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발급받은비행기표좌석을확인하며 이동중이었다. 멀리서들리는익숙한목소리에 갸우뚱 하면서도 비행기입구에 연결된 통로로 계속이동하던차였다.
"이민혁!야 이민혁!!"
또렷하게들린 내이름에 놀라 급히 뒤를돌아보았다. 저멀리서 뛰어와 숨을허덕이는 태일이 화가났던지 솜주먹으로 어깨를내리쳤다.
너 진짜 나랑해보자는거지? 화를내는 태일의모습이 생소해 벙쪄버린나를 말없이 끌고나온 그가 허릿께에손을올리고 쏘아대기시작했다.
"너 그런일니가 다 정하고 통보하면좋냐? 벌써 선배한테 병원부탁했다며, 짐정리도 다하고 뭐?6개월?그게 뉘집애이름이야? 그렇게쉬워?"
봇물터지듯 쏟아지는 잔소리에 아직술이덜깬 머리가 울렸다. 잠깐잠깐하고 머리를짚으니 후..하고 한숨을내쉰다. 미안해태일아..나 이번연수만끝내고올게..원래작년에가기로했던거알잖아..조곤조곤말하고있으니 태일이 말을잘라먹었다.
"다 필요없고 니가죽고못사는 새끼늑대지금 니병원에 와있어. 너네병원 오픈도못하고 지훈이하고 재효하고 간호사들하고 그놈진정시키느라 진땀빼고 있으니까 돌아가자고 지금당장"
뭐라고? 되묻자 뒷머리를잡은태일이 다시설명을시작하기도전에 그의손목을잡아채고 정신없이 뛰기시작했다. 너 차어디있어! 아파!저기저기! 가리키는곳으로 뛰어가 차키를뺏곤짐을때려실었다. 울상이되어 아직잡혀있는태일을 조수석에 구겨넣고 시동을걸었다. 거칠게뺀 미니쿠퍼가 빠르게 공항을빠져나와 도로로 올라섰다. 조그만차로 사정없이 운전하니 여기저기서 욕섞인 클락션이들려왔다. 야아..살살몰아..꿍얼꿍얼대는 태일을무시하곤 팍팍밟았다. 잘나가네 쪼끄만게 끼어드는게 싫으면 작은차를사던가
이미뵈는게없어 되는대로 차를모는 중이지만 녀석을볼수있단생각만으로 사소한도덕성이무너져내리는 느낌에 나도참 어쩔수없구나싶은 생각이들어 어이가없었다. 지호가대체왜돌아왔을까, 어떻게 돌아왔을까하는 궁금증들만 끊임없이 쏟아져나올뿐이었다. 그완다르게 녀석이돌아왔단소리를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시작된 떨림이 주체할수없이 계속되고있었기때문에 더빨리, 더빨리 차를모는수밖에없었다.
"야!야!!주차주차!"
제대로된주차는 생각지도않고 병원문앞에 대뜸 차를세웠다. 반쯤열린셔터를 올리고 문을열어젖혀 뛰어들어갔다. 옹기종기모여 섣불리 뭘하지못하고 그저 둘러싸고있는간호사를을 가르고 시선이집중된 곳으로향했다. 목이다갈려 나는쇳소리와 지훈,재효의목소리가 겹쳐들렸다. 접대용 소파쪽에 뒤엉켜있는 세사람이보여 뛰쳐들어간나에게로 관심이쏠렸다.
"선생님!어떻게좀해보세요!"
두손으로 입을가린채 마냥보고있는 간호사들이 발을 동동구르며 부탁해왔다. 뒤늦게 보이는상황에 나역시당황할수밖에없었다. 잔뜩물어뜯은양손을 지훈에게잡힌 지호가 지훈의 팔을물고놓질않았다. 행동은짐승이지만 외양은 사람이라 섣불리 병원의 진정제를놓지못하고있는재효가 지호를떼어내려들면 들수록 강하게 물어오는 힘에 지훈이 이를악물고 비명을참아내고있었다. 아침에예쁘게입혀놓은 셔츠에 자잘한핏자국이 서늘했다. 어디서낫는지모를 눈썹위상처에서는 출혈이계속되었고 이마근처에 보이는멍에 상황판단이 정확히되지않고있었다. 대체뭐야 하고 정신을놓고있자 주차를마친태일이뛰어들어와 재효를도와 지호를잡아끌었다. 덩치가있는지라 쉽게 떨어지지않고 되려 더세게 이를 박아넣는 지호가 아직나를발견하지못하고 지훈을팔을 물어뜯었다. 참지못하고 손을놔버린지훈이 다친팔을 감싸쥐고 고꾸라졌다. 틈을타 재빨리 지훈과재효를 떼어낸 태일이 지호가 가까이오지못하게 앞을막아섰다.
그제서야퍼뜩정신이든내가 뒤에서 지호를 덥썩 끌어안았다. 소스라치게 놀란녀석이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지호야 우지호 정신차려 지호야 필사적으로 품을벗어나려는 녀석을 더강하게 잡아안았다. 형이야 그만,그만! 하는말에도 계속 사나운소리를내며 벗어나려드는 지호를 확돌려 마주보았다.
"잘봐, 나야 우지호. 그만해.그만하자"
하는나를 이제야제대로 본 지호가 가빠진숨을 고르며 크게뜨여진눈으로 날확인했다. 거친숨소리가 불안정하게 계속되다 수그러들기시작했다. 이내 다나간목소리로 울부짖기시작한 지호를 품에넣었다. 한동안 그상태로 서있었던같다. 이내탈진해버린 지호를 소파에눕히고 났을땐 모두가 벙찐표정으로 우릴쳐다보고있을뿐이었다.
"괜찮냐.."
"...아니요.."
완전..다뺏긴기분이에요..
태일이 지훈에게다가가 어깨를토닥였다.
"말이라도해보지그랬어.."
"..그러기엔 ..알잖아요..저 끼어들자리없는거"
하..하는 태일의한숨에 지훈이 괜찮아요.익숙해요 하곤 미소를지었다. 미안하다..더해줄말이없다 하고 맥주캔을건네는 태일에게 하 무슨낮술이에요 하고 허탈한웃음을지으면서도 붕대를감은손으로 캔을따는 지훈의 표정이 썩유쾌하진못했다.
"지훈아팔괜찮아?"
문을열고 들어온 민혁이 캔을들고있는손을 살피며말했다. 괜찮아요 하고팔을들어보이는 지훈을보며 태일이 씁쓸한미소를지었다. 뒤따라들어온 재효가 문을닫았다.
"지훈이 팔많이안다친게 다행이야..이제부터니가더 신경써. 필요한거있으면 되는대까지 도와줄테니까.. 선배한테 너 연수안간다고 말씀드려놨으니까 좀쉬다가 다시문열어라"
가자태일아 하고 짤랑방울이달린 문을열고 나가는그에게 고맙기도, 미안하기도한 감정이 뒤섞여 올라왔다. 올해도이렇게 신세를지는구나..다음엔 크게한번보답을해야겠다싶은맘이들었다.
"형, 저도 가볼게요.."
하는지훈에게 어..그래.조심해서 가라지훈아 엉겹결에말하니 그래도형안가서다행이에요 하곤 녀석도나갔다. 순식간에 텅빈느낌에 늘시끄럽던병원이 적막하기까지했다. 문득 보고싶어져 수술용침대에 곤히누워있는 지호를찾아갔다. 물어뜯어 갈라진손에 마음이아팠다. 이젠 떼어놓지않을게
머리맡에앉아 머리를쓰다듬어주었다. 많이무서웠구나 지호..내가미안해..꼭잡은 손이행여 빠질까 고쳐잡고 꼬박 하룻밤을 지냈던것같다.
꼼질꼼질 간지러운느낌에 눈을떴다. 누운채 얽혀있는 제손과 내손을 만지작만지작하던 지호가 깨어난 내얼굴을 보곤 다시 손을꼭잡았다. 이제 형 안갈게 걱정마, 올라가자 하고 링거를 빼고 지호를 일으켜세워 함께 집으로 올라왔다. 더러워진옷을갈아입히고 정성스레 씻겨 끌어안은 지호에게서 향긋한비누향이났다. 짠 봐봐 지호가다시깨끗해졌네! 거울을보여주니 잠시 제모습을비춰보다 이내 옷에 얼굴을 부벼댔다. 꼭붙어떨어지지않는 지호에게 형움직이기힘들어요..잠깐만놔볼까? 달래봐도 끌어안은 팔을풀지않아 난감했다. 별수없이 그대로 지호를안아올렸다. 그새 살이빠진지호에게 영양식을챙겨주려 식탁까지 어기적어기적 가 걸터앉혔다. 함께있으니 이렇게나 좋은것을..곧헤어지게된다고 더 잘해주진못할망정 억지로떼어놓으려 발버둥쳤던 내 행동이 후회되었다. 이제는 매일아침 지호와 눈을뜨고 머리를 맞댈수있어서 그어느때보다 맘이편했다.
아직허리에감은팔을풀지않은 지호를 살포시 밀어내어 양손을 깍지껴잡았다. 밴드를 붙여놓은 긴손가락을보니 괜히 다시 속이 상해 지호손물어뜯으면 돼?안돼? 꾸중을했더니 주먹을쥐어 손가락을감췄다. 그모습에또 사르르맘이녹고마는 나도 어쩔수가없는놈이었다.
육회와 샐러드로 조금길어진 지호의 저녁이끝났다. 전날제대로못잤던지 밥을먹자마자 눈이 그물그물감기기시작한지호가 자자고 손을잡아끌었다. 설거지는 내일해야겠네..하면서 녀석을데려가 눕혔다. 수면등을남기고 모조리불이꺼진 집이 지호가왔다고 따뜻하게 켜놓은 히터덕에 아늑했다. 함께덮은이불속에서 그의어깨를 끌어와 안았다.
이젠 널사랑할 완전한준비가된것같아.
이전에도, 앞으로도 부족한점은 내가채워줄테니까 지금까지처럼만 잘따라와줬으면 좋겠다
오늘부턴 돌아가고싶다고해도 안보내줄거니까 너도 알아서해
형말 듣고있어?
하고 팔을풀어 지호를 보았다. 벌써 고른숨소리를 내며 곤히잠든지호가 잠결에 코를찡긋했다. 은은한수면등에 따뜻해서 빨개진 입술이비쳐 반짝거렸다. 으이그 그래그래 코자자 하고 이불을 고쳐덮어주었다. 세상모르고 자고있는 이런아이를 좋아하게되다니 알수없는내맘에 바람빠지는 웃음이나왔다. 이젠 나도 솔솔잠이오기시작해서 벌어진입술에 짧에 입을맞추곤 눈을감았다. 다시비좁은 침대로 돌아왔지만 그만큼 가득찬 마음이 푸근해서, 잠이잘오는밤이었다. 서로의 체온을느끼며 잠이든 오늘하루, 그동안있었던일들이 모두 꿈같은 경험이었지만 바로곁에서 들리는 지호의 숨소리가 꿈이아니란걸 알게해주었다. 규칙적인 호흡를 느끼며 나도 곤히 잠이들었다.
/
끝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평소와 같이 인사해봅니다.
이번엔 업뎃이좀 빨랐죠? 불금이니까 읽으시고 밤을 불태우시라고.........으흫ㅎ?ㅎㅎ오늘은 비범군 생일이니까요. 바쁜와중에 생각이나서 열심히 마무리지었습니다.
동물병원24시10분까지 지호와 민혁의 이야기가 끝이났습니다.
시원섭섭한게 이런느낌이구나 하고 제대로 알게되네요.
마이너 커플이라 걱정했는데 암호닉 신청해주신분들이나 매번 덧글달아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덕에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써나갈수있었던것 같습니다.
필명은 계속 그대로 사용할것같구요. 좀더 좋은 소재, 좋은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에는 동물병원 24시 에필로그가 올라올예정입니다.
그동안 저도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