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일곱 명의 무한지구대 이야기
<응답하라112>
- 미스터몽룡
*
동심으로 돌아가 한바탕 눈싸움을 치룬 무한지구대 내에는 진한 코코아 내음이 폴폴 풍기기 시작했다. 추울 텐데 이거 마시고 몸 좀 녹이라면서 호원과 동우가 따끈따끈한 코코아를 모두에게 건넸기 때문이었다. 무한지구대 식구들 눈에 비친 이 둘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었다.
모두들 후~ 후~ 조심스레 불어가면서 한 모금씩 홀짝홀짝 마시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천사들에게 코코아를 하사받은 의경들은 1층을 유유히 거닐면서 마시거나 유리창에 비치는 하얀 세상을 경찰들과 함께 바라보며 방금 전 치렀던 눈싸움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불과 30분 전에는 직속상관이나 마찬가지인 경찰들을 꽂아버리겠다는 둥 젊은 의경들을 이겨보겠답시고 어기야 디어라차라는 이상한 기합을 외치는 둥 으르렁 거리며 서로 벼르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장면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들의 입가에 옅은 웃음기가 감도는 걸 보니, 오늘 있었던 일은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재밌었던 하나의 추억거리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코코아 한 잔 더 주시면 안 될까요?"
행여나 누가 볼까봐 살살 눈치를 보면서 동우의 옆에 슬쩍 달라붙은 명수가 티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코코아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힐끗 보니, 한 잔 더 달라는 그의 손에는 코코아가 담긴 종이컵이 이미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유 따윈 묻지 않은 채 식기 전에 마셔야지 맛있다는 말과 함께 웃으면서 건네는 동우였다. 이를 건네받은 명수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여기저기 살피다가 곧 어디론가 사라졌다.
"장경장님은 안 드세요?"
이 때다 싶어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온 호원이 빈 종이컵을 티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어왔다.
"아~니~ 이제 타먹으려고~"
도리도리질을 해가면서 동우가 새로운 종이컵을 뽑기 위해 손을 뻗자 그의 손등을 아프지 않게 살짝 때리는 호원이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손등을 어루만지는 동우를 뒤로한 채 방금 전 자신이 내려놓은 빈 종이컵에 코코아를 타고는 티스푼으로 둥글게 둥글게 휘젓기 시작했다. 자신이 젓는 시계 방향대로 눈을 빙글빙글 돌리며 잠자코 바라보는 동우가 어째 귀엽게만 느껴져서 충분히 휘저었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몇 번을 더 휘저으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본다. 그러다가 짓궂은 장난은 이제 그만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는지 티스푼을 쏙 빼내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의 마음만큼 종이컵에 가득 담긴 갈색빛 코코아를 동우에게 건넸다.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얼떨결에 덥석 받아드는 동우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하나 둘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본 호원은 슬쩍 웃어 보이더니 엄청난 비밀을 터뜨리려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처럼 주변을 한 번 쓰윽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느꼈는지 동우의 말똥말똥한 두 눈에 시선을 딱 맞추었다. 혹시나 동료들에게 오해 아닌 오해를 살까봐 직장 내에서 이런 행동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호원이었기에, 갑자기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한 동우였다.
그런 그에게 호원은 재빠르게 윙크를 한방 선사했다. 뿅!
이와 동시에 윙크를 목격한 동우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 건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노란 콧물을 달고 사는 친구와 나뭇가지로 흙을 파내다가 난생 처음 지렁이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것 같이, 무언가를 처음 보는 아이처럼 한없이 순수한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웃는 호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가 냉동실에 너무 오래 넣어놔서 꽁꽁 얼어버린 산나물처럼 자동으로 급속 냉각된 동우가 보였다. 이렇게 귀여운 반응이 돌아올 줄 미리 알았으면 진작 윙크 좀 날려볼 걸 그랬다. 어금니를 꾹 물어도 자꾸만 삐져나오려는 웃음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호원은 자리를 훌쩍 떠나버렸다.
'사랑해'라는 달콤한 입모양을 동우의 두 눈에 확실히 남기고서 말이다.
빵야! 빵야! 사랑의 총알이 심장 한 가운데에 꽂힌 느낌을 받은 동우는, 한참동안 눈을 깜빡이기만 하다가 헤실헤실 웃더니 호원이가 타준 코코아를 한 모금 호로록 마셨다. 물론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으로 마신 건 비밀이었다.
*
이번 눈싸움으로 인해 전생에 원수였음이 분명해진 이성열 순경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결국 옥상까지 올라오게 된 명수였다.
"여기 계셨네요."
양손에는 종이컵을 하나씩 든 채 뒷발로 옥상 문을 닫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가 등장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불필요한 눈길 따윈 일절 주지 않는 성열이었다. 마치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듯 보였다. 성열은 입고 있는 동복의 지퍼를 위로 끝까지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자세로 건너편에 있는 인피니트팰리스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거 마셔요."
은근하게 눈치를 살피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코코아를 건넸지만 시선을 내리깔아 힐끗 쳐다보기 만할 뿐, 성열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를 보고 피식 헛웃음을 친 명수는 그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종용하듯이 살짝살짝 코코아를 흔들어보였다.
"제가 탄 거 아니에요. 장경장님이 타셨으니 독약 같은 건 없어요."
그러자 조용히 팔만 뻗어서 종이컵을 받아드는 성열이었다. 어휴, 저 초딩…. 미간이 좁아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 명수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성열은 헐벗은 나무들이 아름드리 펼쳐져있는 아파트 단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코코아를 한 모금 홀짝 마셨다.
"이-야~ 장경장님이 타주신 거라 그런지, 맛이 기똥차네!"
따뜻한 걸 마신 그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더니 공중에 어지러이 흩어졌다. 그러자 명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 당신은 10초 후에 숨이 막혀 죽습니다!"
"뭐?!"
갑작스레 온몸을 칭칭 휘감아버리는 오싹함에 화들짝 놀라, 재빨리 그를 바라보는 성열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웠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필 김의경이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금방이라도 게거품을 보글보글 물것만 같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며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땡."
예정된 10초가 되었는지 즐거운 표정으로 말하는 명수를 보며, 숨이 서서히 막혀오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는 성열이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독약을 탔나보다. 끄앙…. 엄마, 아들은 내부 스파이로 인해 당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납니다…. 그동안 모아둔 제 월급으로 가족끼리 맛난 스테이크 사드시고 따뜻한 잠바 하나 마련하시면서 이 못난 불효자를 용서하시옵소서…. 안…녕….
"왜 그러세요? 장난이었는데…."
쨍그랑…! 성열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던 유리가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
저녁에 그놈 마주치기 전에 얼른 퇴근해야 할 텐데, 뭐라고 둘러대지? 대체 뭐라고 해야지 다들 의심 없이 수긍을 할까? 턱을 괴고 현란하게 볼펜을 돌리던 성규는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승호 순경이 유선전화기를 흔들면서, 연결해 줄 테니 받아보라고 했다. 집게손으로 OK 표시를 한 성규는 흠흠 목을 풀더니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거기, 서울시 울림구 무한동에 위치한 무한지구대 맞죠?]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김성규 경위님 맞으세요?]
그 말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성규가 힘주어 말했다.
"예,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안녕하세요~ 경찰대에 재학 중인 학생인데요, 이번 겨울방학에 그곳으로 교통 실습을 나가려고 전화 드렸어요!]
뭐야, 이 들뜬 목소리는…. 수화기에서 귀를 뗀 성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잠깐 동안 수화기를 바라보다가 귀에 갖다 댔다.
"아, 예…. 그러세요."
[울림경찰서에 전화했더니 여기 연락처를 주더라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실습 가능한가요?]
아직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다. 성규는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는 대체 뭐하는 지구대인가 싶다. 비글 같은 경찰들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벅찬데, 의경에다가, 경찰대생에다가…. 아이고야…!
이곳에 계속 근무한다는 것은 제 스스로 명을 단축시키는 일 밖에 되지 않았다.
"예…. 가능합니다…."
울림경찰서에서 친히 이곳 연락처를 읊어주셨다는데, 거기다가 대고 안 된다고 못 박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마지못해 침울하게 대답하는 성규의 얼굴에, 죽음의 꽃이 활짝 피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그런 그의 귀에, 돌고래 같은 소리로 꺅꺅대며 좋아라하는 경찰대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자식이 나중에 여기로 한 번 발령 받아봐야 '아~ 내가 괜히 경찰의 길을 택했구나!'라며 정신을 차리지….
머릿속으로 온갖 넌더리를 치며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종이 한 장을 집는 성규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성종, 오세용이요!]
"두 분인가요?"
[네!!!]
고놈 참 쓸데없이 박력 있다.
*
"이순경님, 저한테 안 좋은 감정 있죠?"
그 말에 망설이는 척 할 것도 없이 고개를 폭풍같이 끄덕이는 성열이었다. 저놈이 당연한 걸 물어보네….
"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엥? 쟤가 지금 뭐래는 거야? 이건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성열에게, 명수는 시선을 맞추며 말하였다.
"그동안 이순경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장난친 건데, 본의 아니게 자꾸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인 명수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눈싸움 시작하자마자 김경위님 뒤통수에 누가 눈덩이 던졌는지 아세요?"
"누군데?"
"저예요."
"뭐…뭐?!"
"저라고요. 제가 던졌다고요."
"네놈ㅇ- 아…아니, 네가 갑자기 왜?"
당황스러운 김의경의 고백에, 하마터면 '네놈이 왜?'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갈 뻔 했다.
"김경위님한테 평소에 많이 당하시는 것 같길래 그랬어요. 어때요? 저 잘했죠?"
장난꾸러기 같은 눈빛으로 말하는 명수를 보며 괜히 갑작스레 복잡한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하는 성열이었다. 저게 지금 진심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대신하여 복수해준 그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껏 버릇없는 녀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법 기특한 면이 없잖아 있다.
"어어…. 그래. 잘했어."
그는 깨끗하게 비워진 종이컵을 앞니로 잘근잘근 씹으면서 퉁명스러운 척 대답했다. 그러자 명수가 앞으로 몇 발자국 나아가더니 겨울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옥상 난간을 잡고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뭉글뭉글한 하얀 입김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두둥실 퍼져나간다.
"세상이 온통 하얗네요. 이따가 개인전으로 눈싸움 할래요?"
고개를 반쯤 돌려 뽀얀 입김을 뿜으면서 말하는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천진난만한 소년처럼 보인 건 성열이의 기분 탓이었을까. 그는 종이컵을 입에 문 채 무언가에 홀린 사람 마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간에서 물러난 명수가 그의 앞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그럼 먼저 내려가 볼게요.'라는 말과 함께, 그가 물고 있는 종이컵을 빼서 자신의 컵 위로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유유히 옥상에서 사라졌다.
한낱 웬수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꽤 괜찮은 애인 것 같다.
*
옥상 문을 닫은 명수는 주먹 쥔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킥킥거렸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에 괜한 오기가 생겨서 착한 척 좀 한 번 했더니, 뙤약볕에 놓인 아이스크림 마냥 금방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성열의 모습이 웃음을 자극할 뿐이었다.
"멍청하기는…."
뒤를 돌아 굳게 닫힌 옥상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그는 휘파람을 불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멍청하긴 하다만, 저러는 모습을 보니 나름 귀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나는 단지 얄미운 이순경에게 똥을 먹인 것뿐이야.'라는 최면을 걸기 시작하는 명수였다.
*
도저히 안 되겠다.
"오늘은 몸이 아파서 이만 일찍 퇴근하고, 내일 초과 근무할 테니까 각자 알아서 마무리하고 가세요!"
아침에 예고했던 대로 남우현이 데리러 올까봐 지레 겁을 먹고는 예정 시간보다 30분이나 앞당겨 퇴근 준비를 마친 성규였다.
1분 1초라도 앞당겨서 근무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그는, 등받이에 걸려있는 야상을 부랴부랴 챙겨 입기 시작했다. 끙끙거리면서 간신히 오른팔을 끼우고 나니, 남은 팔을 마저 끼울 생각에 저절로 한숨이 났다. 그가 야상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루는 사이, 오늘따라 유난스레 두꺼운 옷을 입고 온 그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는 무한지구대 식구들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천하의 김경위가 조기퇴근을 할 만큼 이렇게 아픈 날도 있다니…. 어쩐지 점심시간에 눈싸움을 안 하려고 내빼더니만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괜히 그런 줄도 모르고 심판이라도 보라면서 호루라기를 쥐어 주고 오랜 시간동안 찬바람을 맞게 했다. 가슴이 뭉클해져 휴지를 한 장씩 뽑아든 채 눈물을 훔칠 만발의 준비를 한 사람들처럼, 모두들 촉촉한 눈망울로 그를 굉장히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낑낑대며 야상에 왼팔을 끼워 넣다가 문득 분위기의 낌새가 이상함을 느끼고 주위를 쓰윽 둘러보는 성규였다. 이건 또 뭐야…. 모두들 하나같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어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어찌어찌 간신히 들어가고 있던 팔도 갑자기 안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프시길래 옷 하나 입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세요…."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호원이 겉옷을 입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머리 위로 물음표를 만들어내는 성규였지만 일단 퇴근이 우선이었으므로 얌전히 잠자코 있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병수발을 하는 보호자처럼 세심한 손길로 야상을 입혀준 호원은 펭귄처럼 뚱뚱해진 그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 고마-"
"여러분, 보세요! 드디어 다 입었어요!"
엥…?
어리둥절해 하는 성규의 등 뒤로 다가가서 어깨를 움켜잡은 호원이, 새로 나온 휴대폰을 보여주는 대리점 직원처럼 동료들 앞에 그를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 장난감처럼 짤깍짤깍 박수를 쳐주는 무한지구대 식구들이었다. 각자 양쪽 눈에 별들을 하나씩 박고 말이다. 아무래도 인간극장 <김성규씨의 하루>를 시청하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 게 분명했다.
곤란함에 인상을 찌푸린 성규는 '알았으니까 퇴근 좀 합시다!'라며 씩씩하게 말하고는 뒤뚱뒤뚱 걸어가 지구대 문을 박차고 나왔다. 여기저기서 잘 가란 인사말이 쏟아져 나와 뒤통수에 픽픽 꽂혔지만, 두꺼운 옷 때문에 뒤를 돌아보기 힘든 그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면서 대충 손을 흔들어주었다.
"김경위님 저러고 다니시니까 진짜 웃기긴 하네요."
누구 한 명이 물꼬를 트자, '그렇다니까요~', '제 말이 맞죠?', '오늘은 집에다가 카리스마를 놓고 왔나봐요.' 등 곳곳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한지구대 식구들은 점차 멀어져가는 그의 귀여운 뒷모습을 보며 깔깔댔다.
그렇게 계획대로 조기 퇴근한 김성규씨의 하루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