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17
서늘한 아침입니다. 오늘은 집주인이 학교에 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앓아누웠던 사람이 오늘 당장 외출을 한다니 탐탁치 않네요.
해서 나는 당당히 집주인의 경호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함께 가자고 말이에요.
"집주인! 내가 지켜줄게!"
"웃기지마."
저 한마디로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서운함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울지 않을거에요....
하긴, 주네에게 칼도 빼앗긴 마당에 제가 뭘 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연신 콜록대는 집주인을 홀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집주인의 앞에서 갖가지 애교를 부렸습니다. 토끼, 멍멍이, 야옹이....
집주인과 지내본 결과, 남자다움보다는 귀여움이 더 잘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제가 남자답게 행동하면 왠지 별로 같잖아보인다고, 집주인이 그러더라고요.
가끔 이럴땐 집주인에 비해 너무 조그마한 내 자신이 쓸모없어 뵈기도 합니다.
결국, 제 토끼 애교를 무제한으로 보여준다는 조건 하에 동행하게 되었어요.
집주인 그렇게 안 봤는데 알고보니 귀여운 토끼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집주인의 외투 주머니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집주인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일정한 진동이 마치 심장박동 같아요.
아기를 재우는 흔들 침대, 내지는 포근한 흔들 의자 같기도 합니다.
학교란 곳은 처음 봅니다. 일단 사운드의 규모에 압도됐습니다.
사람도 많고 시끌벅적한 탓에 온몸이 긴장으로 곤두섭니다.
그대로 웅크린 채로 굳어있는 나를 알아챈건지,
겉옷 위로 나를 감싸는 집주인의 손길이 느껴져요.
보송이 침낭에서 잠들 때와 같은 느낌에 한결 맘이 편해집니다.
***
나는 외투 주머니에서 동동을 꺼내어 내 책상 위에 올렸다.
주위 눈치를 보니 동동을 알아채는 애는 없는 것 같다.
평소같으면 옆반까지 휘젓고 다니며 매점을 같이 갈 파티원을 모집했겠지만,
지금은 속 편히 자리를 비우고 돌아다닐 만한 상황이 안되었다.
나는 무릎담요를 반듯이 접어 침대처럼 만든 후 동동을 올렸다.
동동이 무릎담요의 폭신함을 느끼면서 내게 말했다.
"와아~ 여기 내 자리 하는거야?"
"......."
닥쳐. 아무도 없는데 혼잣말하는 미친년 되기 싫으니까.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입꼬리만 어색하게 올렸다.
그때, 김한빈이 내 어깨를 치며 옆자리에 앉았다.
"아씨 깜짝야."
"괜찮냐? 이틀이나 빠지더니."
"어제 병문안 와놓고 뭘 새삼스레."
자연스럽게 내 책상 위의 무릎담요로 손이가는 김한빈을 만류했다.
너 추운 건 알겠는데 저 담요는 못 내줘. 동동이 있단 말야.
굴하지 않고 내 담요로 손을 뻗는 김한빈의 팔을 찰싹- 때렸다.
그러자 김한빈이 이런 소리를 해댄다.
"너 진짜 확실히 이상해졌다, 요즘."
"...내 물건 내가 지키는 게 당연한데."
"그런 뜻이 아닌데.... 하여튼, 야, 담임이 너 오래."
"왜?"
"결석 신고서 받아가라나봐."
나는 금방 '아-' 수긍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멈칫했다.
나는 동동을 슬쩍 담요에서 내려놓고 김한빈에게 담요를 건넸다.
나 없는 새에 담요에 손댈 김한빈이 분명하기에,
나는 부러 담요를 넘겨줘버리고 동동을 필통 뒤쪽으로 숨게 했다.
그리고나서야 나는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나는 교실을 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동동을 혼자둔다고 혹시 별일이야 있겠는가?
나는 교무실에서 결석 신고서 두 장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두 작성해 선생님께 제출했다.
곧 나올 복사물을 받아서 다른 데에 전달해달라는 심부름도 받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 복사물을 받아 1층까지 전달하고 다시 올라왔다.
귀찮지만 아침부터 운동한 셈으로 쳤다.
교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조회가 시작된 이후였다.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동동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곁을 살폈다.
책상 밑의 서랍, 필통 속, 그리고 책상 위에 널부러진 담요까지.
담요를 탈탈 털어도 나오지 않자, 그제서야 맘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동동이 없다. 또 없어졌다. 또.
나는 식기세척기 사건을 다시 떠올리곤 고개를 홱홱 저었다.
설마 악몽이 현실로 되는 건 아니겠지.
나는 교실을 주욱 한번 둘러봤다.
그래봤자 동동의 코빼기도 안 보인다.
나는 조회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통에 계속 입술에 침을 묻혔다.
머리를 빠르게 굴려 동동이 갈만한 곳을 생각하려 애썼다.
역시 혼자 두는 게 아니었나. 같이 데리고 갔어야 했나.
도대체 혼자서 어딜 간거야, 동동.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의 마룻바닥을 주욱 훑어봤다.
동동은 커녕 샤프 한자루도 떨어져있지 않다.
나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
앉아만 있던 집주인은 볼일이 있는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홀로 남겨질 제가 걱정은 되는 모양인지, 집주인은 저를 슬쩍 숨겨주었습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얼마간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집주인 친구가 집주인의 담요에 하자를 입히지 않을까 감시하면서 말이에요.
쉴새없이 지나치는 사람들 탓에 집주인의 책상이 덜덜 흔들립니다.
나는 지진을 맞이한 것 마냥 집주인의 필통 옆에 꼭 붙어 꼼짝 않았어요.
이내 집주인의 친구도 담요를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소란이 가라앉고 조용해진 교실에서, 나는 웅크린 몸을 펴고 집주인의 책상 한가운데에 섰어요.
그때, 교실 밖 창문에서 집주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이리 와...!'
"집주인!"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나를 부릅니다.
내내 입을 안 열 땐 언제고 큰 소리로 나를 불러냅니다.
나는 책상을 박차고 뛰어내려 바닥을 달려갔어요.
그리고 열린 문 틈으로 교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집주...어?"
신나서 달려가 맞이한 주인공은 집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주름진 익숙한 얼굴은 요괴할매였습니다.
집주인의 얼굴로 변신했던 요괴할매는 본래의 얼굴을 서서히 보였어요.
그리고 나를 홱 잡아채 올려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동동 아가, 얼마만이더냐? 네가 올 생각을 않아서 이 할미가 찾아왔다."
요괴할매의 회색빛 눈동자가 내 맘속을 꿰뚫어보듯 다가왔습니다.
----------
헠헠헠...연재가 늦었죠? 죄송해요.
요즘 실기 준비하느라 연재 속도가 엄청 더뎌졌어요.
글은 보통 밤에 자기전에 쓰고 잠들고는 하는데요,
실기곡도 보고 글도 쓰고 자려니까 못다 쓰고 곯아떨어져버렸네요....
진짜 죄송합니다ㅠㅠㅠ 크리스마스 전에 완결할 예정이었는데,
예정대로 잘 될까 모르겠어요....
그래도 항상 댓글 달아주시는 덕분에 그나마 힘 나고 있습니다.
더해서, 지금 저처럼 대입 준비하시는 고3분들이나
피터지는 실기 준비하시는 예체능 분들!!
재밌는 글들이라도 보시고 조금이라도 힘내셨으면 좋겠어요!ㅠ
연재 갑자기 더뎌진 거 너무 죄송하고요ㅠㅠ
쌀쌀한 겨울날씨 포근하게 보내세요~