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글 감사합니다!! 원우가 순영이에게 말한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한이가 지수에게서 보지 못한 표정은 무엇일까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 - 지수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그는 생각했다. 물을 마시면서, 양치질을 하면서, 아침밥인지 뭔지를 먹으면서 내내 머리를 굴려봐도 그는 번번이, 어제 그 메일을 보내면 안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머리가 굳었나, 갑자기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해서. 전쟁을 더러 진급의 기회라고 말한 사람이 비서진이 보낸 메일을 상식적으로 해석할 리가 만무했다. 아무리 기계니 로봇이니 해도 사람의 형태다. 2000년대 초반때와는 차원이 다른, 정말 로봇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차마 기계인줄 모를 정도의 그런, 혐오감의 계곡의 극단으로 몰아붙인 ‘반생명체’인데 사회적 파장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다니. 반생명 평화 유지 협회니 뭐니 하는 것들은 보나마나 어디서 줏어들은 알량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할테고, 그렇게 되면 이제 국방부가 뭐라고 하던 홈봇들은 오히려 전력을 갉아먹는 제 1의 요소로 작용할 터였다.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비생명체의 위력은 차마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쿠데타라도 일으키면? 그래서 반군 세력을 모으면? 무심코 혀를 깨문 지수가 볼을 붙잡고 생각을 계속했다. 7회차 내내 회의장을 함께 뛰며 고생한 비서진들 역시 퇴근은 똑같이 급했을테니 말 한마디 적힌 지수의 메일을 받자마자 총알처럼 상부에 보고 올렸을텐데도 그는 본능적으로 이를 빠득 갈았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넣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제 그 연구원, 내가 메일 보낸거,” “아, 안그래도 중령님께서 그 건으로 굉장히 기분이 ㅈ,” 당장 전화를 끊었다. 팔자좋게 아침밥 어쩌구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켓을 꿰어차며 지수는 웜홀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 문을 열어젖히며 테이블을 부술듯 내려찍자 놀란 중령이 지수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목이 턱 메인 지수가 간절하게 말했다. “중령님, 멀리 보셔야 합니다!” “홍 소령, 자네 진정 좀 하고,” “지금 당장 전력이 충족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반평협이 나서면요? 그 널리고 널린 시민 단체들, 찌라시 한번 뿌리면요?” “이봐, 여기 물 좀 갖다주게. 홍 소령 자네 일단 앉고, 숨 좀 돌리고.” “우리 그렇잖아도 전력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 돌아서는거 한순간인거, 아시지 않습니까. 중령님 이거, 제가 어제 잘못 올린 보고입니다. 안됩니다.” “자네도 알아서 보낸거 아닌가, 방법 이거뿐이라는거?” “중령님!” “아 그럼 자네가 확인을 잘 하지 그랬어!” 지수는 기도가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 책임이지. 이 일이 원래 중령의 것이었건 말건을 떠나 일단 참석자가 지수였던 이상 그의 실수를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시야가 아득해졌다. 다 아는데, 다 아는데.. 지수는 제발 이번 한번만이라도 신이 그에게 웃어주길 바랐다. 아닐걸 알면서도. “난 모르겠네. 이미 윗분들 다 보고 계실테니 그분들께 사정해보던가.” “중령님.” “아, 왜 이래!”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당황한 중령이 소리를 높였다. 사무실 앞 복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기웃거렸다. 상관없었다. 옳지 못한 일이었다. “중령님, 제발 안됩니다.” “일어나지 못해?!” “그것의 형태가 뭐가 되었든,” “홍 소령!” “그것이 웃고, 울고, 떠들고, 사랑할 수 있다면,” “자네 미쳤나?!” “저는 그거, 못 죽입니다.” “홍지수 소령!!” “철회해 주십시오.” “파면시키기 전에 당장 일어나.” “중령님.” “일어나라했어.” “중령님 제ㅂ,” 눈 앞에서 번개가 쳤다.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여럿 들린다 싶더니 정신이 돌아오자 지수는 바닥에 납닥 쓰러져 있었다. 중령이, 뺨을 쳤다. “일어나게.” “... 중ㄹ,” “보고 올라갔다 했어. 하루가 급한 일이야. 노닥거릴 시간 없어. 이런 경우 한두번인가?” 할 말이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가장 비참했다.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 어제까지만도 분명히 멀쩡하게 주인과 함께할 운명이었던 홈봇들은 졸지에 자의지와 상관 없이 총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수는 어린 시절의 그가 생각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이걸, 이걸 내가 무슨수로 버티라고. 시야 바깥에서부터 개미떼가 몰려들었다. 부옇게 흐려졌다. “...” “실망시키지 마. 가서 일해.” 하늘이, 개미로 뒤덮인 하늘이 까맸다. 쓰린 입보다도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뺨을 맞은 것보다 더 강력한 어떤 생각이 어금니를 모조리 뽑아 멱살을 쥐어 흔들었다. 지수, 그는 유약하게 흔들릴 뿐. - >>::〈networking/> 〈loading> >>:〈loading> >>:〈loading> >>:〈loading> >>:〈detected/>〈connect/>〈반경_100m_이내/유사종_발견=WW100515-14_추정> >>>>::〈connect> 〈y/=01> 〈n/=00> >>::W//안녕. >>::Me//안녕. >>::W//혹시 이 근처 사니? >>::Me//응. 신호가 좀 강하긴 하네. >>::W//지금 혹시 볼 수 있니? 석민에게 장난을 친 오전까지만도 정말 네트워크를 써서 다른 기종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진 않았었다. 순영은 대화가 흐른 김에, 그리고 석민이 이미 집에 무수히 쌓인 진통제들을 뒤로하고 또 다시 진통제를 사온다며 나간 김에 넙죽 친구를 불렀다. 처음 써보는 네트워크는 알고리즘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버벅거렸다. 대뜸 인사하더니 볼 수 있냐고 묻는 친구는 낯설어도 재밌었다. 새로운 관계망. 꽃삽과 물뿌리개를 들고 앞마당으로 나갔다. 식탁에 꽂아두고 남은 히비스커스를 여기에 심었다. 나중엔 제비꽃을 사봐야겠다며 물을 주고 있는데 마당 앞 울타리께에서 낯선 인영이 어룻거렸다. 동공의 빨간 점 두 번, 전파 신호. W였다. “안녕.” “정말 왔구나.” “유사종을 잘 못 찾았어서. 마당 예뻐.” “고마워. 들어올래?” “그럼 마당까지만, 좀.” 대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아이가 대화처럼 불쑥 손을 내밀었다. 순영은 물뿌리개를 내려두고 부드럽게 인사를 받았다. “난 원우라고 해. 전원우. 요 옆 골목 요리사네 집이야.” “이름 예쁘다. 난 순영.” “무슨 순영이야?” “... 권.” 잠깐 망설이다 성을 말하자 원우의 눈에 초록색 불빛이 빠르게 두번 깜박였다. 이름 인식 완료. 둘은 으레 다른 친구들이 그렇듯 시정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은 그래도 먼지가 좀 덜하지?” “바람 색이 확실히 옅어졌더라.” “그래도 곧 있으면 말짱 도루묵인걸.” “왜?” “전쟁이잖아.” 전쟁. 전. 쟁. 많이 들어봤는데. 눈을 도륵 굴려 뜻을 찾아내자 순영은 새삼 놀라 꽃삽을 떨어트렸다. “전쟁이라구?” “응. 몰랐어?” “어.. 언제 일어나?” “모르지. 그런데 분위기는 한참 난리라는거야. 홈봇들을 전력으로 쓰니마니하는 이야기도 돌던걸. 주변 소식에 좀 늦는 편이구나." 눈썹 하나 미동도 없던 원우가 전쟁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는 순영의 말에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전쟁 오면 물 챙겨. 괜히 ‘반’ 생명이 아냐. 신진대사는 다 이루어지잖아, 귀찮게.” “응. 고마워. 응급 배낭 이런 것도 있어야 할까.” “챙기고 있을 겨를도 없을걸.” “.. 그럼 혹시, 화분은?” “화분?” 마당의 작은 팬지 화분을 하나 들어보인다. 석민의 아내가 샀었다는 빨간 팬지. 원우의 눈매가 각도를 바꾼다. 찰나로 아주 농밀한 침묵이 스치고 간다. 원우가 입술을 달싹여 숨소리처럼 말을 뱉어낸다. “너 설마,” “응?” 곧이라도 문장을 이을 것처럼 숨을 들이키던 원우가 곧 다시 풀어져 나른한 얼굴로 돌아온다. 꽃삽과 팬지를 들고 선 순영에게 딱딱하게 덧붙인다. “그래도 인간을 너무 믿지는 마.” “왜?” “인간은 배신의 동물이거든.” “아.” 코 앞으로 얼굴을 조금 들이민다. 눈을 가늘게 뜨고 순영에게 묻는다. “안 놀라네.” “뭐, 이미 탑재 돼 있잖아.” “실제로 들으면 대부분은 놀라던데.” 원우가 다시 얼굴을 떼고 말한다. “감정도 느끼지 않는게 좋을거야.” “감정이라니, 어떤?” “나보단 네가 더 잘 알텐데. 감정 회로가 넘치다 못해 왼팔에까지 흘렀는걸.” 순영은 왼팔뚝을 보았다. 다른 곳에 비해 아주 조금 더 거무튀튀한 피부. 원우를 쳐다보았다. 원우도 턱짓으로 그곳을 가리킨다. “조심해야할게 많구나, 넌.” “그러네.” “사랑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 무엇이든.” 원우의 눈빛결이 달라졌다. 순영은 그게 뭔지 알지 못한다. 순간 내비친 것을 주워담아 원우는 다시 나른하다. "간다. 안녕.” 그는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미련없이 대문을 열고 나갔다. 순영은 잠깐, 그가 나간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정한은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논문을 제대로 인쇄했는지 아침에만 10번은 체크했다. 모퉁이를 돌아 접견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박하맛 스프레이를 입에 쏟아붓듯 뿌리고 손바닥을 두번 쥐었다 폈다. “됐어, 윤정한.. 쫄지 마. 떨지만 않으면 돼. 쫄지 말자, 쫄지 말자.. 나도 인생 편다.” 지훈이 챙겨준 걱정 인형을 한번 떠올렸다. 녀석, 그래도 동기라고 챙기긴. 정한은 접견실 문을 열었다. “아,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악수하려 내미는 손이 큰 편이었다. 홍지수라고 했다. 정한은 옅은 기시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러시죠?” “아.. 죄송합니다. 어디서 뵌 것 같아서요.” “하하, 좀 흔한 얼굴인가요. 앉으실까요?”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입어 낡은 수트가 티나지 않길 바라며 정한은 조심조심 자리에 앉았다. “그.. 홈봇..” “아, 네. 메일로 자세한 이야기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국가 보안상 누설하기 곤란한 것들이 왕왕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제가 논문 따로 챙겨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급해서 개요만 잠깐 읽어봤는데, 홈봇을 무기화 시키신다구요.” 정한은 새삼 무서운 이름에 흠칫 떨었다. 내가 낸 아이디어고 논문이지만 여전히 귀에 설익어. 정한은 본능적으로 지수의 눈치를 살폈다. “반생체형 무기가 되는건가요.” 일순 스쳐가는 눈빛을 읽지 못했다. 저게 뭐지. 뭔가 있었는데. “원리나 이런 것들,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저도 기공이라, 하하. 반갑더군요.” “아, 그러셨습니까. 요새 기공 정말 많지 않은데, 반갑고 그러네요.” 서로 눈치를 보며 되도 않은 설레발을 친다. 정한은 목구멍에 자꾸만 돋치는 가시를 무시하고 가까스로 설명을 시작했다. “애당초 홈봇의 개념 자체가, 집에 들여놓고 사용하는, 사람의 행위를 보조하는 인간 형태의 로봇 아닙니까. 게다가 갈수록 사용자 수도 늘어 제작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요는 그거였다. 요새 한창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홈봇을 아예 대량생산해 아군으로 육성하고 특공대나 첩보원등 위험한 특기부터 순차적으로 병력 지원에 나선다. 말이야 번드르르하고 좋았다. 무서운 정확도의 로봇들에 대적할 것 역시 로봇뿐. 생산이 쉽고 개조가 상대적으로 간단한 홈봇을 테스터식으로 도입해보자는건 분명 그렇게 말이 안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한은 뒷덜미가 뭉근했다. “저, 소령님.” “?” 그리하여 정한은 설명을 멈추었다. 논문이 새까매지도록 회로를 그리고 알고리즘을 설명하던 펜을 잠시 내려놓고 잠깐 말을 골랐다. “어떤 식으로 말씀드려야 좋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네. 편히 말씀하세요.” 분명 인생 펴는 길이다. 모르는 바 아니었다. 내 논문, 내 기술이다. 국가에서 홈봇 1대당 개런티를 지불하는 것이다. 돈방석에 앉는다. 요샌 기술자들 우대가 달라져서 국가 차원에서 인정해주니까 적어도 내가 월급에 빌빌거리며 살 일은 없다. 게다가 내가 어디 그냥 기술자인가. 국가에 아이디어를 판 수퍼 엔지니어지. “저는 이게,” “네.” “... 참,” “...” “... 그러네요.” 정한은 순간 속으로 자신을 많이 원망했다. 아무리 덮으려해도 덮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결국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한 그는 뒷머리만 긁적였다. 소령이 손깍지에 입을 묻는다. 다시 고개를 든다. 정한의 눈에 스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뭐야, 왜 자꾸 놓치지. 밤샘의 탓인가 싶어 눈을 벅벅 비빈다. “저희 측에서 회의 조금만 더 진행하고,” “...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지수가 싱긋 웃으며 논문을 들고 일어섰다. 엉거주춤하게 따라 일어선 정한이 허겁지겁 짐을 챙겨 접견실을 나섰다. “본사 위치 입력해두었으니 바로 쓰시면 됩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메일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국방부 로고가 그려진 일회용 웜홀 버튼을 손에 쥔 정한이 머뭇거리다 뒤를 돌았다. 거의 동시에 버튼을 눌렀다. 배경이, 빛이, 지수의 얼굴이 세로로 길게 주욱 늘어지며 웜홀을 탔다. 결국 정한은 마지막까지도 소령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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