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19
By. 아리아
잠시 머리 아픈 생각은 접어두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 이젠 익숙해진 그의 향이 어지러움을 싹 씻겨주는 듯 했다. 맑아진 정신에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안전벨트로 손은 가져다대던 제 행동은 따뜻한 그의 손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안전벨트를 채워주곤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았을까, 집요한 시선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자 바람빠진 웃음을 흘리며 까슬한 입술에 짧은 온기를 남기고 운전대를 잡는 그였다. 차가 부드럽게 한밤의 거리를 달렸다.
"자기야."
"응, 네?"
"무슨 일 있어요?"
제 집이 위치한 골목길에 다다르자 차가 멈추었다.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였다. 세상 모든 걱정은 다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듯한 표정에 난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 밖에 없었다.
"딱히 없는데, 왜요? 그렇게 보이나?"
"김교수 차 타고 한 마디도 없었던 건 알아요? 표정도 안 좋고."
"..아."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여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나 보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요,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에 배시시 웃어보이며 어느새 꽤 길어진 그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권교수님은 나 믿죠?"
"당연하긴 한데, 그 말은 내가 해야될 말 아닌가?"
"아니, 교수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요."
능글맞게 미소를 짓는 그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때리며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그러자 그는 제 볼을 쭉 잡아당기며 씩 미소를 띄었다.
"뭐 때문에 그런 소리까지 하는진 모르겠는데, 걱정하지 마요. 인상 좀 펴고. 주름 생긴다."
"..치, 알았어요. 나 갈게요. 내일 봐요."
잔뜩 주름진 미간을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누르는 그에 제 손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차 문을 열었다. 어차피 집까지 거리도 얼마 안 남았을 뿐더러 괜히 찬바람 맞으면서 걷고 싶단 마음이 비집고 들어와있던 터라 문을 열어 내린 후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달칵, 하는 또 한번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춥지도 않은지 회색 수트 하나만을 입고 내린 그를 갸우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내려요? 나 집에 갈건데?"
"혼자 보내긴 내가 맘에 걸려서."
"괜찮은데.."
"씁, 얼른 와서 손 잡아요. 오빠 춥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얇게 입고 내리래요? 뒷자석에 코트 있던데 왜 안 입어요."
"그거 입다간 김교수 저- 끝까지 도망 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게 뭐에요.."
어쩜 그리 제 기분을 잘 파악하는지 제 집 방향으로 손가락을 뻗으며 장난스레 말하는 그였다.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그에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옆으로 가 팔짱을 꼈다. 딱 붙자 느껴지는 그의 온기가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듯 했다.
분명 이 골목에서 집까지 꽤 거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짧게 느껴지는지. 집에 가까워질수록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쳐졌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걷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시간만 조금 늦춰졌을 뿐이지 거리는 같아 결국 둘의 발은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멈추어섰다. 서로를 마주보고 서자 머리 위로 센서등이 깜빡이며 머리 위를 비추었다.
"안 들어가요?"
"권교수님 먼저 가세요. 가는 거 보고 들어가게."
"김교수 먼저 가요."
서로의 뒷모습을 보겠다는 의지인지 무엇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실랑이가 일었다. 몇번을 주고 받고 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푸스스 웃으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의 품에 상대를 담았다. 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아기를 놀아주듯 좌우로 흔들거리는 그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보내기 싫다-"
"자고 갈래요?"
진심 반, 장난 반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둠이 짙게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붉어진 그의 귀가 선명히 드러났다. 예상 외로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 양손으로 그의 귀를 감쌌다.
"권교수님 추운가보다. 귀 엄청 빨개요."
그는 제 장난에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병원에서의 냉철함은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 사춘기 소년마냥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가 귀엽다 느꼈다. 자꾸만 제 눈을 피하는 그에 귀를 감싸고 있던 손을 그의 두 볼로 옮겨 살며시 쥐었다.
"뭐해,"
쪽,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억이 맞다면 제가 먼저 다가가 한 뽀뽀는 이번이 처음이 틀림없다. 비록 그동안 나눴던 진한 입맞춤은 아니였지만 은은한 조명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그와 함께여서인지 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과 달리 제 눈을 빤히 바라보는 그에 지지않고 눈을 마주했다. 묘하게 올라간 눈꼬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이래서 병원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나.
"..."
"..뭘 그렇게 봐요."
"..한 번만 더 해줘요."
"뭘요?"
"알면서."
서로의 시선이 진득하게 얽혔다.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은 어느새 제 허리를 끌어당겼고 그의 볼을 잡고 있던 제 손은 그의 목 부근에 둘러져있었다. 긴 입맞춤에 센서등이 한 세 번쯤 켜졌을 때였다.
"..딸?"
"..ㅇ,엄마? 아빠..?"
망했다.
***
지금 거실의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정말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누군가 톡 건들기라도 한다면 다 부서질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 불과 몇 분전, 지방에서 올라와 오랜만에 딸을 보시려던 부모님이 보신 모습은 왠 처음 보는 남자와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던 모습이었다. 당황해 급히 떨어져 어색하게 웃어보았지만 제 입술에 발린 틴트의 색과 똑같은 색이 잔뜩 번져있는 그의 입가에 분위기는 더욱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
"아, 네. 권순영이라고 합니다. 김교수랑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살벌한 분위기를 깨려고 시도한 건 엄마였다. 하지만 그, 라는 한마디에 잔뜩 긴장해 다나까 말투를 시전한 그 덕에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고말았다.
"아하하, 엄마. 권교수님 내일 출근하셔야 되는데,"
"내일 오후에만 수술 있어서 괜찮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저에게 까지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그였다. 곁눈질로 그를 흘깃 보니 이미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양쪽 주먹을 꽉 쥔채로 무릎에 올려놓은 것이 이제 막 입대한 이등병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원래 말투가 그렇게 딱딱한가?"
"아,"
"아니야 아빠. 나한텐 엄청 다정해요. 걱정 안해도 된다니까?"
어릴적부터 저를 끔직이도 아꼈던 아빠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에게 질문을 툭 던졌다. 팔짱을 끼고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은 제가 봐도 무서울 때가 많은데 처음 본 권교수는 어떻겠나 싶어 급히 끼어들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가만히 있으라는 두 남자의 잔소리 뿐이었다.
"언제부터 만났나."
"4개월 정도 됐습니다. 제가 좋아해서 따라다닌 건 더 오래 전이구요."
"..."
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두 남자 간의 보일듯 말듯 한 기싸움에 제 입 또한 꾹 다물렸다.
"이름이, 권순영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늦었는데 가보게. ㅇㅇ야, 배웅하고 와라."
"네.."
단호한 아빠의 말투에 축 쳐져 현관으로 향했다. 대충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곤 뒤를 돌아 거실을 바라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는건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침을 꿀떡 삼키고 있는 그가 보였다.
"아버님, 저 김교수, 아니 ㅇㅇ가 아버님이 짐작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
"첫 인사 이렇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찾아뵐게요. 가보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숙여 제 부모님께 인사를 하곤 구두를 신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긴장이 풀리는지 큰 한숨을 내쉬며 제 손을 잡아 오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1층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여자의 목소리에 그를 껴안고 있던 손을 손으로 옮겨 깍지를 껴보였다.
"아, 미안해서 어떡하지.."
"뭐가 미안해요. 나 잘 했는지 모르겠네, 떨려서 뭐라고 말한건지 기억도 안나."
"괜히 나 때문에 고생시킨 것 같잖아요..미안해요 진짜."
"씁, 미안하단 소리 그만. 오래 있으면 부모님 오해하신다. 얼른 올라가요. 자기 전에 연락하고."
"응. 조심히가요."
힘이 쭉 빠졌는지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가 보이지 않을만큼 멀리 갔을 때 쯤, 팔목에 채워져있던 시계를 확인하곤 다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문을 열면 제게 불어닥칠 질문들이 떠오르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학교 나온거니?"
"아니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왔어요. 자긴 한국 사람이라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미국 의사 자격증도 버리고 그냥 왔다니까? 마인드가 참 좋아."
"어머, 진짜?"
"나이는, 너랑 동갑?"
"나보다 네 살 많아요. 궁합도 안 본 다는 네 살 차이. 대박이지-"
"괜찮네. 잘생겼지, 의사면 직장도 안정적이고 너 성격도 이해해줄거고. 그죠, 여보?"
별거 아닌 질문에도 그의 칭찬을 두 세 마디는 덧붙여 대답했다. 몇 개의 질문을 거치자 엄마의 표정은 이미 방실방실 웃음을 띄우고 있었고 아빠의 표정도 서서히 풀려가는 기미가 보였다.
"아빠, 권교수가 밑에서 뭐랬는지 알아요? 아빠 진짜 잘생겼대. 병원에서 수많은 중년 남성을 봤는데 아빠가 제일 잘생겼대요."
"그래?"
"응응. 그냥 아빠 진짜 좋으신 분 같다고 찬양하다 갔어요."
아빠의 옆에 앉아 살살 애교를 부리니 입꼬리가 씰룩이려는 걸 애써 참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우리 딸, 많이 좋아해?"
"어?"
"권교수인가 그 사람, 사랑해?"
갑작스런 아빠의 질문이었다. 순간 제가 잘못 들은건가 싶어 다시 한번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그 사람을 사랑하냐는 말. 그리고 난 그 말에 똑똑히 답했다.
"응. 사랑해요."
"..그럼 됐어. 우리 딸, 다 컸네-"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빠에 괜시리 울컥해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중학생 이후로 한번도 안겨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품이 많이 작아져있었다.
NS 권순영 교수
오전 12:06 자요?
아니요 아직
이야기 끝났어요? 오전 12:07
오전 12:07 응응
뭐라셔? 오전 12:07
마음에 드신대요
엄마가 엄청 좋아하신다
오전 12:10 어디서 저렇게 잘생긴 사위를 데려왔냐고ㅋㅋㅋ
ㅋㅋㅋ감사하다고 전해드려요
아버님은? 오전 12:10
아빠도 엄마만큼은 아닌데 좋아하세요
권교수님 성공했네
오전 12:10 우리 아빠 내 남자친구들 한 번도 맘에 든다고 한 적 없는데
그건 감사한데
남자친구들?
대학 다닐 때도 공부만 했었다면서요
거짓말이였어? 오전 12:10
응? 아니야
오전 12:10 그런 거 아니야
아아아
오빠
오전 12:14 화났어요?
아니요 오전 12:20
아아 자기야 화 풀어요 응?
진짜 잠깐잠깐 만난거야
오전 12:20 뽀뽀도 안 했어!
진짜? 오전 12:20
오전 12:21 응 완전 진짜
그건 뭐야ㅋㅋㅋㅋㅋ 오전 12:21
오전 12:21 그니까 화 풀어요 알았지?
몰라
내일 얼굴보고 해주면 풀릴 것 같네요 오전 12:22
오전 12:22 에?
나 잡니다
카톡 그만하고 내일 애교 부릴 준비나 해요 오전 12:23
1 권교수님
1 왜 그러세요
1 교수님?
1 진짜 자요?
1 아 권순영 진짜
오전 12:23 1 악몽이나 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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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독서실에서 이제 집에 들어와쯥니당...넘나 힘든 것.....우리 그 전편에 그 빨간 매니큐어는 잠시 킵해두고 달달한 권교수님 좀 봅시다헤헤 권교수님 긴장해쏘... 귀여워......끙...그나저나 권겨수님 입술 주변에 막 틴트 그런 거 묻어있는거 상상하면 발리지 않나여....쓰니 쥬금......어후 새벽이라 음마가 가득하네요 껄껄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