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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게 칠판을 쳐다보던 백현의 시선이 정갈한 생머리가 인상적인 도경수의 뒤통수에 닿았다. 도경수는 한 번의 뒤척임도 없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수업에 참여했다. 백현은 그런 도경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어우, 징그러. 사람이 무슨 저래? 백현은 도경수를 골려 줄 생각으로 옆 짝꿍의 지우개를 집어 들곤 오랫동안 깎지 않은 긴 손톱으로 지우개를 뜯어 댔다. 짝꿍은 백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뭐. 라고 지껄이는 백현 덕에 아, 아니야. 라며 비굴하게 고개를 교과서에 처박았다. 지우개의 반은 뜯어 조각을 만들어 버린 백현은 조각 몇 개를 집어 들었다. 3, 2, 1. 나이스, 명중. 백현의 손가락에서 튕겨져 나간 조각들은 도경수의 뒤통수를 톡하고 건드렸다. 백현은 도경수가 뒤 돌아 보기만을 기다리며 지우개 조각을 괴롭히고 있었다.


백현의 생각과는 다르게 도경수는 반응 없이 펜을 쥔 손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진 백현은 잘라놓은 지우개 조각들을 한 번에 집어 경수의 뒤통수를 향해 던졌다. 이 과정에서 몇몇의 학우들도 지우개 조각 테러를 당해 찡그리며 뒤를 쳐다보았지만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백현에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정작 백현의 목표물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반응 없는 경수에 백현은 표정이 굳었지만 이내 수업 시간이란 걸 자각하고 책상에 엎드려 반밖에 남지 않은 짝꿍의 지우개마저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시끄럽게 울리는 종과 함께 선생이 나갔다. 백현은 엎드린 몸을 빠르게 일으키곤 도경수에게 다가갔다. . 짤막한 한 마디를 뱉으며 도경수의 의자를 발로 툭툭 찼다. 이에 도경수는 마치 뭐야?’ 라고 쓰여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백현을 올려다보았다.




너 무감각이야?”

"

"그걸 맞고도 왜 반응이 없는데.“

"

지금은 또 왜 말이 없는데, 너 말 못해?”

, 진짜

시끄러워. 도경수는 이 한마디를 백현의 면상에 던져놓고 교실을 나갔다.



, 시발 김종인, 일어나 봐.”


화가 난 듯한 백현은 잠에 취한 김종인을 발로 차며 깨웠다. 김종인은 한 번에 고개를 들더니 자니까 닥쳐. 라는 명언을 남기고 다시 엎드렸다. , 미안. 백현은 포기가 빨랐다. 타겟을 변경한 백현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오세훈에게 다가갔다. 시발, 오세훈. 저 찐따새끼가 나한테 말하는 거 봤냐? 게임 하고 있는 세훈에게 백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시발시발, 시발! 존나 빡쳐! 존나 내! ! ! ! ! ! ! ! 씨발들아!”



백현의 히스테리에 어린 학우들만 피해를 보고 있었다. 학우들의 피해를 눈뜨고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정의로운 반장 김준면이 작정한 듯 백현에게 다가갔다.



백현아, 왜 그렇게 화가 났니. 진정 좀 하고무슨 일이야?”

아 시발 반장, 아까 도경수 찐따새끼 패기 봤냐? 너도 내가 시끄러워?”



, 아주 많이. 차마 이 말을 내 뱉을 수 없었던 준면은 백현아, 우선 가라앉히고, 넌 전혀 시끄럽지 않아. 그렇지 애들아? 라며 학우들의 동조를 구했다. 준면의 말에 모든 학우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아! 백현아. 너 완전 침착하잖아! 따위의 말을 지껄여댔다.



맞아 시발! 내가 이렇다니까! 도경수 씨발 새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반장?”

! 그렇지. 그런데 백현아, 아까 수업시간에 그렇게 지우개를 던진 건……

아 시발너 도경수 편이냐? 존나 짜증나. 꺼져버려 아날로그 새꺄.”

, 아니, 그게……



백현은 준면을 뒤로하고 교실 문을 부서질 듯 닫고 나가버렸다. 학우들은 아오, 김준면. 넌씨눈이냐? 라며 선량한 준면을 비난해댔다. 학우들의 비난에 준면의 표정은 단번에 일그러져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교실을 박차고 나온 백현은 혼자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종인과 세훈이 없는 홀몸의 백현은 한낱 나대는 개새끼일 뿐이었다. 자신감이 500에서 5로 줄어든 백현은 생각 없이 복도를 거닐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


화장실 안에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 도경수가 보였다. 거울 안에서 백현과 경수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백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더니 경수를 불렀다.


시발, .”

기껏 도망 온 데가 여기냐?”



경수에 얼굴에는 의문이 서렸다. 도망? 경수는 백현의 말이 우스워 웃음이 났다. , 웃어? 백현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경수를 닦달했다.



"백현아, 너 나한테 관심 있어?“


경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백현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나니? 뭐라는 거야 저 병신이.



대답해 봐, 백현아.”

…… 시발, 이거 말로만 듣던 보기 드문 게이새끼 아냐?”






백현이 깨달은 듯 입 밖으로 뱉어낸 탄성 같은 한 마디에 경수는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한 번 씨익 웃더니 화장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경수가 나가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기만 하던 백현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씩씩대며 경수를 쫓았다.



! 씨발놈아, 넌 진짜 말로 표현도 못하게 짜증나는 새끼야. 시발 찐따새끼. 사람이 말을 했으면 반응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개 시발, 시발 짜증나.”

“...”

, 야 시발 또, 대답을 하라고 개병신아! 아까는 말도 잘 하드니만. ... ! 제발... 대답 좀... 경수님아, 대답 좀요.”


백현은 자기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앞만 보고 걷고 있는 경수의 귀에 대고 흥분한 멧돼지처럼 소리 지르다가 거지가 구걸하듯 애원하는 투로 말하다가를 반복했다. 경수는 백현의 소음에 반응 한 번 해주지 않고 비웃기라도 하듯 검은색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들더니 귓구멍에 처박아버렸다. 경수의 행동에 백현은 기가 막혔다.


, 나 시발. , 이어폰?”



흥분한 백현은 경수의 두 귀에 꽂혀있는 하얀색 두 줄을 빼버리고 자신의 입술을 경수의 귀에 딱 붙였다. 백현의 돌발 행동에 도경수, 그리고 복도의 학생들의 시선이 백현에게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백현은 개의치 않고 경수의 귀에 댄 입술을 움직였다.





경수야, . . .”




경수는 귀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매끈한 촉감에 순결을 잃은 기분이었다. 경수는 백현을 한 번 쳐다보더니 못 볼 거라도 본 듯 얼굴을 빵점 맞은 시험지처럼 구기며 시발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귀를 미친 듯이 문대며 뛰어갔다. 백현은 경수의 오버스러운 반응에 기분이 좋아 복도 한복판에서 실성한 듯 웃어댔다. 백현은 몰랐다. 그에게 시선이 꽂힌 수만 개의 눈동자들을 그리고 이 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백현은 경수를 이겼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






교실에 들어선 백현은 경수부터 찾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경수가 없었다. 백현은 좀 있으면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다. 반 아이들이 뭔가 자신을 쳐다보며 쑥덕대는 거 같았다. 하지만 백현은 방금 전의 일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방금 복도에서 보았던 경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경수를 놀려대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 가득 찼다. 백현은 초조하게 다리를 떨어대며 경수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종이 쳤지만 경수는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야, 도경수 왜 안 와. 백현은 불안했다. 곧이어 수학 선생님이 들어왔고 선생님은 경수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 때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렸다.






죄송합니다. 벌레가 제 귀를 물어서요. 보건실에서 소독 좀 하느라 늦었습니다.”




요즘 벌레는 귀도 무나 보군. 선생님은 허허 웃었고 상황을 아는 몇몇의 아이들도 킬킬댔다. 반면에 백현의 표정은 썩어 들다 못해 거름이 될 지경이었다. 백현은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책상과 의자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에 교실 안의 시선들은 백현에게 멈춰졌다.



자네는 뭔가.”

죄송합니다. 갑자기 다리가 저려서요.”



파워풀하고 당당하게 일어났지만 선생님에게 혼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백현은 비굴하게 둘러대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짝꿍은 백현의 보기 드문 비굴함에 작게 킥킥댔다. , 시발 웃어? 백현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 미안. 짝꿍은 고개를 책상에 처박았다. 백현은 경수에게 복수할 생각에 애꿎은 짝꿍의 연필을 책상에 갈았다.



결국에 지루함을 못 이기고 책상에 엎어져 자던 백현이 고개를 들었다.



"백게이, 일어났냐?"

"... 백게이? 뭐라는겨 병신아."

"몰라, 애들이 너 백게이라는데."


오세훈은 낄낄거리며 다시 스마트폰을 만졌다. 01로 만든 디지털 세계에 인생을 맡긴 새끼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백게이는 뭐야.


", 짝꿍. 백게이가 뭐냐."

"... ? ... 그거... 너가 도... 도겨"

"아 맞다. 시발 도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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