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놀이 06-1 “여주야!” “아 선생님..” “뭐해 안들어가고? 추운데 여기 있었니?” “아 그냥…들어갔다 나오는 게 귀찮아서…” “어? 한명 안왔네.” “누구요?” “회식할 사람! 있어봐 선생님 안에좀 들어갔다 올게.” “네…” 동아리 회식이라길래 적어도 열 명은 있는 줄 알았다. 온다는 사람이 고작 한 명이라니… 뭐 단 둘이만 있는것 보다는 낫다. 덜 어색하고. “여주야 들어와~” 교무실 안에서 나를 부르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조심스레 교무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웬지 모르게 나를 챙기시는 미술 선생님이 보이고 그 옆에는 놀랍게도 그가 서있었다. 아는 척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은 더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끼어버린 내가 불쌍하기만 하다. 커다래진 내 눈을 피하는 그 옆에서 선생님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다. “여주야 인사해라 동아리 회장 민윤기 선배님이시다.” “네? 어….네. 흠흠. 안녕하세요 김여주 입니다.” “선생님 하지 마세요 좀. 불편하잖아요.” “왜 그래도 선후배 사이에 이렇게 인사하는 게 맞지. 둘이 좀 친하게 지내고 윤기 네가 여주 좀 잘 보살펴 줘. 처음 가입한 애라 모르는 게 많아.” “가르쳐 줄 것도 없어요. 그냥 이름만 올리면 되는 걸 뭐.” “그래? 됐고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뭐 사줄까?” “아무거나요. 어차피 다 맛없어요.” “그래도 오늘 회식인데 맛있는거 먹어야지. 여주! 뭐먹으러 갈래? 선생님이 다 사줄게.” 두 남자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인다. “어….저….” “여주가 잘생긴 선배님 봐서 부끄러운가보다.” “아니에요 그런거!” “걍 자장면 먹죠.” “어..? 그래.” “빨리 가요.” 이 상황이 귀찮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이름이 민윤기 였구나. 민씨가 흔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그다지 생소하진 않네. 학교 바로옆에 있는 자장면집에서 먹고 치우자는 말을 하는 걸 보니 그쪽도 나만큼 이 상황이 귀찮다는 뜻이겠지? “아…저” “왜?” “선배님 제가 그…아침에” “그냥 편하게 말해.” “네. 아 그러니까” “선생님 계신다.” “네…..” 나만큼 그 일을 신경쓰진 않고 있지만 적어도 나를 의식하고 있었나? 사실 내가 말을 붙이려고 오전에 있었던 일을 꺼낸 것은 그를 더 알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람이지만 익숙하다. 이게 문제다.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선생님 핑계를 대며 말을 미루는 건 또 뭔가. 나중에 그 얘기를 다시 하고 싶다는 건가? 미처 듣지 못한 나의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그냥 상황을 무마시키고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맛있게 먹고! 여주야 모르는 거 있으면 무조건! 윤기선배님 한테 물어보면 된다~ 윤기가 못살게 굴면 선생님한테 말하고.” “잘먹겠습니다.” “아 오늘따라 되게 센치하게 구네. 여자앞이라 부끄러워서 그래?” “네?” “너네 둘이 빨리 친해져야 우리 미술부가 번창하지. 오늘부터 여주가 1학년 장인거다? 동의하지?” “아직 동아리 회원도 다 안뽑으셨잖아요.” “여기가 우리 동아리 회원 끝인데?” “수요 동아리시간에 회원들 말이예요. 걔네들 까지 하면 꽤 될 거예요. 거기서 회장 하고싶어하는 애들도 분명히 있을 거고.” “저…선생님.. 저도 하고싶은 학생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럼 여주 너 임시회장직 좀 맡아.” “후…..” 알 수 없는 조합의 세 사람이 자장면을 먹는다. 아주 불편하게 말이다. “자 그럼 선후배 관계개선을 위해 선생님은 이만 빠져주겠습니다. 윤기야 다먹고 선생님 잠깐 보자.” “네..”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마친 선생님께서 나에게 알수 없는 표정을 지으시고는 사라진다. 참 여기 혼자 남겨 놓으면 어쩌라는 건지. 온 몸이 뻣뻣해져 젓가락질을 할 수가 없다. 내 앞엔 묵묵히 자신의 양식을 흡입중이신 민윤기 대선배님께서 앉아계신다. “ 선배님. “ “어.” “아깐 죄송했어요. 밥 한끼 사준다고 했는데 이런식으로 같이 먹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대화를 이어나가보고 싶었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였기에 다시 잠잠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 둘 사이에 자그마한 벽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지이이잉” “여보세요?” “아가씨 어디세요? 지금 미술관으로 가셔서 못그렸던 그림 그려주신다고 모셔오라시던데….” “아, 제가 걸어갈게요. 학교 근처라..”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실텐데요?” “네…버스라도 타고 갈게요. 안태우러 와도 돼요 기사님.” 기사님 이라는 말에 흘깃 나를 한번 쳐다본다. 미안한데 사실 이런 시선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가 곧아지는 경향이 있다. 익숙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더 사선으로 든다. “아! 나중에 끝나고는 데리러 오실 수 있으세요? 전화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기사님.” 그릇을 반 이상 비운 그가 슥슥 젓가락을 닦아내더니 단무지를 집어 먹는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면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 사실 신경쓰이기도 했다. 혹여나 입에 묻지는 않았나, 교복에 튀지는 않았을까. 머리에 묻지는 않았나? 조심스럽게 먹다보니 내 먹는 속도는 자연스레 느려졌고 그런 나를 무기력하게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한참동안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가 거슬릴 때 쯤 갑자기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주섬주섬 교복 마이를 걸친다. “가시게요?” “빨리 좀 먹으면 안되겠니” “죄송해요.” 또 한참동안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입을 연다. “참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 “스토커 짓은 왜 하고 다니는거야?” “스토커가 아니거든요? 나참 어이없어서.. 제가 다닐 학교 둘러보는게 그렇게죕니까?” “농담이지. 너 되게 성깔있네? 예쁘면 말을 안해.” “죄송해요 못생긴데다 성격도 더러워서.” “너 화방 다시 보고싶어?” 네…. “제가 거길 왜 가요? 완전 창고같아가지고… 폐간줄 알았네” “구경시켜주려고 했지. 미술부 된 기념으로.” “뭐 제가 언제 가고싶댔습니까 전 그냥….” “그럼 왜 들어온건데.” “꼭 이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까?” “내 공간이니까.” “개인적인 공간 치고는 참 공적인 공간에 있네요.” 미묘한 신경전이 오가는 도중에도, 차가운 그의 시선에도, 예의상 거는 몇마디 말인데도 편안함이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처럼. 아마 익숙한 말투여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미지근한 미술부 회식이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학교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찬바람을 더 쌩하니 만들었다. “리온 미술관이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4시 반까지가 약속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늦어버렸다. 여유롭게 걸어가려고 했건만 좋아하지도 않는 짜장면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지이잉” [여주야 맛있게 먹었니? 회식인데 끝까지 남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내일 아침에 잠깐 미술실 들리도록 해^^ 화이팅] 지긋지긋하다. 이쯤되면 부담스러움을 넘어서 싫다. 챙겨주려 하시는 게 눈에 보여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영문도 모르는 호의가 이젠 수상할 뿐이다. {LION ART MUSEUM} 택시에 내려 잠시 미술관을 바라본다. 리온… 어디서 많이 본 로고네. 한번 웃어주고는 당당하게 걸어들어간다. 미술관 내부는 서울 최고의 미술관 답게 호화롭다. 고급 호텔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옥색의 맑은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데스크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혹시 어디 계신지…” “아 관장님 오늘 손님 오신다고 하루종일 바쁘시던데. 아가씨 초상화 그리는 날이 오늘이세요?” “아 네.. 하하 어제 덜 그려가지구..” “아 그러시구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예쁘게 올림머리를 한 안내원 분이 분주하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심각하게 전화 통화를 하더니 포스트 잇에 전화번호를 적어 나에게 건넨다. “오늘 손님 때문에 화실에 있는 도구들을 모두 치웠다네요. 오늘은 그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떡하죠? 여기 관장님 전화번호요. 다음부터는 관장님하고 직접 상의해서 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오늘은 그냥 가는 건가요?” “네. 다시 오실 시간은 여기로 연락하지 마시고 관장님께 직접 연락하라시네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미술관 특유의 웅장함과 우아함 그리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쉽게 발을 떼게 허락하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반으로 접고 교복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관장님 얼굴이나 뵐까 하는 마음으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은 어제와 다르게 깜깜하고 조용했으며,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 안녕하세요 바오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옥수수수염차님덕에 또 포인트를 풀게 되었어요ㅎㅎ(하트가 안나와요ㅠㅠ죄송함다) 사실 6화 다 쓴 게 아닌데 급한 일이 있어서 쓴 데 까지만 올리고 돌아와서 수정하려구요. 댓글 달아주시면 수정후에 답댓 달아드리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벌써 6화까지 왔네요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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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님 그렇게 유명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