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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복도를 지나 텅 빈 교실에 도착했다. 수업이 시작된 지는 벌써 10여분이 흘렀다.  

 

[과학실x 미술실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시간표가 바뀌었나 보다.  

이럴 때가 있다. 가끔, 나를 남겨두고 세상이 움직이는 느낌? 

오늘이 그렇다. 조금 비슷하다. 아예 다른 세상에 갔다 온 느낌. 

 

 

"드르륵" 

일제히 나를 보는 눈빛들… 그래 이정도는 감수할 예정이었어. 

 

"지각생?" 

"아...죄송합니다." 

"앞으로 나와" 

"선생님 제가 과학실인줄 알고 착각을 했었네요. 과학실에서 10분동안기다리다 왔어요." 

"오늘 과학실에서 학부모 회의하는데" 

".....죄송합니다" 

"이름" 

"김여주...입니다." 

 

선생님께서 나를 한번 훑어보신다. 기분나쁘지만 지각한 내가 더 나쁜애인 것 같다. 

 

"번호" 

"9번...인가?" 

"10번이네" 

"......" 

"정신 좀 차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맴돈다. 휴….그래 웃을 수 있을데 웃어두던가. 

 

"1학년 1반 10번 김여주" 

"네 선생님" 

"너 오늘부터 미술부 해." 

"네?" 

 

반아이들이 다시한번 웃는다. 영문도 모른 채 미술부가 된 나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선생님 너무 강제적인 것 같습니다." 

"그럼 한시간동안 벌서고 싶어?" 

"저에게 딱 맞는 동아리 같습니다. 제가 그림그리는 걸 좋아해서" 

"조각하는 동아린데" 

"......" 

 

아직 몇 번인지 몰라 약간 당황했다. 중학교 3년 내내 9번이었어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9 라는 숫자가 튀어나왔다. 웬지 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어쩌다 보니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좋다. 동아리 정하는 시간에 가위바위보 하면서 싸우기 싫으니 말이다.  

내 책상 위 떡하니 붙어진 10이라는 숫자를 쳐다본다. 아, 내가 정말 고등학교에 들어왔구나. 여긴 고등학교구나. 

 

"아. 여주 미안.. 그 보건실 간다고 과학쌤한테 말씀드렸는데 알고보니까 미술이어서...." 

"뭐 괜찮아. 어차피 보건실 안갔으니까" 

 

친구가 미안했나 보다. 사과까지 하는 걸 보니.  

사실 나에겐 그렇게 신경쓰이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머릿속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는다.  

이유는 누구보다도 명백하게 생각나는 한 사람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말이다. 

 

"자 마지막으로 우리 자랑스러운 미술부 동아리 김여주 회원님께서 인사해볼까?" 

"휴...차렷 선생님께 경례" 

"의자정리 제대로 하고~ 여주는 잠시 선생님 좀 보고 가." 

"네" 

 

무미건조하게 대답을 내뱉고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중에...나중에 생각하자’ 

 

"여주야." 

"아! 네!" 

"입학 축하한다." 

"네?? 아 감사합니다.." 

"학교생활 불편한 건 없고?" 

 

있어요... 

 

"없어요. 오늘 처음왔고 적응도 안된 상태라 그런지 다 신기하고 새롭고 그렇네요.." 

"그래 학교생활 불편한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와서 말해. 서로 들어주면 좋잖아?" 

"네?" 

"아 여주가 사실 미술부 첫 가입자거든~ 선생님은 여주가 꼭 동아리 회장도 맡았으면 좋겠다." 

"하하..그거야 하고싶은 친구가 있으면...." 

"아무튼 학교생활 적응 잘하고. 1반이면 심화반이잖아?" 

"하하...솔직히 1반이 심화반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신청 형식이었고....." 

"에이 그래도 아무나 들어오는 반이 아니지? 들어올 수 있어도 못들어오는 애들도 있는데. 여주는 특별하니까 들어온거지." 

"아...."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너가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너를 믿어주는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좋아하지 않겠어?" 

"네 열심히 할게요..." 

 

인자한 아저씨같은 얼굴을 하고선 화법이 드럽게 재수없다. 

 

"그리고 오늘 여주야 저녁에 시간되니?" 

"저녁에요...?" 

"오늘 미술부 회식할거거든~ 일단 여주 여기 명단에 이름하고 전화번호랑 이메일만 간단하게 적어줘~~" 

"네.." 

 

가장늦게 미술실에 들어와 가장늦게 미술실을 나왔다. 

나오면서도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모를 만큼 머릿속이 복잡했다. 복잡하다기 보다는 좀 전에 만난 그와의 묘한 만남의 느낌이 아직 남아있던 탓이 아니었을까.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그 짧은 10분이 리플레이 되었다. 

아무도 없다는 걸 학인하려 두리번 거리던 나의 눈, 차가운 손잡이를 돌리는 나의 손과 서늘한 교복의 느낌. 삐뚤 빼뚤한 컨버스와 붓들 그리고 아주 낡은 필통들, 먼지가 소복이 쌓인 트레이닝 바지. 녹색 천으로 덮여 있던 조각상들. 간간히 들어오는 몇 줄의 햇빛. 그것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낯선 아늑함. 조심스레 발을 내딛어 문을 또 열어젖히면, 깜짝상자의 뚜껑에 달린 용수철마냥 나를 깜짝 안아주는 그.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내 볼에 닿았던 교복 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사람의 온기, 등을 토닥여주던 손길 그리고 그런 사람의 목소리까지. 그 순간 순간이 저절로 되뇌어 진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첫 종례네요. 학교 어떤가요? 지낼만 하죠? 여러분들은 심화반이기 때문에 내일부터는 야자심자까지 총 11시 30분에 하교 할 예정이예요. 오늘만 정규시간까지 하고 가는거예요. 내일부터는 공부할 책 좀 들고오시구요. 마치겠습니다.” 

 

내일부터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간단다. 3시10분. 중학생 패턴은 오늘부로 마지막이구나. 가방을 챙겨 학교 밖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지이이잉” 

“여보세요” 

“어 여주야 선생님인데. 오늘 미술부 회식 있는거 알지?” 

“네 지금 반에 있어요.” 

“2학년 교무실로 올라와 선생님자리 바로 앞인데 지금 문만 잠그고 바로 올라갈게.” 

“네. 선생님 자리에 서 있으면 되는거죠?” 

“그래. 어이고 공주님을 내가 감히 서있게 하다니 빨리 갈게 공주님~?” 

“네? 아니 그냥… 빨리 안오셔도 되는데…” 

“정말 미안하다 내가 큰일날 짓을…아무튼 선생님 올라간다.” 

“…ㄴ…” 

뚝 

 

정말 재수없는 화법이다. 은근히 비꼬는 식의 말투가 내 발걸음을 더 빠르게 만든다. 걸음걸이로 화풀이를 하던 나는 어느새 2학년 교무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들어갈 수가 없다. 지금 들어가면 너무많은 선생님들의 시선과 어색한 인사치레를 감당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깐동안 교무실 문에 기대어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네…?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시선의 끝에는 하루종일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자연스레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짧고 굵었던 한마디의 의미는 하루종일 내 머리위를 날아다닌 주인공에 대한 반가움일 것이다. 그런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게 당연하지만 섭섭했다.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준 나는 다시 벽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참 하루가 길다. 

 

 

 

꽤나 부산스러운 분위기. 산만한 눈들이 여기에도 머물렀다 저기에도 머무른다. 아직 새로울 것이 많은 아이들이 모였으니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처음 와보는 미술실이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번호대로 차곡차곡 자리를 잡는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꽤나 이름있는 인문계 고등학교. 거기에서 공부로 줄을 세워 구성된 1반. 비워져 있는 10번 자리를 제외한 33명의 아이들에게는 미술엔 영 관심이 없어보인다.  

 

“나는 경영학과가 목표야. 이번에 신설될 NIE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어. 거기 동아리 회장형이 서울대 경영학과를 갔다지?” 

“화학동아리는 내가 만들려구. 그런 스펙도 필요하잖아~~” 

“너네 학원 어디다녀??” 

“우리 그룹과외 하자~서울대 수석졸업이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 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위해 학교를 진학한 아이들에게 심도깊은 예술을 요구하는 선생님은 인문계에 잘 계시지 않는다. 애초에 인문계 고등학교는 공부가 우선이니 배려해 줄 수밖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한일수 이구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 지금부터 미술 동아리 가입자를 받겠습니다. 할 사람?” 

“……….” 

“부끄러우면 따로 와서 말해도 되요.” 

“하하하-“ 

“아무도 없어? 정말? 비누깎아서 가지고 놀고 할건데” 

“미술동아리가 비누 조각을 해요?” 

“조각도 미술이잖아. 선생님 조각 전공했어요.” 

“아~” 

"정말 없어? 너네 토끼비누 갖고싶지 않아?” 

“푸하하하” 

“이상하네 올해 애들은 아무도 토끼비누를…” 

“동아리 회원 몇명인데요” 

“2명이었는데 한명 졸업했어” 

“뭐야 그냥 유령동아리네ㅋㅋㅋㅋㅋ” 

“자 여러분 지금 들어오시면 동아리 회장을 시켜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첫 날이라 그런지 수업전 실없는 이야길 늘어놓는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선생님과 아이들은 더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동아리 얘기만 늘여놓는다. 

 

“드르륵” 

 

그때 마침 뒷문이 열리고 선생님을 포함해 미술실에 앉아있는 아이들 모두가 뒷문을 쳐다본다. 

그런 뒷문에는34명의 눈동자속에 담겨진 김여주가 서있다.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음.... 꼭 그럴때가 있죠. 머릿속에서 생각해 놓은 그림을 최대한 자세하게 표현한 것 같은데 읽어보니 완전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인? 

처음이라 서툰 점도 있지만 3달에 걸쳐 스토리를 완성했고 여러 번의 첨삭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인 만큼 연재 완료를 했을 때 후회없이 마쳤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강남에 모든 학생들이 저렇다는 소리가 아니라 제 글에 나오는 학교 애들이 저렇다는 소리입니다. 살면서 강남 2번가봄유....애슐리 퀸즈 먹으로.. 

봐주신 분들 계신다면 감사드립니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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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이들의 대화가 익숙치는 않지만
평범한 아이들의 대화가 아니라는 것은
느껴지네요...
여주를 비꼬며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너무나
여주에게 불편하겠어요....
다음 이야기도 기다리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작가님
아 혹시 암호닉 받으시면 '[♥옥수수수염차♥]로
신청할게요

10년 전
대표 사진
바오
안녕하세요 옥수수수염차님ㅎㅎ기억하고 있을게요. 저 대화는 제가 실제로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이 이야기 했던 대화 주제 였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들끼리 한 내용이 여기서도 이러는데 강남은 더 그러겠지? 였어요. 3학년 때는 더 심했구요ㅠㅠ 강남친구들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편도 최대한 빨리 올릴게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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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 저 선생님 마음에 안 들어요..... 빆는 말투....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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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
마저요...빆는말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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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선생님 말투가..... 어....ㅇ음......동아리가 쉽게 결정이 되었어요! 저는 고3때도 잘 못들었던 대화가 반전체가 하고있네여..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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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쩌런얘기 했었는데...강남에 공부잘하는 사립고등학교니까 좀 과장해서 쓴 부분이 있어요ㅋㅋㅋ
9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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