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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꺼

 # 0

 

 "아.. 야! 야!"

 

 쫓아가는 성규의 발걸음이 바쁘다. 고등학교때 축구했어서 그런가 제가 잠깐 헥헥 대는 사이에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진 우현의 뒷통수가 얄밉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하고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말의 첫머리를 꾸역꾸역 삼켜보며 숨을 골랐다. 아.. 진짜 저 남똥개..

 

"우현아! 야! 남우현!"

 

 크게 불러진 제 이름에 뒤돌아본 남우현이 눈을 길게 빼 째려본다. 아.. 진짜.

 

 "뭐!"

 

 저게 이제 기어오르네. 꼴은 말투로 크게 쏘아부친 우현은 그대로 다시 뒤돌아 빠르게 멀어져 버렸다. 

 

 "아.... 진짜."

 

 나는 왜 거기서 걸려가지고... 따지고 봐도, 다시 봐도, 그냥 봐도, 성규 제 잘못임이 확실해 딸리는 기력을 더이상 뽑아 낼 수 없어 그대로 주저 앉아 양 관자놀이 위로 주

먹을 갖다 댔다. 아.. 골때려..

 

 

 

 

 # 1

 

 고등학교 시절에도 겁나 발발 거렸던 똥개였다. 그것도 소문난 똥개.

 

 고3의 4월은 3월 모의고사의 결과도 발표되고, 긴장감의 끝판이라 제가 있는 교실은 칙칙하고 어둡고 침침하니 다운되어 있건만 저기 운동장의 아해들이 발랄히도 뛰어

노니는걸 내려다보니, 젊은게 좋구나. 하고 떠오른다. 문제집안에서 샤프를 잡고 왔다갔다 거리던 손을 쉬고 턱을 괴어 밖을 내려다 보는 성규의 눈은 딱, 고삼 그 자체였

다.

 

 "아~ 저것들 봐라. 저것들 내년에도 저러고 있는거 아냐?"

 

 앞자리에 앉아있던 동우가 몸을 돌려 같이 내려다 보며 한마디 던졌다.  

 

 "알아서들 하겠지"

 "아~ 시니컬해라"

 

 쌩, 쌔앵~ 말끝을 늘어뜨리며 덧붙인 동우가 같이 턱을 괴고 날뛰는 조랑말같은 아해들을 차근차근 살폈다.

 

 "아, 쟤 걔다, 걔. 걔."

 "걔?"

 

 턱짓으로 무슨 소리냐,하는 풍을 담아 보니 엉,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하나를 집어낸다.

 

 "저번에 우리반이랑 축구했던 애들이네, 저기 쟤가 그 똥개."

 

 아, 그 똥개. 똥개 얘긴 들었었다. 겁나 잘 뛰어다닌다던데. 거의 뭐 날아다닌다고. 축구하는거 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더라. 그런데 그 이유로 똥개가 된건 아니고.

 

 "요즘 동아리 안나가서 못봤더니 동아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운동장에서 사나보네"

 

 선생님이고 선배들이고 말 잘듣는, 싹싹한 똥개. 동우의 손 끝을 따라간 곳에는 뜻대로 안되는지 양손을 머리에 얹고 공을 쫓는 뒷통수가 보였다. 멀어서 잘 안보이는데.

안경을 고쳐 쓰고 눈을 가늘게 떠서 다시 자세히 봤다. 꼭 확인해야 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똥개로 유명한 일학년 좀 볼까 싶어서. 그냥 왠지 보고 싶은데.

 

 "아"

 "봤어? 봤어? 발놀림 완전 빠르지"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탱탱볼이 튀어나가듯 달려나간 녀석이 화려한 발놀림으로 공을 챈다. 거기에 놀란건 아니고. 쟤.

 

 - 이거 쓰실래요?

 

 그때 그 우산 빌려준 걔네.

 

 고맙다기 보다는 내밀어진 우산을 보며 오지랖이라고 떠올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손으로 우산을 받쳐 쓰고 다른 한손에는 접이 우산을 들고 찬찬히 학교 언덕

을 거슬러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아.. 나 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무슨 막 생각이냐 하면, 고삼이라 필수가 된 자율이 아닌 자율학습을 끝내고 내려왔더니 비가 오

더라. 그런데 우산이 없더라. 강제자율학습을 시킨 학교를 씹어대고 있는데 그러고 올라오는 녀석을 보고 저 우산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실 없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

데 진짜 줄 줄이야.

 

 - 진짜로?

 

 필요없다고 하고 싶어도 필요해서 받아도 되는건지 물어봤다. 내 물음에 고개를 두번 크게 끄덕인 녀석이 씩 웃는다.

 

 - 네.

 

 교복입은 나랑 달리 사복입은 녀석의 모습에 학년을 짐작할 순 없어도 입은 형광색 아우터라던가.- 이해할 순 없지만, 저렇게 입기도 싫지만.- 말투나 몸짓에 후배겠거니.

하고 넘겼다. 쬐끄만게.

 

 - ...고맙다. 갖다줄게.

 

 우산을 받아 똑딱이를 풀자니 계속 앞에서 보고 서있는다. 학교 건물 현관 구조상 한 계단 밑에 서있어 더 작아보인다. 쪼끄만게, 뭔데.

 

 우산을 다 피고 현관을 나섰다. 똑같이 계단 밑에 서도 작다. 쪼그만게 왜 자꾸 보고 서있는데.

 

 - 제 반 아세요?

 

 아, 그거였니.

 

 - ...아니, 몇반인데.

 

 - 남우현이요.

 

 - 뭐?

 

 -이름은 남우현이구요, 반은 1반이요.

 

 ...... 안물어 봤는데. 차마 뱉진 못하겠어서 그냥 고개만 한번 크게 끄덕여 줬다.

 

 - 김성규고, 7반이다.

 

 - 알아요.

 

 생각지 못한 대답에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뭐 임마? 놀리는 건가 싶어 표정을 살피니 그냥 웃는다.

 

 - ... 그래. 고맙다.

 

 들어가라, 하고 몸을 돌려 가려는데 저! 하고 제법 큰 소리로 붙잡는다. 몸을 반만 틀어 쳐다보니 꾸물댄다. 뭔데.

 

 - 고마우시면 갚으세요!

 

 ...... 뭘로?  내 표정을 읽은건지 눈꼬릴 길게 빼고 입가를 올려 씨익 웃는다. 웃음 끝에 붙은 보조개를 보다가 다시 눈을 맞췄다.

 

 - ... 그래.

 

 

 오지랖에, 건방지고. 요즘 애들 참. 우산 빌려준게 고마워서, 더 말하기도 귀찮아서, 뭐 고맙긴 하니까. 그냥 알겠다 했었다.

 

 

 

 "그게 그 똥개라니."

 

 "진짜 유명인사네, 쟤 너한테도 막 앵기냐?"

 

 

 앵긴다기 보다는 오지랖. 고개를 젓고 다시 그 뒷통수를 찾았다. 진짜 잘 달리네. 붕붕.

 

 

 

 

 

 # 2

 

 [야 미안해 전화좀 받ㅇ]

 

 

 이응뒤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다가 벡버튼을 꾹꾹꾹꾹 눌렀다. 처음엔 정말로 별거 아녔었다. 우리집 똥개랑 같은 과라고 밥좀 사달라는 말에 밥 사먹으라고 돈으로 줬었

다. 뭐 이정도야. 워낙 다른 후배들, 심지어는 바로 밑에 후배들도 잘 안 붙어서 이런 상황이 낯설어 그러마, 했던게 실수였다. 내밀어진 밥값에 베시시 웃으며 이런게 어딨

냐며 같이 먹어주라며 손을 잡아 이끄는 바람에 여자애를 내칠 수도 없고 그냥 이끌려 간것도 실수였다.

 

 "아.. 짜증아"

 

 책상위로 엎드려 버릇처럼 양손을 머리위로 얹었다. 그날 처음 들켰었다. 아니 이걸 들켰다고 해야해? 그냥 밥먹다가 밥먹으러 온 녀석이랑 마주쳤을 뿐인데? 뭔가 이상

한, 불편한듯한 녀석 표정에 본능적으로 아차, 싶어 어색하게 입꼬릴 당겼는데, 녀석과 같이 들어온 녀석들이 단체로 선배가 드디어 애인을 만들었느니 어쨌느니 분위기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가 거기에 또 휩쓸렸었다.

 

 

 -아녜요~ 아직은, 그냥 오빠 동생 사이에요..

 

 놀리는 애들에 그 여자애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끝을 늘리며 대답하는 바람에 더 꼬였더랬다.

 

 

 

 

 "아.. 짜증아.."

 

 머리위에 얹은 머리를 꾹, 눌렀다. 책상위 엎어진 자리 옆에 두었던 핸드폰의 까만창이 홀드창이 뜨며 징, 하고 울린다. 아.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홀드를 풀고 문자를

확인했다. 역시나 발신인은 우리집 똥개.

 

 [왜 집에 안들어와요]

 

 왜기는.... 쫄아서 그렇지.... 속으로만 답하고 책상위로 펼쳤던 책들을 가방에 담았다. 공부도 안되는데 도서관에 이렇게 오래 남아보기는 처음이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

을 메고 계단을 내려가며 답장을 보냈다. 간ㄷ... 계단을 다 내려가 익숙하게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쿵, 하고 약하게 누군가랑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짧게 고개를 숙여보이

고 ㅏ 자를 마저 치는데 부딪힌 사람이 알았던 사람인지 오빠? 하고 부른다.

 

 

 "아.. 안녕"

 

 익숙한 목소리에 지금 싸우고 있는 원인이 너란다. 하는 생각에 목이 뻐근해졌지만 고갤 돌려 눈인사를 하고 빠르게 빠져나왔다. 미안, 내가 지금 니가 문제가 아니다.

 

 

  # 2

 

 성규는 제 옆에서 책을, 정확히는 문제를, 더 정확하게는 성규가 풀어놓은 식을 보는 우현을 내려다 봤다. 아.. 골때려, 어쩌다 이런게 얻어걸려선. 우산을 돌려주러 갔더니 우현은 갚으셔야죠, 하고 건방지게, 그런데 그 건방짐이 건방으로 보이지 않게 말갛게 웃으며 당차게 말했다. 저 수학 좀 알려주세요.

 그 뒤로는 복도 부터가 칙칙한 고3 반들이 모여있는 사층 까지 올라와 이 문제 저 문제를 물어봤다. 제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점심시간만 온다던데, 사실 이것도 귀찮아 죽겠다.

 "됐으면 들어간다?"

 "네... 아!"

 네,의 ㄴ자가 나오자마자 제 샤프를 들고 뒤돌아 서는 성규를 우현이 급하게 세웠다.

 "오늘 집 같이가요!"

 ㅇㅇ오냐. 딱 그렇게 답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몸을 돌려 반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쿨하다 못해 쌩한 뒷 모습을 꽁하니 보던 우현이 히, 하고 웃었다. 원래 친해지려면 밥을 같이 먹던지 같이 등하교를 하면된다고 했다. 그리고 동아리 선배나 친구들이 말하는 김성규는 귀찮은건 진짜 딱 자른댔는데, 그렇진 않은걸 보면 괜찮은 것도 같다.

 이응이응 오냐. 하고 손으로 훠이, 하고 반으로 들어왔다. 이제 내 공부 좀 하자.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제 자리로 찾아 들어가는 성규의 표정은 귀찮아 보이지 만은 않았다. 아직 노래를 틀지 않아 이어폰 너머로 야 성규야 나 이것좀! 하는 동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가볍게 넘겨 버린다. 귀찮아 귀찮아.

 

 

 # 3

 

 사실 찔릴게 아예 없진 않다. 조금 있다, 조금. 쪼오금. 성규는 문앞에서 서서 현관 키를 만지작 거렸다. 손을 들었다가 다시 떨어뜨렸다를 반복한 성규는 후. 하고 심호흡을 해봤다. 아.. 설마 알고 저러는건 아니겠지. 그냥 오늘 밥 먹은 것만 들킨거 맞겠지. 하여튼 남우현 눈치만 쓸데없이 빨라선 사람을 힘들게 한다.

 -형 저 좋아하죠.

 그냘도 그래,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빠른 녀석이 보라는 문제집은 보지 않고 얼굴을 빤히 보며 그렇게 말했었다. 찔려서, 사실은 뭐라해야할지 찾지 못해 마주친 얼굴을 피하지 않고 보고 있자니 입가에 주름까지 만들어내며,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휘며 입 끝에는 보조개까지 단채로 웃어보였었다.

 -에이 다 아는데.

 그땐 내가 먼저 말하지 않게 해주어 좋았는데. 그냥 듣고만 있어도 간지러운 그 말을 내가 했어봐. 간질거리는 온 몸을, 머릿속까지, 전부 뒤집어뜨렸을 텐데.

 아무튼 그러했데 이럴땐 한없이 귀찮아진다. 아.. 눈치 빠른 남똥개.... 원래 개들이 주인 눈치를 잘 알아채긴하지. 쓸데없는 생각까지 사족을 늘어뜨리며 혼자 수긍하는 성규였다. 그만 정신차리고. 키위에서 방황하던 손을 놀렸다. 들어가자. 일단 들어가서 봐야지. 평생 볼건데, 봐야지. 휴.

 

 *

 

 삑삑삑. 하고 현관 키가 열리는 소리를 듣고도 멀뚱히 소파에 앉아 티비만 구다 봤다. 이제 들어온다 이거지. 삐릭, 하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이어 들리고 왔어- 하는 뻔뻔한 목소리도 따라왔다. 옆으로 다가와 서는 게 시선 끝에 잡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앞만 보고 있다. 큼, 하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 한번 해봐. 고개를 틀어 올려다 보니 예의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 그냥 밥만 먹은거야. 진짜 별거 아니야. 그냥 넘어가자."

 어? 하고 내 동의를 구하는 김성규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쉬었다. 내가 뭐 미저리도 아니고. 그 한번 밥 먹은거 그거 한번 그거 가지고 이러는 거 아니다. 나도 김성규 만큼은 아녀도 그 애인 만큼은 쿨할 수 있단 말이다. 내가 들은 말이 있어서 그렇다고. 머릿속으로는 벌써 끝까지 토해낸 말이 목끝에서 입끝에서 멤돌았지만 꾹, 삼켰다.

 "처음이에요?"

 내 말에 눈썹이 움찔, 하고 움직인다. 항상 그래왔듯 그 솔직한 반응에 괜히 속 한켠이 상해버렸다.

 "처음 아니지, 그치"

 아무런 답도 없이 꾹 입을 다물었다가 뗀다.

 "솔직히 말하면, 밥.. 한.. 두번 사줬나."

 답지 않게 말 중간을 늘이는 모습에 설마. 하고 이상한 느낌이 훅, 하고 끼친다. 설마.

 물론 내가 들은 말은 동기들과 밥을 먹던 중에 지나가듯 들었던 말이었다. 그냥 학교에서 항상 있을 그런말. 누가 누구랑 썸을 타고 있다는 둥의. 평소라면 그냥 남의 연애 얘기가 재밌는, 딱 그만큼의 밥 먹으면서 들을만한 이야깃 거리였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김성규라면 다르다. 심지어 썸탄 그 여자,-동기고 뭐고 다 필요없다. 김성규랑 썸탔는데 여 학우, 라고 해주리?-가 김성규가 밥먹듯 말했던 '하얗고 아담한 귀여운, 여자.' 라는거면 말 다했다. 먹던 밥이 얹히고 먹었던 밥이 역류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는거다.

 워낙 김성규 이상형에서 멀다보니 밥 먹다가 넌지시 물어본적 있다. 제대로 말하자면, 넌지시 물어보려 애쓰며 물어본적이 있다. 저 안 좋아하죠. 밥 먹느라 숙였던 고갤 들어 내 얼굴을 슥, 본 김성규가 얼굴을 마주한채 입에 들어있던 것들을 꼭 꼭 씹었었고, 나는 그 반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잘 하면 쏟아질 것 같아 고갤 숙이고 밥을 주워 먹는데, 머리 위로 무심한듯 툭 떨어졌었다.

 - 아닌데, 엄청 좋아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간지러워 죽을뻔 했단다. 그게 학교 식당이 아녔으면 바닥을 구르고 싶었다고. 사실 그자리에서 밥먹다 말고 머리 양쪽으로 양손을 올리고 잠시 있긴 했었다.

 그런 김성규가 밥 한 두번 사준거로 설마 썸을 탔을까. 괜한 설마 하는 의구심에 계속 올려다 눈을 맞췄다. 정말로 그게 다야? 내 시선을 그대로 받아친 김성규가 눈을 쓱 피했다. 그 모습에 설마, 했던 마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술도, 한.. 두번?"

 말 끝을 애매하게 올리는 모습에 인상을 확 썼다. 이건 진짜 확신한다. 뭐가 있어도 있다. 내가 김성규를 알아온 5년간 이런모습은 처음이다. 갑자기 사람이 죽을때 그런다던데, 주마등처럼, 파노라마 처럼 5년, 곧 있으면 6년간의 이야기들이 머릴 스치고 지니간다. 내가 김성규 군대도 기다려주고 휴학기간도 응원해줬는데...! 근데 김성규는 내가 군대갔다 온 일년-1년은 겹쳤다-을 못 참았다. 욱, 하고 치미는 화를 다시 한번 삼켜냈다.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도 막는댔다.

 "형."

 눈을 피해놨던 김성규가 다시 눈을 마주했다.

 "다신 안그래."

 -다신 안 그래.

 데자뷰가 느껴져 화가 울컥, 하고 치민다. 그래,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성규는 일 이년에 한번씩 주기 적으로 이랬다. 왜 그 주기로 얼굴 하얗고 귀여운 애가 나오는지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싫은 이야긴데. 그래, 남잔데, 그냥 길만 나가도 예쁜 여자는 차고 넘치는데, 이해는 된다. 학교 교정만 잠깐 걸어도 한명은 건진다. 그래도. 매번 저런식으로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게 싫다 이거지. 이것도 버릇이라던데.

 휴... 속으로 부터 끌어올려 진심을 담아 숨을 뱉어냈다. 아 미안하다고... 하는 반성하는 듯한, 그니까 '반성하는' 이 아닌 '그런것 같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린다. 그 목소리에 또 다시 욱했다. 고개를 바짝들어 눈을 길게 빼 흘겼다. 아직 양심은 있는지 끙, 하고 눈썹을 늘어뜨린다. 밥 두번 술 두번. 으로 썸을 탔단다.

 "뻥카치지 말고요."

 "야, 넌 형한테.."

 얼굴을 구겼다. 지금 그게 문제야? 이놈의 형은 그게 문제였다. 그리고 나도 문제였다. 항상 그런 데에서 내가 쫄아서 흐지부지 된거 안다. 이번엔 안 넘어갈꺼야. 형한테.. 하고 꼬투리를 잡아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김성규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진짜 그게 다라니까."

 "까지 말랬다."

 "야!"

 또 움찔, 해버렸다. 안 쫄꺼다. 안 쫄꺼라고! 아까처럼 미간을 좁혀 무표정하게 보니 똑같이 무표정하니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휴, 하고 먼저 고갤 돌려 한숨을 푹, 하고 게워냈다. 뭔가 나올 것 같다. 아.. 정말.

 "알았어."

 아.. 정말.

 "다 말한다?"

 어, 어디 한번 오늘 끝까지 한번 해보자. 속으로만 숨을 골랐다. 속 터져서 죽었다고 비석에 쓰고 싶진 않다.

 "걔 스물 셋 생일이라길래, 그 있잖아, 피피티 준비한다고.."

 아. 씨..

 "... 둘이서?"

 이제 표정 관리고 그딴거 없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짖는지도 모르겠고. 올려다보고 있자니 마주한 얼굴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너도 좋지 않겠지만 나는 썩었어.

 "...어."

 거짓말을 못 하는것도 아니면서 이럴 땐 안한다. 아 진짜. 속 터져서 죽으면 너무 쪽팔리지 않겠는가. 숨을 또 한번 골랐다. 진짜 어디 오늘 한번 끝까지 해보자.

 "또 해봐."

 더 있잖아.

 들은 것도 없지만 듣고 싶지도 않지만, 직감이 말하고 있다. 이건 끝까지 해야한다고.

 "MT 간다고 뻥치고.."

 아. 씨발.

 뭘 더 참겠는가. 쥐고 있던 리모컨을 던졌다. 머리를 향해 던지긴 했는데 제대로 맞았는지 억, 소리를 낸다. 보지못해 아쉽다. 던지자 마자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쿵쿵 거리며 들어갔다. 야! 남우현! 내가 잠깐 미쳤어, 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그만하자, 진짜.

 야, 너 진짜 몰랐어? 뒤로 계속 쓸데 없는 말이 들린다. 알았으면 어쩌고 몰랐으면 어쩌시려구요. 방으로 들어오자 마자 짐을 챙겼다. 트렁크를 꺼내서 보이는 대로 옷을 집어쳐넣었다. 아씨. 왜 이렇게 안들어가. 꾹, 꾹 눌러 담고 트렁크를 닫는데 끝까지 안 닫힌다. 나는 왜 저딴 사람한테 코가 꿰어서. 꾹, 다시 한번 누르는데도 안 닫힌다. 아.. 씨.

 "우현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한번 뚜껑을 꾹 눌렀다. 여전히 안 닫힌다. 안 닫히는 게 서러운지, 왜 인지, 눈 앞이 흐려졌다. 아.. 씨. 나는 왜 이딴 바람병있는 사람을 만나선.

 다가오는 기척에 짜증부터 난다. 옆으로 다가와 쪼그리고 앉는다. 꺼져. 하고 뱉듯 말하는데, 목이 메여 목소리가 흉하게 나갔다. 말도 안 듣는다.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 트렁크에 손을 올린다. 아, 씨.. 이렇게 말을 안 들으니까, 다신 그러지 말란 내 말을 똥으로 알아듣지.

 "이러니까 안 닫히지."

 트렁크 뚜껑을 잠깐 들었다가, 언제 들어갔는지 옷들 사이로 낀 옷걸이를 빼낸다. 아, 씨. 쓸데없이 침착한 사람을 만나가지고.

 "야.. 말하라고 해서 다 말했잖아"

 이젠 닫힐 트렁크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옆에서 계속 말을 건다. 평소엔 말 없던 사람이 이럴땐 또 말 잘한다. 하여튼 뭐든, 잘 하면서 안한다. 그 잘하는 거짓말 한번만 더 잘 하지 왜 또 다 말해. 아, 씨.. 진짜. 난 왜 김성규를 만나고 있는거야. 억울하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내가 먼저 작업건거 아냐.. 야, 너도 알잖아. 날 가만히를 안 둔다니까?"

 이 와중에 자기 자랑. 고개를 바짝 들어 짜증을 섞어 쳐다보니, 머쓱한지 뒷 머릴 긁적인다.

 "야, 좀만 웃어봐라.. 한번만, 응?"

 아.. 염치도 없어. 이런 사람 때문에 울고 있는 내가 다 억울하고 쪽팔린다.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야.. 솔직히 다 말했잖아.."

 끝까지 야, 야. 거리지. 그 와중에 이상한데에서 또 삐뚤어진 생각이 든다. 걔 이름이 뭐였지. 미연이? 미영이? 걔한테는 미영아, 미연아, 하겠지, 썅.

 "걔한테도 야, 야. 거려?"

 "뭐?"

 "뻥을 치려면 제대로 치던가! 왜 다 말해! 왜!"

 "야, 그건! ... 니가 다 말하라며.."

 이봐, 또 이상한데서 승질 내지. 저 놈의 성질.

 "아, 짜증나."

 트렁크를 발로 밀며 얼굴을 훔쳤다. 소매로 대충 힘을 주어 닦으니 쓰리다. 아야.

 "야, 못난 얼굴 더 망가진다."

 두 팔을 두 손으로 나란히 잡은 형이 쭈그렸던 자세를 고쳐 무릎을 바닥에 댄다. 노인네 무릎 상하겠다.. 이 와중에 걱정하는 내 머릿속이 궁금하네.

 "형은 뭐 잘생긴 줄 알아?"

 "인기 많잖아"

 허, 어이가 없어 입꼬리가 올라가버렸다. 아, 씨.

 "야, 너 웃었다?"

 안 웃었는데요.

 "진짜 몰랐었어?"

 "어."

 내 말에 불만이라는 듯 미간이 살짝 좁혀들어갔다.

 "몰랐으면 뭐, 거짓말로 계속 덮으려 했어?"

 "아니 뭐 또 덮는다기 보다는..."

 또 이렇게 넘어가는건가. 상황이, 내가, 김성규가! 짜증이나서 머릴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겼다. 

 "조용히 넘기려고 했지."

 "아, 김성규!!!"

 

 

 솔직히 말해봐요.

 뭘 또.

 나 안 좋아하죠.

 야. 솔직히 봐봐.

 뭘 요.

 내가 너 안 좋으면, 얼굴도 탄빵에. 징그러운 너랑.

 뭐 요?

 안 좋은데 왜 살아.

 ...

 다 애정이야.

 ...

 ...

 근데 왜그래요.

 얼굴 하얗고, 귀여운 애가 자꾸 좋다잖아.

 누가?

 내가.

 ...솔직히 말해봐요.

 뭘 또.

 나 안 좋아하죠.

 아닌데? 엄청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어? 좋아한다고. 남우현 개짱. 

 

 

 

 

 

 : )

 여러분 축하 좀 해주세요.

 저 글 처음 끝내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끝낸거냐고 물으시면ㅋㅋㅋㅋㅋ끝낸겁니다. 끝. 합하면 단편...?

 처음 끝내본 글이 성우 일줄이야. 전에, 교우 썼었을 때랑은 또 다른 기분이라 꽤 즐겁게 썼습니다, 히히. 비슷하면서 다르네요.

 근데 이런 글 좋아하시나여...? ㅠㅠㅠㅠㅠㅠㅠㅠ똥글인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혹시, 제가 썼던 성우 중에 다음이 보고 싶던게 있나요? 이미지 트레이닝 좀 해보려구요ㅋㅋㅋ 그게 되면 쓰는거고!! 히히.

 다운로드 ([성우] Chance.txt) 됐나? 이럼 된건가? ㅇ?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리리플 ♥ 님들 덕분에 제가 자꾸 글을 싸여..

 1. ㅋㅋㅋㅋ좋죠ㅠㅠㅠ엄청좋죠ㅠㅠㅠ처음보는데 댓글다시는분 좋죠ㅠㅠ그냥좋아요ㅠㅠ잘보셨다니저도 좋아요ㅠㅠ

 2. 귱님 ㅋㅋㅋㅋ아니 이런. 제가 그런 짓을 했더라구요. 사실, 저는 필명이 없이도 올라가는 줄 몰랐어요. 그런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무기명으로 했을텐데. 성우 검색해주세요ㅠㅠ 얘가 가끔 이런 모지란 짓을 해요..ㅋㅋㅋ 잘 보셨다니 다행이네여ㅠㅠ 귱님 없었음 이 글도 없었어여..히.

 3. ㅠㅠㅠㅠ좋아여?? 좋으시다니 저도 겁나 좋아여ㅠㅠ 성우ㅠㅠ성우개짱ㅠㅠ... 필명ㅋ.... 없어도 올라가는줄 알았으면 정말, 처음부터 안 썼을텐데..(..)

 4. 재밌다니 너무 감사해요ㅠㅠㅠㅠ

 5. 히ㅣ히힣힣ㅎ 간질간질좀 하셨씀니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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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귱이에요. 오늘은 신알신이 제대로 왔어요! 탄빵에서 현실웃음ㅋㅋㅋㅋ 성규야 그르지마.. 흡.. 잘 읽었어요!
11년 전
독자2
꾸꾸미라고해요!!! 아잇 성규 그렇게 안봤는데ㅋ
11년 전
독자3
헐 성우다 어머어머어떡해헐 헐성우 오메 신알신하고가여..헙 숙제하고와서봐야겠어여 작가님사랑해요 성우보다 더 대바ㅏㄱ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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