도 뿐일 텐데. 그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에이, 설마.

나는 그의 표정을 흘끗 살폈다. 전정국은 대답을 재촉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겠지만 혹시... 혹시,


"...걱정해주신 거에요?"

"............."

 

당황. 어라.


"...정말?"


전정국은 날 보고 짜증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긍정의 표시였다.

 

뭐야, 진짜 날 걱정해준 거야? 다칠까봐? 의외의 반응에 벙쪄있던 나는 전정국의 저런 반응에 살살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가만 생각해보면, 며칠 지내본 결과 전정국은 유달리 정이 많은 것 같았다. 처음에 내가 잡은 생선 왜 다 먹어버리냐고 화내니까 직접 잡아서 준 것도 있고. 험한 산을 걸어올라가면서도 내가 잘 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보았던 것도 그렇고.

 

왠지 신이 나서 얼굴을 전정국에게 들이대고 계속 정말? 정말? 이라고 얄밉게 묻자 그는 윗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다가 한 손으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그만 좀 해요, 하...."


그래도 신난 건 감출 수 없는 거라. 그에게 밀려났지만 기분은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저 정말 괜찮았다구요. 전하가 늦게 와서 본 건 제가 졌던 부분뿐이겠지만 그래도 앞에는 제가 오 합 만에 이겼는데! 내가 신나서 자랑하자 전정국이 얄밉지 않게 힐끔 쳐다본다. 의기양양해진 나를 외면하고 싶은 건지, 천천히 이동하는 전정국을 따라 나도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걱정해주셔서 그러셨던거구나~.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전 그것도 모르고 괜히 가슴 졸였잖아요.

코웃음치며 내 말을 듣던 전정국이 고개를 바로하려고 하다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손을 뻗어왔다. 개구쟁이시네......응?


"칠칠맞게."


전정국의 손이 훅 가까워지더니 내 머리에 붙은 자그마한 잎을 떼어갔다. 아. 저거 언제부터 달고 다녔던 거지. 혹여나 다른 잎이 붙었을까 머리카락을 두어번 정도 만지작거리던 사이, 가볍게 이파리를 떨어낸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연무장에는 어떻게 갔는데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누가 착각해서 끌고 간 건데... 그 전에는 저쪽에서 예쁜 궁을 찾아서, 안에 들어가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궁?"

"저 쪽에 마악, 푸른색 도는 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어떤 분이 들어가지 말라구, 그러더니 혼자 착각해서 데리고 간 거에요."

"아아, 연화궁 말이군."

"연화궁?"


내가 되묻자 전정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 궁 이름이 연화궁이에요. 그럼 제지할 만 하죠. 아무튼. 왜 나왔어요? 나는 이 시각까지는 잘 줄 알았지."

"......응?"

"잠 많잖아요. 왜 그리 일찍 깨서 나갔냐구."


전정국이 눈으로 내게 물었다.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내가 왜 나왔을까. 이렇게 된 원인을 돌아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내가 방을 나온 이유가 떠올랐다. 일어났는데 방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고.... 배고파서, 먹을 것을 찾으러 나왔었다고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좀 쪽팔린데. 망설였으나 대답을 재촉하는 그의 말에 결국 말해버렸다.


"...배고파서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전정국은 지금 잘못 들었나? 를 얼굴 전체로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고 웃겨서 실소가 터질 뻔 했으나, 최대한 포장하기 위해 나는 열심히 입을 놀렸다.


"혹시나 밖에 나오면 먹을거리가 있나 해서..나왔어요."

"허."

"혼자 두고 사라지셨잖아요. 바쁜 일이 있으셨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근데 막상 나오니까 궁 안이 너무 예뻐서 배고팠던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덕분에요."


내 말에 전정국이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이제 그의 표정을 어느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된 나는 지금 저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저건 황당함과 웃김이 반, 그리고 미안함이 반인 표정이다.


"그래서 혼자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네."

"미안해요, 이게 다 내가 은인을 혼자 두고 가서 그런가보다. 다음에는 어디 가지 못하게 묶어놓고 나갈까 봐요."

"농담?"


전정국은 날 돌아보더니 씩 하고 웃었다. 주위가 환해질 정도의 웃음을 지은 그는, 날 이끌었다.


"배고프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그러나 끝내 되물었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남자로 착각을 하지. 어차피 이제 숨길 필요도 없는데, 옷 좀 예쁜 걸로 입고 와봐요.'

 

라는 전정국의 말에 지금 거울 앞에 얌전히 앉아 시녀들의 손길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녀들의 손이 바삐 놀려질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눈으로 그녀들의 손을 쫓아다니기 바빴지만,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피곤해져서 대체 언제 끝날까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에 장신구들은 이게 어떨까요, 하고 물어오는 거에는 몸에 뭘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어색한치라 거절했으나 다 거절하셔도 이건 꼭 해야한다며, 바득바득 우기는 바람에 가벼운 머리장식 몇 개는 할 수밖에 없었다.


"다 됐습니다."


마침내, 끝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던 그녀들의 손이 다 떨어졌을 때는 거울 안에는 모르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의 수준이 되어 있었다. 연분홍색의 옷을 단정하게 입은 채, 길게 풀어내린 흑색 머리카락. 나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거울 속의 여자도 왼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어색하게 바라보던 나는 머리카락 사이로 예쁘게 자리하고 있는 색색의 끈들을 눈앞으로 잡아끌었다.

아, 이거 조금 어색한데. 어색함에 손끝으로 머리장식을 건드리자 옆에 있던 시녀 한 명이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계속 만지시면 떨어지세요."

"아, 죄송해요."


황급히 내렸지만 적응이 안 돼 어색한 건 여전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냥 나 자신을 외면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인내의 시간도 다 끝났겠다, 하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 한 명이 문을 열어주어 수월하게 복도로 나간 나는 전정국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래층에 있는다고 했었나. 옷자락이 치렁치렁해서 영 불편하네. 나는 손끝에 끌리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린 채 계단을 내려갔다.

 

똑똑, 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린 후 나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도 전정국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으로 병에 담겨져 있던 꽃줄기를 똑똑 끊어내고 있었다. 온 걸 모르나. 음...알려줘야겠지?


"저...왔는데요."


조심스러운 내 목소리에 그는 그제서야 나를 향해 돌아섰다. 눈이 마주쳤지만, 전정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 약간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이 한없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고개를 숙이며 애꿎은 손가락만을 마주잡았다. 어떡해,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인가봐. 그러게 내가 그냥 이렇게 입으면 안되냐고 하니까 밀어붙여서는.

다시 눈을 올려보았을 때도 전정국은 조금 전 봤던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날 주시하고 있는 채였다. 머리장식은 좀 빼달라고 할 걸 그랬나. 치렁치렁한 거는 극구 사양해서 가벼운 거 몇개만 머리카락에 살짝 땋아올렸는데도 불편했다. 그나저나 무슨 말이라도 좀...해주지. 민망한데. 내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기 시작할 무렵, 전정국은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툭, 하고 내뱉었다.


"별로네요."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전정국은 뚱한 표정이었다. 연이어 나온 말은 더 정확했다.


"너무 안어울려."

"진짜....?"

"응, 그러니까 그거 입지 마요. 그냥 지금까지 하고 다녔던 것처럼 하고 다녀요. 차라리 그게 더 낫다."


냉정한 그 말에 나는 좀 시무룩했지만 사실 나도 별로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도 빈말이라도 한 번 잘 어울린다거나, 예쁘다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랫동안 수고해준 시녀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도 별로였고, 정작 요구했던 전정국도 별로라고 하는데 별 수 없었다.

그렇게 안 어울리면 지금 다시 바꿔입고 올까요? 라는 내 말에 전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는 말고요. 어쩌라는 거야, 너가 별로라며. 나는 입을 비죽이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삐쳤어요?"

"아닌데요."

"삐친 거 같은데? 이리 와요."


전정국이 손을 까닥였다. 칫, 괜히 거추장스럽게 단장하느라 시간만 날렸잖아. 속으로 끝없이 투덜댔으나 발은 전정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탁상 위에 놓여있던 병에서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술 마시고 있었나.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전정국의 손이 슥 나타나더니 한 잔을 따라갔다. 깜짝 놀랐네. 움직이는 목울대를 바라보던 나는 벽쪽에 일렬로 놓아있는 술병들을 보곤 그 곳으로 걸어갔다. 

열 다섯 병이 일렬로 놓여져 있는데, 그 색과 모양이 다 달랐다. 신기하네. 하나하나 천천히 보고 있던 나는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뒤에서 전정국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거 독한 술인데."

"몰랐어요, 그냥 색이 예뻐서 본 건데.."


투명한 다홍색 빛을 띄고 있는게 예뻐서 한 번 들어본 건데, 독하다니. 나는 집어들었던 술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모르고 마셨다가는 훅 가기 딱 좋죠. 술 잘 마셔요?"

"글쎄요,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어서. 전하는요?"


전정국은 마시던 술을 내려놓고서는 내게 걸어왔다. 내 옆에 다가와 일렬로 서 있는 술병들을 눈으로 흝던 그가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약하지도 않아요."


전정국은 가장 오른쪽에 놓여있던 술병을 집어들었다. 백색 도자기에 보라색 꽃이 새겨져 있는 술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흠, 소리를 내더니 나를 향해 물어왔다.


"한번 마셔볼래요?"

"네?"

"처음이면, 이게 낫겠다."


이게 제일 독하지 않아서 처음 마시기에는 괜찮을 거에요. 내 취향은 아니지만,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들어서. 물어오는 그의 말에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기도 하고, 한 번 마셔볼까. 긍정의 표시에 전정국은 술병을 집어든 채 방 안에 놓여져 있는 낮은 탁자로 향했다. 옷자락을 잘 정돈한 채 앉자 전정국이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투명한 색이었다. 


"마셔봐요."


전정국이 손짓했다. 나는 찰랑이는 액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모금 들이마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액체가 화하면서도 입안에 감칠맛이 돌았다. 오.


"맛있어요."

"그래요?"


전정국은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이거 맛있는데, 진짜. 신세계를 맛본 느낌에 나는 연달아 술을 홀짝였다. 그러다보니 한 잔에 담겨있던 술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맛본 술이 이렇게 맛있다니, 술들은 다 이런가? 나는 전정국이 마시고 있는 술잔을 바라보았다. 왜요. 내 시선을 의식한 그가 물어왔다.


"전하가 마시고 계시는 거, 한번 마셔봐도 되요?"

"별로일 텐데."

"한 모금만요."


호기심이 넘쳐나는 터라 내가 한 모금만을 강조하자 전정국은 저가 마시고 있던 술잔을 내게 넘겨주었다. 연한 황토색 빛이 도는 술이었다. 색은 예쁜데? 한 모금 마신 나는 마시자마자 표정을 있는대로 구기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으엑."

"그러게 내가 별로일거라고 했잖아요."

"진짜 독하네요. 어떻게 표정도 하나 안 바뀌고 그걸 마셔요?"

"하하."

"전 이거 마실래요. 별로야."


어느 새 술잔을 도로 가져간 전정국은 내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쪼로록 술을 따르면서 또 그 독한 술을 마시고 있는 전정국을 쳐다보았다. 진짜 대단하네, 그 독한 걸 저렇게 잘 마시냐. 됐어, 난 맛있는 거나 마셔야지. 다시 술을 들이켜자 달콤한 향히 혀를 감싸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혀를 잠깐이나마 마비시킬 정도로 독한 맛을 겨우 날려보낸 나는 만족했다. 홀짝이면서, 떠오른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 궁, 연..뭐라고 하셨죠? 그, 흰색과 푸른색이 도는 궁이요."

"연화궁이요."

"맞다, 연화궁.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왜 들어가면 안 돼요?"

"연화궁은 황제의 후궁들이 들어가는 곳이에요."

"...아...."

"지금은 안 쓰긴 하지만. 들어가보고 싶어요?"

"어....아니요."


가볍게 물어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군, 황제의 여자들이 쓰는 궁이었구나. 그러니 함부로 남자를 들여보낼 리가. 왜 지금 그 곳을 안 쓰고 있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았다. 현 황제의 건강상태와 관련이 있겠지. 아무튼 전정국의 말에 호기심이 싹 사라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전정국이 또 물어온다.


"왜, 연화궁에 들어가는 거 어때요."

"황제의 후궁이 들어가는 곳이라면서요. 제가 들어갈 곳은 아닌 것 같아서요."

"어차피 내가 곧 황제가 될 텐데요, 뭐."


나는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어서 눈을 가늘게 뜨다, 술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다시금 달짝지근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풍겼다. 구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화궁에서 사는 건 어떠냐는 의미였나. 나는 웃음기가 담긴 말투로 가볍게 맞받아쳤다.


"언제는 내가 취향이 아니라면서요?"

"그래도 한 명쯤은 괜찮아요. 어차피 은인, 쌍생아라서 혼사도 무리라면서요. 그러면 내가 있을 곳 만들어줄게요."

"선심쓰는 거에요?"

"그렇다고 치면 그럴려나. 평생 집에서 눈치보고 사느니 궁에서 편하게 사는거 어때요? 내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장난인 듯 진담인 듯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눈동자를 읽다가 나는 대답했다.


".....거절할래요."

"왜요?"


전정국은 내 말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사실은 내가 현나라 사람이라서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그냥 악의없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전하가 뭐가 좋다구. 그는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행동을 취했다.


"내가 어디가 안 잘난 데가 있는데요?"

"음....으음...."

"봐봐. 대답도 못 하면서. 잘난 부분이 더 많은데요? 재물 있지, 권력 있지, 잘생겼지. 무엇보다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사람인데."


잘생긴 건 인정.


"그래도, ....아 몰라요."

"그런 게 어딨어요. 잘 보라니깐?"


전정국이 심통난 어조로 나한테 얼굴을 들이밀며 재촉했다. 알았어요, 그럼 칭찬은 해드릴게요. 눈썹도 잘생겼고, 코도 잘생겼고, 입도 잘생겼어요. 손도 잘생겼네. 웃음이 피실피실 새어나왔다. 전정국은 내가 웃어버리자 김 샌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어린애 같았다.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시간이 지나고 술병도 반 병쯤 비워졌을까. 언제 저 만큼 마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생각이 유연하게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게 술 때문인가. 정작 전정국은 나랑은 다른 거 마시더니만. 술 센가 봐...

기분이 들뜨고 웃음이 실실 나왔다. 혼자 실실거리는 내가 웃긴 건지 전정국은 마냥 웃으면서 내가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은 거 맞죠? 어지러우면 말해요. 방에 데려다줄 테니까요. 

히, 싫은데. 나는 헤헤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선 입을 열었다. 물론, 아까 서운했던 것에 대해서였다.


"전어어언하아아."

"얼씨구."

"그래도오 아까 나 좀 잘하지 않았어?"

"이젠 말도 놓네. 뭐를요."

"되게 깐깐하시네... 어? 아까, 연무장 말이야. 말해보라구. 나 솔직히 잘 했잖아."


내가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전정국에게 말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모른척해, 왜. 나는 아까 그것땜에 얼마나 열받았는데. 멋대로 늘어지는 말꼬리는 신경쓰지 않은 체, 나는 섭섭합을 토로했다. 멋대로 나가는 말은 주체할 수 없었다.

 

 

"아까 난리쳤다라고 말했을 때에, 솔직히이... 쪼끔 섭섭했다?"

"왜."

"왜긴 무슨 왜야! 너가 더 잘 알잖아. 나 잘하고 있었는데. 물론, 네가 늦게 와서 못 봤을수도 있지마안-"

"그거 때문에 그러는거야?"


전정국이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떠뜨렸다. 내 땡깡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그런다.


"잘 했는데, 완벽한 건 아니었지."


전저어엉구우욱! 혀가 꼬인 채 그를 향해 씩씩거리자 피식 웃는다. 어디 더 해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와, 나 좀 화날려구 해. 나는 꽃병에 있던 꽃 줄기를 하나 잡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내 모습에 전정국이 날 올려다봤다.


"야."

"'야?'"

"진자 어이업다. 일어서, 내가 하능 거 보라구." 


내 고집에 전정국은 귀찮다는 듯 스믈스믈 일어났다. 빨리빨리 안 일어나냐. 나는 전정국을 붙잡은 채 조금 여유있는 뒷 공간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정도 움직일 공간이 되자 그의 손을 놓아주면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잠깐 휘청거렸지만, 날 향해 오려는 전정국은 제지한 채 손에 들고 있던 꽃줄기를 들어올려 전정국을 향해 노렸다.


"이게 검이야."

"아무리 봐도 꽃인데."

"검이야. 그러니까, 한 번 다시 보라구. 눈 똑바루 뜨고."


전정국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아이씨, 아무리 봐도 날 보고 웃는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는 전정국에게 한 방 먹이려 날쎄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뿐이었나 보다. 발, 비틀거린다. 전정국은 옆으로 비켜선 채 그렇게 말했다. 몇 번을 해도 내 생각과는 다른 움직임에 결국 나는 씩씩거리며 꽃줄기를 내던졌다. 짜증나아. 술이나 더 마실래.


"벌써 포기?"


들려오는 전정국의 말은 깔끔히 무시.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애써 바로 하며 뒤돌아섰을 때였다. 긴 치맛자락을 잘못 밟아 몸이 뒤로 훌쩍 흔들렸다. 어. 팔을 허우적댔으나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 넘어지겠구나, 생각했을 때.


"조심해야지."


바로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게다가, 뒷머리에 닿은 건 바닥이 아니라 판판한 그의 가슴팍이었다.

그의 품에 명백하게 안긴 내 모습에 술기운이 번쩍 깼다. 한 팔은 잡힌 채로, 그리고 다른 팔은 그의 품에 감싸져 있는 상태. 그와 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잔잔한 숨결소리, 온기까지 다 느껴지는 와중에, 처한 상황을 깨달은 나는 귀가 홧홧하게 달라올랐다. 미, 민망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전정국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는 잡았던 내 팔을 들어올리곤 소매를 걷어냈다. 그리고 다시 귀에 내리앉는 그의 목소리.


"안 다치긴 무슨."

".........."

"여기 상처 났잖아."

"........?"


내 손목을 붙잡은 채 눈썹을 찡그리는 그의 얼굴에 나는 그가 붙잡은 곳을 바라보았다. 소매가 걷어올려진 팔에는 미약한 상처가 얕게 나 있었다. 어, 정말 상처가 있네. 언제 생긴 거.....잠깐. 팔에 덩그러니 놓여진 생채기를 보던 나는 뭐가 허전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항상 내 팔에 꼭 맞게 차고 다녔던 팔찌가 없었다. 그걸 깨닫자 온몸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는 듯 했다.


"내 팔찌."

"응?"

"내 팔찌, 없어졌어. 어머니가 준 팔찌....어디에.."


팔에 딱 맞춰 줄을 조절한 다음 차고 있던 끈이라 제멋대로 풀려 떨어질 리 없었다. 그렇기에 강물에 떨어졌을 때도 잃어버리지 않았던 거다. 빼놓은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팔목에 상처난 부분이 내가 팔찌를 하고 있던 부분이라는 걸 알아채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분명, 낮에 대련했을 때 스쳐 잘려나갔던 거다. 하얗게 질린 채 있던 나는 전정국을 밀쳐내고 황급히 방을 뛰쳐나갔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전정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이미 늦은 시각임에다가 어두워져 있기까지 해서 시간이 배로 걸렸지만 결국 낮에 왔었던 연무장을 찾은 나는 짧게 숨을 돌리고서는 바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찾을 수 있을 거다. 찾을 수 있을 거야. 달빛에만 의존해서 찾는 게 쉽진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고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꼭 찾아야 했다. 내가 갔던 곳부터 가지 않은 곳까지 전부 다. 혹시나 놓칠세라 이미 돌아봤던 곳을 또 가보아도 나뭇가지만 나뒹굴 뿐, 팔찌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왜 없어...."


왜, 왜 없냐구. 결국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눈물이 툭 떨어졌다. 한 번 눈물이 시작하자 멈출 수 없어서, 나는 풀썩 주저앉은 채 울기 시작했다.

내가 일곱 살때 오라버니를 통해 전해받은 팔찌였다. 그저 별 거 없는, 몇 줄의 가느다란 끈에다가 자그마한 탄생석 하나가 있는 간단한 팔찌였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던 물건이었다. 비록 겉으로 많이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이라고 증명받을 수 있던 소중한 거였다. 내가 그동안 많은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살아남은 것도 그 팔찌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그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없어졌던 것을 몰랐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주위는 어둡고 나를 달래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한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있던 중에, 주변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들리는 낯선 목소리.


"거기 누구.....어?"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밝아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손에 작은 호롱불을 들고 있던 사람은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까 낮에 보았던, 박지민이었다.


"여자였...?! 아니, 왜 울고 있어요."


박지민은 내 옷차림을 보고 몹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지금의 나는 굳이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온 박지민은 내 앞에 한 쪽 무릎을 끓고 앉아서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지민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며 말을 건넸다. 왜 여기서, 아니, 음, 울지 마요. 왜 울어요, 왜.


"팔찌, 팔찌가 없어....."


서러움을 토로할 상대가 그 누구던, 나타났다는 생각에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팔찌, 소중한 건데, 아까 여기서 잃어버린 거 같아서, 왔는데, 그랬는데... 또 울컥해서 한 번 끊은 나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못 찾겠어, 없어..

손을 들었다 내렸다, 뻗었다 거두었다 하며 계속 어쩔 줄 몰라 하던 박지민은 내 말을 듣더니 아, 하며 짚이는 구석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품 속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 그는 한 손을 펴서 내게 보여주었다. 확신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혹시 이거...에요?"


내밀어진 손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것은 확실히 잃어버린 내 팔찌였다. 놀라서 울던 것도 까먹은 채 박지민을 쳐다보고 있자, 그가 미안한 듯 살짝 웃더니 덧붙였다. 맞구나.


"아까 주웠는데, 아무래도 당신 거 같아서 가지고 있었어요. 끊어뜨려서 미안해요."


다시 잇긴 했는데, 그래도 티가 좀 나서. 멋쩍게 웃어보인 박지민은 멍하니 있던 내 팔에 팔찌를 채워주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되찾은 팔찌를 바라보았다. 푸른색 돌이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울어요, 예쁜 얼굴 망가지잖아요."


여전히 미안한 웃음을 지은 채 부드럽게 말을 건넨 박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어나셔야죠. 작지만 단단한 손을 잡고 일어난 나는, 아직 촉촉하게 젖은 눈을 마지막으로 닦아냈다. 다행이다, 팔찌를 되찾아서.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저 때문에 잃어버리신 거 같으니, 오히려 제가 죄송한 걸요."


그것도 맞는 말이라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민은 호롱불을 다시 집어들더니 입을 열었다. 음, 혹시.. 태자 전하와 같이 계시다가 이거 찾으러 나온 거에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지민이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기까지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

 

간간히 대화를 하며 걸어가는 도중, 저 앞에서 시녀를 몇 명 대동한 채 걸어오는 전정국이 보였다. 찾으러 나오셨네요. 어, 화나셨나 봐요. 박지민이 중얼거렸다. 내 앞에까지 걸어온 전정국은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찾았어요?"

"네, 여기요. 저분이 찾아주셨어요."


내가 박지민을 가리키며 말하자 전정국은 그를 흘끗 보고서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흠칫. 가까워지는 손에 아까 방에서의 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몸을 살짝 뒤로 빼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볼을 가볍게 잡았던 손이 떨어져나갔다. 


"울었어요?"

"아.... 괜찮아요."


내 말에 전정국의 눈썹이 한순간이었지만, 약간 밑으로 쳐졌다. 가요 이제. 박지민을 뒤로 하고 그는 나를 이끌었다.


 


 

"쉬어요."

 

 

분위기가 차분해진 채로, 날 또 처음 보는 방 안으로 데려간 전정국은 내 머리장식을 손수 다 풀어준 후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다. 곧 나가려는 듯한 말투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까 재밌게 놀다가 혼자 분위기를 깨고 뛰쳐나간 게 마음에 걸렸던 지라, 나는 다시 나가려는 전정국을 불러세웠다. 저.... 잠깐만요. 전정국은 갑자기 불러세운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음, 그러니까. 말을 고르려다가 쌩뚱맞은 단어 하나만이 톡 튀어나가버렸다.


"놀래요?"

"뭐하고 노는데요."

"어, 그러니까. 그냥 이야기도 좋고.... 아니면.. 음.. 아니면 그때처럼 조금 주무시다 가시는 것도."


횡설수설하는 내 말을 듣고 있던 전정국은 내 마지막 말에 몸을 돌려 내게 걸어왔다. 오, 대화를 할 생각이 있나 봐. 앉은 채 있어서 전정국을 올려다보자, 앞에 다가온 그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긴장을 안 하는 거죠."

"네?"

"자고 가라고요?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한 거에요?"


전정국이 천천히,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며 물었다. 무슨 뜻이 있기는....그냥 말 그대론데. 내가 눈을 깜박이자 전정국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고 썼어요? 전정국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러면 앞으로는,


"의식하고 말해요, 내가 남자라고."


내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그의 입술. 내일 깨면 백화궁으로 와요. 그리고 전정국은 내 방을 나갔다.

 

한동안 굳은 채로 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좀 전의 상황을 되짚었다. 그의 말을 찬찬히 떠올렸다. 내가 남자라는 걸 의식하고서 말해요. 아. 나는 맥 빠지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 번 의식하니,

그동안 전정국을 볼 때마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던 것을 외면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

 

[방탄소년단/전정국] 적국의 황태자 전정국, 그리고 남장여자중인 나 07 | 인스티즈

 왜 그렇게 긴장을 안 하는 거죠. 날 남자라고 안 보나 봐요.


 

-

어디서부터 끊을지 몰라 결국 한 화에 밀어붙인 결과!!!!! 성공적으로 분량실패했습니다~!!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읽으시느라 고생하신 독자님들의 눈...죄송합니다ㅜㅜㅠ

답글 달아드리고 싶었는데...넘 바빠서 못해드렸어요 엉엉ㅜㅠ답글다는게 사실 저의 또다른 즐거움인데 말이죠ㅠㅠ그래도 댓글은 모두 감사히 잘 읽었어요!!

종강을 향해 달려가는 저와 불안한 스토리와 그걸 지켜보는 독자님들 껄껄껄

정국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스토리상 조금씩 나옵니당 1부에서는 지민이 분량이 적을 거라구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닐 거 같아요(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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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23
정국이ㅠㅠㅜㅠㅠㅜㅜㅠㅜ크으 그래요 남자입니다!!!!남자예요!!!!
7년 전
독자424
헐 와 헐헐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세상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헐 와 발린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425
미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설렘푹파루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친겁니다ㅠㅜㅠㅠㅠㅠ
7년 전
독자426
꺅 !!!!!!!이건미쳤어요 ㅠㅠㅠㅠ엉엉 ㅠㅠㅠㅠ아 진짜 전정국 ..ㅎ. ㅏ.... 사실 너무예뻐서 다른삶이 못보게할려고 별로라그런거지여 ? ㅠㅠ 다알고있어영 ㅠㅠㅠㅠㅠ 그리고 와 ...ㅎ ㅏ...역시 정국이도남자앾어여...ㅎ ....의식하고말하라면서 이마에뽀뽀까지 날려주다니 ㅠㅠ학 ㅠㅠ
7년 전
독자427
정국이는 역시 남자네요 저렇게 멋진 남자 신경 안쓰일 리가 있겠어요 ㅠㅠ
7년 전
독자428
분명 정국이가 주인공인데 저는 왜 자꾸 지민이가 좋아지는 건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429
마쟈요 정국이 남자입니다ㅠㅠㅠㅠ 남자예요ㅠㅠㅠㅠㅠㅠ반했어여오빠앙아__~_!!!ㅠ퓨
7년 전
독자430
세상에 이렇게 설레면ㅠㅠㅠㅠㅠㅠㅠ 정국이가 다했네요ㅠㅠㅠ
7년 전
독자431
세상에 이번편은 계속 심장 잡고 봤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설레는 것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432
에에에ㅔ헤헤헤헤헤헤헤헿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ㅔ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ㅔ헤헤헤헤헤헤헤헿헤헤ㅔㅎ아주조으네여에에레레ㅔ헤헤헤헤헤ㅔ헤헤헤헤헤ㅔ헤헤ㅔ헤헤ㅔㅎ
7년 전
독자433
...으헝.. 아 진짜 설레요ㅠㅠㅠ 설레ㅠㅠㅠ어떡해ㅠㅠㅠ 남자로 보여 잘보여 아주 잘보인다구요!!!!ㅠㅠㅠㅠ으헝..
7년 전
독자434
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대박이네요 ㅎㅎㅎㅎ 진짜 마지막에는 설렘폭팔했어요 ㅎㅎㅎㅎㅎ
7년 전
독자435
저 묶어둔다는 거 천야일야 암시였구나... ㄹ하... 작가님은 천재야
7년 전
독자436
뭔가진짜잘어울리네오ㅋㅋ ㅠㅠㅠ퓨
7년 전
독자437
꺄....정주행중인데꿀잼이당!!작가님너무재미있러요!!
7년 전
독자438
흐ㅏ후허 심장아 나대지마,,,, 지민이 역할이 작지 않을 것 같군요...? 약간 삼각관계 좋아합니다,,( 설레발
6년 전
독자439
하ㅠㅠㅠㅠ지미니부터 정국이까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정구가!!!!황태자!!!!!!!!!!!!!!!!!!!!!!!
5년 전
독자440
흐어어엉 진짜 정국이 존댓말 반말 섞어쓰는거 넘나리 치이는것 ㅠㅠㅠㅠ
5년 전
독자441
에바세바 너무 좋아료ㅠㅜㅠㅜㅠㅜㅠ
5년 전
비회원173.216
와 아니 마지막대사ㅠㅠㅠㅠ
4년 전
1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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