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10
내 이름은 동동. 금년 꽃다운 16살입니다.
나는 요괴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 기억의 처음부터 나는 16살 요괴였으며
그 이유는 아마 인간이었을 때 죽은 나이여서 그렇다는 군요.
내 머릿속엔 인간 무렵의 기억이 전혀 없고
내가 어떻게 해서 죽어 귀신이 되었는지도 몰라요.
그저 요괴 대부님 말씀으로는,
'편히 안식하지 못하는 떠돌이 혼령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요괴가 되기도 한다' 라고 해요.
사실은 아직 무슨 소린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무서운 요괴 대부님께는 비밀입니다.
요괴로서 존재한 지 50일도 채 되지 않은 저는
내가 진정 누구인지 확답이 나지 않아
빈둥빈둥 놀러만 다니고는 했습니다.
요괴 대부님은 그런 내가 꼴보기 싫으셨던 건지
아래와 같은 말씀과 함께 내게 첫 임무를 내리셨어요.
"...동동아, (킁)...너도 이쩨, 따른 애들과 같이 (쩝)
...임무를 하고 다녀야 되지 않겠니? (쩝)
...너도...주네가 임무 열찜히 완수해오는 거, 봤쯜꺼야. (킁)"
.....열찜히 하는 건 잘 모르겠으나 열심히는 하려고 했습니다.
주네는 나와 나이가 같지만 감히 말도 걸기가 어려운 애입니다.
시종일관 무표정이며, 익살스럽게 얘기 나누는 걸 나는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임무를 완벽히 완수해오는 게 대단합니다.
해서 주네는 등 뒤에 항상 칭찬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닙니다.
난 언제쯤 주네같은 요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처음엔 어떻게 인간 집에 들어가는지 고민이었으나,
보틀 대부님 말대로, 영적 기운과 가까운 인간이 날 데려가더군요.
나는 말이죠,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뭐야 씨발 깜짝이야!!"
"어리석은 인간!! 넌 이제 끝이다!!"
휘익-
탱-
"아악!! 당했따!!"
딱 이 순간 직전까지만 말이에요.
제가 만난 인간은 생각보다 너무 강력했고
임무 초짜인 저는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협박에 내 소원석까지 저당잡히게 됐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요?
나는 인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굽실- 굽실-, 눈을 깔고 머리를 숙여댔죠.
절대 무서워서 그런게 아닙니다. 연기를 한 거에요.
....절대 무섭지 않지...않아요.
집주인의 방에 혼자 남겨진 첫째날,
나는 인간의 침상을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요괴 대부님이 하사하신 무시무시한 칼을 이용해서
요상스런 무늬의 거대한 침상을 결국 정복해냈습니다.
임무의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성공한 듯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생 초짜의 저질체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저는 너무 지친 탓에 철푸덕 엎드려 쉬고 있었죠.
헌데, 집주인의 이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솔솔 나는 게 아니겠어요?
이불의 향내에 취해 저도 모르게 편안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요괴세계의 아카시아 꽃 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집주인이 다가올 때마다
집주인의 향내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를 킁킁거릴 때마다 그 좋은 향을 맡고는 했어요.
집주인은 아직 눈치를 못 챈 듯 합니다.
집주인과 급속도로 친해진 이후로는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애교를 부려도 집주인은 툭툭 내뱉듯이 답하지만,
저는 집주인의 웃는 표정을 보면알아요. 집주인도 제 애교를 좋아한다는 걸요.
저는 집주인의 침대 위에 같이 올라서 얘기하고 싶지만
엄하신 집주인이 끝끝내 허락을 내리지 않아요.
섭섭합니다. 수수깡 집의 손향내도 이제는 희미해졌단 말이에요.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집주인이 집을 비울 때 마다
침대 위에 몰래 올라가 누워 뒹굴곤 했습니다.
집주인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서 어찌나 고생해서 오르는지.
그래도 오른 후 맡게되는 집주인의 향내가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서
알게 모르게 요즈음 소소한 낙이 되기도 해요.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는 고민이 커졌습니다.
제 임무가 이렇게 돼버렸을 때의 플랜B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무능력한 저는 어쩔 수 없는 최악의 경우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집주인을 멋대로 떠나는 건 하고 싶지 않기에
구역 감시자가 저를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말이에요.
구역 감시자는 인간의 영혼을 가져가는 임무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담 저는 그때까지 집주인과 지내다가 후에 평화로이 빠빠이 하면 된다고,
그리 순수하게 생각했던 제가 조금 바보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