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이태용네 집에 가기로 했던 내 어제의 다짐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바로 아침에 내 앞으로 전갈이 왔기 때문이다. 그 전갈의 수신자는 이동혁도 이태용도 아닌
‘성 대감의 여식은 사흘 뒤 궁으로 입궁하시오.’
나는 예의도 갖추지 않은 채 바로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시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나를 향해 소리쳤고,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시선을 한 데 집중했다. 아버지. 지금 뭐 하시는 거 에요.
“잠시 나가 계세요 부인.”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가셨다. 아버지와 나. 정적이 우리를 감쌌다. 무슨 일이냐.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아침에 어영이에게서 받은 전갈을 펼쳐 아버지 눈 앞에 내보였다.
‘김 대감의 여식 落 [탈락]
윤 대감의 여식 死 [사망]
성 대감의 여식은 사흘 뒤 궁으로 입궁하시오.‘
남은 삼간택의 후보들이 모두 탈락했다는 글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 남았으니 궁으로 나흘 뒤 입궁하라고. 이게 당최 무슨 말일까 생각했다. 재간택 때 본 사람들은 모두 건강했고,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한 명은 이유 없이 탈락하고, 한 명은 죽었다고? 그때 딱 생각 난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뛰어 들어온 것이다.
나를 어떻게 해서든 나를 국모의 자리로 오르게 하겠다던.
아버지.
“이게 무슨..!”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라.”
“..”
“김 대감의 자식은 정인이 있기에 탈락했다는 표시가 찍힌 것이고, 윤 대감의 여식은 다른 곳에 있는 것 뿐이니. 이 일이 잠잠해지면, 그 때 다시 불러들일 것이다.”
설마설마했던 것이 진짜가 돼 버렸을 때, 사람들은 역시. 하고 타격이 덜할까?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산 사람을 죽었다고 하지를 않나, 정인이 있었다는 이유로 탈락을 시키지 않나.
“정인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이 된 것이면, 저도 탈락해야 되는 거ㅈ..”
“아니.”
“..”
“이미 이야기는 끝났다.”
“아버지!!!”
아마 김 대감의 여식이 정인이 없었을 지도 모르지. 그저 아버지가 꾸며 낸 모순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손을 쓴지는 모르지만, 악랄하고 치졸했다.
사실 다른 것들 보다도 앞으로 이동혁을 못 볼 수도 있다 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제 여기 조금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그렇게 나는,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궁에 갈 것입니다. 지금.”
국왕을 만날 것이다. 직접.
*
어영이에게 어떻게 해야 이 전갈을 궁에 보낼 수 있냐 하니, 보낼 수 있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다 했다. 오늘은 아니고 내일쯤 이라고. 안 된다. 내일이면 늦어서 안 돼. 어영이에게 바로 갈 것이라 했다.
가마가 준비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는 어영이의 말에,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적응하지 못 한 것이 하나 있다면, 조금 불편한 신발이라고 할까. 버선을 신어도 익숙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발뒤꿈치가 까지는 그 신발을 신고 궁까지 걸어갔다간, 발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방에 들어와 고민했다. 어떻게 하고 가야 할까. 그래도 국왕을 뵙는 자리니 단정하게 하고 가야 할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가는 것보다야, 무례하더라도 엉망으로 하고 가야 나를 더 밉게 보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저번에 책잡혔던 버선 뒤쪽의 각도 이상하게 잡았고, 머리도 헝클었다. 눈 위에는 이상한 색을 칠했고, 여기 와서 하지 않던 화장도 이상하게 했다.
“아씨 가마 준비 되었ㄴ.. 힉. 이게 뭐에요 아씨!”
“가자.”
어영이가 내 몰골을 보고 기겁을 했고, 나는 그런 어영이에게 그저 가자는 말만 했다. 큰일인 것을 어영이가 눈치 챈 듯 했고,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가마는 궐로 향했다. 꼭 국왕께 말씀드려서 부당한 삼간택을 없앨 각오를 한 나를 태운 채.
*
“이게 무례하게 무슨 짓이냐!!”
“뵙게 해 주세요. 성 대감의 여식 성이름 입니다.”
일단 궁 안으로 들어왔는데, 어디에 가야 국왕을 만날 수 있는지 몰라서 조금 높아 보이는 궁녀에게 어디로 가야 국왕을 만나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니 그 궁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따라오라며 앞장을 섰다. 그 뒤에 나와 어영이가 따라갔고.
“마마, 성 대감의 여식 성이름이 잠시 뵙고 싶다며..”
그저 따라간 것인데. 이곳이 국왕이 있는 곳이 아니었나. ‘마마’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아마 전에 뵀던 대비마마가 계신 곳 같은데. 상관없었다. 난 그저 누구에게라도 말해야 했다.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문 밖을 뚫고 들리니, 문 양옆으로 서있던 궁녀 둘이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전에 뵀던 국왕의 어머니이신 대비마마가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계셨고.
“안녕하세요.”
“그래, 무슨 일이 있어 왔습니까?”
국왕의 어머니로 보이는 대비마마가 내게 이제는 반말 대신 존대를 사용하신다는 점에 대해서, 간택이 됐다는 의미가 얼마나 큰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 주상도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원래 말 하려 했던 거. 편하게 얘기하세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내 말에 뭐가 아닌 것 같냐며 다시 되물으셔서, 솔지하게 다 말씀 드렸다. 이건 아버지가 다 꾸민 일이라고. 전 전혀 이럴 의향 없다고.
모르고 계셨을 줄 알았던 분께서,
이렇게 알고도 눈감아 주신다는 것을. 나는 국모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니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대담해지기로.
"..주상전하께서도 알고 계셔요?"
"무례하기 끝이 없네요!!!"
"괜찮네."
조심스레 국왕도 알고 있냐 물으니, 옆에 있던 궁녀가 기겁을 하며 무례하다 나를 질책한다. 그에, 대비마마께서는 괜찮다 내게 이르시고.
"주상은 모르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게 크게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럼 제가 전하께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그건..!"
"주상전하 납시오."
"힉.."
문이 열렸고, 대비마마께서 내 옆자리로 오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내 옆으로 빨간 용포가 지나가, 앞에 앉는 게 슬쩍 보인다. 그리곤, 뒤에서 들리는 어영이의 놀라는 소리. 급히 입을 막은 듯 하다.
"..주상. 늘 천천히 오시라 하였는데."
"제가 오면 안 되기라도 했나요?"
그 말을 마치고는 웃는 소리가 들린다. 호탕하게 웃는 소리도, 조소도 아닌 그저 살짝 웃음이 입에서 빠지는 소리. 그리고는 내게 묻는다.
"..성 대감의 여식..?"
"예. 인사드리겠ㅅ.."
"아뇨. 앉아 계세요."
의외로 내게 존대를 쓰는 국왕은, 무슨 일로 온 것이냐 대비마마께 물었다. 그러니 그저 간택 때문에 잠시 불렀다 했고. 언제 불렀어요.. 내가 왔지.
"전하, 간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일부러 아무도 보지 않으려 눈을 내리깔고 땅만 보았는데도 옆에서 대비마마의 째림이 느껴진다. 이렇게 당당하지 못 하실 거면 왜 그런 일을 꾸미셨어요.. 정당하게 돼도 안 오고 싶었을 건데 이렇게 강제적으로 하시면 참.
그 말에 문제가 뭐냐 묻는 국왕에게 나는 다 풀어서 설명했다. 김 대감의 여식은 어쩌고.. 윤 대감의 여식은 어쩌고.. 그러니 국왕이 제 어머니께 묻는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냐고. 그러니 대비께서 한숨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수긍한다.
"간택에 손을 대신 건, 대궐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인 것을. 어머니께서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주상..그게.."
"허나, 이미 일이 진행된 후면, 어쩔 수 없지요."
"예?"
전자는 국왕이요, 후자는 대비마마. 마지막에 놀란 것은 대비마마가 아닌 나였다. 저게 무슨 근본없는 소리야.. 어쩔 수 없다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내 시선이 흔들린다. 뭘 어쩔 수 없어? 와 진짜 욕 나온다. 지금 그럼 이 부당한 간택을 알고도 눈감겠다는 말이야?
"저는 제 비가 될 사람이 마음에 듭니다. 곧 있을 장례의 비빈으로써 거쳐야 할 예비 수업을 준비하세요."
"보세요 전 전하의 비가 될 자격이 없ㅇ.."
아무리 국왕이라지만,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이젠, 완전히 엉망인 내 몰골을 보고서라도 정이 떨어져라 해서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용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찾았는데. 오랜만에 봅니다."
이미 구면인 그가 앉아 있었다.
! 작가의 말 ! |
오늘은 적은 장소에서 여러 일이 있었어서 그런지 왜 이렇게 분량이 작은 것 같죠? ㅋㅋ큐ㅠ.. 항상 댓글 다 잘 보고 있습니다! 힘이 돼 주시는 댓글 감사드려요. 궁금한 점은 댓글로 질문해 주세요! 암호닉 신청은 현재 받지 않고 있으니, 2차 암호닉 신청 기간에 꼭 웃으면서 봬요 :) ♥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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