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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변백현이라고?"
이 시간에 누군가가 우리집에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랐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변백현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나는 내 앞을 가리고 있는 오세훈을 살짝 밀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곳, 그러니까 우리집 문 앞에는 정말 변백현이 있었다.
"야, 야. 너...야."
"전화는 폼이야?"
변백현은 나에게 다짜고짜 화를냈다. 사실 화를 낸다기보단 걱정 어린 말투였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제서야 살펴본 변백현의 모습은 저가 아닌 내가 걱정을 해야할정도로 젖어있었다. 젖은 머리칼하며 비가 와서 꽤나 쌀쌀한 날씨에 겉옷 하나 걸치지 않았고, 우산을 제대로 쓰기나 한건지 얇은 티 마저도 잔뜩 젖어있었다.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변백현의 말을 곱씹었다.
전화는 폼...이냐고...아, 나 전화기 집에 두고왔는데.
"아니, 야...백현아. 너."
"하, 진짜. 전화나 좀 받던가, 괜히 걱정했네."
"...어떻게 알고..."
"...넌 진짜 하나도 기억을 못하냐."
아니, 나도 내 기억력이 이렇게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수준일줄은 몰랐는데.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기억나는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중 2때였나. 그때도 우리 엄마, 아빠는 바빴다. 오늘처럼 천둥이 치던 날이었던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나는 울며불며 백현이에게 전화를 한듯한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이 밤중에 날 위해 찾아온 백현이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은건.
"아, 아니야! 기억나!"
"됐어, 괜찮으면. 그리고 넌 이 밤중에 외간 남자 집에 막 들어가있고 그러면 안돼."
"야, 내가 무슨 변태 새끼냐?"
"자기소개 존나 잘하네."
나와 변백현을 바라보고만 있던 내 뒤의 오세훈이 괜히 찔린듯이 말한다. 익숙한듯 되받아치는 백현의 말에 세훈은 '저새끼가.'라며 신경질을 낸다.
근데 그건 그렇고, 변백현 저렇게 뒀다간 내일 앓아 눕겠는데...?
"야, 이리 와."
"왜."
"너 그러고가면 죽어."
"나 걱정해주는거야?"
나는 다짜고짜 변백현의 팔을 붙잡고 우리집으로 향했다. 그래봤자 겨우 다섯걸음이 안되는 거리였다. 문 앞에 서자마자 문득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아직도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오세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세훈아, 네 옷 하나만.
-
"빨리, 씻고 와."
"여자애가 부끄럼이 없어..."
"같이 씻자고 했냐? 그냥 씻고오라는데 말이 많아. 그래놓고 내일 감기 걸려와서 너 때문에 감기 걸렸으니까 병원비 내놓으라고 하지마, 진심 몸져눕게 만들어버릴거니까. 내가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오세훈한테 속옷까지 빌려다 줬잖아."
"아, 알겠어. 말 존나 많아."
그렇다. 오세훈한테 필요할만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갖다 줬더니만 하는 소리가 안씻겠단다, 오히려 부끄럼을 타야한다면 내가 타야할 것을 왜 지가 타고있는지 모르겠다. 어거지로 욕실에 밀어넣으니 끝까지 궁시렁대며 문을 걸어잠근다.
불을 확 꺼버려? 닫힌 문을 흘겨보다 쇼파로 걸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까지 천둥은 치고있었다. 하지만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우리집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아까 두려움에 떨던 모습은 그새 어디로 사라져버린건지, 그런 내 모습이 웃겨 픽,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오세훈 거, 너무 커."
"그럼, 키 차이가 몇인데."
"니가 키얘기 할 군번은 안될텐데."
"닥쳐, 여기 빨리 앉아봐."
쇼파에 앉아 드라이기를 윙윙거리고 있으니, 자신보다 품이 조금 큰 후드티와 질질끌리는 츄리닝 바지를 입은 변백현이 욕실에서 나왔다. 내 앞 바닥을 가리키며 앉으라 하니, 수건으로 머리를 탁탁 털던 백현이 왜, 머리 말려주게? 라며 내가 가리킨 곳에 앉는다.
조용한 집안엔 드라이기 소리만이 울린다. 가만히 머리를 말려주고 있으려니 남자치곤 얇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 손가락 사이를 헤집을때마다 기분이 꽁기해져온다. 따지고보면 남친도 아니고, 그냥 친구일 뿐인데. 나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근데, 나 혼자 있는건 어떻게 알았어?"
내 물음에 백현이 무어라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말은 드라이기 소리에 묻혀 달아나버린다. 안들려, 뭐라고? 나는 목소리를 더욱 높혀 재차 물었다. 다시금 백현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저냥 아는 척을 했다.그냥, ...그냥 그래야할 것 같았다.
'전화를 수십 통을 했는데 안받으니까...천둥 존나 치는데...또 질질짜고 있을까봐...'
-
"뭣이?"
"자고 갈거라고."
"왜!"
"야, 그럼 내가 너 천둥에 존나 떨고있는거 재워놓고 그냥 갈 줄 알았냐?"
"...그러네."
듣고 보니 그래 시발 니가 백번 천번 다 옳다, 개새끼야.
결국 내 침대 아래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내 침대 넘보면 뒤질 줄 알아. 내가 이불을 깔아놓으면 손하나 까딱안하고 그 위에 누워 기지개를 펴는 변백현의 발을 고의적으로 밟고 지나갔다. 악!!하는 괴성을 가볍게 무시하고 레몬차와 옷만 털린 세훈이에게 문자라도 하나 남겨둬야지싶어 폰을 찾았다. 책상에 놓인 폰을 집어들면 가장 먼저 보이는건 백현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무려 40통이 넘어갔다. 힐끗 누워있는 변백현을 쳐다봤다.
넌 존나 특이해. 이런 기특한 짓을 했는데 이뻐보이지가 않아. 시벌탱.
나는 내 침대로 건너가며 이번엔 백현의 손을 밟았다.
[ 레몬차 고마워 오늘 일은 다 고맙다 그리고 변백현이 옷 고맙대 ]
뭐라고 보내지, 한참을 고민하다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두번이나 뱉었다. 곧이어 답장이 왔다.
[ 개뻥치네 ]
[ 변백현이 퍽이나 고맙다고 했겠다 ]
그냥 그렇다면 그런줄 알지 그걸 꼭 집고 넘어가요. 고맙다가도 한대 때리고 싶은 새끼다.
[ 암튼 ]
[ 잘 자 ]
답장을 쿨무시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빠르게 답장이 왔다.
[ 잘 자라고하면 잘 자겠냐 ]
왜지, 왜죠? 잘 자라고하면 잘 자야지, 내가 잠을 혹시 다 깨워놔서 나한테 화를 내려고...?
별 생각을 다해봤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겨갔다.
[ 존나 심장 떨려서 ]
"..."
당황스러웠다. 민망하기도 했다. 누가 대화 내용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전국민에게 생중계가 되는 것마냥 민망했다. 개소리 지껄이지말고 쳐 자, 아무렇지 않은 척 답장을 보냈다. 내 옆에선 비에 절여진 변백현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어딘지 모를 구석이 간질거리는건, 이 백현의 코골이 때문일거라, 그렇게 생각한다.
-
"야, 개맛있다."
"어떠냐, 이 누님 솜씨가."
"너 나한테 시집와라, 맨날 이런 밥 먹게."
"...컥, 크헉!"
저런 개뚱딴지병신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변백현때문에 나는 먹던 밥이 보기좋게 걸려버렸다. 그런 날 보며 헐, 괜찮아?!하며 물을 떠오는 변백현에게 너 때문이잖아, 이 개같은 놈아! 라며 멱살을 잡을 뻔했다.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나에게 시집을 언급하다니. 내가 조선시대 공주였다면 저 미천한 것의 목을 당장 베라 명하고 싶었다. 아무 재료를 갖다 넣어도 맛있는 능력은 엄마를 닮았다. 내가 이렇게 좋은 능력을 가지고 변백현 따위한테 시집을 가느니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지. 그나저나 여자를 매일 갈아끼우는 카사라더니 역시 언변이 화려하다. 조심해야겠다.
"시발, 못하는 말이 없어."
"왜? 갑자기 그런 말 들으니까 심장에 무리가 와?"
"맞아."
"...?"
"쳐 맞아, 개새끼야."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냥 놈의 정강이를 찼다. 내가 공은 너보다 못차도 정강이는 잘 차. 밥을 먹다 말고 정강이를 부여잡는 변백현의 모습에 아랑곳 하지않고 먹던 밥을 먹었다. 역시 내 김치찌개가 짱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어제부터 뭔가가 찜찜하다. 뭐지, 뭘까.
내가 무언가를 잊고 있는것 같은 그런 아주 쎄한 느낌이 ㄷ...
"...도경수...?"
"아, 존나 아파. 내가 도경수로 보여? 맞은건 난데 왜 니가 미쳐!!"
"...아, 헐."
"...진짜 미쳤나, 이게."
나 어제부터 도경수한테 삐져있었구나. 그걸 어제 밤에 해결한다는걸 망할 천둥 새끼때문에. 아니, 이 망할 변백현 새끼가 자고간다고 하는 바람에.
하지만 왠지 나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를듯한 도경수의 모습이 떠올라 이번엔 웃기시작했다. 큭큭, 거리며 쪼개는 내 모습에 변백현은 화내는 것을 관두고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야...내가 잘못했어...정신 좀 차려봐...라고.
"뭘 봐. 넌 밥이나 먹어."
"..."
쟨 무슨 생명체냐, 하는 표정으로 밥알을 씹는 변백현을 가볍게 무시하고 내 침대에 굴러다니는 폰을 집어들었다. 역시나.
[ 야 ]
[ 어젠 미안 ]
[ 아직도 삐졌어? ]
[ ... ]
[ 미안 ]
여자 한 번 안사겨본 도경수가 여자를 삐지게 했으니 얼마나 고민하고 고민했을지 알 것 같다. 삐지지도 않은걸 삐진 척을 하고 하루를 넘겼으니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근데도 더 놀리고 싶은건, 내가 성격병신인가.
[ 앞으로 그럴거야 ]
[ 안 그럴거야 ]
내가 보내놓고도 참 뭣같다. 하지만 도경수는 지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나는 안다.
[ 안그럴게... ]
도경수 이 새끼는 지혼자 센 척은 다하더니 존나 귀엽고 난리야.
[ 미안하면 밥이라도 사주던가 ]
반에서, 아니 학교에서 도경수의 이런 면을 아는 여자사람은 나밖에 없다.
[ 그럼 화 푸는거다? ]
별거 아닌건데 겁나 행복하다.
-
"○○아, 도서관 갈래?"
"...너 혹시 책 보게?"
"뭐야, 나도 책 읽는 여자거든."
"와...진짜 의외..."
나름 요란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물론 집에 엄빠가 없었다. 어색한듯 어색하지 않던 도경수와의 인사 후에 열심히 멍을 때리고 있는데, 도무지 책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수정이 다가와 도서관을 가자했다. 나 역시 책과는 담을 쌓았기에 평소에 도서관을 제 발로 찾아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끌려가고 있나보다. 제 발로 찾아가지 않아서.
학교 도서관은 따로 건물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여긴 부자학교였다. 독서실 층과 열람실 층이 따로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여기가 정녕 학교 소속 도서관입니까. 넋을 놓고 구경하는사이 수정이는 나를 열람실로 이끌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건, 그리고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건.
'도서부에는, 김종대가 있어.'
"어? 백현이 친구네? 안녕!"
"..."
제 발로 도서관을 찾아오는 일은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 같다.
《 지랄견 List 》
NO. 1 도경수
특징 : 반 1등. 공부 방해하면 빡침. 첫 여자인 친구가 나. 내 대변인. 나 얘한테 삐진 척함. 알고보면 되게 순수남.
NO. 2 변백현
특징 : 내 중딩친구. 내 소라빵 먹은 새끼. 개새끼. 여자 자주 갈아끼움. 너 개새끼 취소한거 취소. 너 오세훈집 왜 옴? 잘 옴.
NO. 3 오세훈
특징 : 첫인상 겁나 쟈가웠던 애. 나한테 이쁘다고 헛소리함. 아직 잘 모름. 나를 놀린다. 그만 좀 놀렸으면. 의외로 깔끔 올ㅋ 다정 올ㅋ
NO. 4 김종인
특징 : 첫인상 존나 무서웠던 애. 근데 인소 남주삘 대사드립으로 그 첫인상 다 깨버린 애. 나머진 잘 모름. 춤잘춘다니 대단한 애.
NO. 5 박찬열
특징 : 미미쨩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철벽남. 여동생있음. 살짝 츤데레삘. ..밴드부?
NO. 6 김종대
특징 : 해맑.은줄 알았더니 존나 세. 솔직히 도서부 권력남용이라고 해라. 너 덕분에 도서관 갈일 네버 없음.
NO.7 김민석
특징 : 솔직히 난 아직 얘가 무섭다. 깜짝등장을 좋아함. 선도부. 이상한 애. 오늘도 이상한 애.
NO.8 김준면
특징 : 우리반 반장. 여행가기를 좋아한다함. 나를 싫어함. 얜 또 어디갔을까.
안녕하세여 이 작품이 처음으로 초록글에 잠깐 올랐었네여
감사해여 열심히 연재할게여 흐핫
추천수도 3이나 되네여 추1004들이 왔다갔나여...?(두근)
뭔가 뒷내용을 생각해놓긴 했는데 그걸 동구녕만도 못한 손이 잘 풀어낼까싶네여
그럼 잘자여 토요일이라 안잘거 다 알지만
+무슨 패기로 브금도 안넣고 확인을 눌렀을까요.....브금넣었어여....ㅎㅎ
♥ 디스 이즈 암호닉! ♥
모카 님, 권지용 님, 희수씽 님, 토익 님, 알 님, 기린뿡뿡이 님, 루루 님, 삼지창 님, 예찬 님, 유민 님
크림치즈 님, 세젤빛 님, 이리오세훈 님, 엑소영 님, 둥이탬 님, 순살 님, 뿅뿅망치 님, 헤헿 님, 계란찜 님, 김민석 님
짝짝 님, 하트 님, 롯데월드 님, 렛잇꼬우 님, 됴큥 님, 뚱바 님, 마름달 님, 망부석 님, 라임 님, 삼지창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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