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DIA - 너만 모르나 봄
눈을 떴다.
내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잠들어있는 걸까.
손을 내밀어 네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네가 미간을 살짝 찡그려왔다. 예나 지금이나 너는 잘 때 너무나도 예민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
"준아..?"
이렇게 바로 눈을 뜰 정도로.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더 자요."
"잠이 안와"
하나는 한 번 잠에서 깬 너는 다시 잠들 수 없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런 네가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 한 번 또렷해진 정신이 쉽게 다시 잠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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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
(김남준 번외 下)
w. 복숭아 향기
오랜만에 찾은 꽃집이었다.
문을 열고 드러서자마자 머리가 띵하니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들어오기 과분할 정도로 밝고 따스한 공간이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전에 왔던 그 모습 그대로 그들의 자리는 변하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꽃집 주인이었다. 지난번에 너에게 주었던 검은색 장미 꽃다발을 만들어 준 주인공이기도 했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니 오랜만에 보는 게 맞기는 하니까.
지난 번에 봤던 장미 다발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검은색 장미는 보이지 않았다.
"장미는 잘 전해드렸어요?"
"덕분에요."
"혹시 싫어하지는 않으시던가요?"
"글쎄요."
장미를 받아들었던 너는 긍정을 하지도, 부정을 하지도 않았었다. 내가 너에게 족쇄를 내밀었을 때처럼.
아. 시기상으로는 족쇄를 나중에 받았으니 족쇄를 받았을 때 장미를 받았을 때처럼 반응을 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너는 글을 쓴다는 애가 뭐 그리 빡빡하니.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네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보다. 나는. 괜시리 튀어나오는 웃음을 굳이 참아내지는 않았다.
내 기분이 좋아서 나오는 웃음이니 참아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꽃말이 독특해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은데."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싫어한 거 같지도 않은데요?"
"네. 그냥 그랬어요."
"아쉽네요. 꽃 색깔 물들이느라 나 좀 고생했는데."
여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고생을 하기는 했지. 생화를 직접 검은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하나하나 손길을 거친 작품이었으니 말이야.
비록 네가 좋다, 싫다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었다.
네가 그 꽃다발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싫어했다면 그 꽃다발이 다 말라서 시들어버릴 때 까지 간직하고 있을 리는 없을테니까.
"오늘은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 아니면 지난번처럼 검은색 장미?"
"장미는 맞는데 검은색은 아니네요."
"무슨 색이에요? 설마 붉은 색? 프로포즈 하실 생각이세요?"
"아니요. 잘못 짚으셨어요."
노란색이에요.
내 말이 떨어지자 여자의 표정은 한순간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
노란 장미.
꽃말로는 질투, 이별 그리고 영원한 사랑 이 있는 얄궂은 꽃이었다.
여자의 머릿속에 떠올린 노란 장미의 꽃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녀의 머릿속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질투였겠지.
영원히 당신의 나의 것이라고 외치던 사람이 질투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최악이긴 하니까.
하지만 나는 너로 인해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정정해야지. 느껴본 적이 없는게 아니라 느낄 자격이 없었다.
'나는 네 것이 아니야.'
'너만 놓으면 돼.'
언제나 네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덕분에 알고 싶지 않아도 매일 깨닫는 사실이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너에게 질투라는 것을 할 자격이 없었다. 애초에 지금 우리의 관계는 정상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정상이 아닌 게 모여서 비정상이 된다지. 너와 나의 관계는 비정상이었다.
"내일 찾으러 올게요."
"감사합니다."
내게 영수증을 내미는 여자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멍해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머리속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카드와 영수증을 받아들며 작게 웃어보였다. 여자의 손이 조금 떨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노란 장미에는 꽃말이 여러가지가 있죠."
"아..."
"그쪽이 생각하는 게 무슨 꽃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 내일 몇 시 쯤 오실 예정이세요?"
"이 시간 즈음에 오지 않을까 싶네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내일 뵐게요.
여자의 인삿말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꽃내음이 가시고 도시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
뒤를 돌아보니 여자가 분주하게 노란 장미를 꺼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따스한 냄새를 계속 맡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머리가 아프지는 않을까?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을까?
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 안에 들어가면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간질거리는 기분 때문에 답답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꽃이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건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그냥 그만둘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꽃은 이래서 문제였다. 가끔 향기에 취해 사람의 정심을 혼미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핸드폰 자판을 두드렸다. 너였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일어났나보네. 거실에 먹을 거 대충 준비를 해놓긴 했지만 손도 대지 않았겠지.
늘 느끼는 거지만 내가 너보다 너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런 생활 습관에 대해서는.
[너]
일어났어요? -
- 나 배고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
식탁에 먹을 거 있는데 -
- 과일 싫어
- 딱히 생각나는 건 없어
금방 갈게요 -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놔요 -
미리 말해주면 더 좋고 -
영화를 보러 갔다온 이후였다.
이런 너의 어리광이 종종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아. 영화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손목을 그은 이후일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너는 요즘들어 꽤나 어리광이 많이 늘어있었다.
내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기미를 보이면 '어디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뭔가를 표현한다거나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배가 고프다면서 말을 툭툭 내뱉는 정도가 다였다.
너는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너의 (명령에 가깝긴 하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유독 그게 '먹을 것'과 관련이 있으면 사족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다.
무용을 했던 탓일까.
너는 네가 무언가를 먹는 것에 대해 유독 박한 편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다 배가 고플 때면 '배고파' 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이틀의 한 번이 될까 말까 였으니까.
주로 내가 먼저 '이거 먹을래요?' '저거 먹을래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네 입에서 나오는 '~가 먹고 싶어.'라는 말은 굉장히 신빙성이 높은 말이었다. 정말로 먹고 싶어서 먹고 싶다 말을 하는.
"요즘은 아닌 거 같지만."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집 가는 길에 간단한 주전부리라도 사가야지. 너는 맥주를 좋아하니까 맥주랑 간단한 안주면 되겠지.
배가 워낙 작은 탓에 맥주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말을 하는 너였다. 안주는 최대한 간단하게 준비하면 될 것이다.
나도 옆에서 같이 먹어야하니까 내 꺼 안주도 사가야겠다. 아. 그냥 과일만 먹어도 괜찮으려나.
괜시리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나왔다. 사실 술을 마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랑 먹는 거는 나쁘지 않기에.
아니. 사실 굉장히 좋기에.
-
노란 장미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너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영화를 보러가느라 나갔다 온 것이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네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었다. 무슨 일인지 너는 약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약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려는 기미라도 보이면 바로 내 손을 꼭 그러쥐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밤새 오른 열 때문에 네 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너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내 옷자락을 세게 그러쥐었다. 밤새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준아."
"네."
"네가 처음으로 나한테 줬던 꽃 기억해?"
"그럼요."
"..."
"검은 장미였잖아요."
"... 응."
약을 먹기 싫어서 어리광을 부리는 건가. 이런 걸로 어리광을 부릴 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며 네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아. 혹시 봤을지도 모른다. 내 작업실에 놔둔 노란 장미 꽃다발을.
네가 알고 있는 노란 장미의 꽃말은 무엇일까. 이별. 영원한 사랑. 질투.
노란 장미는 내게 너에게 내미는 선택권이기도 했다. 네가 이별을 택하면 우리의 운명은 이별로 끝날 것이고 영원한 사랑을 택한다면 영원한 사랑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노란 장미에는 꽃말이 하나 더 있었다.
완벽한 성취.
그래. 네가 영원한 사랑을 택하면 나는 완벽한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이었다.
"선배."
"응."
"나 봐요."
"싫어."
"왜요."
"나 지금 못생겼어."
"매일 못생겼으면서."
"죽는다."
너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으려했다.
나는 네 볼을 두어번 쓸어내리다 너를 다시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네가 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나를 보는 건가.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네가 다시금 내 옷깃을 그러쥐었다.
나는 바로 네 손을 떼어냈다. 노란 장미도 중요했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네가 약을 먹는 일이었다. 밤새 열이 오르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너였다. 너의 선택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너의 몸이었다.
"가지마."
"선배 약 가질러 가는..."
"나 두고 가지마."
"선배?"
"준아. 김남준."
"네."
나 두고 어디 가지마.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말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 참으로 낯선 말이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난번에 네가 내게 물었었지. 쓰러지기 전에 하려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기억나냐고.
저 말이었나보다. 내가 너에게 하려 했던 말은.
"왜그래요."
"준아."
"네."
"나, 나..."
"..."
"나 너 사랑해."
"..."
"그니까 나 두고 나가지 마. 응?"
...
너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으로 들어본 '사랑해.'라는 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덤덤하고 담백한 그런 말이었다.
온갖 수식여구를 다 붙여서 설명을 하려해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그런 말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
[암호닉]
두유망개 뱐드 현 꾸룩 방칠이방방 달 뜌 윤기와산체 열렬 토끼 다이아몬 뷔스티에 슬픔이 기쁨에게 대추차 땅위 보보 숭니 녹차맛콜라 뉸뉴냔냐냔 헤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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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꾸기냥 유딩 링링뿌 우와탄 랩모나 검은여우 준 달다리 베네핏 검정손거울
미리 말을 하자면... 우리 남준이는 모쏠이에요.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엄청나답니다... 고백 들으면 귓가에 종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남준이에요...
뭐... 남준이 입장에서는 종소리보다 여주 목소리 듣는 게 더 중요하니까 여주 목소리만 들렸을 수도 있고요.
사실 저는 환상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라...ㅎㅎㅎ 저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요.
혹시 눈치채신 분 계신가요? 호석이를 만날 때 여주가 즐겨 마시는 술이 무엇이었는지.
보드카였죠. 우리의 여주는 굉장히 술이 센 그런 사람이랍니다.
하지만 술이 약해서 맥주만 마시는 남준이랑 같이 술을 먹기 위해 일부러 맥주를 마시는 거에요.
뭔가 같은 주종을 마시고 싶어서..? 라는 느낌이랄까요. 여주와 남준이가 같이 다이다이 뜨면 남준이 완전...ㅎㅎㅎㅎㅎ
취해서 쓰러질 수도 있어요.ㅎㅎㅎㅎㅎ
음... 브금도 그렇고 뭔가 간만에 따듯한 느낌이네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17171771에 비하면 말이에요.
이렇게 스릴러는 물건너 가는 건가...
오늘도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 부터는 다시 여주 시점으로 돌아갈거에요!
마지막화가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