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16
By.아리아
이젠 집보다 익숙해진 교수실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하고 아늑한 공간이 찬바람 쌩쌩부는 제 마음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얇은 반팔 수술복 하나만이 제 몸을 감싸고 있는 통에 창을 통해 새어들어온 바람이 공간을 메꿨고 이질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이불을 정리해 덮으려 몸을 일으키니 어두운 창 밖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 시야에 들어온 건 그저 어둠 뿐이 아니였다. 아까 전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그 곳의 벤치에 앉아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도 보였다.
"...감기 걸릴텐데."
무의식 중에 나온 혼잣말이었다. 저와 같은 수술복 위에 얇은 가운 하나만 걸친 그에 미움보단 걱정이 앞섰다. 감기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저러고 있는지. 아, 몰라. 화를 괜히 냈나 싶은 마음이 자꾸 떠오르려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될까 싶었지만 그보다 하루동안의 피곤함이 먼저였는지 금새 잠에 취해버렸다.
***
"야,"
"..."
"김ㅇㅇ. 일어나라."
"..아, 뭔데 아침부터 난리야.."
"얼른."
"아, 왜! 나 고작 세시간 잤거든!"
자꾸만 저를 흔들어깨우는 손길에 이불을 뻥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에 얼굴을 얻어맞은 지훈이였지만 이젠 그것도 익숙하다는 듯이 이불을 정리하며 말하는 지훈이에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많이 잤네. 레지 땐 삼일동안 세시간 잤잖아."
"레지 뗀지가 언젠데. 그래서 넌 아침부터 왜 왔어?"
"..그, 소아병동 가봐. 너 어제 테이블 데스 한 환자 보호자 분들 오신 것 같더라."
"..어?"
이불을 정리하다 말고 어두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지훈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에 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리저리 구겨진 가운을 팔에 껴넣으며 소아과 의국으로 향했다.
"어제 그 여의사 불러오라고!"
"보호자분! 조금만 진정하세요!"
도착한 의국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난장판이었다. 어제 잠깐 뵈었던 환자의 아버지는 드레싱 카트에 있던 메스를 든 채 이리저리 휘두르며 저를 찾고있었다. 소아과 간호사 중 청일점인 승관쌤과 여자 인턴들이 막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흥분할 대로 흥분해버린 사람을 막긴 역부족이었다. 숨을 깊게 내쉬곤 난리가 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님, 일단 진정하시,"
"교수님!"
순식간이었다. 날카로운 메스가 제 볼을 스쳐 지나간 건. 놀라 저를 부르는 후배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벌건 피가 제 볼을 타고 흘러내려 하얀 크룩스에까지 번지고 말았다. 뚝뚝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피에 눈물이 글썽였지만 이내 정신을 되찾곤 보호자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아버님,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씀부터 해주세요. 메스 저 한테 주시구요."
"..너가, 너가 우리 아들 죽였지."
전보단 조금 진정된 보호자에 눈짓으로 메스를 뺏어오라는 신호를 보내니 용케 알아듣곤 슬쩍 다가가 메스를 빼고 제게서 조금 떨어뜨려놓는 찬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메스 대신 제 멱살을 잡아 오는 보호자에 또다시 의국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가까이 오니 훅 풍겨오는 알콜 냄새였다.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랬어. 근데 왜! 죽어서 나오냐고 내 아들이!"
"환자 분 저희 병원 도착했을 때 부터 위독한 상태였어요. 저희 측에서 수술하면 더 위험하니 안 된다 한 걸 해달라고 하신 건 아버님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여기까지 오셔서 이러시는 건지 전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여기 다른 환자분들, 보호자분들도 많아요. 더 할 이야기 있으시면 제 진료실와서 하시죠."
멱살이 잡힌 채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볼에서 흐르는 피는 흐르고 흘러 보호자의 손까지 타고 내려갈 정도로 심각했다.
"..."
"..."
한참을 멱살을 잡은 채 저를 바라보는 보호자에 저 또한 지지 않고 눈을 마주했다. 어느새 보호자에 눈가엔 눈물이 맺혔고 제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서서히 풀렸다. 바닥에 털석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버님, 시환이 좋은 곳 갔을거에요. 이런 모습 보면 아마 더 아파할 것 같은데 술 그만 드시고 아내 분 챙기셔야죠."
"..."
"저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아버님 심정 전부는 이해 못 하겠지만 십 년 넘게 의사 공부하면서, 환자분들 보호자분들 만나면서 배우고 느낀 게 많아요."
"오늘 하나 또 배워가네요 아버님께. 저 평생 원망하셔도 괜찮아요. 그걸로 아버님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진다면요. 제 숙명이려니 하고 다 받을테니 아버님 인생까지 포기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넋이 나간 채 제 말을 듣는 보호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아, 이 분 부축해서 장례식장 좀 데려다드려."
"..교수님 얼굴은..."
"괜찮으니까 얼른."
그제야 생각나니 서서히 통증이 오는 볼 쪽에 가운으로 대충 지혈을 하곤 얼른 가라는 손짓을 하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호자를 일으켜 장례식장 쪽으로 향하는 찬이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투르던 제 레지던트 시절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게 화근이었다. 안면근육을 사용하니 더 벌어지는 듯한 상처에 급히 GS로 향했다.
*GS : 일반외과
툭,
점점 더 아려오는 상처부위에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뛰어가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다. 꽤 세게 부딪힌 어깨에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부여잡으며 부딪힌 사람을 올려보았다. 아씨, 권교수다.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혹여나 제 상처를 드러내버릴까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자리를 떠나려했다. 하지만 이내 세게 잡혀버린 팔목에 오도가도 못 하고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 왜,"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모르게 나온 꽤 단호한 말투에 저는 물론 권교수도 당황한 듯 싶었다. 이때다 싶어 손목을 비틀어 빼내곤 완전히 등을 돌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제지하는 손길이 없었다. 헐렁해진 손목에 남겨진 붉은 손자국을 애써 문지르며 그의 생각을 없애려했다.
쾅-
석민이의 진료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환자들이 앉는 의자에 앉았다. 안경을 끼고 논문을 점검하던 찰나에 환자도 아닌 의사가 가운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들어오니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뭐야, 갑자기 왜."
"야, 나 이거 좀."
지혈을 하고 있던 가운을 내리곤 상처부위를 보여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가까이 다가오는 석민이었다.
"미친, 왜 이래? 뭔 일 있었어?"
"말하면 너무 길어. 빨리 뭐라도 좀 해 줘 봐."
"어,어. 잠시만."
진료실 한 쪽 구석에 박혀있던 드레싱 키트를 들고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처부위를 소독하는 석민이에 왜 그렇게 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돌아온 건 가만히 좀 있으라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향해 날라온 딱밤 뿐.
"꼬메야 돼?"
"아니. 그 정돈 아닌데 피 좀 많이 나네. 흉터는 남을 수 도 있겠다."
흉터라니.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 얼굴에 흉터까지 생길 걸 생각하니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어느새 대충 정리 된 상처에 드레싱 키트를 정리하며 저를 바라보는 석민이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다쳐온건데."
"어제 테이블데스 환자 보호자 분 오셨어."
"아.."
"뭘 그렇게 안쓰럽게 보냐? 나보다 몇번은 더 하신 분이."
"난 많이 해서 좀 괜찮다 싶어도 넌 몇 번 안되잖아."
"..."
정곡을 찔렸다. 비교적 수술이 적은 과인지라 테이블 데스 횟수도 적었다. 그래서 할 때마다 한 일주일은 넋을 놓은 채 지내는데 그럴 틈 조차 안줬으니. 또 다시 머릿 속에서 재생되는 어제와 오늘의 상황에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권교수는, 알아?"
"뭘."
"그냥 어제 오늘 일."
"...몰라, 그 사람 얘기 하지도 마."
꽤 신경질적으로 나간 말에 입을 앙 다물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석민이에 의자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해 문고리를 잡아 내리려던 찰나였다.
"권교수 너무 미워하진 마라. 너 엄청 걱정하던데."
"..뭐래,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애써 무시하며 문을 쾅 닫고 일반외과 의국을 빠져나왔다.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오늘따라 저 위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한숨을 내쉬며 벽에 몸을 기댄 채 내려오길 기다렸다. 어째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벽에 머리를 기대자 자꾸만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뒤를 돌아 원인을 확인했다.
"..망했다."
'모탈리티 컨퍼런스' 환자의 사망 케이스를 기반으로 원인과 과정을 살펴 재발을 막기위한 모임. 평소 같으면 그냥 하나보다 하는 컨퍼런스가 오늘따라 무서웠다.
***
"PED 김ㅇㅇ 교수님."
"네."
"그 상황이 테이블 데스까지 갈 상황이었나요?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네. 이미 많은 출혈이 진행된 차례였고,"
이 앞엔 처음 서본다. 저를 향한 수많은 눈빛이 왜 죽였어, 넌 살인자야,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별거 아닌 질문에도 사시나무 떨 듯 힘겹게 대답했다. 자신들의 궁금증이 풀리자 하나 둘씩 떨어지는 시선에 겨우 숨을 돌렸지만 제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 권교수의 시선은 애써 무시했다.
"이상, 모탈리티 컨퍼런스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온몸의 긴장이 다 풀려 의자에 푹 기대었다. 밥 뭐먹을래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청각실을 빠져나가는 동료들과 어울리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김교수님."
익숙하게 듣기 좋은 목소리가 제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할 말 없으니까 가세요. 다들 밥 드시러 가던데."
"내가 할 말 있으니까 나 좀 봐요."
끈질기게 나오는 그에 화인지 섭섭함인지 모를 감정이 터져나와 눈을 뜨곤 그를 마주했다. 고작 하루 제대로 안 봤다고 반가워하는 마음은 힘들게 밀어넣었다.
"할 말 없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저 지금 그쪽 화 내는 거 다 받아줄 멘탈 아니니까 좀 가시라,"
"미안해요."
"...."
속사포로 내뱉던 제 말은 눈을 맞추며 진심을 전해오는 그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미안해 ㅇㅇ야."
담백한 말로 진심을 터뜨리는 그에 알 수 없는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그의 상황도 이해해줬어야 하는 건데 하는 미안한 마음과 그래도 아직은 조금 남아 있는 미움과 며칠동안 겪었던 울적한 감정들이 한데 섞여 제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의 넓은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리고말았다. 제 머리를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어오는 그에 더 울었던 것 같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제 고개를 조심스레 들어올려 상처부위를 쓰다듬는 그였다.
"나 용서해주는 거죠?"
끄덕끄덕.
"목소리 듣고 싶은데, 한번만 대답해주면 안돼?"
"..응."
물기로 가득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며 아, 진짜 귀여워서 어떡하지. 하는 느끼한 멘트를 날리며 저를 꽉 안아오는 그였다. 예전 같으면 저런 멘트는 식겁하며 내쳤을텐데 아무래도 실실 웃음이 나오는 것이 그에게 푹 빠졌나보다. 그도 저와 같은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예쁜 얼굴에 이게 뭡니까, 이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제가 뭐 다치고 싶어서 다쳤나요. 그리고 예쁘긴 무슨.."
"예뻐요. 다 예뻐."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듣는 다정한 말투는 아직 익숙치않다. 붉어진 얼굴을 그의 품에 묻어버리자 또다시 다정한 손길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오는 그였다.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은 그의 진심 한 마디에 결국 하루만에 마무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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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바로 그 급전개의 왕입니다 제가 뭘 쓴거죠...? 시험 망치고와서 제정신이 아니라 뭘 쓴건지 모르겠네요...퓨..신경외과도 완결이 얼마 안 남았어요!!끝까지 함께 해주세용!!! 그럼 전 이만 음중 보러갑니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