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약 투여 어제처럼 하고. 시간 잘지키고"
"네"
시간은, 아무렇지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점점, 내 허리는 건강해져서,회진과 진료를 볼 정도로 건강해졌다.
과 특성상 오래 서있어야 하는 수술들을 아직 제외되었지만, 벌써 다음주에 신장이식 수술 어시스트로 수술 후 첫 수술 어시스트가 잡혔다.
"후...."
아무래도, 마음 한쪽이 또 찝찝했다.
내 마음을 후려쳐 제 쪽으로 돌리고 못으로 쾅쾅 박아놨으면- 뭔가 진전이 있어야지.
그래놓고 간다- 이러고서는,
내가 퇴원했을 때도, 논문 자문을 받으러 갔을 때도, 수술 회의를 할때도(하긴 이때는..사적인 얘기를 하면 안되는구나) 아무말도, 제스쳐도 하지 않으시는 경수쌤이다.
오히려, 살짝살짝 어깨동무를 해주실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것도 없다. 시덥잖은것을 물어봐도 오히려 자세히 알려줘서 민망할 정도였다.
뭐야. 갖고노는건가. 밀당을 하자는 건가- 짜증이나는데도, 아무래도 그 뽀뽀가 엄청난 충격이긴 했는지, 경수쌤한테 전화가 오나 안오나 항상 체크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맨날 체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논문 심사가 나올 때가 된것이다.
아픈 와중에도 앉아서 손목을 열심히 놀려가면서 논문만 썼더니, 나름 자신있는 논문이 나왔다고 자신했지만, 논문만 보고 판단하기때문에
내 표현을 교수들이 못알아 들으면 말짱 꽝인거다.
회진을 다 돌고, 컴퓨터에 앉아서 마지막 오더를 체크하는데,
"김여주!!!!!!김여주!!!!! 논문 심사 봤어???"
"엥? 나왔어요?"
"엉. 신경과 레지들 난리났는데. 칼맞았다고. 이 오라버니가 너가 생각나서 바로 달려왔단다."
"어우. 닭살. 기다려 보세요. 어, 세훈이도 확인해보라고 해야겠다"
"안그래도 왔다-"
이번 심사가 워낙 칼이었는지, 괜히 긴장을 주는 백현쌤이다.
왜그래요-! 하고 소리를 질러도, 그래야 점수가 나빠도 안운다나 뭐라나.
시끄러운 백현쌤과 세훈을 뒤로하고, 천천히, 사이트에 내 이름을 입력하니,
"......지금 내가 보고있는 숫자가 4.7 맞냐?"
"헐, 김여주. 이여어어어ㅓㄹ~~~"
깜박- 하고 다시 깜박여보아도, 저건 4.7이 맞았다.
5점 만점에 4.7이었다.
와.......
"너 돈줬어?"
오세훈이 제 점수 3.8을 보자마자 나보고 돈을 줬냐며 따지는데, 뭐라는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에 코웃음을 치며 크게 거드름을 피우니,
잘했다며 머리를 헝크러트리는 백현쌤의 손길을 얌전히 받다가, 퍼뜩 경수쌤이 떠올라 뛰쳐나왔다.
"쌤!!!!"
"어?"
"4.7"
"뭐가...이번 논문? 대박이네-"
바로 연구실에 있는 경수쌤한테 가서 4.7이라고 하니, 대박이라며, 해맑게 웃으시며 하이파이브를 막 하다가, 와락- 끌어안는 경수쌤의 급작 스킨쉽에 당황하기도 잠시,
살짝 민망한 침묵이 이어지고,
"오늘 일찍 퇴근하겠네- 저녁 같이 먹자-"
그때 뽀뽀하기 바로 직전의 웃음을 보여주신다.
정말 오랫만의 퇴근이었다. 그냥, 저녁시간대에 병원 밖을 나온적이 언제였더라.
지난 겨울이었던것 같은데...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이 적응이 안되서 눈을 몇번이나 깜박거리고, 시계를 체크했다.
"그때 가자고 한 설렁탕집이 여기야"
아. 그때....
그때, 설렁탕이 먹고싶다고 했던것을 기억해서 어느 설렁탕집에 들어와,
익숙한 듯이 자리를 잡는 경수쌤이다.
"그때 니가 먹고싶다고 한거, 지금 바뀐건 아니지?"
"아뇨- 그때 그렇게 먹고싶다고 하고도 한번도 못먹었어요"
"다행이다. 괜히 나 분위기 없는 남자 되는것 같잖아. 어, 잠깐만- 네, 도경수입니다."
장난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수쌤이 귀여워 보이면서도,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프로페셔널하게 받는 모습에 또 다시 멋있음이 보인다.
"축하해. 4.7점. 와 레지던트 2년차에 그 점수 받는애 종대 외에는 못봤는데."
"종대쌤 받았었어요?"
"응. 걔가 아이디어가 대박이잖아 원래. 대단한거야. 그점수"
"아........."
"축하해. 내 노력이 보람차지네."
"네?"
"내가 얼마나 너를 괴롭히고 싶었는데. 참느라 죽는줄알았다"
"....?"
아무말도 못하고 빤히 쳐다보니, 깍두기를 하나 얹어주며 씨익- 웃는다.
"한방 냅두고 가만히 있던 내 마음 너는 모르지?"
"쌤,"
"응?"
"그 말 무슨 말이에요? 한 방 냅두고 가만히 있었다는게..?"
그래, 내가 워낙 눈치가 없어야지.
드라마 보고 설레고, 아무 남자의 호의에도 덜컥덜컥 설렘반응은 그렇게 빠르면서, 돌려말하는 말귀는 잘 못알아듣는다.
아니, 사실 알아듣기는 한데....그 심리 있지 않은가.
확실한 답을 얻고 싶은것. 설레발이 아니라고 쾅! 하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결국,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차 안에서 물어보니,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어 나에게 턱- 주는 경수쌤이다.
"이게 뭐..."
"풀어봐"
작은, 빨간 상자를 열어보니,
반지가 걸려있는 목걸이가 반짝- 하고 빛나고 있다.
"선물이야. 논문 성공선물"
"....쌤..."
"반지 주고 싶었는데- 수술할때마다 반지 빼야되잖아. 차라리 목걸이가 나은것 같아서"
"예쁘네요...."
"예뻐? 다행이다. 이런걸 골라봤어야 알지"
선물이라는 소리에 놀래서 쳐다보니, 그 큰 눈이 뎅구르르 굴러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한다.
그 인자하고 여유롭던 미소 어디갔는지, 긴장한게 한 눈에 보여 이쁘다고 말해주니,
세상에서 제일 밝은 웃음을 보여준다.
"하고 다녀야지"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목걸이를 들어 하려는데,
"어- 내가 해줄게."
자기가 해주겠다면서, 순식간에 내 목 근처로 가까이 온다.
그, 뽀뽀를 하기 직전에 코끝을 기분좋게 찌르던 스킨 냄새가 났다.
그때는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목 근처에서 간질거리는 옅은 숨소리나, 목 뒤에서 느껴지는 경수쌤의 손가락 움직임들이 느껴져서 온 신경이 목 뒤로 집중되는 기분이었다.
"다됬다-"
진짜 신나는 얼굴로 다됬다며 살짝 삐뚤어진 반지를 가운데로 모아준다.
"이거, 내꺼라는 표시다-"
"오그라드는데요?"
"싫은가-? 난 왜 손발이 없어지는데 기분은 좋지?"
나이 서른을 앞두고 내꺼니꺼 표시를 말하니까, 괜히 낯부끄러워 오그라든다 장난을 치니,
경수쌤도 손을 앞에서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오그라든다며, 근데 기분은 좋다며 발그레하게 웃는다.
"근데-"
"응?"
"내가 왜 선생님꺼에요?"
"....어?"
"......선물 주면 다 쌤꺼되나?"
그래, 나 여우 다된것 같다.
누가 그랬지. 호이를 계속주면 둘리로 안다고(ㅋㅋㅋㅋㅋㅋ) 계속 나한테 표현을 해주는 경수쌤이 좋아서. 더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내꺼하자고. 연애하자는 그 말을 직접 듣고싶었던 모양이다
"아,"
"......"
"연애하자, 우리"
"......."
"미안, 긴장했나봐. 타임라인도 엉키고, 뭐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해줄게"
"......."
"연애하자."
할 작정이긴 했는지, 질문을 하며 밉지않게 째려보니,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벙- 찌더니,
연애하자며, 손을 덥석 잡는다.
긴장해서 그말도 못했다며 얼굴이 새빨게 지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건 덤이고.
아- 새 건물 냄새-
유난히 냄새에 민감한 민석이, 아직도 송도의 건물의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고 킁킁거린다.
아직 완전히 입주한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에 있는 기구들도 가져다 놓고, 적응을 하기 위해 들락날락거리는데,
이 냄새가 빠질때까지 절대로 들어오지 않으리라 결심해 버린다.
"아- 새 건물 냄새나는게 김민석 알러지나서 안죽었나 확인하러 왔다-"
역시 눈물나는 우정인지, 준면이 때마침 들어온다.
"찬열이가 서류 보내왔어. 내과쪽 기업 투자현황하고,
제 아버지 병원 기업. 야- 삐까 뜨는데?"
"....머리가 아프구나, 머리가 아파"
"니 생각이 뭔데"
"응?"
"뭔데 아버지 등에 칼꽂으려고 하는거야?"
"내가 칼을 들이댐으로써- 아버지는 천국 가시는거지."
"...장하네,"
"우리 병원, 주식있는거 알지? 조각주식"
"있겠...지? 유명하지는 않아도. .....아, 그걸 모으겠다고?"
"응. 있는거 없는거 다. 박찬열 인맥부터 우리 인맥까지 다 총 동원해서."
"너, 잘못아는것 같은데, 우리는 병원장이고 너네 아버지고 내려버리고 우리가 오르는게 목적이 아니야-"
"아니까 주식가지고 놀자는거야. 기업병원이면 주식이 진짜 중요한데, 대학병원은, 그렇게 주식이 가치있지가 않아. 대신. 티끌모아 태산을 만들어보자는거지."
"......"
"만약에,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칼을 들이댔어. 그러면? 이제 우리아버지 손이 쑥 빠지면서, 아니 잘리는건가? 아무튼 그러면서-"
"......"
"기업들이 빈돈을 매꾸기 위해 난리가 난단 말야. 그 돈 누구한테 물어달라 할까?"
"병원장"
"그리고 나."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자신의 시나리오를 읇고서, 마지막 말과 함께 딱- 준면의 눈과 마주친다.
"우리 목적은 자리 탈환이 아니지."
"......"
"빚값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거야."
민석의 시나리오는, 굉장히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였다.
환자들에게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도, 두 아버지의 노후(?)를 완벽히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서
아무도 건들지 않는 종이 주식을 건드려보겠다는 심보였다,
"주변에 뿌려져 있는 주식을 알아봤어. 병원장도, 과장들도 주식엔 관심이 없는 덕분인지, 55%정도가 남아있더라.
싹다 사자. 소리없이 사야하니까- 주변사람들을 이용해서 얻고, 느리면서도 정확히 움직이는건 물론이고.
병원장 선출일이 다다음달이니까, 다음달 말까지만 하면 돼"
"......니가 내 편인게, 진짜 다행이야"
"칭찬이냐"
"응"
"나 여자도 포기하고 여기 왔다. 포기한 값은 해야지."
그냥, 아버지 말을 따라 송도에서 얌전히 있을 생각이었던 준면이었다.
항상 자리의 위협을 받아왔지만, 어떤 방법이던간에 여튼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는 있던 아버지였다.
그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차라리 보지 않겠다는 심보로 택했던 송도행이였던 것이다.
그랬던 그에게, 그의 힘으로 아버지를 위로 올려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민석이다.
민석은, 지켜보거나 눈감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제 힘으로 바꿔 볼려고 칼을 빼든 것이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자 운운하지만,
그것보다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바꿔 보는 민석의 마지막 도전일것이다.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쭉~!!"
종대쌤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건물 천장하나는 무너뜨리겠다는 심보의 강한 건배가 이어졌다.
"크으-"
민교수님과 준교수님의 송도에서의 새출발과, 백현쌤과 종대쌤의 초고속 교수 데뷔를 축하하는 회식자리였다.
신경과와 성형과가 여는 이 곳에서, 박교수님 빽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자아아, 이제, 술자리의 별미!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교수님이라고 봐주기 없음! 레지던트들은 몰아주기 있음! 오늘 저하고 변백현이 쏘는것이니, 민교수님 준교수님 돌아가시는것 봐야겠습니다아-"
미친거다.
술이 들어가더니, 기분이 급 좋아진 종대쌤이, 교수님들을 상대로 술게임을 시전한다.
미친거 아니에요? 식겁한 얼굴로 준교수와 박교수쪽을 보니, 흥미롭다는듯이 쳐다보는 교수들이다.
......그리고, 내 헬게이트가 열렸음을 직감했다.
대학교 의예과때도, 고등학교 수학여행때도, 어느때던지 게임이란 게임은 모두다 지는 능력이 있었다.
이상하게 공부는 안그런데, 게임만하면 어찌나 머리가 안돌아가는지,
3,6,9를 하면 영혼없는 더블박수구간에서 항상 걸렸고, 눈치게임에서는 항상 동시에 일어선 뒤 가위바위보를 졌으며, 심지어 끝말잇기도 진다.
"이야~ 김여주 선생!!! 봐주는것도 이제 한계죠~ 쭉 마셔!"
........
애교로 한번, 불쌍한 척 한번 넘어가서, 이제 무슨 표정을 지어도 안된다는 듯이,
변쌤이 사악한 얼굴로 술을 들이민다.
아...술 못하는데....
난처한 얼굴로 술잔을 집어드는데,
"흑기사 가죠"
순식간에, 잔이 빼앗기고 뭐라 할 틈도 없이 박교수가 원샷을 한다,
우어어-! 짐승 소리가 나고는,
"이야, 교수님!"
"아, 박교수님 여기서 점수따는건가요-"
젓가락을 통통 두들기며 신이 난 백현쌤과 종대쌤의 선창에 앞장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씨익- 웃는 박교수 얼굴에 울수도 없고.
슬쩍 민교수 얼굴을 보니, 씨익- 웃어보이며 어깨를 으쓱- 해버린다.
,,,,나 어떡해?
그 후에도, 빌어먹을 내 뇌와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벌주가 걸리는 족족 모두 흑기사를 자청한 박교수 덕분에, 술잔에는 거의 입도 대지 않을 정도였다.
계속된 술 냄새에 잠깐 밖으로 나와 숨을 들이쉬니,
뒤에서 박교수가 워- 하며 놀래킨다.
"아-깜짝아"
"뭐야.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들켰네요ㅋㅋ"
술을 마셔서 그런지, 살짝 업된 목소리로 기분좋게 내 옆에 선다.
"술 많이 드셔서 어떡해요-"
"괜찮아. 이정도는 뭐. 왜 나왔어?"
"어지러워서요..술도 안마셨는데 공기에 취할것 같아서"
"ㅋㅋㅋㅋ진짜 약한가 보네."
"교수님은요?"
"난 너가 나와서"
빤히-쳐다보는 시선을 살짝 피하니, 또 그시선 따라 움직이는 박교수님.
아예 고개를 숙여버리니,
귀엽다며 정수리를 콕콕 찌른다.
"여주선생님"
"네?"
"나 그쪽한테 관심있는거 알고 있어?"
",,,,,잘 몰랐어요"
"눈치 꽝이네- 나 김선생님한테 관심 많은데, 귀여워서."
"...교수님, 그 있잖아요"
"응?"
".......남자...친구가 생겼어요"
"......누구"
와, 심장떨어지는것 같아.
내가 지금 천하의 박교수를 차는거다, 지금.
관심이 있다는 말에, 사실...남자친구가 있는데요.....라며 소심하게 말하니,
누구냐며, 순식간에 목소리가 낮아진다.
"누구냐니까-"
"에이, 그건..."
"경수?"
"......"
"와, 한발 늦었네."
누구냐는 말에, 죽어도 교수님 밑에어 일하는 도경수요- 라고 말을 못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니,
경수냐며 덥석- 맞춰버린다.
벙쪄버린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내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한 발 늦었다며 헛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벅벅 문지르신다.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눈치보고 못들이댄 내 잘못이지"
".....그래도 경수쌤한테 잘해주셔야 되요"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말을 하자마자 헙- 하고 입을 다물고 박교수를 쳐다보니,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는다.
"진짜 많이 좋아하나봐- 경수?"
"...아니, 그게 아니라..."
"알았어. 알았어. 내가 공사구분도 못하는 사람같아? 비록 차이긴 했어도 그정도는 구분해요"
차였다는 말에 흠칫- 놀란 내 얼굴은 못봤는지,
바지를 탈탈 털면서 일어나면서, 그정도는 구분한다며 볼을 톡톡 두드린다.
"그래도, 교수님은 멋있으셔서 더 좋은 여자 만나실수 있을거에요. 저보다 더 예쁘고 멋있는 여자요"
"위로 고맙네. 꼭 찾아서 너네 앞에서 자랑할거니까 부러운척이라도 해"
"네-"
씁쓸한듯이 볼을 두어번 더 두드리고, 앞머리를 쓰다듬더니,
그대로 휙- 가게안으로 들어가버리신다.
한참동안이나, 나는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다.
"김재준 과장님이 쓰러지셨습니다!"
박교수에게 환자 브리핑을 하고 있는데, 레지던트 한명이 김재준 과장이 쓰러졌다는 말을 하고는, 혈압에 의한 관상동맥질환같다며, 진료부탁한다는 말을 다다다 뱉어낸다.
김재...준과장님?
....민교수 아버지???
눈이 확- 커진채 그대로 뛰어나가는 박교수 뒤를 쫒아서 응급실로 뛰어내려갔다.
뛰어내려가다가, 담당환자의 콜로 결국 한발 늦게 응급실에 도착하고 말았다.
워낙 고위층 분이셔서 그런지, 여럿 의사들이 모여있다.
"관상동맥 아시죠? 심장 오른쪽에있는 혈관. 거기가 막혔어요. 동맥 우회술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실때까지 계셨습니까?"
"몰랐지-"
"민석이는 압니까?"
"온덴다"
"참.....수술날짜 잡아드릴게요. 근데, 일단 혈압부터 떨어져야 뭘 할 수 있어요. 일단 기다리세요. 병동으로 옮겨드릴게요"
차트를 작성하는 박교수 말을 들어본 결과,
7년전에 문제가 났던 심근경색이 재발한 모양이셨다.
호흡기를 낀 채 찬열의 물음에 간신히 대답하는 분이, 과연 신축공사 회의때 당당히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그 과장님이 맞나 싶었다.
"아버지-"
"한번도 제 아비 안보러 오더니만, 기어이 쓰러져야 오는구만"
"심장은 어떠셔요"
"수술해야한다고 하더라"
"잘 받으세요. 그리고 꼭 건강해지셔요."
"송도에서 일치지 마라. 그래봤자 아비 손아귀 안이야."
"그니까, 아버지 손 안에서 놀 테니까 꼭 일어나시라고요."
과일바구니 하나를 들고, 오랫만에 본원을 찾은 민교수다.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
제가 제 손으로 아버지를 악에서 꺼내야겠습니다.
속의 말은 삼킨 채, 꼭 건강하시라는 가시돋친 말을 하고 바로 나와버린다.
같은시각, 박교수의 연구실에는, 서과장이 시커먼 속을 감춘채 웃으며 입장하고 있었다.
"박교수,"
"네- 서과장님"
"김재준 과장님 수술 집도, 나한테 넘기지 그래?"
"과장님께요? 왜요?"
"다음달에 투표잖아- 줄좀 서보게. 다 흉부외과 좋으라고 그러는거야."
"......참"
"이번엔 되지? 뭐 비도덕한건 없잖아?"
"담당환자를 넘기라고 하는것 자체가 예의가 아닌겁니다. 넘길게요. 꼭 수술 잘 해주세요. 제 친구 아버지입니다."
"당연하지. 잘 해줄게"
역겹네- 줄을 서보겠다는 서과장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넘겨버린다.
제 친구 아버지라 자기가 보는게 편하건만- 불안한 느낌이 들지만, 관상동맥 우회술은 서과장도 나름 한다.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주치의를 바꿔버린다.
수술 집도의가 바뀌었다.
서과장이라니- 서과장님과는 호흡을 맞춰본 적이 별로 없는데-
괜히 걱정되는 수술이지만, 위에 관람석에서 박교수가 보고있다는 말을 듣고 어느정도 안심하게 됬다.
"오늘은 중요한 수술이야"
"김재준 과장, 우리 손에 달렸다. 꼭 살리고. 나는 과장되고, 너네도 칭찬받자"
속보이는 서과장 말에, 헛구역질을 하는 척을 하는 세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혈압은"
"좀 높습니다. 수술이 너무 빨리 잡힌것 같아 불안합니다"
"빨리 치료해 드려야지. 언제 기다려? 혈압 잘보고. 낮추는 약 잘 쓰고. 마취학과, 조심해서 보고"
"네."
혈압이 내려갈때까지 기다리는것을 못하고, 예정 날짜보다 빨리 잡았더니 기본 혈압이 높아져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시작하지. 메스"
서과장의 손에 칼을 쥐어드리니, 곧 개복과 함께 수술이 시작된다.
전에 넣었던 스탠스를 빼고 그 주변의 막힌 혈관에 새 스탠스(관의 일종)을 끼워넣어 혈관을 확장하는 수술을 하는 것이다.
곧, 한쪽 동맥이 새까맣게 되어 부푼 과장의 심장이 보인다.
"혈압"
"정상보다 높은수치입니다."
"얼마나"
"30정도 높습니다"
"여기 스탠스 빼고 새 스탠스 넣고, 그다음 막힌 혈관을 뚫을거야. 시작한다. 석션(혈액과 세포액들을 빨아들이는 것. 이 담당을 그냥 석션이라고 함), 잘잡고"
서과장의 손이 빨라지고, 높은 혈압이라 혈류가 셌지만 어느정도 스탠스 교환이 된 듯했다.
숨을 돌리자마자, 바로 막힌 혈관에 손을 대는순간ㅡ
"과장님, 갈았던 스탠스에서 혈액 유출이 됩니다!"
"어?"
"막힌 혈관에 손을 대면서 혈압이 심하게 높아졌습니다- 먼저 유출보다 막으시는게"
"석션 잘해봐!"
막혔던 혈관을 어느정도 이완시키니, 이때다 싶어 높아진 혈압에 의해 엉성하게 엮어놓은 새 스탠스 부분에서 혈액 유출이 되버린 것이다.
혈압이 올라가고, 혈액이 유출되어 스탠스가 안보이게 되니, 애꿎은 석션을 든 오세훈만 된통 깨진다.
이미 석션 하나로는 해결이 안되니, 메스를 돕던 나까지 합세해 석션을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서과장님. 서과장님?"
위에서 참관을 하던 박교수가 안되겠는지, 인터폰을 한다.
"혈압이 너무 높아요. 일단 그쪽은 한번 다시 매꾼다음에 얼른 막힌 혈관부분을 건드려요!"
"나도 알아!"
"아...씨..... 제가 갑니다."
결국, 출동한다.
3분 뒤, 수술복을 입고 나타난 박교수가 등장한다.
가슴높이까지 든 손에 장갑이 끼워지고, 눈에는 확대경이 씌워지고.
"나오십쇼. 제가 해보겠습니다."
이미, 혈압은 혈액 유출에 의해서 급하게 떨어진 상태가 되어 더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상황은 박교수 손가락에 달린 듯 싶었다.
"정신차려! 혈압이 어느정도야?"
"아까까지 평균보다 40이 높았는데, 이제는 30이 낮습니다"
"미친, 일단, 이 혈관 처리할거야. 내가 구멍을 뚫으면, 바로 스탠스를 집어넣는다. 수혈액 제대로 해! 팩 충분히 준비더 하고!"
저혈압이라 다른 동맥들을 쪼그라져 잇는데, 시커먼 이부분은 부풀어서 터질것만 같다.
과감히 혈관을 잡아 노폐물을 제거하고, 스탠스를 끼워넣을 부분에 작게 구멍을 뚫자마자, 약했던 혈관이 아예 구멍이 확장되어 유출이 되기 시작한다.
심장박동이 될 때마다 꿀럭꿀럭 나오는 피들이, 아무리 석션을 해도 이제는 회복 불가다.
"스탠스"
스탠스를 받아서 확장 관을 끼워넣었지만, 저혈압이라 느슨해진대다가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그부분이 아예 찢어져 버린다.
"교수님! 혈압이 너무 떨어집니다!"
"혈액 넣어! 석션 정신차려!"
잡고 있는 동맥 사이로 피가 튀는데, 석션은 해야겠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석션을 하니, 아예 세훈이가 내 손에서 석션 하나를 빼앗아 든다.
삐이이이이이이-
순간, 정적이 흐르고, 심장박동기계만 울린다.
"혈압이 너무 낮아 맛사지를 할 수 가 없습니다."
겁먹은 레지던트의 목소리가 들리고, 기계를 들고 심장을 소생시키려던 박교수가, 그제서야 멈춘다.
"11시 49분. 김재준환자......사망하셨...습니다"
간신히, 간신히 수술실의 광경을 다시 봤다.
피가 튀기고, 채 못 끈 석션이 돌아가고 있으며, 스탠스가 끼워진 혈관의 중심, 심장만 멈춰있다.
피가 범벅이 된 얼굴로 멍- 하니 있던 박교수가,
".....정리해. 미안하다"
그소리를 하기전까지는, 그 누구도 먼저 움직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암호닉 정리는, 10화- 마지막화에서 정리하겠습니다..(제가 저 수술실씬 쓰다가 기가 빨려서 지금 정리를 못하겠네요....ㅠㅠㅠ )
암호닉은 이번편까지 받습니다!!!!!!!!
]++후기작인 대한민국 정부를 위하여 산다는 것, 시리즈 1편 적어놨어요! 유병언 사건을 보고 떠올라 적은, 청와대 특별팀 이야기 입니다.
보시고 어떤가 한번만 댓글 달아주세요~ 항상 1편은....긴장이되거든요...하하....
아, 그리고 부탁드릴게 있어요!
여러분의 질문을 받습니다.
마지막편이 끝나고 번외에서는, 각각의 등장인물을 데리고 인터뷰를 할거에요 (진짜 하고싶었어. 진짜로으응아아아)
[누구] 이렇게 두고 질문을 해주시면 됩니다!
저.....에대한것은 궁금한게 없으시겠지만,,..ㅋㅋㅋㅋ워낙 신비주의가 아니라섴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있으시면! 제가 눈물을 머금고 답해드리죠. 아물론 감동의 눈물입니다.
저 이거 익잡에서 추천해주신분 있다는 소식듣고 진짜 울뻔했잖아요....ㅠㅠㅠ 감사합니다. 항상
이제 다음편이 마지막이네요. 갑자기 김재준이 죽어서 놀라셨나요..ㅋㅋㅋㅋ제가 저거를 쓰는건 진짜 빨리 끝났는데 지금 온 손가락에 힘이 없네요....
너무 몰입했나봐.....쓸데없이 감정이 소모되어서는.....ㅋㅋㅋ
꼭, 좋은 글로 보답하는 작가될께요.
다음 후기작에서도 이 암호닉 다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