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이것부터 너무 너무 쓰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단편 길이로 뽑아낼 여력은 없으므로
조각.
암호닉은 다음 대형견썰 아래에 또 정리해놓겠습니다.
Lana Del Rey - Dark Paradise
마피아. 당신은 마피아라는 단어를 듣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총? 마약? 조직? 모든 것들은 아마 정답일 것이다. 다만, 남준은 제 자신을 항상 이렇게 정의했다. 가장 격식적인 모습으로 가장 비격식적인 행동을 하는 웃기지도 않는 신사.
사람의 살갗에 무자비한 금속을 난자하며 물들인 밤은 깔끔하지가 않다. 무언가 텁텁하고 꺼림칙했으면 눈 앞에 고깃덩이가 되어가는 자와의 마지막 시선은 잔상마냥 제 주위를 부유할 뿐이다. 불유쾌함은 하루 이틀 정도 지속된다. 그러니까,
그 이상 지나면 별 감흥도 없다고.
남준은 오늘도 한 손에 제 아귀에 맞춰 개조된 리볼버를 빙글빙글 돌리며 어느 방 문앞에 섰다. 노크도 필요없다. 그저 도어락의 번호를 누르고 리볼버는 제 허리춤에 갈무리해 넣을 뿐이었다. 문이 열렸다. 걸음을 옮기자 제 뺨을 아슬하게 스치고 간 식사용 나이프보다 더 예리한 시선이 날라왔다. 아, 이 찌릿한 살기. 단정하게 입은 와이셔츠의 등으로 식은땀이 살짝 맺힐 것 같은 느낌은 언제나 가슴 한 켠을 뛰게 만든다.
"커트러리로 사람을 죽이는 건 진짜 어디서 배워온 변태적인 취미예요, SUGA?"
"네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랬지."
"도어락 번호나 바꾸고 그런 말을 해요."
"귀찮아. 용건없으면 꺼져, RM."
남준에게 꽂았던 시선을 다시 천장을 향해 올린 남자는 소파에 온 몸을 늘어뜨리며 손에 쥔 불을 붙이지 않은 긴 하얀 담배를, 못지않게 하얀 손가락 사이에 끼워 까닥거릴 뿐이었다. 헝클어진 머리하며, 주위에 굴러다니는 다트까지. 분명 방금전까지 잠에 들었다가 이제 깨어난 것이 분명했다. SUGA. 본명은 민윤기. 저 무기력한 자가 조직내에 손에 꼽히는 스나이퍼이자 주요 간부라고 하면 다들 저 하얗고 마른 몸을 한 번 훑어보고 그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우기 바쁘다.
병신들.
그건 제 자신들이 윤기의 먹잇감이 되지 않았으니 느끼는 안일함이라 생각한 남준은 작게 입꼬리를 올린 채 여느 때처럼 제 정장자켓을 의자에 걸어두고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덜컹이며 열린 냉장고 안은 가구의 의미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형편없이 비어있었다. 그 안에서 탄산수와 계란, 그리고 지난번 제가 사다두었던 베이컨을 꺼낸 남준이 발로 냉장고 문을 툭 밀어 닫았다.
탁. 탁.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릇에 이제 갓 구운 음식들을 담은 남준이 휘파람을 불며 윤기에게 다가갔다. 10점. 꽤나 멀리 떨어진 다트판의 정중앙에 정확히 다트를 꽂아넣은 윤기가 하나의 다트를 아예 다트판 바깥쪽으로 대충 던져버리고 다시 몸을 늘어뜨렸다. 그런 윤기의 앞에 기름내가 나는 음식이 내려졌다. 어차피 이 그릇 안의 내용물이 보일 결과는 딱 두가지다. 남준의 배에 모조리 들어가거나, 윤기가 한 두입 먹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던가.
"윤기야."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이름 불리는 거 좋아하잖아요."
"..."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윤기는 쥐고 있던 다트를 놓고 아까 반쯤 부러뜨렸던 담배 한 개피를 그릇 옆에 던져놓고 탄산수만을 들이켰다. 아아, 냉정한 이같으니라고. 처음 조직에 스카웃이 되어 들어왔을 때 조직 내에 저 말고 다른 한국인이 있다는 말에 신나서 들이댄 것이 문제였을까. 이 남자는 동지애고 뭐고 그저 항상 무기력하게 늘어져있기 바쁘다. 쌀쌀맞기 짝이 없다. 조금만 풀어져도 좋을텐데. 남준은 나이프로 계란의 노른자 가운데를 갈라 터뜨리면서 오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었다.
냉대를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찾아오는 남준이나, 그런 남준에게 언제나 같은 경고를 하면서도 그 이상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 윤기나. 썩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한들 뭐 어떠하겠나. 이미 그 둘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비정상적이니 이 쯤은 별 것도 아니었다.
"이번 거래, 너무 수상하지 않아요?"
"..."
"우리 쪽이 너무 유리해요. 지나치게. 이건 거래도 뭣도 아니라고요. 보스는 왜 이걸 꼭 우리보고 하라고 한대요?"
"그래서, 뭐."
"아니, 억울하잖아요. 우리가 몇 년을 여기서 굴렀는데 찝찝한 거래 하나 거절 못하는 위치의 사람이라는 게."
드디어 손에 쥐고 만 있던 담배를 입에 물려고 했던 윤기가 그의 말에 작게 억눌린 웃음소리를 내었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젖혔다. 정말 즐거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눈까지 휘어접어가며 윤기는 남준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무시한 채 한참을 웃었다. 웃음이 겨우 사그라들자 윤기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담배의 끝에 불씨를 붙였다. 입술에 머금고 남준과 시선을 마주한 채 한 모금, 빨아당기고 훅. 둘의 사이에 연기를 뱉어내었다.
"사람?"
"..."
"우리가 사람이었어?"
"..."
"정신차려, 새끼야. 우린 더러운 충성심으로 먹고 사는 개새끼들일 뿐이야."
쓸모 없어지면 버려질 것들이라고. 멍. 무미건조한 말을 뱉어낸 윤기가 소파 등받이에 고개를 기대어 젖히고 다시 훅 연기를 뱉어내었다. 매캐한 연기가 둘을 내리눌렀으나 그 이상의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
"내가 수상하다고 했잖아요, 이 거래. SUGA, 내 말 듣고 있어요?"
"물품은."
"완벽하긴 하네요."
남준이 들고 있던 가방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확실히 거래하기로 한 물품은 정확한 수량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며 가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건넨 물품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의 양, 품질. 먼저 가보겠다며 급히 자리를 떠난 상대 조직원들까지 모든 것이 다 수상하기 짝이없다. 이렇게나 깔끔한 거래인데 더러운 기분이 남기도 오랜만이다. 가방을 추스린 남준이 거래가 끝났음을 알리는 전화를 하는 윤기의 옆에서 무료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윤기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미쳤군."
윤기의 짧은 말을 끝으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장 가까이 있던 창문을 열고 몸을 날렸다. 다행스럽게도 멍청한 경찰은 온 건물을 포위하기도 전에 사이렌을 울린 모양이었다. 빈 뜰로 뛰어내린 윤기와 남준은 바로 박차고 건물 근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멍청했다는 건 정정. 도망갈 곳을 막고 있는 모습에 짧게 혀를 찬 윤기가 급하게 걸음을 멈추고 총을 꺼내기도 전에 앞을 가로 막았던 한 경찰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가죠, 얼른."
언제 꺼냈는지 소음기까지 부착된 총을 천천히 내린 남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윤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남준의 뒤로 발을 날렸다. 퍽, 하고 부딫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반쯤 뒤틀린 또 다른 사복경찰이 뒤로 넘어갔다.
"가자고, 뭐해."
턱짓을 까닥이며 먼저 뛰어가는 등을 쳐다보던 남준이 허, 하고 짧게 웃음을 내보이고 그 뒤를 따라 뛰어갔다. 잔디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얼마 뛰지 않아 복잡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들어온 건 좋으나 남준과 윤기의 걸음 소리가 반, 그리고 둘을 쫓아 들려오는 다급한 뜀박질 소리와 고함 소리가 반 이상. 조용한 골목길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헤치고 들어가도, 들어가도 보이는 것은 다른 콘크리트 벽이었고, 중간에 마주친 경찰인지 민간인인지는 모조리 쏘아버려 넉넉히 챙겼다고 생각한 총알도 조금씩 바닥을 보이는 찰나였다.
"함정 하나 더럽게 못 팠네."
남준이 입술을 짓이기며 당장에라도 버려놓고 가고 싶은 애물단지 같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땀이 이마에서부터 흘러 턱까지 벅찬 숨과 함께 흘러내렸다. 자신들을 불러놓고 먼저 쏙 몸을 뺀 뒤 경찰에게 넘긴다. 다만, 물품은 정확하게. 혹여 우리 둘 중 누군가라도 조직에 상대의 만행을 고해도 물품은 확실하고, 넘긴 순간 소유권도 넘긴 것이니 잘못은 없다고 우기겠지. 역시 너무 좋은 거래는 거래가 아니다. 남준은 땀으로 적셔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시 총구를 겨누고 총알을 발사했다. 또 하나의 고깃덩이가 넘어갔다.
"씨발."
나직한 욕이 윤기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막다른 골목. 그나마 한 곳으로 나 있는 길과 자신들이 뛰어온 길에는 급격하게 인기척이 가까워지고 있다. 얼핏 저기 있다며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딱 한 사람이 온 몸을 구겨 들어가 숨을 벽 틈이 보였다. 남준은 당연하게 윤기에게 가방을 넘기고 자신이 눈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자신보다 체구가 작으니 충분할 거라고, 남준은 헝클어진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SUGA?"
"닥쳐."
품에 안고 있던 가방을 윤기가 남준의 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내리 누르고 발로 정강이 부근을 차 몸을 절로 구기도록 만든 뒤 그 틈으로 저보다 큰 장신의 남자를 우겨 넣었다. 뭐하는 거예요?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바쁜 입 좀 닥치고 있어."
"SUGA. 지금 뭐하는 거냐고요."
"RM."
나직한 부름에 인상을 잔뜩 찡그린 남준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마자 볼이 쥐어잡히고 얼마 안가 벅찬 숨을 담은 입술이 닿았다. 어떠한 행동도 없다. 그저 입술을 맞대었다. 짧게 고개가 돌려지고, 입술이 온전히 맞대어지고, 그 뒤에야 미적지근한 혀가 남준의 아랫입술을 한 번 쓸어내리고 그 입술을 열어 단 내가 나는 입 안을 가볍게 훑고 떨어졌다. 시선이 마주 닿자 다시 입술 새로 혀끼리 진득히도 얽혔다. 짧다면 짧을, 하지만 그만큼 진한 키스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윤기는 주위에 얽힌 덩쿨을 마저 끌어당겨 틈을 메워버리고 남준을 그 틈으로 더 밀어넣었다. 그림자와 덩쿨이 그를 충분히 가려주고 남을 것이다. 곧이어 윤기는 보란 듯이 밝은 골목길 반대편으로 뛰어들어갔다. 숨이 막혔다. 이미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지만 조금만 더 뛰면 이 지겨운 뜀박질도 끝이 날 것이다. 코너를 돈 순간 뒤에서 누군가 팔을 잡았다. 다시 발을 올려 걷어차내렸지만 얼마안가 다른 이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저를 잡았다.
아, 잡혔네.
씩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인 채 윤기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항복.
경찰차에 온 몸을 우겨넣고는 작게 욕을 읊조리는 사이 제 휴대전화는 또 어디서 빼앗아갔는지 다시 제게 내밀며 같이 있던 이에게 전화를 하라고 난리다. 아, 귀찮게. 손에 꼽히게 눌렀던 번호를 찾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얼마안가 연결이 되었고 그 신호음을 듣자마자 주위의 공기가 싹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도망쳤다."
[...]
"야, 우리 만나면."
[...]
"키스 한 번 더 할까?"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윤기는 다시 입꼬리를 가득 올려 웃음을 터뜨렸다. 똑똑한 새끼. 무슨 신호를 주고받은 거냐며 저를 추궁하는 말소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직도 입술에는 진득히 빨아당겼던 촉감이 선연하게 남아있었다.
신뢰. 신뢰? 아니. 그건 정말이지 제 뇌리에 단단히 박힐만큼 욕망에 가득찬 키스였다.
사이렌 소리가 멀어졌다. 윤기는 그대로 눈을 감고 발 끝을 까닥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녀석이랑 키스나 더 할 걸 그랬나. 가서 제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히 보였음에도 윤기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벌써 눈 앞에 조직으로 달려가 당장에 절 꺼내야한다고 바락바락 우길 한 남자의 모습이 자꾸 선명히 그러져서 그저, 키득이며 웃음을 토해낼 뿐이었다.
-
조각의 시작.
![[방탄소년단/랩슈] 키스의 의미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2/02/14/e07408e9a2f3c23984e6f69c02dbf46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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