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 김성규가 못 일어난다니 ?
" 너 또 음악프로 보려고 그러지 ? 안돼. 우현이 어머니가 불교방송 틀어놓으랬어. 우현이네 불교 믿잖아."
" 야...불교 그런거 다 거짓말이야. 인기가요에 손녀시대 컴백하는 날이라고. 남우현 손녀시대 빠돌이잖아. 혹시 몰라,신곡듣고 깰지? "
" ...시..."
" 빨리 리모컨 줘."
" 싫어 ! 이거 틀어놔야해."
" 시...시발...놈들..."
장동우와 김명수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펄쩍 일어나더니 덜덜 떨어대기 시작한다.
" 가,간호사누나!!!!! "
i'm comeback.
*
*
다시 눈을 떴다. 그새 잠들었나보다.
그래도 몸이 좀 가볍고 고개도 돌아간다. 와삭와삭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사과를 깎는 엄마의 얼굴과 ...그 사과를 날름날름 받아쳐먹고있는 장동우 개새끼와 김명수 씹새끼의 얼굴이 보인다. 사과를 맛나게 먹고 있던 김명수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 깼다 !!! "
" 어머,우현아 ! "
" ...울...무...무울."
" 무울 ? 아,물 ! "
장동우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유리잔에 물을 담아서 내게 내민다.이거 어떡하라고 ? 손가락까딱하기도 힘든데 내가 직접 갖다마시라고 ?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서야 아차차하며 빨대를 꽂아 내 입에 물린다. 옷자락에 좀 흘리긴 했지만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목구멍에 윤활제를 쳐발쳐발한 것처럼 부드러워진게 느껴졌다.그래도 아직까진 말할 기운이 딸린다. 몸도 어지간히 아파오고...슬쩍 고개를 내려 몸 상태를 확인했다. 왼쪽 다리와 왼쪽 팔에 둘러져있는 깁스가 보인다. 머리도 붕대를 감아놓은건지 되게 빡빡하다.
아직까지도 기분이 얼떨떨하다.
대충 내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건 알겠는데 방금까지 꾼 꿈은 뭐였지 ? 그 요상한 할아버지는 ? 꿈이 맞긴 한건가.꿈 치고는 너무나 생생했는데. 그리고 김성규가 못 일어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일단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아는 게 시급했다.
" ...오...오..."
" 어제 눈떴다가 다시 계속 잠만자길래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이제 정신이 좀 드니 ? 응 ? "
응. 엄마.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는게 더 급해.
" 오늘..."
" 오늘 ? 오늘 뭐? "
" 무슨 요..."
" 요 ? 요단강 ? "
꺼져,김명수야.방해하지말고.
" 요일..."
" 아 ! 무슨 요일이냐구 ? "
" 으으..."
" 오늘 무슨 요일이지 ? 아아 ! 오늘 금요일이야."
" 뭐?!! 으윽.... "
득음이다 !
다행히도 10년묵은 체증이 풀리듯이 목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동시에 온 몸에 찌릿한 고통이 퍼졌다. 오늘이 금요일이면...화,수,목,금. 거의 3일 넘게를 이 지루한 침대에서 보냈고 그 얘기는 즉 김성규와 남은 시간이 고작 이틀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다. 엄마는 간호사를 부름과 동시에 의사와 얘기를 하러 갔고 간호사는 내 눈깔을 한번 홱 뒤짚어까보고 이것 저것 확인을 하더니 링겔액을 갈아주고 병실을 나갔다.
" 진짜 남우현 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아냐 ? "
" 그래. 진짜 너 다시는 안 깨어나는 줄 알고..."
" ...너네...둘은...일단 ...나중에...뒤졌어."
" ...무,무슨 소리인지... "
" 기...김성규...어딨어."
장동우와 김명수가 서로 눈치를 보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 사실 성규형이 좀 아파서..."
" 그게...무슨 소리야..."
" 아프다고 표현하기도 그렇고...아무튼 좀 안 좋아."
" 왜...왜 ? "
" 이거."
장동우가 침대옆 선반에 올려져있는 시들시들한 나무를 가리켰다.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 나무인데...비록 힘없이 추욱 늘어지긴했지만...분명 그 들판에 커다랗게 솟아있던 나무와 매우 비슷한 형태였다.
" ...행운...목 ? "
" 헐. 뭐 ? 니가 이걸 어떻게 알아 ? "
'이것땜시 니가 여기 와있는 건디 잡초라는 말이 나와 ?!''행운목 기운땜에 여기에 니 놈이 와있는게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이제서야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대충 짐작은 했지만 역시 꿈이 아니였다.뻐근한 고개를 다시 천장으로 돌리고 눈을 감았다.온몸을 분해했다가 다시 맞춰놓은 것 마냥 여기저기 삐그덕삐그덕거리는 기분이다. 계속 말했다간 기운이 모두 바닥날 것 같아 잠깐 숨을 가다듬었다. 장동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 암튼 성규형이 이거 가져오려고 천상까지 갔다가 병원오자마자 쓰러졌어..."
" ...지금은... 어딨어."
" 너네집에 있다가 너네 부모님이 혹시 의심하실까봐 일단 명수네 집으로 옮겼어."
그냥 게속 잠만 자고 있어.숨도 안 쉬고...
그 말을 끝으로 장동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김성규가 나 살리려고 비오는 날 천상까지가서 저 화분을 가져오고 그대로 쓰러졌다,이 말인가 ? 천상을 다녀왔다고 ? 어떻게 다녀왔지 ? 옛날에 분명 김성규가 말하길 비약이 하나라서 무지 조심해야한다고 한 것 같은데...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일단 김성규가 보고싶고 어떤 상태인지 내 두 눈으로 봐야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근데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주질않는다. 3일 누워있으면서 몸이 굳은 건지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게 없다.
" 어어 ! 움직이지마 ! 간호사가 절대안정이랬어."
" ...김성규..."
" 너 지금 그 몸으로 우리집까지 절대 못 가. 억지부리지말고 그냥 누워있어."
김명수가 다가오더니 들썩거리는 내 몸을 그대로 침대에 눕힌다.
내가 지금 김성규를 얼마나 보고싶은지 넌 모를꺼다.
" 성열이가 오늘 천상가기로 했어."
" ...뭐 ? "
" 가서 삼신님인가 뭔가 하는 할머니 모셔오겠다고 아까 아침에 갔어. 그러니까 넌 일단 누워서 쉬어."
" ...아,안돼."
아직 일요일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분명 그 할매를 모셔오면 당장이라도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게 분명했다. 김성규가 싫다고 해도 삼신이라는 할매가 억지로라도 데려가겠지. 잠깐만 삼신 ? 삼신...삼신...삼신상...그 들판할아버지가 말했던 내용들이 또 하나의 퍼즐로 또각-하고 맞춰진 기분이다.
" 안되긴 뭐가 안 돼."
" ...... "
분해서 눈물이 자꾸 나올라칸다.
일단 제대로 움직여지지않는 내 몸에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한데다가 화까지 난다.
" 야,남우현 ? 울어 ? "
" 헐 ! 어디 또 아픔 ? "
내가 입을 꾹 깨물며 울자 김명수와 장동우가 기겁을 하고 달려온다.
그래,아파서 운다,아파서...
*
몇 시간 전.
" 우..웁!!우웩 !!! "
" 왜,왜 그래 ?! "
" 으으으...맛 없쩡..."
" 아....깜짝이야..."
자신이 천상에서 내려올때 받았던 비약을 깔끔히 원샷한 성열이 오만상을 짓고 토악질을 했다. 냄새도 고약하고 색깔과는 다르게 맛도 굉장히 쓰다. 길가에 놓인 잡초를 뜯어먹는게 더 나을 듯 싶었다. 성열이 하얀 천상옷으로 갈아입고 성규에게 다가갔다. 3일내내 일어나질 못 하고 있다. 이제는 생기없는 인형에 가까웠다.
" 형... 조금만 기다려. 내가 할매데리고 올께."
" 야,갔다가...다시 올꺼지 ? "
" 할매 모시고 다시 와야지,그럼."
" 아...다행이다...난 또 니가 그냥 가는 줄 알고...너 진짜 꼭 다시 와야한다 ? "
" 알았다니깐.걱정마."
" 왜 이렇게 불안하지."
자꾸 불안해하는 명수를 힐끗 본 성열이 명수의 어깨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 금방 올께. 진짜로."
" ...약속. "
" 귀찮게시리..."
성열이 혀를 차며 명수가 내민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갔다가 꼭 다시 오겠다고 하는데도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모르겠다.
" 진짜 다시 와야돼."
" 에이씨,진짜. "
" ...... "
명수의 어깨를 잡아 당겨 입술도장을 꾸욱 찍었다.
" 이제 됐지 ? "
" 어...어어...?"
" 갔다올께 ! "
성열이 쑥쓰러운건지 후다닥 베란다 창문을 열고 몸을 숨기며 날아올랐다. 명수가 입술만 만지작거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베란다로 뛰어갔다.비가 그친 맑은 하늘에 성열은 보이지않았다. 하지만 명수는 힘차게 손을 흔들며 '빨리 갔다와!'하고 소리쳤다.
*
- 피융 !
그 시각 , 천상 태궁장에서는 오랜만에 맑아진 날씨로 태궁을 진행하느라 바빴다. 요 며칠사이에 비가 계속 내려 밀린 잉란이 어마어마했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 그나마 날이 개서 다행이구먼..."
" 그러게요. "
다니엘이 삼신할매옆에 붙어서 성열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사고뭉치 성열보다 다니엘이 훨씬 말을 잘 듣는 편이였으나 삼신할매는 무언가 허전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있을땐 밉지만 없으니 또 허전하다.
" 성규랑 성열이가 내려간지 얼마나 됐지..."
" 오늘이 금요일이니깐...흠...이제 한달 다 되기 이틀남았네요...잉란을 못 찾은 건 아니겠지요 ? "
" ....... "
" 걱정되시는 거죠 ? "
다니엘이 할매의 눈치를 살피며 묻자 할매가 대답없이 한숨만 내쉰다. 걱정이 안 될리가 없다. 경험없는 두 녀석을 무턱대고 내려보낸게 후회됐다.
" 잠시 쉬고 있을탱께 끝나면 불러."
" 네... "
할매가 몇 걸음 걸었을때 갑자기 궁인 한 명이 크게 놀라며 성열의 이름을 크게 소리쳤다.순간 모든 궁인의 시선이 희미한 구름속으로 향했고 할매와 다니엘도 서둘러 그 쪽으로 다가갔다.
" 아이씨,힘들어죽겠네."
성열이 끙끙거리며 태궁장으로 올라오려하자 궁인들이 다가가 손을 잡아 올려준다.
" 아예 온기가 ? "
할매가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와 묻다가 문득 성열의 뒤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 어째 성규는..."
" 할매. 큰일났어. 성규형이 ... "
*
" 할매 ! 어디가는거야 ? "
" 보채지말구 기둘려. "
" 아이...진짜... "
성열이 옆에서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할매는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기만했다.
" 어디 있능가 ! "
잠시후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판 입구에 멈춰선 할매가 누군가를 크게 불렀다. 푸른 들판 사이에서 할배가 쓱 올라오더니 할매와 성열쪽으로 느긋하게 걸어왔다.
" 오랜만이구먼."
" 시방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 하늘초 즙. 그것 좀 다시 줄 수 있제 ? "
" 하늘초 즙 ? "
" 읎어 ? "
" 읎진 않지.몇 병 ? "
" 3병만 줘봐."
" 그려. 잠시만 기다려보드라고."
할아버지가 다시 들판사이로 사라지자 성열이 할매에게 물었다.
" 저 할아버진 누구야 ? "
" 이 넓은 천상들판을 관리허는 할배여. 니가 묵고 올라온 비약도 하늘초를 짜내서 만든게지."
" 우웩... "
몇 분 후,다시 모습을 할배가 성열이 먹었던 비약과 똑같은 물병을 들고 와 건넸다.
" 여기 하늘초. 맞제 ? "
" 맞구먼.고맙네."
" 우리 사이에 무신..."
할매가 비약 병들은 성열에게 건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성규 상태가 어떤디 ? "
" 막 쓰러졌는데 숨도 안 쉬고 일어나질않아... "
" 미련한 놈...인간하나 살리겠다고 그 지랄을 허대!"
" 그 인간이 성규한테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서그래..."
" 시끄러 ! 어서 따라오기나 혀."
오랜만의 태궁시간은 할매의 긴급중지신호로 인해 잠시 멈춰졌다. 할매와 성열이 인간세상에 내려갈 준비를 했고 할매는 자신이 내려가면 얼른 태궁을 다시 시작하라는 말과 함께 구름으로 몸을 던졌고 옆에서 주춤주춤거리던 성열도 서둘러 몸을 내던졌다.
*
금요일 오후 2시.
그 동안 내리쬐지못한 한이라도 푸는 것 처럼 미친듯이 태양이 내려쬐였다. 몸에 안 좋다고 죽어도 에어컨은 못 켜게 하는 간호사때문에 선풍기에만 의존하려니 등부터 엉덩이까지 땀이 흥건한 기분이다. 밖에 나가고 싶다. 아니, 김성규한테 가고 싶다.
" 너 깨어난거 진짜 부처님한테 감사해야해...의사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정말 기적이랬어."
" 으응..."
" 장하다,우리 아들. "
엄마가 내 볼을 부비적거리며 꼬집었다.
근데 엄마. 부처님보단 김성규가 더 믿음직스러울 것 같아...
" 그나저나 이 화분...이제 치워야겠다.다 시들어버렸네."
" 아,안돼 !!!"
" 으응 ? "
" 안돼 ! 그거 치우면 안돼."
" 왜 ? "
" ...그,그니깐...다시 잎이 돋아날꺼거든."
" 이 시들시들한 나무에서 ? "
" 그래.아무튼 버리지마. 냅둬.그게 있어야 마음이 편해.."
" ..뭐..니가 그렇다면야... 아,참. 엄마 조금 있다가 산부인과 좀 다녀와야하니깐 필요한 거 있으면 간호사한테 말해놔. "
" 내 핸드폰 어떻게 됐어 ? "
" 너 사고 났을때 완전히 부셔진 모양이더라...지금 핸드폰이 문제니,너는... 엄마가 새로 사줄께,걱정말고 푹 쉬어."
가방과 옷을 챙겨든 엄마가 병실을 나섰고 잠시 뒤에 장동우와 김명수가 들어왔다.손에는 이것 저것 먹을 게 한가득이다.
" 그건 뭐냐."
" 이거 ? 먹을 거."
" 왠일 ? "
" 나랑 명수 배고파서..."
개새끼들,내가 그럴 줄 알았지.
제일 먼저 바나나우유를 꺼내든 장동우가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먹는다. 참 맛깔나게 먹는다. 병원 밥은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최악이였다. 시금치 나물은 바로 뜯어다가 삶아서 양념도 안 하고 가져온 것 같았고 국은 펄펄 끓는 물에 된장을 3초동안 담갔다가 꺼낸 맛이였다.
" 야.거기 빵 하나만."
" 이거 ? "
" 아니. 그 옆에 소보루. 바나나 우유랑 같이."
" 자. 여기 둘께. 와서 가져다먹어."
그렇게 말하더니 뭐가 그리 재밌는지 둘이 으헝헝거리며 웃는데 진심 링겔바늘 뽑아다가 장동우와 김명수 잇몸에 찍어내리고 싶은 기분이다.
" 김명수새끼야. 너 내 아이팟 깨트린거 아주 좆되게 털리고 싶지않으면..."
" 여기. "
그제서야 실실 웃으며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아 소보루 빵과 건넨다.'침대높혀'하고 말하자 잽싸게 움직여 발끝에 있는 레버를 빙글빙글돌리며 침대를 세워준다.
" 그리고 부탁하나만."
" 뭐 ? "
" 목발 가져와봐."
" 왜 ? 어디가게 ? 화장실 ? "
" 아니."
장동우가 가져온 목발을 짚고 발을 바닥에 내려놨다. 온몸이 지긋지긋하게 쑤셔온다.
" 부축안해주냐 ? "
" 어 ? 어어...근데 간호사누나가 크게 움직이지말랬는데..."
" 닥쳐.으윽..."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목발도 집고 링겔을 꽂은 기둥도 같이 들으려니깐 벌써부터 힘이 딸린다.
" 아오,불편해."
" 어어 ! 야,안돼 !! "
링겔바늘을 조심스럽게 잡아뽑았다. 피가 송글송글나오려는 걸 휴지로 대충 꾸욱 눌러주며 바늘에 붙어있던 반창고를 붙였다.
" 미쳤어 ? "
" 장동우.나가서 망봐."
" 뭐 ? 망을 보라고 ? "
" 그래. 나가서 간호사 누나 오나 안 오나 망봐. "
" 너 어디가게 ? "
" 김성규 보러."
" 뭐!? "
김성규 보러간다고.
슬리퍼를 주워신자 김명수와 장동우가 외출 허락 맡고 가야되고 너는 외출가능한 몸이 아니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 누가 허락맡고 나간댔냐. 몰래 나가는 거야. 장동우, 넌 나가서 간호사 누나랑 대충 떠들어. 못 오게 막고 만약에 나 어디갔냐고 물으면 화장실에서 똥싼다해."
" 말이 된다고 생각해 ? "
" 알아,말도 안 되는거. 근데 난 지금 김성규를 봐야겠어. "
" 야,너 진짜 그 몸으로..."
" 누가 걸어가겠대 ? 병원앞에서 택시타고 너네 아파트에서 내리면 되는 거 아냐."
" 그래도..."
" 제발 도와줘라."
나 지금 김성규 못 보면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김명수와 장동우는 잠시 눈빛을 슥슥 교환하더니 한숨을 쉬며 날 부축하기 시작했다.
" 병원로비까지는 그냥 바람 쐬러 간다고 뻥치는 게 나을 것 같아. 미리 택시 불러놓고 택시오자마자 그냥 타고 토끼자."
" 나 돈 없는데 ? "
" 나 있어. 걱정마.그 대신."
" 그 대신 ? "
" 아이팟 액정깨트린거 이걸로 퉁치는거다."
" 야,시발..."
" 싫어 ? "
" 콜."
장동우와 김명수가 양 쪽에서 태연히 나를 부축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어머 ! 남우현 환자님 ! "
간호사 누나가 차트를 들고 오다가 우뚝 서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내게 다가온다.
" 어떻게 일어나셨어요 ?! "
" 두 발로 일어났는데요 ? "
" 아,아직 그 정도로 낫진 않으셨는데...아무튼 어디가세요 ? 얼른 병실로..."
" 너무 답답해서 그래요. 미친 무슨 병원이 이 한여름에 에어컨도 못 틀게 합니까. 엉덩이 땀띠 도졌어요. 딱 20분만 로비에서 바람 쐴께요. 그것도 안되요 ? "
" 링겔 뽑으셨어요 ?! "
" 자고 일어나니깐 누가 뽑아갔던데요."
" 그럴리 없을텐데...잠시만 기다리세요."
차트를 뒤적거리며 간호사 누나가 어디론가 사라진 틈을 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아,존나 힘들어."
허벅지 근육부터 등 근육까지 잔뜩 알이 베겨서 한발짝 걸을때마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 ...응 ? "
3일만에 처음 보는 거울.
"으아악 !!!! 이게 뭐야 !!!! "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깨끗하던 볼과 목에는 짜잘한 생채기들이 가득했고 머리는 하얀 붕대로 둘둘 감겨져있었다. 시발,미이라 실사버전인가.
" 존나 뭐야 !!!! 좀비새끼인 줄 알았네 !!! "
" 야...그래도 살아난 걸 고맙게 여겨야지.."
" 이러고 어떻게 김성규를 만나 !!! "
" 걱정마. 너 누워있을때 성규형은 몇 번이나 본 얼굴이니깐."
" 그래도 내가 깼을땐 다른거지 !! 아,말도 안돼...잘 생긴 내 얼굴 어디갔어..."
" 야,1층이다."
김명수와 장동우가 날 질질 끌듯이 부축했고 난 쪽팔림에 얼굴을 가려가며 서둘러 병원 로비를 지났다.
" 일단 짱동은 여기 남아있어. 혹시 엄마나 누구 올 지 모르니깐 대충 둘러대고. 김멍수,넌 나랑 같이 가자.얼른 택시 불러."
" 오키도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김명수가 콜택시를 불렀고 잠시후 총알같은 속도로 택시가 도착했다.택시문을 열자마자 냉장고에 들어와있는 듯한 시원함이 물씬 풍겨온다.
" 아,시원허다..."
" 온누리 캐슬 아파트로 가주세요."
김명수네 아파트 주소를 말하자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은 기사아저씨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내가 원한 게 바로 이런거라니깐.
" 아저씨.그거 물티슈에요 ? "
" 이거 ? 응. 물티슈 맞아."
" 좀만 빌릴께요."
물티슈 몇 장을 슥슥 뽑아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닦아냈다. 좀 더럽긴하지만 김성규 보는데 차마 이 꼴로는 갈 수가 없었다.
" 아,옷 좀 갈아입을껄."
" 옷도 없으면서."
" 그런가..."
" 걱정마. 성규형은 너 처음보는거 아니라니깐..."
" 휴우...김성규 많이 아프냐 ? "
" 몰라. 아프다고 말하기도 뭐해. 우리랑 다르니까..."
" 하긴... "
이상하게 자꾸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예전에 헤어졌던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랄까.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ㅠ
에그몽은 매일 8~10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신작알림 필수 !!!!
댓글도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