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킴 - 너사용법
"좋아해요."
"응?"
"나 선배 좋아해요."
"저기. 남준아..."
"선배는 나 어때요? 싫어요?"
연하랑 연애하는 법
01
w. 복숭아 향기
너는 나와 반대였다. 진짜 거의 모든 것이 반대였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밖에조차 잘 나가지 않는 나와 다르게 너는 이것저것 왔다갔다하는 것을 좋아했고
귀찮다는 이유로 밥도 제대로 잘 먹지 않는 나와 다르게 너는 나도 모르는 학교 앞 맛집도 모두 꿰고 있었다.
나는 키가 작지만 너는 180이 넘는 기럭지의 소유자였으며 나는 피부가 하얀 편이지만 너는 피부가 까만 편이었다.
나는 쌍커풀이 있지만 너는 쌍커풀이 거의 없는 무쌍에 가까운 눈이었으며 나는 손도 발도 작지만 너는 내 얼굴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손이 컸다.
이런 나랑 너가 어떻게 연애를 시작한 걸까.
나는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너를 바라보았다. 딸기 스무디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어보였다.
이 웃음 때문에 내가 그 고백을 받아줬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미친 짓이기도 했다.
어떻게 신입생이 고백한 걸 배로 넙죽 받아들일 수 있어?
어디가나 도둑년 소리 듣고 지내온 나인지라 이제는 이런 소리도 무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봐요?"
"눈 앞에 있어서."
"잘생겨서 보는 건 아니고?"
"응. 아니야."
"헐. 상처."
상처 안받는 거 알거든. 나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누가 니 속을 모를 줄 알아.
묘하게 맹한 외모와 다르게 너는 머리가 꽤나 빠릿빠릿하게 굴러가는 아이였다. 어디 가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우리 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아인데 뭐..
말 다 한거지. 나는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나는 만날 공부하고 도서관가고 그러는데 왜 너처럼 성적이 안나올까.
물론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받기는 했다만 너처럼 전액 장학금은 아니었다. 공부 방법을 바꿔야 하는건지... 아니면 공부 시간을 늘려야 하는 건지...
이따가 레포트도 써내야 하는데... 아, 귀찮아.
"선배. 입."
너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톡 건드려왔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너를 올려봤다.
너는 턱을 괸 채로 나를 내려보며 작게 웃어보이다 진동벨이 울리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쥐색 코트에 그 아래로 보이는 잘빠진 다리. 너는 네가 어떻게 옷을 입으면 내가 좋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나는 다시 아메리카노를 쪽쪽 마셔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차갑고도 씁쓸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건 무슨 맛으로 마셔요?]
가끔 너가 이렇게 물어올 때도 있었다. 그만큼 나는 아메리카노 아니면 다른 음료수를 잘 마시지 않았다.
첫째는 살이 찔까봐 두려워서였고 둘째는 그냥 맛있으니까 였다. 아메리카노 중에서도 무조건 아이스. 따듯한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해진 것처럼 맛없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난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차가운 느낌을 좋아하는 거일지도 몰랐다.
그에비해 너는 무조건 딸기 스무디 아니면 카페모카였다. 단게 먹고 싶으면 스무디 오늘은 좀 커피가 먹고 싶으면 모카. 그것도 휘핑 왕창으로.
저렇게 먹는데 왜 살이 안찌는 걸까. 석진 선배 이후로 가장 큰 미스테리였다.
원래 남자들은 먹는 만큼 살이 안찐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너였다. 그래. 고맙다.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해줘서.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요?"
"몰라."
"이따가 도서관 갈거죠? 같이 가요. 자리 맡아놨어."
"동아리 방 가서 하려고 했는데..."
"진짜? 그럼 동아리방 가요. 오랜만에 선배랑 둘이 있겠다."
지금까지 있던 거는 같이 있던게 아니었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아메리카노와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난 아직 말빨로 너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너는 여전히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만져? 라고 내가 물었던 적도 있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지만.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만지고 싶은 거에요.]
가끔은 내가 연하를 사귀는 건지 아니면 연상을 사귀는 건지 것도 아니면 동갑을 사귀는 건지 헷갈렸다.
분명 존댓말 쓰는데 뭐랄까... 묘하게 너는 나를 사육시키는 것만 같았다.
-
동아리 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아무도 없는 거 알고 들어왔다. 공부하려고 왔는데 누가 있으면 좀 그렇지.
나는 가방에서 책을 하나둘씩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자고로 동아리실은 편하게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윤기 선배의 지침에 따라 우리 동아리실은 나름 쾌적한 공간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저 쪽에 있는 간이 침대는 사용하면 윤기 선배한데 뒤진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지만... 가끔 보면 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아 방금전까지도 여기서 자다가 헐레벌떡 나간 모양이니까.
가끔은 저 선배는 하루에 몇시간 잘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무슨 생각해요?"
"어?"
"침대 보면서 무슨 생각해요? 혹시..."
"야."
누가 지같은 줄 알아. 내가 니 아이패드에 있는 야동을 모를 줄 알아?
어? 선배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나 비밀번호도 걸어놨는데.
니가 지난번에 비밀번호 알려줬거든. 그거 고장난 거 같다고 하도 징징거리면서.
아... 근데 알면서도 왜 한번도 우리집 안왔어요?
미쳤다고 가냐?
다시 한 번 느낀다. 이 녀석 사실은 연하 아닐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책을 펼쳤다.
나 수업시간에 뭐했니. 이건 필기가 아니라 그냥 지렁이가 춤을 추는 거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공책을 꺼내들었다.
이제 암호를 해독할 시간이었다.
"근데요. 선배."
"뭐."
"오늘 등교하는 거 괜찮지 않았어요?"
"너 개무겁거든."
"키가 크니까."
"그걸 알면서 그러냐?"
"에이... 내 무릎에 앉으라니까 싫다고 버팅긴 사람이 누군데."
그래. 내가 니 무릎에 앉기 싫다고 하기는 했지. 내가 네 무릎에 앉는 순간 너는 내 허리를 끌어안고 내 옆구리며 뱃살이며 온갖 살을 다 만지작만지작거릴 거잖아.
역시나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아메리카노와 함께 삼켜버렸다.
이럴 때만 되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너가 너무나도 얄미웠다.
알 거 다 알면서. 나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는데. 뭐 그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나를 보는 걸까.
어우. 내가 미쳐버린다. 나는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빨대를 씹고 싶은데 나를 하도 뚫어져라 보는 너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선배 자꾸 빨대 깨물면 그냥 내 손가락 깨물라고 할거에요."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그쵸?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에요."
아니면 말을 꺼내지 말지 그랬니...
나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아... 공부하려고 왔는데 공부가 안된다. 이게 다 너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너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너는 배시시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뭐야... 왜 오는 거야... 나는 그 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동아리 실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온 너는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한번 더 톡 건드렸다.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샤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미친... 네 바디 미스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지난번에 내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그니까 깨물지 마요. 이빨 다 상해."
너는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그대로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 얼른 네 가슴팍을 두 손으로 밀어버렸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똥줄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배시시 웃으며 다시 내 위로 올라와 나를 끌어안고 내 목덜미에 볼을 부비적거렸다.
젠장... 또 당했다.
이 모습을 보는 윤기 선배나 석진 선배는 이렇게 말을 하겠지.
존나 주인 배려할 줄 모르는 대형견이라고.
너는 존나게 지랄맞은데 자기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는 그런 대형견이었다. 아씨... 개무거워...
-
결국 공부 하나도 못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이마를 콩콩 박아댔다.
이따가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거 언제 다 해독하냐... 수업시간에 조는 게 아니었어... 아니지. 내가 졸고 싶어서 졸았나? 아 몰라...
입에서는 계속해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그런 나를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난 저 과자 먹지도 못하는데! 다이어트 하느라 지금 신경도 예민한데!
나는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그제야 푸스스 웃으며 과자봉지를 내려놓았다.
"나 다이어트할거야."
"해요."
"진짜 할거야."
"하라니까요."
"그니까 내 앞에서 과자 먹지마."
"어차피 군것질 안좋아하잖아요."
"그래도 먹지마."
"알았어요."
근데 선배...
"나 오늘 치킨 먹고 싶은데..."
"..."
"어제 과외비 받아서 돈도 좀 있는데..."
"..."
"근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네요. 물론 내가 한 마리는 다 먹는데 그래도 난 혼지 먹기 싫은데..."
"양념 아니면 간장 아니면 마늘. 나 후라이드 안먹어."
"그럼요. 알고 있죠."
지랄맞게도 너는 나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 다이어트는 오늘도 이렇게 물건너 가는 건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나게 전화를 걸어 치킨 주문을 마친 너는 나를 힐끔 바라보다 네 무릎을 탁탁 두드렸다.
왜. 뭐.
내가 입모양으로 묻자 너는 내 옆으로 와 다시 한 번 네 무릎을 탁탁 두드렸다.
어쩌라는 거지...
"앉아요."
"싫어."
"왜 싫어요."
"나 무거워."
"선배가 오늘 나 안아줬으니까 나도 선배 안아줄래요."
"싫다니... 까악!!"
뭔 까마귀 소리야 하지 마라... 갑자기 나를 들어올려 네 무릎에 앉힌 너 때문에 절로 나온 소리니까.
너는 내가 너와 마주볼 수 있는 자세로 나를 네 무릎에 앉히고는 만족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늘 당하는 스킨십이지만 음... 역시 적응하기 어려웠다.
내 옆구리 살도 만지작만지작 그러다가 내 뱃살도 만지작만지작 가끔씩 위로 올라와서 팔뚝살도 만지작만지작.
"만지지 마."
"내껀데?"
"내꺼거든."
"내꺼는 내꺼. 선배꺼도 내꺼. 그니까 선배는 내꺼."
"지랄하지마."
"말라말랑해서 만지면 좋단 말이에요."
"맞기 전에 손 빼라."
미워. 너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절대로 손을 떼지는 않았다.
그래... 만져라 만져. 만진다고 닳겠니. 나는 그대로 네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댔다.
내가 허락을 하자 너는 환하게 웃으며 내 허리를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매일 보는데 뭐가 그리 좋다고. 야, 야... 나 숨막혀.
내가 손가락으로 네 옆구리를 꾹꾹 눌러댔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진짜 숨막히는데...
"남주, 남준아... 나 숨..."
"어디서 굴러왔어요? 아. 진짜... 선배 진짜 다이어트 안하면 안돼요? 나 선배 사라지는 거 진짜 싫은데..."
"지랄하지 말고 팔... 나 숨막혀..."
"아니다. 그냥 우리 집에서 내가 만날 맛있는 거 해줄게요. 매일매일!"
"그거 먹었다가 뒤질 일 있냐고... 야!"
나 진짜 선배 좋다.
이럴 때 보면 뭐... 나름 귀엽기도 하고... 이럴 때는 좀 연하 같기도 했다. 나름... 정말로 나름...
-
1편은 짧습니다. 아직 완벽한 스토리를 짜지 않았거든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거 빨리 쓰고 싶어서 이렇게 왔어요. 사실 무명 아이돌도 이렇게 성질이 급해서 연재가 빨랐던 거랍니다.
제 성질이 그만큼 음... 급해요.
암호닉은 1편부터 다시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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