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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첫사랑_04
w.피자피자
밤새 내 곁을 지키며 상태를 체크하며 간호하던 그 덕에 가끔 옅은 기침만 나올 뿐 몸살 기운은 싹 씻겨내려갔다. 전 날 아침과 비교하면 배는 상쾌한 기분에 쉽게 침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열 때문에 흘렀던 땀들에 절어있던 몸을 깨끗이 씻고 나오자 초록 빛을 반짝이는 휴대폰 센서에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털며 한 손으로 잠금을 풀어냈다. 내게 온 연락은 문자 2통.
제노
[나 중요한 재판 있어서 먼저 가니까 아침이랑 약 꼭 챙겨먹어 이따 데리러 갈게]
엄마
[딸 저녁 같이 먹기로 한 거 안 잊었지? 이따가 퇴근할 때 제노랑 같이 집으로 와~]
아, 오늘이었나.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오늘 날짜에 쳐져있는 빨간 동그라미와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저녁 식사' 라고 적혀있는 글씨가 보였다. 오늘이었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두 문자에 모두 긍정의 답을 보냈다. 전송완료 알림이 뜨는 걸 확인한 뒤 화장대에 앉아 얼른 준비를 시작했다. 티셔츠를 적시는 축축한 머리카락이 점점 말라갔다.
***
"저 왔어요-"
익숙한 손길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웬일인지 꽉 차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신입 들어온 단 소리는 없었는데. 사무실을 둘러보자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내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이민형!"
"왔어?"
"와, ㅇㅇ야. 나도 좀 그렇게 반겨주면 안 돼?"
"선배도 일주일 동안 법원으로 출근하시면 반겨 드릴게요."
심드렁한 말투로 답하자 선배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그냥 반기지 마. 일주일 법원 출근이 말이 되냐." 하며 궁시렁 대다 탕비실로 향했다. 아침부터 또 뭘 저렇게 드시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웃다 이내 자리로 향했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키곤 로딩을 기다리며 책상 정리를 하던 내 손이 민형의 부름에 의해 멈추었다.
"아, ㅇㅇㅇ. 내가 준 사건 자료들 봤어?"
"대충. 왜?"
"할 수 있겠어?"
"별로 심각한 사건 아니던데. 너 나 무시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담당 변호사 안 봤어?"
"뒤에 까진 못 봐서 못 본 것 같은데. 뭐, 엄청 유명한 변호사야?"
"아니. 너 친구던데. 이제노 변호사."
"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흔한 이름도 아닐 뿐더러 이민형이 담당 변호사 이름을 헷갈릴리가 없다. 세상 미안하단 표정을 지은 채 내게 말하는 민형에 뭐라 짜증을 낼 수 도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서류 더미에서 노란색 파일을 꺼내들었다. 파일에 꽂혀 있는 수많은 종이들을 한 번에 넘겨 맨 마지막 장을 펼쳤다. 종이 끄트머리에 보란 듯이 '담당 변호사 이제노' 라는 정갈한 글씨와 함께 그의 도장 또한 쾅 찍혀 있었다. 그 많고 많은 변호사 중에 하필 왜.
절로 울리는 듯한 골머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검사 명단에 손수 이름까지 올려놓은 터라 넘길 수 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난 그와 재판장에서 만나야 한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었다. 한 숨을 푹 내쉬며 감았던 눈을 뜨자 손톱을 물어 뜯으며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민형이었다. 하지만 난 일주일 내내 법원으로 출근한 애한테 화를 낼 만큼 가혹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괜찮아. 어차피 검사 생활하면서 한 번은 만날텐데."
"진짜 미안. 내가 맡으려고 했는데 지금 맡고 있는 게 너무 커서.."
"나 진짜 괜찮다니까? 대신,"
"응?"
"져도 몰라. 얘 말 진짜 조곤조곤 잘 한단 말이야. 나도 얘는 못 이겨."
"어어, 당연하지. 괜찮아. 미안하다 진짜.. 내가 다음에 밥 살게."
"나 고기."
먹을 거에 또 홀랑 넘어가버렸다. 밥을 산다는 민형에 변호사를 확인하고 침울해하던 ㅇㅇㅇ는 어디로 갔는지 헤헤 웃으며 고기를 외치는 나였다. 민형은 내 표정이 풀린 것을 보곤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 뽕 뽑아야지. 고기 생각을 하자 고소한 냄새가 맡아지는 듯한 느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컴퓨터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배경화면 속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너와 나의 사진을 보자 다시 잠시 우울모드가 찾아왔지만 금세 표정을 지워내곤 조금 남은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사무실 안을 맴돌았다. 오랜만에 사무실로 찾아든 고요함이었다.
***
띠링-
대충 점심을 떼운 뒤 한참을 같은 자세로 타이핑만 했을까, 책상 끝에 놓아둔 휴대폰이 반짝거렸다. 팔을 뻗어 휴대폰을 가져와 잠금을 풀자 문자 아이콘 옆에 조그맣게 1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누른 버튼에 방금 온 문자가 로딩되자 내 얼굴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제노
[검찰청 앞이야 내려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다운 문자였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자 어느새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햇볕이 스며 들어오던 사무실은 옅은 어둠이 깔렸고 이미 퇴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얼른 그에게 답장을 보내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분명 아침에 기상 캐스터 언니가 따뜻하댔는데 그 말만 믿고 얇은 코트를 입고 나왔던 게 화근이었다. 코트 사이로 들어오는 찬 기운들이 겨우 나았던 감기를 다시 들기에 충분하다 못 해 차고 넘쳤다. 코트를 더욱 세게 여매며 그가 있을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퇴근을 한 사람들이 많은 건지 주차장은 생각 외로 한산했다. 그 덕에 그의 차를 찾기도 쉬웠고 난 차를 발견하자마자 총총 걸음으로 달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미리 틀어놓은 히터 덕인지 한기로 가득했던 몸이 녹는 듯한 기분이었다.
"힐 신고 뛰지 마. 너 또 넘어진다."
"네네. 이제 단련돼서 괜찮으니까 잔소리 그만 하시고 출발 하세요- 기다리시겠다."
"벨트."
"아, 맞다."
벨트를 잡아 당기자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맞물렸다. 그는 벨트가 매진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곤 차를 부드럽게 몰았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노래 소리와 창 밖으로 짙게 깔린 어둠이 우리에게 썩 잘 어울렸다.
"제노야."
"응?"
"너 그 세금 탈세 사건 맡았더라."
"탈세? 아, 그거. 응. 선배가 넘긴거야."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나도 그 사건 맡았는데,"
"아까 이름 올라온 거 봤어."
"봤어? 오,빠른데-"
"나도 못 봐줘. 준비 열심히 해."
장난스런 말투로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그는 피식 웃으며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을 내 머리 위에 턱하니 올렸다. 그동안은 워낙 어릴 적부터 길러온 습관인지라 별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입꼬리가 예쁘게 말아 올라간 모습과 내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확 커버린 그의 손길이 어색했다.
어색하다는 표현이 내 감정을 정의할 수 있는 표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예전관 달랐다. 그 이유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달달한 사랑노래 때문인지, 저녁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 때문인지, 그저 그를 향한 내 감정의 변화 때문인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나도, 그도, 저 별들도.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어느새 본가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볼 부모님들과 집밥에 잔뜩 들뜬 난 서둘러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 앞으로 향했다. 대충 버튼 몇개를 꾹꾹 누르고 있자 양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그가 내 옆으로 와 나란히 섰다.
"쇼핑백 뭐야?"
"어른들 드릴 선물. 뭐해, 마저 눌러."
"나한테 말이라도 하고 하지. 다 너 돈으로 산거야? 월급 얼마나 받는다고.."
"공무원보단 내가 더 많이 받을 걸."
딱히 반박을 할 수 없는 그에 말에 괜히 입을 삐죽이며 우물 정자를 눌렀다. 경쾌한 잠금 해제 소리와 함께 공동 현관이 스르르 열려 들어가 1층에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6층입니다-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문이 열리곤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두 집이 보였다. 그와 난 두 집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다 문 틈 사이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집 쪽으로 향했다. 그의 부모님 댁이었다. 열린 문을 잡아 당기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따뜻한 집밥의 향기인지. 옅은 미소를 띤 채 시끌시끌한 부엌으로 향하자 우리가 온지도 모르시는건지 하하호호 하고 계신 어른들이 계셨다.
"저희 왔어요-"
"어, 딸! 제노야! 언제 왔어?"
"방금요. 우리 많이 늦진 않았죠? 얘가 계속 밟긴 했는데-"
여전히 쇼핑백들을 꼭 쥔 채로 내 옆에 서있는 그의 팔을 툭치자 쇼핑백을 한 쪽 구석에 내려놓곤 인사를 건네는 그였다.
"안녕하세요."
말투는 무뚝뚝해보여도 그의 표정에선 오랜만에 만난 제 부모님과 내 부모님에 대한 반가움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그와 비슷한 성향인지라 그저 인자한 미소로 아들을 맞아주실 뿐이었다. 얼른 와서 밥부터 먹으라는 이모의 말에 코트를 소파 위에 올려놓곤 식탁에 앉았다. 고기와 생선부터 시작해 온갖 진수성찬이 펼쳐진 식탁에 군침이 절로 돌았다.
"얼른 먹어. 배고프겠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침이 흐르려는 걸 애써 참아내곤 밥 한 숟갈을 크게 떠 입에 넣었다. 그는 옆에 앉아 내가 먹는 걸 지켜보더니 살짝 웃으며 숟가락을 뜨기 시작했다. '일은 괜찮냐, 안 힘드냐, 이것도 좀 먹어봐라.' 등등 식사 내내 부모님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온통 자식 걱정 뿐이었다. 애교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다 내 밥 위로 가시를 꼼꼼하게 발라낸 생선을 올려주며 간간히 네, 혹은 괜찮아요와 같은 대답만 하는 그보단 훨씬 많은 편이었기에 시종일관 웃음을 띤 채 밥을 삼켰다. 간만의 진수성찬과 부모님의 사랑에 배가 슬슬 불러올 참이었다. 식사 시간 내 처음으로 걱정이 주가 아닌 문장이 튀어올랐다.
"너희 만나는 사람은 있니?"
"에?"
"켁-"
첫번째로 놀란 것은 나였고, 두번째로 사레가 들린 것은 그였다. 갑작스런 애인 공격에 우리 둘 다 적잖이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아니, 나이도 나이고..주변에 좋은 사람 없어?"
"그래. 일자리 안정적이 사람들 널렸을텐데."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
시작은 우리 엄마였지만 어느새 이모를 비롯해 아저씨와 아빠까지 동참해 우리의 연애를 궁금해하고 있으셨다. 없어도 있다고 해야 될 듯한 분위기에 애써 웃으며 콩나물 무침을 크게 씹었다. 네 사람 모두 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콩나물이 잘게 잘려 목구멍으로 넘어갈 쯤 그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둘 다 만나는 사람 없어요. 아직은 일이 더 좋은 가봐요."
"ㅁ,맞아요! 저희 발령 받은지도 얼마 안됐고.."
"벌써 일년이 넘었는데?"
정곡을 찌른 아빠의 목소리였다. 변명거리가 갑자기 사라진 우린 눈동자를 굴려 잠시 서로를 보았지만 별 다른 뾰족한 수는 나오지 못한 채 다시 밥으로 시선을 돌려냈다. 그 때,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아저씨가 박수를 탁, 치더니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ㅇㅇ야, 너 남자 소개 받아 볼래?"
"네?"
"아저씨 친구 아들 중에 아나운서 있는데, 나이도 얼추 너랑 비슷할 걸? 그 친구 괜찮더라-"
"아나운서요?"
"응. 만나는 사람 없다고 괜찮은 아가씨 있으면 소개 시켜달라던데. 어때? 한 번 만나볼래?"
뜻 밖의 소개팅 권유에 오물거리던 입과 그릇에 부딪혀 탁탁 소리를 내던 숟가락이 멈춘 건 나뿐이 아니었다. 묵묵히 밥을 삼키던 그의 손짓 또한 갈길을 잃은 채 멈추어버렸다. 마치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그의 입술을 굳게 닫혀있었다. 난 그런 행동의 이유를 머리를 굴리며 떠올려보았지만 확신이 드는 생각은 단 한가지도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을 뿐.
"ㅇㅇ야? 별로 부담되면 안 해도 돼."
"아, 아니에요! 밥 한끼 먹는건데요 뭐. 만나볼게요."
"그래. 아저씨가 연락 줄게."
"네-"
아저씨는 인자한 미소로 화답했고 그는 어느새 다시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는 마지막 한 숟갈을 비운 뒤 "먼저 일어날게요 식사 마저하세요." 란 인사를 남기며 그릇을 들곤 싱크대로 향했다.
"제노야, 내일 주말인데 자고 갈거지?"
"ㅇㅇ가 자면요."
내게 책임을 떠넘긴 그의 말에 부모님들의 시선이 내게로 꽃혔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보는 부모님들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 또한 고개를 끄덕이곤 제 방으로 향했다.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뒷모습에 누구 하나 그 발걸음을 말리지 않은 채 식사를 이어나갔다.
"아, ㅇㅇ야. 너 방 짐들 많아서 거기서 못 잘것 같은데 어떡하지."
"제노 방에서 이불깔고 자면 돼요."
"그래 그래."
지금까지도 항상 그래왔으니 당연스럽게 그의 방에서 자겠다고 말했다. 남은 밥을 싹싹 긁어 한입에 넣자 부모님들은 2차로 드실건지 초록과 갈색이 적절히 섞인 병들을 꺼내고 계셨다. 저 사이에 낄까, 하며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피곤함에 찌든 내 모습과 그도 없는데 껴서 뭐하나 싶어 생각을 빠르게 접었다. 엄마를 도와 식탁을 치운 뒤 거실 테이블에 둘러 앉으신 부모님들을 뒤로 하곤 화장실로 향했다.
***
습기 때문에 눅눅해진 화장실에서 빠져나오자 나가기라도 하셨는지 거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또 새벽 쯤 들어오시겠지. 이젠 안 봐도 뻔한 레파토리에 별 다른 걱정도 들지 않았다. 어디로 가셨을까 싶어 잠시 넋을 놓고 있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에 수건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그의 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런 손길로 그의 방문을 열어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변한 것이 없는 방이었다. 그를 꼭 닮은 하얀 벽지, 고등학생 때부터 쓰던 독서실 책상, 푹신한 침대, 그리고 그 옆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식 날 우리의 사진. 마땅히 앉을 만한 곳이 없어 침대 끝에 걸터앉아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뭐가 그리도 슬펐는지 눈이 팅팅 부은 내 모습과 그런 날 바라보며 웃고있는 그. 사진 속에서조차 느껴지는 변함없는 다정한 눈빛에 괜히 가슴 한 켠이 시큰거렸다. 계속 보고있자니 자꾸만 빨라지는 심장 소리에 난 액자를 조심스럽게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자는 건지 두 눈을 내리깐 채 내 옆에 누워있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사진 속 그 보다 훨씬 성숙해진 그가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컸냐-, 어색하게."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괜히 싱숭생숭한 마음에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 그의 큰 손이 내 손목을 잡아당겨 그의 옆자리에 얼떨결에 누워버렸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춰내며 말했다.
"뭐야, 안 잤어?"
"..."
그는 내 손목을 꼭 쥔채 나른한 눈에 날 담아냈다. 살짝 눈이 풀린 그 동공에 내 모습이 옅게 비치자 내 사고회로는 고장을 알리고 있었다. 나 또한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그를 담아냈다.
"ㅇㅇㅇ."
그의 붉은 입술이 먼저 열렸다.
"응?"
"..."
"..."
또 다시 그 입술이 닫혔다. 답답한 걸 못 참는 성격인 나였지만 이미 고장나버린 내 머리는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못 했다. 정적과 알 수 없는 두근거림만이 우리를 감쌌다.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누구하나 먼저 입을 연다면 터져버릴 듯한.
"ㅇㅇ야."
"응."
"소개 받을거야?"
"..."
예상 외의 질문이었다. 손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내 대답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에 옴싹달싹 하지 못한 채 그 눈을 마주했다. 그가 왜 저런 질문을 내게 던지는 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와 나의 나른한 표정과 달리 빨라지고 있는 심박수가 똑같다는 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 느낌에 잠시 정지되었던 사고회로가 조금, 아주 조금 돌아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안 받았으면 좋겠어?"
"..."
이번엔 내 쪽의 기다림이었다. 동공의 흔들림 하나 없이 날 바라보는 그를 가만히 내 눈에 담았다. 그가 눈을 느릿하게 한번 깜빡이더니 손목을 쥔 손의 힘을 살짝 풀었다.
"나야 상관 없지. 그냥, 궁금해서. 너 그런 거 안 좋아하잖아."
그 말이 과연 진심일까. 진심이라기엔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위태로웠다. 흔들흔들. 난 그 눈빛에 한 번 더 용기를 얻어 말했다.
"..나 진짜 받아?"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소리도 행동도 모두 그대로 멈춘 채 그저 날 바라보는 그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목을 살짝 비틀어 빼내었다. 결국 나 혼자 김칫국 잔뜩 마신건가. 민망함과 동시에 퍼져오는 속상함에 절로 삐죽 튀어나온 입을 말아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또 다시 그의 손에 의해 전과 같은 자세로 그와 마주했다. 서로의 긴장된 숨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올 만큼 전보단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을까, 그의 입술이 열렸다.
"ㅇㅇㅇ."
"..왜."
"받지 마."
꽤 단호한 그의 어투와 목소리에 내 눈동자는 갈길을 잃은 채 헤매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오는 그의 목소리에 눈동자는 그에게로 정착했다.
"소개, 받지 마."
팡! 하며 온 몸의 사고회로가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단 그의 두마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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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노가!!!!드디어 자기 마음을 쫌 표현했네요!!!!!!!!!!!!!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으셨냐 물으신다면...전 수능이 257일 남은 고3이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어요....☆ 앞으론 아주 늦은 새벽이나 주말에 찾아 뵐 것 같아요ㅠㅠㅠㅠ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그러나 우리 독자님들 달아주시는 댓글들을 항상 정독하고 있어요!!!볼 때마다 막 광대가 승천한답니당 제 맘 아시죠?헤헿 암호닉 신청은 항상 받고 있어요!!!조금 모인 다음에 정리해서 올릴게요!!!!그럼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